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協 창시자는 「김운용」아닌 「최홍희」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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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協 창시자는 「김운용」아닌 「최홍희」 장군

‘절대절명’위기의 태권도 연맹… 어제와 오늘의 역사

태권도 = 한국인등식 시대의 종말 오는가
미 태권도연맹(USTU)을 주도하던 한국계 이상철 전회장의 독주와 각종 비리는 드디어 철퇴를 맞아 미국태권도의 지도부가 한국계에서 미국계로 바뀌는 사태를 맞이했다.

USTU의 개혁을 위해 미국올림픽위원회(USOC)로부터 선임된 5명 전권위원회는 USTU의 새회장에 비한인계인 밥 겜바델라를 선정했다고 4일자 성명에서 밝혔다. 겜바델라 회장의 출현은 지난 30년 동안 한인계가 USTU의 회장직을 맡아온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것이다.

미국땅에서 태권도=한국인이라는 공식은 이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다음 단계는 USTU산하의 각주 태권도협회의 한국계 임원들이나 연맹 집행위원회내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인계 사범들의 거취 문제이다.
선데이저널이 지난호(2월8일자)에서 보도한대로 한국계가 지도부를 형성해오던 USTU에서 한국계 사범들이 밀려나는 판이다.

현재 태권도는 전세계에 4천만이 넘는 회원을 지닌 막강한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태권도가 2개의 국제조직으로 분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태권도의 어제와 오늘을 그려 본다

<특별취재반>

미 태권도 연맹 이상철 전 회장 독주·비리에 철퇴 새 회장에 밥 겜바델라씨 지도부도 비 한인계로
조직은 세계 태권도 연맹 (WTF)과 국제 태권도 연맹(ITF)으로 양분 정통성 주장하며 세력다툼

태권도는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단어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한국인을 상징하는 무예로 너무나 잘 알려진 명칭이다. 태권도는 한국인의 것이다. 신라 때부터 생겨난 태권도는 많은 동작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과학적인 기반을 갖고 있다. 이런 태권도를 체계적으로 만든 인물은 최홍희(2002년 6월 작고) 장군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태권도하면 金운용씨(전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IOC부위원장)를 연상한다. 태권도를 金운용씨가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태권도의 창시자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를 지닌 최홍희씨였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백과사전 ‘뉴 인사이크로피디어 브리태니카(The New Encyclopedia Britanica)’제15판(1992)에는 “태권도의 명칭은 창시자인 최홍희 장군이 1955년에 제창하여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세계의 진기록을 기록하는 기네스북 1990년도판에서도 “최홍희씨는 태권도의 아버지”라고 수록했다.
현재 세계에는 태권도 국제조직이 2개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金운용씨가 조직한 세계태권도연맹만이 유일한 국제조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최홍희씨가 이미 조직해 놓은 국제태권도연맹도 엄연한 국제조직이다. 金운용씨의 세계태권도연맹에는 144개국 회원국에 약 3천5백만명의 회원이 있으며, 최홍희씨의 국제태권도연맹측은 131개국 회원국에 약 3천만명의 회원이 가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두단체에 가입한 태권도 회원이 6천5백만이나 되는데 스포츠계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의 태권도 인구는 비공식적으로 약 4천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어일부 태권도 회원들은 세계태권도연맹과 국제태권도연맹에 2중으로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왜 한국에서는 金운용씨가 태권도의 대명사격으로 불리워 왔는가. 여기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지난 1966년 서울에서 아시아 9개국 대표들이 모여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했던 최홍희 총재는 1972년 당시 박정희 유신정권으로부터 3선개헌 지지를 요구받고, 또한 태권도를 정치도구화 하려는 압력에 시달렸다.

끝내 최홍희 총재는 캐나다로 망명을 떠나게 됐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태권도에 대해 정통기법도 모르는 金운용씨를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 앞세워 새로 세계태권도연맹이란 조직을 만들었다. 金운용씨는 여기에 일본의 가라데를 가르치던 청도관이나 무덕관 등의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태권도틀을 만들어 정통성을 이어온 국제태권도연맹을 파괴하는데 힘을 썼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망명한 최홍희 총재를 “빨갱이”로 몰아부치고 ‘국제태권도연맹’을 “빨갱이 단체”로 규정했다. 여기에 金운용씨는 막강한 박정희 정권의 비호를 받아 냉전시대에 정치도구화로 자신의 태권도계 세력을 키워 나갔다.

이런 연유로 현재 세계에는 박정희 독재체제에서 金운용씨가 조직한 세계태권도연맹과 최홍희씨가 이미 조직한 국제태권도연맹 등 2개의 국제조직으로 양분된 상태이다. 金운용씨는 박정권 이후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진출해 자신의 세계태권도연맹을 가입시키고 그것이 정통이라고 주장해왔다. 당시는 냉전시대라 IOC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좌지우지하던 시대였다. 金운용씨는 73년 5월 서울에서 19개국 선수들이 참가한 제1차 세계태권도대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에 올랐다. 이어 그는 74년에 아시아선수권, 76년 유럽선수권과 중동선수권, 78년에는 범미주대회, 79년 아프리카선수권 등 세계대회를 연달아 개최해 나갔다.

