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아내 유리꼬의 大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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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준“아내가 다른 남자와 부정을…”
유리꼬“ 남편이 상습적 외도와 폭행을…”

2년 7개월 결혼생활중 5차례에 걸쳐
“발로 차이고 주먹으로 맞는” 린치당해…

조희준 씨는 과거 첫번째 부인인 나종미 씨와의 이혼과정에서 조폭인 ‘서방파 두목’ 김태촌 씨를 동원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는 등 법정소송으로까지 치달은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01년 신동아 3월호에 이러한 소문에 대해 ‘조직폭력 대부 김태촌 옥중심경 고백’이라는 글을 통해 김태촌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었다.


“그 아들 이름이 조희준이지? 지난번에 보니까 또 결혼한 것 같던데. 당시 탤런트 나종미 씨와 결혼했는데, 그 여자가 조용기 목사님 손녀를 낳은 후 뭐가 잘못됐는지 하여튼 이혼하는 상황이 벌어졌어. 그런데 위자료를 너무 많이 요구해 그 아들이 고민하고 있었다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최자실 목사님(조용기 목사의 어머니) 장례식날 기도원에 기도하러 갔다가 기도원 식당에서 우연히 아들(조희준)을 만났어. (조목사) 가족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지. 고민이 크더라고.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여자 쪽을 만나 얘기해보겠다고 한거야. 아들이 부탁한 게 아니고 내가 알아서 한 일이라고. 그 후 내가 나종미 씨를 만나고 (조희준의) 장인·장모도 만나 얘기를 했지.

그 일로 조 목사님이 괜히 오해를 받아 그 다음부터 만나지도 못하게 됐어. 당시 ‘목사가 어떻게 그런 일을 시키느냐’는 얘기도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야.”

아무튼 이를 봐도 조희준 씨의 첫번째 이혼과정에서도 금전적 문제 즉 ‘위자료’ 문제를 놓고 양측이 대립했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본보가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하고 있는 ‘조희준 씨의 가식과 오욕으로 얼룩진 초상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두 번째 부인인 일본인 여성 나까무라 유리꼬 씨와의 ‘이혼소송’ 기록에서 보여지는 비인간적인 행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뒤늦게나마 씁쓸함이 남게 한다.

장남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아버지 조용기 목사가 재혼과정에 적극 개입했던 점 등을 비춰볼 때 ‘김태촌 씨의 옥중고백’을 통해 밝혀진 증언 또한 다소 ‘진실감’이 떨어져 보인다.

최근 조희준 씨는 넥스트미디아 그룹의 명예회장으로서 ‘스포츠투데이’라는 스포츠지를 경영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 일본 증권가에서 ‘화려한 황제로의 등극’을 꿈꾸며 대형투자사를 경영했던 조희준 씨. 최근 조 씨 일가가 관련된 기업체들이 코스닥 등록을 하는 등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본보는 ‘가식과 오욕으로 얼룩진 초상화’를 연재하며, 이러한 조 씨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서도 다소 살펴보기로 한다.

