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역상 꼬여 평양에 데려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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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역상 꼬여 평양에 데려가려

북한 실상 제4부‘군사’(북한군 실태)-2

일본 아사히신문이 올해 ‘북한의 맨얼굴’제하 특집의 제3부인 경제부문 내용을 지난8월10일자 본보(419호)에 소개한바 있다.
이달중순 예정됐던 북핵문제의 6자회담 속개 설속에 나온 제4부(部) ‘군사’(북한군 실태)를 한국, 미국, 러시아의 관점을 섞으며 살핀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돈의 노예’ 미군과 싸우면 이겨… 심리전 교육
군복무는 수뇌부지키는 가장 신성한 길… 세뇌

공작원

공작선엔 지대공미사일도 탑재

남자가 나리따공항에 내렸다. 싱가포르인이 되어 가짜 여권을 내밀자 입국심사를 통과할수 있었다. 공항로비에 “현지안내인”이라 칭하는 양복차림의 5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인지는 모른다. 신분을 묻는 일은 허용돼있지 않았다.

남자는 조선인민군의 특수부대인 인민무력부정찰국의 전 대위(34). 동료와 3명이 일본에 들어간게 93년가을의 일이다. 미니밴에 흔들려 미해군의 사세보기지등을 돌아보며 다녔다. 약간 높은 언덕에서 군함의 크기를 확인하고 도크나 연료저장소의 위치를 가늠했다. “미행등 일본당국의 눈을 느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전 대위는 해상보안청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전술적 기동’이라는 훈련도 받았다. 94년3월 공작선으로 일본어선단에 끼어 사할린해상서부터 남하했다. 일본 영해선을 건너 지그재그항행을 하며 순시선이 출동하는지 여부를 보았다.

“공작선은 임무에 따라 적재하는 무기도 다르다.” 휴대형 지대공미사일, 무반동포…. 2001년12월에 오미대도해상서 자침한 공작선에서는 대량의 무기가 발견되었다. 마약거래였다고는 하나 지금도 ‘임무’는 알려지지않았다.

한국정보기관의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특수기관은 군계열과 노동당계열로 대별된다. 군계열의 정찰국은 무장공작원 파견이나 군사정보 수집등을 맡고, 당계열은 첩보, 납치등을 담당하는 모양이다. 당계열은 다시 4개부서로 나뉘는데 그 내역은 1) 대외연락부=지하조직 구축, 공작전술 연구 2) 통일전선부= 통일전선 형성, 대남심리전 3) 35호실= 해외정보 수집, 테러 4) 작전부= 공작원 교육, 침투.복귀 안내 등이다.

87년 KAL폭파사건에 관련한 것은 ‘35호실’이라고 하며 83년의 일여성납치에 관여했다고 하는 전 자그레브주재 부영사는 ‘대외연락부’출신이라고 알려졌다.

“ 남한(한국)대사관으로부터 미국, 일본, 한국의 정치정보를 입수하라.” 당소속의 전 공작원(36)은 94년12월 그렇게 지령받고 아프리카로 부임했다.

현지의 한국대사관은 주말엔 민간의 파견경비원 2명만이 있다. 거기에 착안해 경비회사를 찾아갔다. 싱가포르인으로 무술사범이라고 자칭, 주 3회 경비원들을 가르치는 계약을 맺었다. 누구를 내통자로 삼을까고 나날의 연습과정에서 점 짝어 놓았다.

평양부터의 지령은 단파의 모르스신호로 받았다. “이때까지의 성과를 보고하라” “남조선공관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간 것 같다. 보고하라.” 매월 상.중순의 4일간 자기한테의 암호전문이 보내졌다고 한다.

90년대후반 중국내에 있는 북한공관에 근무했던 30대 남성도 공작활동에 종사했다. 임무는 한국인”끌어안기”다. 중국동북부의 심양이나 단동에 가면 호텔 로비에서 하국인무역상들과 접할수 있었다. “나도 평양에서 무역일로 왔다”고 말을 걸었다. 술, 가라오케, 여성을 소개해 1년가까이 교제를 거듭했다. 친해진 무역상은 어느날 고충을 털어놓았다. “ 사업자금이 없어 힘들다.” 남성은 “힘이 되어줄께”라고 약속했다.

