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美 연방정부 조사의뢰 신건 전 국정원장 형사사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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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계의 세계인물정보란에는 한국의 신건(63) 전국정원장에 대해 “개각 때면 법무장관에 거론되는 인물”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그는 호남 출신이면서도 기득권인 영남정권 시절 검찰의 중요부서인 대검 중수부 과장, 중수부장, 법무부 교정국장과 차관을 지냈던 실력파라는 내용도 있다. 한국의 법조계 인물 정보에 관해 정확하고 많은 자료를 입력한 것으로 평가받는 ‘오세오닷컴’(www.oseo.com)에는 신 전원장에 대해 ‘소탈하고 온화해 부하직원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강한 추진력과 칼 같은 기질이 있어 한번 수사를 맡으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고 수록했다. 2001년 당시 국정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소탈하고 온화한 성격이나 단호함을 겸비하고 있다’고 소개돼 있다.


한편 최근 4월총선과 관련해 DJ 정권 당시 국정원장과 경찰총수를 지낸 인사가 서로 다른 당 후보로 나와 전북의 정치 1번지 전주 완산구에서 격돌할 것으로 예상돼 관심을 끌고 있다.

다름아닌 신건 전 국정원장과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주인공이다. 신건 전 국정원장은 한동안 출마 자체를 부인해 오다가 최근 갑자기 열린 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리고는 오랜 지연인 전주 완산구에서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우리당측은 밝혔다. 여기에 역시 전주가 고향인 이무영(59) 전 경찰청장이 지난달 민주당에 입당해 전주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씨는 1999년 11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경찰청장을 지냈다.

이들 두 사람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분당 이후 양측으로부터 함께 영입제의를받고 “낡은 정치와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정당을 선택했다”고 한 목소리를 내면서 신 전원장은 우리당, 이 전 청장은 민주당으로 각각 다른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들은 DJ정부 당시 국내 치안과 국가안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나 이제는 소속 정당의 이해를 대변하고 도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경쟁관계로 돌아섰다. 그런데 이씨에 비해 특히 신 전원장은 총선 출마의사를 공식적으로 비치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 들어서 당대변인의 발표로 출마가 알려진 상태여서 항간에 이상한 소문을 낳고 있다. 신 전원장이 출마를 미루고 있는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미국정부에 대해 ‘신건 전국정원장에 대한 형사사건조사의뢰’를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조사요구 자체를 비밀에 부칠 것을 요구한 반면 미국정부측은 이를 공식 사법채널로 처리하고 있다. 비밀로 조사를 의뢰한 한국정부는 93년에 체결된 ‘형사사법공조조약’을 이유로 들고 미국정부는 사법절차를 따르고 있어 양국간에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성진 [email protected]

휴대폰 도청사건 이외에 양국 함구,권노갑 씨등 연결된 해외비자금 ‘비리의혹’
일각에선 노정권 총선용 전략해석,AP통신 등 조사의뢰 관련해 한국정부 당황

97년 법률 특보로 민주입당,DJ정권의 각종 비리 ‘핵심열쇠’

최근 신 전원장이 미연방검찰의 비밀조사대상이 됐다는 보도가 본보를 포함해 일부 한국언론에 보도가 되고 또 AP통신도 이를 보도하는 바람에 양국 정부가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의 한 소식통은 “전국가정보수장을 조사한는 이례적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양국 정부가 미묘한 입장에 놓여졌다”고 말했다. 특히 이 소식통은 “미국 의회 일각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면서 “사안에 따라 청문회가 열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해 본보를 포함해 AP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이 촌각을 다투어 취재를 하고 있는데 한국정부가 왜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전 국가정보원장을 대상으로 한 ‘형사사항’ 조사를 의뢰한 것인가 이다. 본보가 지난 1일자에서 보도한 “휴대폰 도청사건”에 관련된 사항을 우선적으로 조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이외 사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법당국이 밝히지 않고 있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이번 사건에 대해 “휴대폰 도청사건 이외에 한국정부가 관심갖는 사항은 신 전원장이 DJ 정권시절 권노갑씨 등과 연결된 해외비자금 문제로 ‘진승현 게이트’ 등 많은 비리에 대한 정보들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그는 “한국의 이번 총선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민주당과 우리당은 호남출신 인사를 놓고 영입경쟁을 벌였다. 특히 신 전원장의 영입을 놓고 양당이 서로 자기편이라고 우겨대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결국 신 전원장은 우리당 쪽으로 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쪽에서 “공작정치의 전형”이라는 반격이 나왔다. 그리고 민주당은 “신건 전 원장은 미국에서 비서를 통해 ‘정치참여 생각이 없다. 신당이 거짓말한다’더라” 라며 우리당을 공격했다. 왜 이렇게 신 전원장을 서로 잡으려 하는 것일까.

현재 전북 전주 완산구에는 우리당의 신건, 민주당의 이무영을 비롯해 金윤덕(39) 현 우리당 지구당위원장, 金병석(54. 민주당 전북기능대학장), 金완자(47. 민주당 전도의원), 金완주(57, 민주당 전주시장), 金현종(42, 민주당 청와대 전 국정상황실장), 金희진(52. 민주당 국제변호사), 오정례(36, 개혁당), 오홍근(61, 민주당 국정홍보처장),유철갑(57, 민주당 도의회 의장), 이광철(47, 우리당), 이용완(49, 민주당 전 도의원), 이용희(49, 우리당 전주발전연구위원장),임광순(65, 한나라당 위원장),장세환(50, 우리당 전 정무부지사), 장영달(우리당 현역 의원),진봉현(무소속 변호사), 최락도(65, 무소속 전 국회의원) 등 20명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과 우리당은 전주에서 이기지 못하면 호남세가 무너지고 수도권도 영향을 받는다는 심리감에 젖어있다.