“양육비 일시불”싸고 조정 실패

이미 지난 호에 밝혔듯이 조희준 씨는 끝내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은 나까무라 유리꼬 씨의 ‘부정(不貞)’을 문제 삼아 마지막 고육책을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지막 고육책’은 쌍방 부모끼리 지난 93년 9월말 경 협의를 통해 “유리꼬 씨는 모친으로서의 자각이 결여되어 있는데다가 인간적으로도 미숙하니 쌍방이 함께 잘 아는 오쿠보 미도리 여사에게 당분간 맡겨 오쿠보 씨의 지도아래 충분한 ‘신부수업(修業)’을 받고 다시 귀가(歸家)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꼬 씨는 처음에는 이를 수용하는 듯 하다가 본가로 돌아가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며 양측의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이후 지난 93년 12월 조희준 씨와 별거에 들어간 유리꼬 씨 측은 ‘혼인비용 분담심판’ 신청을 오사카 가정재판소에 내기에 이른다. 즉 유리꼬 씨는 남편인 조희준 씨에게 ‘별거 중의 생활비’로 이 같은 요구를 법원에 신청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에 회부되었으며, 이를 전후해 조희준 씨 측에서 “별거 중 혼인비용 분담금의 내입금” 명목으로 100만 엔을 지불하기에 이른다.(同年 12월 21일)
이러한 유리꼬 씨 측의 ‘혼인비용 분담심판’ 신청은 이후 조희준 씨가 이듬해인 94년 1월 24일 제출한 ‘이혼조정’ 신청과 결국 병합되어 심리키로 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런데 지난호에도 언급한 진술서(94년 3월 10일 자 재판기록 문서 1)의 말미부분을 살펴보면, 조희준(大林大地) 씨는 “1억엔(10억원)을 현찰로 달라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요구이다. 거액의 양육비를 일시에 유리꼬에게 건넬 의사가 없다”고 거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유리꼬 씨 측이 ‘지불이행 확보차원’에서 일시불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조희준 씨 입장은 다소 달랐다.

조희준 씨 본인은 ‘아이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해주는 것은 부친으로서 당연지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명분아래 ‘지속적인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쪽’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이는 그가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등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정착하려 했기 때문에 나온 발상이었다.

아무튼 그는 “매달 ‘적정한 양육비’를 지불하면서 장래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든가, 큰 병으로 돈이 필요할 경우에는 상황에 맞춰 그때 그때마다 충분한 지원을 할 작정이었다”고 진술했다. 결국에는 “아무리 이 같은 지원에 대해 내가 보장을 한다 해도 불안하게 여긴다면 오쿠보 씨를 비롯 회사의 임원들이 보증을 서는 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 3천만엔(약 3억원)으로 요약되어 요구되었던 두 딸 양육비의 일시불 문제를 놓고 양측의 대립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일시불이냐 아니면 매월 지불이냐를 놓고 팽팽히 맞선 끝에 조정은 끝내 ‘부조’(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은 조정을 이루지 못하고 법정다툼까지 불사하겠다고 맞섰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난 94년 7월 22일 ‘조희준(大林大地)’ 씨는 본인 명의로 “이혼 등의 청구사건” 소장[재판기록 일람 2]을 고오베 지방법원 아마자끼 지원에 접수하게 된다. 조희준 씨가 이 같은 소송의 청구 사유로 내세웠던 부분은 바로 ‘부인의 외도’ 즉 부정(不貞)한 사실과 관련한 것이었다.

조희준 씨는 ‘두 명의 남성과의 교제사실이 판명되었다’며 “피고인 유리꼬 씨는 원고인 조희준 씨와 결혼해 2명의 딸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複數)의 남성과 깊은 관계를 계속하고 있었으니 피고 유리꼬 씨의 부정(不貞)은 명백하다”며 “쌍방의 친족 등이 모여 이를 협의한 끝에 피고 유리꼬 씨가 부정과 관련해 사죄하고 원고인 조희준 씨가 이를 용서하는 것으로 일단 해결을 보려 했지만, 피고 유리꼬 씨가 이후 두 딸에 대해서도 어머니로서 애정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약속(오쿠보 씨에게 신부수업을 받고 도쿄로 돌아오기로 함)과 달리 무단(無斷=제멋대로)으로 친정으로 돌아가는 등 파경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소송에 앞서 진행된 조정 기간에 조희준 씨가 제출한 진술서[재판기록 1. 94년 3월10일]를 보자면 ‘이 같은 제멋대로(?) 친정으로 도망가기’까지의 경위가 상세히 적혀있다.