평양에 데려가면 뒤는 당의 특수기관이 맡을 참이었다. 그러나 남성은 도중에 탈북했다. 본국으로부터 한국에의 정보누설을 의심받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시히신문 11월19일자-
북한군이란 어떤 존재인가…

통일전략 맡는 특수부대
=일 방위연수소 주임연구관 다께사다 히데시=

북한에게는 미국, 한국군과 정면으로 싸우는게 상책은 아니다. 최소한의 코스트에 의해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한반도의 통일을 실현시키겠다는게 북한의 군사전략이라고 말할수 있다. ‘자주적’이란 미국등 외국세력의 개입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평화적’이란 한국의 일반국민에게 총을 겨누지않고 통일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문의 수단이 인민군의 특수부대와 노동당 공작원의 존재다.

당공작원의 역할은 한국에 침투해서 북한에 대한 국민의 저항감을 완화시키는 일이다. “주한미군이 통일의 방해다”라는 여론의 제고도 노리고 있다. 북한에게 한국의 일반국민은 공격의 대상이 아니다. 적은 ‘미국’과 ‘미국의 괴뢰세력’이며 이를 고립시키는 일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특수부대의 최대의 역할은 통일을 향한 최종단계에서의 활동이다.

가령 주한미군의 철수가 실현돼도 한국전을 경험한 한국의 퇴역군인이나 장군, 보수파고관등의 다수는 북한을 혐오하고 있으며, 현체제와의 통일의 장애가 되는 세력이라고 말할수 있다. 한국군과 싸우는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하기위해서는 이러한 세력의 배제가 필요하다. 특수부대는 단시간에 대량으로 하국에 침입해 그러한 반(反)북한세력이 있는 한국의 중추에 육박한다는게 가장 기대되는 역할이다.

엄격한 훈련, 충성 결의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 전 부이사장 윌리엄 테일러=

북한군의 병사는 극히 잘 훈련돼있다고 4회의 북한방문경험을 통해 느꼈다. 그것도 방어훈련이 아니라 공격을 상정한 것이다. 병사는 미국이나 한국부터의 공격을 어떻게 막느냐를 교육받지만, 그것은 “공격으로써 방어한다”라는 생각인 것 같았다. 94년에는 탱크부대의 훈련을 봤다. 10대의 T55형 탱크가 간격을 정확히 유지하고 공격을 상정한 완벽한 움직임이었다. 탱크자체는 구식이지만 엄격한 훈련이 행해지고 있음을 알았다. 북한군에 대한 또하나의 분석은 그들의 부대는 때로 우리에게 ‘광기의 울림’을 느끼게한다는 것이었다.

북한 장군과 부대내에서의 교육에 관하여 얘기한 적이 있다. 미군부대는 정보를 중시하며 정보분석을 통해 일을 생각해야 된다고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장군은 북한군에 가르치는 것은 주체사상이고 고 김일성주석에의 충성이라고 말했다. 나는 미군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우수하고 잘 정비돼있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하였다. 장군의 답은 “ 이라크인은 싸우지 못했지만, 우리는 싸울수 있다”고 하는, 결의같은 분석이었다.

북한군은 한국이나 일본을 공격해 많은 사람을 살상할 능력을 갖고 있다. 북한은 결코 전쟁에 슬리할 수는 없지만 일한미의 피해도 면할 길 없다. 전쟁돌입은 우리가 지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작년에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일본총리에게 김정일 총서기는 납치문제로 사죄한 다음 공작선에 관해서도 “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말씀드린다”고 약속했다.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이 실현한 이래 남북간의 교류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공안관계자는 “북의 본질은 변해있지 않다.”고 말한다. 북한은 냉전의 종결을 거친 지금도 한반도의 “적화통일’기빨을 내린 셈은 아니다. 올9월 노동당출판사가 마든 강연자료는 한국여론이 북한과의 융화(融和)로 기울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선동했다.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달성하는 투쟁에 모든 정력과 지혜를 바쳐라.”

