도산 외손자와 金운하씨 ‘국민회관사료반출’놓고 “치열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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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외손자와 金운하씨 ‘국민회관사료반출’놓고 “치열한 논쟁…”

외손자 커디 “국민회 자료 개인소장 할 수 없는 역사적 유물”
김운하 부부“조부 김형순씨가 국민회임원이라 자료수집했다”

“국민회관사료 불법반출사건”을 두고 도산의 외손자 필립 커디씨와 김운하 부부간에 정면으로 서로 반박하는 논쟁으로 번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이민사 관계자와 학계 그리고 정부 당국자들이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최근 필립 커디씨는 “金운하씨가 서울 도산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에 기증한 공립협회 회원명부 등을 포함한 자료는 국민회관 사료이다”면서 “이들 자료들은 LA국민회관으로 반환돼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지난 10월 한국방문 길에 도산기념사업회에서 문제의 공립회원 명록 등을 직접 보았다”면서 “이들 사료들은 국민회관 사료이지 金운하씨 가족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金운하씨 부인 金충자씨는 “한국에 기증한 자료들은 국민회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면서 “커디씨의 주장은 사실 무근이다”라고 반박했다. 지난 9월7일 본보가 처음으로 ‘국민회관사료 불법반출의혹’을 보도했을 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金운하씨는 최근 커디씨가 AP통신을 포함해 한인 언론들에게 ‘불법반출’설을 제기하자 부인 金충자씨가 “기증된 자료는 우리 가족들이 소장했던 것 “이라고 반박한것.

이에 대해 커디씨는 “어떻게 국민회관사료가 개인에게 소장될 수 있는가”라며 “여러 가지 정황 증거상 불법 반출임에 틀림없다”고 반박했다. 미주한인 초기이민사를 연구하고 있는 커디씨는 국민회관사료 불법반출에 대해 지난 10일부터 AP통신,한국의 동아일보 등을 포함한 언론사들은 물론 USC등 학계와 LA시 당국과 주정부 관계자 등에게 진상을 계속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편 金운하씨는 “기증된 자료는 나의 조부 金형순씨가 국민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집한 자료라”고 밝혔다. 또 金씨는 “초기이민시절 ‘金 브라더스’라는 회사로 거부가 된 金형순씨가 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1950-1960)을 역임하면서 역사적 자료를 소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커디씨 불법반출의 증거 제시

필립 커디씨가 “불법반출”이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의 하나가 서울 도산기념사업회에 기증된 ‘공립협회 회원 명록 1909-1911’이다. 커디씨의 논리는 ‘공립협회 회원 명록’은 비록 국민회 임원일지라도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커디씨는 미주한인 초기이민사 자료로 권위를 인정받는 ‘재미 50년사(金원용저,1957)’ ‘Koreans in America(최봉윤저,1979)’ ‘Kaladeiscope=이민역사구전사(소니아 선우저,1982)’ 등에 기록된 金형순씨의 사적을 들어 金씨가 ‘공립협회 회원명록’을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우선 金운하씨가 주장하는 조부 金형순씨의 국민회 임원 역임과 관련된 사항이다. 金형순씨는 1950년대에 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냈다. 따라서 그는 1909년에 창립된 국민회 전신인 공립협회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공립협회는 도산 안창호가 1903년에 만든 ‘한인친목회’를 발전시켜 1905년에 설립한 단체이다. 이 공립협회와 하와이의 협성협회 등이 통합해 1909년에 구성된 것이 국민회이다.

커디씨는 “특히 공립협회 회원명록은 1909년-1911년까지를 작성한 단체 공식 회원명부이기에 이 회를 창립한 도산도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공적인 서류를 어떻게 金운하씨 조부가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커디씨는 “金형순씨는 한국전쟁 시기에 국민회 임원인 사람으로 공립협회나 흥사단의 회원도 아니었다”면서 “그는 도산으로부터도 어떤 서류도 전해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공립협회 회원명록’ 같은 문서는 국민회 공적서류로 샌프란시스코에서 1936년 LA로 국민회 본부가 이전하고 1938년 회관이 건립되면서 다른 사료들과 함께 보존됐던 것이라고 밝혔다.

필립 커디씨는 ‘공립협회’ 문건 이외에도 그가 서울 도산기념사업회에서 金운하씨로부터 기증된 1,500 점 자료 중 일부를 직접 본 결과 국민회관 사료들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 중에는 흥사단 소장품도 있다며 도산이 직접 제작한 책장을 지적했다.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는 지난 2월27일 金운하씨로부터 역사자료 기증사실을 한국 내 언론에 밝혔으며 ‘도산회보’ 4월호에 기증자료 일부 목록을 소개했다. 이중에는 ‘공립협회 회원명록 1909-1911’ ‘대한인국민회 임원록 1903-1911’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파출위원 서임장 발급존안 1919’ ‘미주지역 동포인국등록증 1919’ 등이 있다. 커디씨는 “이들 국민회 소장 자료는 1909년부터 1919년까지 공적서류들인데 그 당시 미국에 있지도 않은 金운하씨 조부가 이런 자료를 무슨 자격으로 개인이 소유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국민회관 복원 제대로 되었나

커디씨는 지난 14일 언론보도문을 통해 金운하씨의 조부로 알려진 金형순씨의 약력과 연혁을 소개하면서 그가 국민회 초기자료들을 입수할 수 없다는 행적을 밝혔다. 커디는 “金형순씨가 50-60년대 국민회 임원 당시 이들 사료들을 취득했거나 후에 누군가가 가져갔을 것으로 보인다” 면서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료는 개인적으로 소유할 권리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립 커디씨는 “국민회관의 사료가 불법반출된 것이 틀림이 없는데 국민회관을 복원한다는 복원위원회(회장 홍명기)측이 이런 사실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또 그는 국민회관의 사료보존에 책임이 있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담임 이송원 목사)측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국민회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흥사단측도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회관의 사료는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1984년 5월 잭 크리카드 판사가 “2083년까지 외부로 반출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판결 이유로서 국민회관의 사료는 미주한인사회의 역사적 유물이기 때문이라며 특히 캘리포나아 한인이민사회와 직결되어 있다고 설명했었다.

한편 필립 커디씨는 지난 9일 복원된 국민회관 정면입구의 원래의 현판이 복원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새로 복원된 국민회관 정면 입구의 현판은 과거 언론들에 나타난 국민회관 당시의 현판과는 다르다는 지적. 커디씨는 왜 복원위원회가 국민회관 현판을 변경시켰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국민회관을 복원하는 것은 원래대로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라며, 증축이나 개축과는 다르다고 설명한 그는 국민회관은 1991년 10월 2일 로 지정됐기 때문에 형태를 변경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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