“오쿠보 씨(유리꼬 씨 고모의 딸)의 얘기에 의하면 유리꼬 씨의 부친은 나의 부친(조용기 목사)과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유리꼬를 친정에 데려가겠다’고 말했고 유리꼬 본인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이르자 오쿠보 씨가 유리꼬 씨에게 “지금 약속을 깨뜨리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혼장을 들이미는 것과 같은 결과가 초래된다. 이번 일을 곰곰이 잘 생각해서 본인이 향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해요”라고 말하자 유리꼬 씨는 “남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아이만 유리꼬 씨 양친이 데려가고 혼자만 남았었다. 바로 그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예배가 있었는데 유리꼬 씨의 얼굴이 무언가 고뇌에 차있어 ‘돌아와서 너를 위해 예배를 해줄게’라고 말하여 집에 혼자 두었다는 것이다. 결국 오쿠보 씨가 돌아와 유리꼬를 찾았으나, 집에 없으므로 친정에 전화해 보았다.

유리꼬씨는 ‘아이들을 데리러 왔었는데 잘 생각해 보니 이혼을 한다면 언니 집에서 신부수업 등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이혼하지 않는다고 결심하게 되면 되돌아갈 것이니 그때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더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오쿠보 씨는 아이들 생각해서 ‘돌아오라’고 말했지만 유리꼬 씨가 ‘아이 일보다 자기자신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자 ‘그 말도 옳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여하튼 돌아오라고 권유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여기서 보여지듯 유리꼬 씨의 ‘훈련’은 보름 만에 끝난 셈이었다. 조희준 씨는 이러한 훈련에 대해 그 기간을 처음 2개월 정도 생각했고, 나중에는 1개월 정도 지나면 본인가족과 한국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조용기 목사 일가 관련 기업들 동반 코스닥 진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자제들과 관련된 기업체들이 우회등록을 통해 코스닥에 진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씨는 전 국민일보 회장직을 역임한 뒤, ‘넥스트 미디아 홀딩스’ 및 ‘스포츠투데이 미디아’를 총지휘하는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최근 사실상 조희준 씨가 이끄는 디지털 스포츠투데이가 코스닥에 이미 등록되어 있는 삼우통신(031860)을 통해 우회등록을 통해 코스닥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16일 ‘온라인상 스포츠투데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스투(www.stoo.com)는 통신기기 제조업체인 삼우통신공업(031860)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약 646만주(60억원 : 지분 29.01%)를 인수,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로 올라섰다. 여기서 특수관계인이란 디지털 스투의 특수관계인인 스포츠투데이 미디아 그룹(명예회장 조희준)도 이번 유상증자에 참여, 210만주(9.4%)를 인수한 것을 말한다.

알려진 바로는 조희준 씨가 이끄는 스포츠투데이 미디아 그룹도 최근 동원 증권사와 코스닥 등록을 위한 주간사 계약을 맺고 내년 하반기 경 코스닥 진입을 노릴 예정이다. 이 같은 조희준 씨의 발빠른 행보가 주목을 끄는 것은 본보가 계속 보도한대로 과거 조희준 씨가 일본 증권가에서 수십억 엔을 말 그대로 날리는 등 과거 전력 때문이다. ‘대형 투자사’인 ‘FIC’를 경영하며 한차례 실패를 맛보았던 그가 한국 증권시장에서는 대주주 및 경영자로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러한 조 씨의 우회등록 추진과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삼우통신공업(031860)은 지난 1개월여간 600원 대에서 최고 1,705원 대까지의 수직상승을 보여 증권가에서 주목을 끌기도 했다. 단기간 300%에 육박하는 엄청난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급등에 조희준 씨의 넥스트 미디아그룹의 전면적인 코스닥 진출이라는 ‘호재’를 바탕으로 한 상승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5일 발표된 삼우통신(031860)의 공시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당사의 최대주주인 채건식의 보유지분 2,897,954주중 1,680,000주(14%)를 넥스트 미디어 홀딩스(주) 또는 넥스트 미디어 홀딩스(주)가 지정하는 제3자 [이하 양수인, 양춘국, 하지메 사토미, 카마타 히데야, 일본공업신문(주)]에게 매각(장외거래)하는 계약을 다음과 같이 체결함에 있어 본 건 주식에 대해 주주로서 가지는 일체의 권리를 양수인에게 귀속하고, 또한 넥스트 미디어 홀딩스(주)가 회사의 경영권을 적법한 절차를 통하여 양수인으로부터 인수하는 것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정함]