사상강화

체제유지를 위해 ‘군’이 최우선
14~16세때 병역대상 이미 파악

“우리 민중은 김정일장군의 군사우선정치아래서 통일의 시대를 맞았다.” 북한의 한국을 향한 라디오방송 ‘구국의 소리’는 올7월31일 그렇게 전하고 방송을 중지했다. 지난33년간 “서울의 지하방송”을 가장하고 한국이나 미국을 비난하며 북한체제예찬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다가 그날 남북각료회담의 김영성 북측단장도 “적대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통지문을 보내 한국의 대북방송도 중지토록 제안하였다. “북한은 방송의 질, 양 모두 한국에 압도당해 견딜수없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한국 통일부의 전 고관은 코멘트. “대남선전을 체념한 만큼 국내단속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고 풀이하였다.

북한북부의 조종사양성학교에 소속해있던 남성(33)은 교관으로부터 매일 싸우는 용기를 주입받았다고 회고한다. “수적 기술적열세를 정신력으로 뿌리치는 것이다.”

연습기는 구소련제 미그15. 반세기전의 한국전당시에 활약한 구형인데 실전에도 투입키로 돼있었다. “적군(敵軍)”이라는 수업에서 미.한국군의 전투기에 관해서도 배웠다. 당초는 그 성능의 차에 놀랐다. 하지만 “미병사는 돈으로 고용된 자들이다. 조국을 지키는 자부심을 갖는 인간과 ‘돈의 노예’가 싸우면 어디쪽이 이기는가는 명백하다”고 되풀이 가르침 받는 사이 공포감은 사라졌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출판사가 작년에 낸 군간부용의 학습자료는 ‘심리전’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적과의 싸움은 무력에 의한 싸움과 사상선전의 싸움의 두가지 선상에서 행해진다.”
이 자료는 2001년의 아프간전쟁에 관하여 “탈리반은 군사적 타격보다 심리전에 당했다.”고 결론지었다. “미군에 농락당하지 않게 정치사상적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한다.”

그렇지만 병사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96년부터 8년간 군에 있었던 전 소위의 여성(33)은 말한다. “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미한군을 상대로 이길 가망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평양의 공군사령부에서 여성들만의 통신중대에 소속돼있었다.
각 공군사단에 “ 오늘은 훈련을 중지하라. 기체점검을 하도록.”라는 지령이 수일간 계속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아아 우리들의 비행기는 날지목하는 구나”라고 연료부족을 깨달았다.

90년까지 11년간 군복무를 계속하고 최근까지 북한북부에 있었던 남성(41)에 의하면 식량이나 약품부족은 군에서도 심각화돼있다. 몸이 아파 군병원에 입원토록 돼있어도 “ 약은 집에서 가져오라”고 명령받는 일도 있다.
친동생이 94년부터 군에 들어갔다는 여성(30)은 “돈만 있었더라면”하고 후회한다. 동생의 소속은 일이 힘든 도로건설부대. “거기에 배속되면 부모가 운다고 한다. 무사히 동아올수 있을지 어떨지 걱정이다.” 유복한 가정에서는 의사에게 가짜 진단서를 받아 병역을 면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14~16세의 남녀는 전원 ‘붉은 청년근위대’라고 불리우는 조직에 들어간다. 1주간의 입영훈련을 통해 병역대상자가 장악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병역은 명목상 오랜동안 지원제였다. 그러다가 올 3월의 최고인민회의는 ‘군사복무법’을 승인해 병역을 의무제로 바꾸었다. 오래 끄는 경제곤경속에서 “군대에 가기 보다 장사를 바라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 아닐까”(한국의 연구자)라고도 한다.

조선인민군은 김정일총서기에게 권력의 기반이고 체제유지의 밑천이다. 군이 무엇에도 우선하는 사상을 계속 강화시켜 나가야만 한다. “군무(軍務)는 수뇌부를 지키는 가장 신성한 길이다.” “군무를 하지않으면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진다.”
작년 군내부에 배포된 신병대상의 교육자료에는 그런 말들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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