신 전원장은 DJ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정원 2차장을 지낸다음 정권말기인 2001년 3월에 국정원장에 임명됐으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4월까지 국정원장으로 지낸 인물이다. 2001년 국정원장 임명 당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 곳은 한나라당이었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신원장 임명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이 신건 국정원장을 통해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의 국내정치 정보활동을 강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한 민주계 출신 의원은 “신원장이 전 정권 때인 93년 슬롯머신사건으로 법무차관에서 중도 하차해 한나라당에 대한 적개심이 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 전원장은 원장 취임 후 공개석상이나 사석을 통해서 남앞에 나서는 것을 극히 꺼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의 표어인 ‘음지에서 활동한다’를 그대로 따랐다. 대통령 주례보고와 국회 정보위 출석 등 법적인 공식적 자리에만 나타났다. 신 전원장의 ‘음지론’은 그가 국정원 차장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다. 또 그는 국정원장으로 있으면서 자기 사람을 만들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DJ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는 개각때 마다 법무부장관 후보에 언론들이 항상 거론해왔다. 그러나 한번도 법무장관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는 국정원 차장시절부터 가끔 국정원의 임무에 대해서 대통령에게 바른 말을 하는 기구가 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민심을 그대로 전하는 기관이 돼야한다며 그렇지 못하면 직무유기라고 까지 했다고 한다.

신 전원장 집안은 대대로 전주의 유지였고 서울대 법대 59학번으로 63년 대학 4학년 때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면서 호남 검찰인맥의 길을 텄고 검찰 재직시 대검 중수부 등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특수부 검사였다. 그는 82년 5월 ‘이철희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 수사 당시 대검 중수부 4과장으로 “큰손” 장영자씨의 형부이면서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의 인척인 이규광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직접 조사해 하룻 만에 자백을 받아내고 구속했다.

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원장은 광주고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입성했다. 법무부 차관은 고검장 서열 1순위로 차기 검찰총장을 노릴 수 있는 요직이었다. 그러나 개혁을 주장하면서 출범한 YS 정권초기 소위 “슬롯머신 사건”에서 유탄에 맞아 낙마하고 만다. 당시 박철언 의원과 이건개 대전고검장 구속으로 이어지면서 신 전원장이 사건의 주역인 정덕진씨와 절친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소문의 근본은 70년대 중반 그가 서울 남부지청 근무 당시 토지사기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고교 후배 신모씨를 통해 정씨를 알게 된것과 그후 80년대 초 그 후배 신씨가 식당을 하면서 한번 사석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전부였으나 소문이 소문을 만들어 부풀어 나갔다. 다분히 음모적인 술수가 많았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정치판의 난맥상과도 무관할 수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신 전원장은 나중 검찰 조사결과 아무런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헛소문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그는 검찰과 인연을 끊게 됐다.

신 전원장은 검찰에서 물러난 후 미국 스탠포드대학 후버연구소에서 일시 연구생활을 하다가94년 귀국해 신건 법무법인을 설립했다. 그러다가 DJ 가 다시 대선에 나선 97년에 새정치 국민회의에 입당해 김대중 총재의 법률특보를 맡았다. 여기서 그는 검사 시절의 탁월했던 솜씨로 당시 DJ에게 가장 취약점인 ‘북풍’을 막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풍’을 맊는데 당시 조세형 총재대행 등이 전면에 나섰으나 사실은 뒤에서 신건 전원장이 정보수집과 사태분석을 통한 선거전략 등을 건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에서 DJ가 승리한 다음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분과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원(당시는 안기부) 1차장에 임명됐다.

원래 그는 조각직전에 언론으로부터 “법무장관 내정설”까지 거론됐으나 누군가 ‘슬롯머신’을 들먹여 장관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당시 신 전원장은 YS시절 법무부 차관으로 있다가 누명을 쓰고 물러난 점을 원통히 여겨 다시 법무부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 했다. 그런데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부패공직자명단에 그의 이름을 거명해 버렸던 것이 빌미가 되었다. 그는 참여연대의 박원순씨에게 강력하게 이문제를 따졌다고 한다.참여연대측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례적으로 ‘정정보도’까지 해줬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나간뒤였다. 당시 국민회의 총무였던 박상천 의원이 법무를 맡았다.

신 전원장은 99년 6월 국정원 차장에서 물러난 후 다시 변호사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러던중99년 5월 ‘옷로비 의혹사건’이 터졌다. 당시 누가이 같은 정보를 언론에 흘렸나는 등으로 시끄러웠는데 신 전원장이 흘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물론 출처불명의 소문이었지만 한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진승현 게이트’가 터져 나오자 한나라당의 ‘권력형 비리진상조사특위’에서 신 전원장이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는 느닷없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그는 한나라당에 항의했고 한나라당은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에 제25대 국정원장에 임명된 신 전원장은 사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DJ 말기 갖가지 ‘게이트’에 연루된 사건들에서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은 그를 통해 정치판을 흔들어 놓을 재료를 찾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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