이날 발표된 공시내용에 등장하는 인물들인 양춘국 씨를 포함 나머지 양수인들 모두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알려져 있고, 이번 코스닥 진출에 있어 과거 일본에서 조 씨와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의 전면적 등장이 눈길을 끈다는 것이다.

또한 급격한 상승률을 기록한 삼우통신(031860)은 이 같은 우회등록 발표 전에 ‘별다른 급등사유가 없다’고 밝힌 뒤 ‘소수지점 집중 관여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의혹을 낳고 있다. 기존의 최대주주인 채건식 씨는 지속적으로 장내매도를 하고 있어 이 또한 그간의 상승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기존 주주들의 반발 또한 예상된다.

한편 삼우통신(031860)이 사실상 조희준 씨에게 인수되던 날, 네모(032800)는 지난 15일 신규사업 추진을 위한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 차원에서 대표이사가 임인곤 씨에서 조 사무엘 민제 씨로 변경됐다고 공시해 또 한차례 관심을 끌었다. 네모(032800)는 이날 임시주총을 열고 영업양수, 정관변경, 이사선임 건 등을 가결하고, 이러한 정관변경에 따라 “네모의 회사명이 디지웨이브 테크놀러지스로 변경되게 되었다”고 공시했다.

여기서 네모의 신임 대표이사로 등재된 조 사무엘 민제 씨는 조용기 목사의 차남으로 넥스트 미디아 홀딩스 조희준 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또한 조 사무엘 민제 씨는 국민일보 부사장이자 국민일보 지주회사인 국민지주의 대표이며 현 국민일보 노승숙 사장의 사위이기도 하다.

네모(032800)를 통해 코스닥에 우회 등록한 디지웨이브 테크놀러지스는 CTS(신문 조판 시스템)과 신문 인쇄용 윤전기를 공급하는 업체로 조희준 씨의 동생인 조 사무엘 민제 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다. 이러한 우회등록 방법은 최근 증권업계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신종 M&A 기법으로, 즉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를 통해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되며 영업권 양수를 통해 주력사업을 등록기업 내로 옮기는 효과를 거두는 방식이다.

아무튼 이로써 조용기 목사의 두 아들이 관계된 두 기업이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코스닥에 등록을 하게 되어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들 두 형제의 재산축적 과정을 놓고 한차례 구설수 또한 예상된다.

박상균 [email protected]

“不貞 저지른 일도,
사죄한 일도 없다”

이혼소송을 먼저 당한 유리꼬 씨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답변서 10/3/94. 재판기록일람 3]

1) 남성교제에 관한 원고(조희준 씨)의 주장 중 고오베의 가미야마에게 전화를 건 일, 지난 93년 7월 10일경 관서(오사카 지역)에서 찾아온 대학시절 친구 니시무라 양과 신주꾸와 요코하마로 놀라갔을 때 요시자와 외 1명과 알게 된 일, 원고의 해외출장이 많던 동년 8월말 경부터 9월말 경에 걸쳐 두 아이를 가정부에게 맡기고 독신이라 칭하며 자주 밤늦게까지 사또 유리 양, 요시자와 등 4명이 함께 놀러 다닌 일, 동년 9월 초 요시자와와 함께 지바 현에 있는 실내스키장에 놀러 간 일, 동년 9월 23일 동창회에 간다(친정에 간다)며 원고가 경영하는 회사명의 차를 타고 하꼬네까지 드라이브하다가 차의 접촉사고를 일으킨 일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 외의 사항에 관해서는 싸우겠다. 피고가 부정(不貞)을 저지른 일은 없다.

