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父」 이승만 박사의 소중한 유물이“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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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父」 이승만 박사의 소중한 유물이“유출되었다”

‘대한인 동지회’내분사태 법정사태로 비화,“충돌 불가피…”

해외 독립운동의 요람지인 LA에서는 지난해 독립운동가인 도산 안창호 선생을 추모하고 기리는 각종 행사가 성대히 치뤄졌다. ‘대한인 국민회관 복원사업’이 동포들의 숙원사업으로 펼쳐져 마침내 지난달 개관되는 등 비교적 성공리에 끝마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01년에는 도산동상 건립 등이 이뤄지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회관 운영권 등 향후 각종 사업을 놓고 일부 관계자들간의 마찰이 지속되고 있다. 또 다른 수많은 애국선열을 무시한 채 도산 안창호 선생 한 명을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LA 한인 커뮤니티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역사적 유산을 되살려 국민회관을 복원시킨 하나의 ‘업적’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을 달기는 어려울 듯 싶다.


이와는 달리 도산과는 또 다른 축이었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인 우남 이승만 박사가 이끌었던 ‘대한인 동지회’에 대한 관심과 재조명은 어찌 보면 동포사회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같은 무관심은 과거 이승만 박사가 말년에 독재정치로 대통령 직에서 하야하며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LA를 비롯 하와이와 워싱턴 등지의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과거 이승만 박사를 따르는 우남파(雩南派)와 안창호 선생을 지지하는 도산파(島山派)로 나뉘어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즉 도산의 국민회 지지파와 우남의 동지회 지지파 사이에 갈등이 심하여 조국이 독립되고 대한민국 정권이 수립되어 이승만이 집권하였을 때는 양측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기도 했다.

즉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하게 되자 동지회의 사람들을 고국으로 불러들여 정부의 요직에 임명했으며, 해외공관에는 동지회 간부들이 총영사 자리를 독차지하는 등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반면 국민회 쪽 지지 세력들은 이승만 정권 당시 철저히 한국 정부의 감시를 받고 한국 방문도 거부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같은 파벌은 후세들에 의해 아직까지 두 위인들이 마치 ‘라이벌’과도 같은 관계로 묘사되며 그들을 따르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두 독립운동가의 유적관리 및 업적을 기리는 데에 있어서 도산은 각광을 받는 반면 이승만 박사는 외면 받고 있어 또 다시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신년 들어 본보는 ‘國父’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그의 유물 및 유적 등에 대한 고찰을 펼치던 중 이 박사가 이끌었던 ‘대한인 동지회’와 관련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본보는 이에 ‘대한인 동지회’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와 소송으로 번진 사태의 전모를 집중 취재한다.

박상균 [email protected]

우남 이승만 박사가 이끈 ‘대한인 동지회’. 어찌 보면 대한민국 건국에 있어 모태가 되는 산실 역할을 하였고, 이 ‘대한인 동지회’를 이끈 초대 총재는 본국으로 돌아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오르는 역사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즉 ‘대한인 동지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건국의 원천을 이룩하는 산실 역할을 한 업적들과 공헌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이러한 ‘대한인 동지회’의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많다. 이는 본국을 비롯 실제적으로 미주지역 동지회 지지파들에 의해 어느 정도 그 윤곽을 드러낼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과거 ‘대한인 동지회’는 많은 한인들이 미주지역 한인 교회들을 중심으로 한인회, 한인학교, 노인회, 부인회 등 수많은 기관들의 탄생에 일조하는 등 그 조직이 활성화되었지만, 현재는 유명무실의 단체로 전락한 채 오히려 ‘대한인 동지회’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 및 이승만 박사의 유적 및 유품을 놓고 소유권 분쟁 등 법정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미주 한인들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대한인 국민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으나, 이승만 박사가 이끈 ‘대한인 동지회’의 경우 이름마저 낯설고 그 역사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승만 박사의 유적 및 유품들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고, 별다른 한국정부의 지원조차 얻어내지 못하는 등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대한인 동지회’는 해방된 조국에 기관차를 보내는 일, 구호물자를 보내는 일, 더욱이 6.25전쟁 때는 수많은 구호품을 이곳 로스엔젤레스에 소재한 ‘대한인 동지회’ 뒷마당에서 포장하여 미 해군성과 육군성에서 한국 땅으로 옮겨 가도록 하는 모든 조치를 다 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 속에 나타나는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대한인 동지회’라는 독립운동 단체의 유적과 유물들이 훼손되는 등 일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구심점 없이 흔들리며
존폐위기에 몰린 ‘대한인 동지회’

‘현재 대한인 동지회’는 두개의 파벌로 나뉘어 ‘정통성’ 문제와 소유권 등을 두고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힘겨운 다툼은 몇 년간 지속되고 있으며, 끝내 법정소송으로 비화, 시시비비를 가릴 모양이다.