2) 93년9월말경 피고가 요시자와와 놀아난 일이 발각 나 쌍방 친족이 협의한 일, 피고가 요시자와와 놀았던 일에 관하여 사죄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외의 일은 싸우겠다. 피고가 부정을 사죄한 일은 없다.

3) 원고가 사죄한 피고를 용서한다는 것으로 일단 해결을 본 적은 없다. 원고는 사진 4 매(검갑제1~제4호증)를 친구나 아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자 사원들에게까지 보이며 “피고가 딴 남자와 놀아났다”고 선전하였으며, 게다가 피고에 대해 “자신이 한 일을 일시(날짜와 시간)와 함께 명확히 써 놓아라”며 윽박지르고 또한 “ 내가 애인을 만들어 그 애인의 아이를 키워줄 만한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라던가 “이제부터는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예수님이 남편이라고 생각할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등 도대체 용서한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때만 해도 유리꼬 씨 측은 다소 수동적으로 대처하였다. 어차피 함께 오래 못 살 바에는 상대방 체면(종교상 사제관계를 고려, 조용기 목사의 명성이나 파급영향 등)을 참작해 깨끗이 헤어지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있었던 듯 하다. 원고(조희준 씨)의 대외활동이나 사업수입등에 대해 자세히 몰랐어도 대단한 재력가의 장남이기도 하니 수천만 엔 정도의 양육비쯤은 그다지 큰 경제적 부담이 되지 않으리란 심증에 조용히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결혼한 해(91년)말고도 파경에 이르기 직전까지 수차례 해외여행도 함께 갔었다. 즉 지난 92년 2월말 경 조희준 씨가 불러 2주일간 미국에 가서 체류하였고,(이 때였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여하튼 두 사람이 LA에 있을 당시 조용기 목사가 ‘뉴욕에 도착했다. 아무날 샌프란시스코로 갈 터이니 데리고 오라’는 전화를 받고서 조희준 씨와 단둘이 자동차로 8시간을 걸려 달려간 적이 있다고 했다. (이에 관하여 조희준 씨는 한 진술서에서 ‘유리꼬가 단둘이 차를 타고 8시간 걸려 뉴욕에 간 것처럼 말했다’며 조롱 섞인 촌평을 하기도)

또한 조용기 목사 부부와 함께 동년 7월 19일부터 29일 사이 하와이로, 93년 들어 5월 경에는 조희준 씨가 혼자 호주 관광여행을 하고 왔지만 다시 93년 7월 26일부터 8월 3일까지 파리로, 동년 9월 6일에서 18일 사이 홍콩으로 함께 여행을 했다.

당시 파리에서는 “불과 하루 만에 “조희준 씨는 샤넬의 코트, 까르띠에 시계, 에르메스의 구두나 재킷, 루이비똥의 가방 등 모두 600만엔(한화 약 6천만원) 상당의 쇼핑을 했으며, 홍콩에서는 500만 엔(한화 약 5천만원)이 넘는 고급시계를 자기에게 선뜻 사주더라고 진술했으니(물론 10여일 후의 키스사진 소동 등으로 모조리 다시 뺏겼다지만) 조용기 목사 일가의 자산이 엄청나다는 것은 두루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터였다.

한편 유리꼬 씨의 유흥 등 ‘부정(不貞)사실’의 약점을 잡고 의기양양(?)해진 조희준 씨는 수천만엔의 양육비는 커녕 두 아이를 되찾는 쪽에 주력했다. “피고(유리꼬)의 부정행위가 명백하고 또한 원피고간의 혼인생활을 더 이상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므로 민법770조 1항 1호에 의거 피고와의 이혼을 요구한다”고 하고, 이어 “나아가 본 이혼 건은 원고에게 아무런 책임을 질만한 사정이 없다고 본다”며 “피고의 부정행위로 인하여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원고(조희준 씨)가 받은 정신적 고통은 심대하며 그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금 500만엔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므로 원고(조희준 씨)는 피고(유리꼬 씨)에 대해 민법709호에 의거한 위자료로서 금 500만엔을 청구하는 바이다”라고 공세일변도로 나온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강공책’이 엄청난 실수였다. 여기서부터 막다른 코너에 몰린 위기감을 느낀 나카무라 유리꼬 씨 측도 정면대결을 결심, 반소소송(맞소송)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희준 씨의 일본에서의 불미스런 행적과 조용기 목사 일가에 대한 섭섭함, 나아가 평화로워야 할 가정생활을 파탄으로 몰고 간 원인 제공자로서의 조희준 씨의 비정하고 패륜적인 그간의 언행이 모두 밝혀지는 일대 반격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반소소송(맞소송)이
진행되며, 오히려 치부만
드러나는데…

지난 95년 7월 24일 유리꼬 씨는 결국 을 도쿄 지방법원 민사13부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조희준 씨에 대한 정면대결의 길을 택한 셈이다.

이에 관하여 조희준 씨 측은 미리 ‘답변서’(95년 4월 19일)를 통해 이혼소송 계류중인 피고가 “독립해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민사소송법 231조, 민사소송수속법 7 내지 9조)에 반하는 소송으로 부적법하다며 “기각”을 청구했지만, 유리꼬 씨 측은 과 동시에 낸 에서 (중복되는 이혼, 친권자, 양육비 청구부분은 취하하지만) “반소청구의 원인은 원용(援用)돼야 한다”고 멋지게 반격, 이 같은 안이 수용되는 역전극을 펼친다.

유리꼬 씨, 조희준 씨의
‘외도사례’ 낱낱이 열거하며
공세에 나서는데…

유리꼬 씨 측 반소장에는 ‘이혼의 원인’으로서 반소피고(조희준 씨)의 바람기를 첫째로 꼽아 문제삼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 이유의 서술 첫머리에는 “ 반소피고(조희준 씨)는 장녀 보란이 출생할 즈음부터 알리샤 등 복수(複數)의 여성들과 이미 바람 피우기 행각을 시작하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 같은 구체적 사례로써…

1) 지난 92년 2월 경 오사카 에자까에 있었던 주식회사 I.C.E 사무소 사장실 책꽂이에 알리샤로부터 반소피고에게 보낸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팩스, 알리샤의 프로모션 사진이 가득 든 봉투나 한국의 국민일보 사에 근무하는 한 여성으로부터 반소피고(조희준 씨)에게 보내진 러브레터를 목격한 일이 있다고 했다.

동년 5월경 반소피고(조희준 씨)와 알리샤가 키스하는 사진의 필름(반소피고 등이 91년11월17일 육갑산(고오베) 공원에 갔을 때 촬영)을 발견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따져 묻자, 반소피고(조희준 씨)는 “미안하다”고 한마디 사과했지만, “이젠 옛날 일. 그런 키스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며 “가족에게 보였나”, “그럼 뭐, 이젠 싫어? 이혼?”등 뻣뻣해 하기도 했다고 적어놓았다.

2) 반소피고(조희준 씨)는 ‘회삿일’이라는 구실로 빈번하게 바(Bar) 및 클럽출입이 잦아지며 귀가시간이 매번 2시, 3시가 되는 것은 기본으로, 때로는 이른 아침 새벽 5시, 6시가 되는 일도 늘어나는 등 클럽(룸살롱)의 호스티스 등과 놀아남이 극에 달했다.