우선 법적으로 비영리단체로 등록되어 있는 ‘대한인 동지회’는 지난해 김영옥 씨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러한 새로운 회장이 선임되는 과정에도 다소 의혹이 제기되는 등 무성한 소문이 들끓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소문들이란 교회 측이 유명무실해진 ‘대한인 동지회’ 조직을 재정비한다는 명목아래 또 다른 단체를 만들어 냈고, 불순 세력들이 교회로 흘러 들어와 ‘동지회’ 조직을 장악하고 ‘건물 및 유물 유적을 탈취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한편에서는 ‘대한인 동지회 수습 대책위원회(회장 김인숙)’를 구성하고 ‘대한인 동지회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대한인 동지회 수습 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1월부터 본국의 이승만 대통령 사적관인 ‘이화장’을 책임지고 있는 유족대표 이인수 씨(이승만 박사의 양아들)로부터 신임장을 받는 등 본격적으로 ‘대한인 동지회’ 살리기에 착수하려 했다. 하지만 교회 측이 장악한 ‘대한인 동지회’와 서로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한 채 오히려 큰 ‘위기봉착’에 빠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양측이 대립하는 가운데 ‘대한인 동지회’의 창립자이자 초대 총재를 지낸 이승만 박사의 유품과 유물들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바로 이 부분을 놓고 긴급 구성된 대한인 동지회 수습대책 위원회(회장 김인숙)는 대한인 기독교회의 이모세 목사를 비롯 총 5명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본보가 긴급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상기 피고소인 5명은 서로가 공모하여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귀중한 유물이며 한민족에게 있어 자손만대를 이어갈 재산을 불법으로 변호사 경고장 등을 무시한 채 자물쇠를 부수고 난입하여 다음 명시에 있는 품목을 절취, 매매, 착복한 사실이 있다”라는 내용을 담은 고소장을 접수시킨 것이다.

일단 이 같은 고소장이 접수됨에 따라 경찰 및 관계자들의 수사는 불가피해보이며 어느 정도의 시시비비는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본보는 이에 대해 집중 취재 중에 있으며 다음 호부터 상세히 밝힐 예정임]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양측의 대립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오면서 ‘대한인 동지회’가 구심점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째서 이 같은 갈등구조가 형성되었는지 그 내막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이에 대해 짚어보기로 한다.

랜드 로드와 테넌트로서의
갈등이 불거져 나옴에 따라
갈등은 악화되고…

대한인 동지회관은 2716 Ellendale PL, LA., CA 90007에 위치해 있다. 한때 36가 지역의 한 교수 집에서 둥지를 튼 대한인 동지회관의 역사는 이후 ‘회관’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이 주소지로 이전하게 된다. 물론 구입자금은 십시일반 걷힌 동포들의 정성어린 지원금과 기존 회관의 매각대금으로 충당되어졌고, 소유권은 당연히 ‘대한인 동지회’에부여되었다.

현재 이 주소지에는 ‘대한인 동지회’가 위치한 회관건물이 있으며, ‘대한인 동지회’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대한인 기독교회가 한 건물 안에 자리잡고 한 지붕 생활을 해왔다. 대한인 기독교회는 오랜 기간 이 건물에서 목회활동을 해오며 건물주인 ‘대한인 동지회’ 측에 렌트비를 지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 갈등은 바로 이러한 렌트비를 놓고 시작되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 호에 밝히기로 한다.

대한인 기독교회는 지난 97년 경 이모세 목사(본명 이준석)를 영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는 당시 대한인 동지회 회장인 이상수(얼마 전 별세) 씨의 추천 등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이후 이모세 목사는 자연스레 ‘대한인 동지회’와 교류가 잦았고, 일종의 계약관계를 통해 렌트비를 지불해가며 교회를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즉 렌트비 조로 월 250달러를 구두계약 식으로 지불하며 교회운영을 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2년 정식 계약서 등을 ‘대한인 동지회’가 요구하며 다소의 인상폭을 제시하면서 양측은 상상도 못할 첨예한 대립을 보이며, 엄청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나오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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