3) 예컨대 지난 92년 말부터 93년 초까지는 당시 조용기 목사가 주재하는 순복음 도쿄지부 교회와 국민일보 사가 혼고 빌딩에 함께 있던 시절인데, 지하 주차장에 몇 대의 자동차를 비치해 두고 평소에는 셀시오(렉서스 LS430 시리즈)를 타고 다녔지만, 화요일에는 자주 애스턴마틴(007 제임스 본드의 카로 명성을 날림)을 타고 다녔다.

이 기간 화요일에는 거의 애스턴마틴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내릴 때 꼭 자동차의 윈도우 상부를 조금 열어놓곤 했다. 분명히 여성을 태운 화장품 및 향수냄새를 없애기 위해서였다는 반소원고(유리꼬 씨)의 주장. 또 그 좌석에는 반소피고(조희준 씨)의 머리카락과는 확연히 다른 여성의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은 적도 있다.

3) 지난 93년 6월 13일경 교제하고 있던 한 여성에게 23만 엔 상당(약 한화 300만원)의 반지를 선물한 일도 있다.

4) 이러한 ‘남편의 바람기’에 대해 반소피고(조희준 씨)의 비서인 고지마 씨나 그 부하들중 한사람인 니시다 씨에게 들은 일이 있다. 그들은 어쩜 하나같이 희준과 여성의 교제가 많음을 인정했다. 특히 고지마 씨는 “회사에 여성으로부터 반소피고(조희준 씨)에게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이들 여성들 중에는 반소피고(조희준 씨)에게 흠뻑 빠져들은 여성들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조희준 씨의 반박이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95년 12월 14일자 준비서면 등)

1) ‘알리샤’라는 여성은 지난 91년 11월 경 자신이 임원으로 있던 회사(주식회사 국민물산)의 PR용 팜플렛의 모델로 회사 측이 기용하려던 여성으로서 그녀와 교제한 사실은 전혀 없다.

그 사진은 동사 사장(계건영 후에 이 씨로 밝혀짐. 이는 李 씨와 季 씨의 한자가 헛갈린 실수로 보여짐)이 그녀를 접대차 육갑산 공원으로 안내할 적에 ‘나 조희준이 우연히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 사장이 옥외에서 찍은 것인데 “이것은 모델인 알리샤가 공공장소에서 오버하는 포즈로서 취한 것이며, 또 그것은 결국 구미 식의 사교 의례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남녀관계를 의미하는 행위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리고 계 사장이 동석한 자리 이외에서는 알리샤와 만난 적이 없다. 모델로서의 계약을 강하게 희망하던 그녀에게서 크리스마스 카드 등이 온 적은 있다. 그녀와의 교제가 그 후에도 계속됐다는 주장은 “ 나카무라 유리꼬의 전적인 망상이다.

에서는 “나는 유리꼬 씨에게 회사관련 서류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내가 없을 때 멋대로 일하는 장소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했지”라며 유리꼬가 갖고 있던 파일을 거둔 일은 있지만 “유리꼬가 읽으려고 했던 영문팩스를 화들짝 놀라 빼앗아 구겨 버렸다”는 반소원고(유리꼬 씨) 주장의 일 따위는 없었다고 강변.

(96년 5월 7일)에서는 이런 내용이다. “내가 알리샤와 알게 된 것은 비행기 내에서 우연히 내 옆 좌석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직업이 모델이라고 하길래 마침 그 당시 내가 임원으로 있던 두성 인터내서널이 업무 PR용 팜플렛에 기용할 모델을 찾고 있었기에 알리샤의 기용을 검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알리샤와 둘 사이에 교제가 생긴 일은 없다” 나는 그 사진이 찍혔던 날(11월 17일) 오후 9시 경 오사카로 돌아와 이 사장, 그리고 동행했던 모델 2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 후 모델 2명은 가고 나는 이 사장이 숙박하는 호텔방에서 이 사장과 모델의 기용의 검토 등 다른 일얘기를 하고 밤 12시 넘어 귀가했다”고 되어 있다.

2) 회사운영을 위해 매일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회사의 거래선을 접대하기 위해 바(Bar)나 클럽 등에서 접대해야 되는 기회가 당연히 있었다고 진술.
“나는 접대상 클럽 호스테스에게도 애교 있게 잘 해주도록 할 필요가 있다. 호스테스는 영업상의 노르마(하루의 노동량)를 수행하기 위해 소위 동반출근을 부탁해 오는 일도 있다.

그래서 음식점의 호스티스와 함께 식사를 한 일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나는 아까사까 프린스 호텔을 이들 호스테스들과 서로 만나는 장소로 쓴 일은 없다.(진술서 3. 5/7/96)

3) 고객 등에게 선물한 것을 회사 경비로 처리하기 위해 그 영수증을 모아논 일은 있지만, (유리꼬와) 결혼 후 특정여성과 교제한 일도 반지를 사준 일도 없다고 부인. 에서는 ‘(23만엔 짜리) 영수증이 있다’ 라는 얘기는 들었다는 선으로만 답변.

4) 고지마 씨 및 니시다 씨는 회사차를 사사로운 자기 일로 쓰던가, 회사명의 크레딧 카드를 자기 일에 멋대로 쓰는 등 문제가 많아 해고한 자들이라며 이들의 증언과 관련 ‘신빙성’을 놓고 문제삼는 식으로 피해나가려 했다.

에서는 비서인 고지마 씨가 자주 나와 같이 있었던 것은 나의 운전사를 했기 때문이라며 93년 6월 13일경 내가 고지마 씨와 함께 신주꾸의 ‘KAWANO’에서 쇼핑한 적은 있지만 고작 T셔쓰 정도였지, 그 후 유리꼬가 말한 것과 같은 23만엔 상당의 반지구입은 없었다고 부인으로 일관했다.

충격적인 갖가지 폭행사실

반소원고(유리꼬 씨)가 ‘이혼’을 요청하는 이유로 “잦은 외도”를 문제삼은데 이어 두 번째로 제기한 것은 “폭행”문제였다. 소위 “부정(不貞)”소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두 번이나 폭행을 당했다고 밝혀 충격적이다.

첫 번째는 93년 3월경 조희준 씨 자동차 안에 있던 의복 영수증(금액 8만엔)을 발견, 딴 여성에게 사준 게 아니냐고 의심했던 것이 부부싸움으로 확대, “합기도를 배우고 있던 반소피고(조희준 씨)에게 애용하던 썬글라스를 뺐겨 부서졌고, 손바닥으로 얼굴이나 머리를 가격하는 등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고 주먹으로 오른쪽 팔을 강타하는 등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동년 6월 중반 경 반소피고(조희준 씨)가 외도의 상대였던 클럽 여성에게 23만엔 상당의 반지를 사준 게 판명되어 부부싸움이 일어났을 때 “몇 번이나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때리는 등 폭행을 당하여 왼쪽 대퇴부 중간에 직경 10cm정도의 시퍼런 멍이 생긴 것 외에도 왼손약지(4번째)의 손톱이 쪼개져 출혈했다. 이 같은 반소원고의 멍자욱이 사라지기까지 1개월이 넘게 걸렸고, 후유증으로 근육통을 앓았다.

이러한 폭행 관련 고발사실에 관하여 첫 답변이 되는 (95년 12월 14일)에서 조희준 씨는 “93년 9월에 유리꼬의 바람기가 발각되기까지는 손을 든 일이 한번도 없다”고 전적인 부인태도로 나왔다. 그리고 유리꼬 씨의 소위 “‘부정(不貞)’소동이 발각된 날(93년 9월 29일)과 양측 부모가 협의를 해서 이른바 ‘훈련”에 보내게 되는 10월 중순사이 두 번 등 모두 3차례, 그러니까 유리꼬 씨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2년 7개월의 결혼생활 중 도합 5차례에 걸친 호된 린치(?)를 당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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