태권도는 1980년 7월 17일 IOC 제83차 총회에서 정식 스포츠종목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와 1992년 바르세로나 올림픽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그후 1996년 아틀란타올림픽대회와 그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이렇게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발전한 것은 金운용씨가 주도한 세계태권도연맹이 IOC의 정식 산하 경기단체로 인정을 받으면서 이루어 진 것이다.

한편 캐나다로 망명한 국제태권도연맹의 최홍희 총재도 북미주와 남미 그리고 유럽 등에 정통 태권도를 보급하는데 노력했다. 국제대회도 74년 몬트리올대회를 시발로 전세계에 걸처 12회나 개최했다. 최 총재는 세계를 순회하면서 태권도 보급에 진력했는데 1975년 호주 방문시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태권도 시범을 갖는 영예도 지녔다. 그는 1977년 일본 도꾜에서 “박정희 정권은 태권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후 80년 최 총재는 15명의 태권도 제자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고향 땅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보급했다.

최 총재는 1984년에는 스위스 IOC 본부를 방문해 “국제태권도연맹만이 태권도의 정통 국제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해 10월 동구권에서는 최초로 항가리에서 태권도 대회를 개최했다.

최홍희 총재는 1985년 북한의 도움으로 태권도백과사전 15권을 출간했다. 또한 85년에는 국제태권도연맹의 본부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이전해 당시 동구권과 제3세계 국가들에게 태권도 보급에 주력했다. 최 총재는 86년과 88년에는 중국과 구소련에서 태권도 시범대회를 개최하고 보급에 열중했다.

최홍희 총재는 망명생활을 하면서 주위 사범들에게 가끔 “태권도가 양분된 국제조직으로 있는 것이 부끄럽다. 통합을 했으면 한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실지로 최 총재는 1984년 LA올림픽대회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통합의사를 서울에 있는 세계태권도협회에 타진했으나 당시 金운용 총재는 “무조건 항복을 하고 세계태권도연맹으로 들어 오라”는 반응을 보여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8년 12월 워싱턴타임스를 운영하는 박보희씨를 통해 다시 통합을 타진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당시 일부 사범들은 “거시적으로 태권도가 통합을 해야 하는데 양 조직의 우두머리들이 서로의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대의를 그르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당시 金운용 총재는 IOC의 사마란치 위원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하무인격으로 세계태권도계를 좌지우지하는 관계로 국제태권도연맹과의 통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최 총재는 일부 사범들로부터 “한국을 직접 방문해 통합을 시도하는 것이 어떤가”라는 제의에 대해서 “정치적 이용이 아닌 태권도만을 위한 상의를 요청한다면 방문할 의사도 있다”고 했으나 한국의 태권도측에서는 환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총재는 평소 한국의 세계태권도연맹이 가르치는 태권도 기술은 정통 태권도가 아니라 일본의 가라데에서 따온 동작이다”라고 평가해왔다. 최 총재가 볼 때는 金운용씨의 태권도 철학은 근본이 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2년 6월15일 평양에서 최홍희 총재가 사망하자 국제태권도연맹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한측은 최홍희 ITF 총재의 특별 추모식을 겸한 신임 ITF총재 선출을 위한 특별총회를 그해 9월 22일 평양에서 개최했다.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된 ‘국제태권도연맹 특별총회’에서는 북한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며 북한 체육지도위원회 제1부 위원장을 맡고있는 장웅 위원을 사망한 최홍희 총재의 유언에 따라 총재로 선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어떻게 국제조직의 대표를 전임 총재가 유언을 했다고 하여 그대로 따를 수가 있는가 였다.

국제태권도연맹은 최 총재 사망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후임 총재선출 문제가 의제에 올랐으나 북한측과 종래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최중화씨측의 주장이 대립되어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북한측은 일방적으로 대회장소를 평양으로 정하고 캐나다를 비롯한 45개의 회원국이 참석했다며 장웅 북한IOC위원으로 하여금 대회를 주도케 하고 대외적으로 그를 ITF 차기 총재로 선포하였다. 이에 반발한 최중화 전 국제태권도연맹 사무총장은 아르헨티나에서 별도의 임시총회를 열고 총재에 취임했다. 이로써 국제태권도 연맹은 북한이 세운 장웅 총재와 별도의 최중화 총재 등으로 양분되는 체제로 가다가 2003년 6우러 폴란드 바르사와에서 개최된 제 14회 총회에서 트란 티유 콴이 신임 총재로 선출됐다.

金운용씨가 총재로 있던 세계태권도연맹도 현재 총재가 공석중에 있어 신임 총재선출을 둘러싸고 한바탕 말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金운용측과 이에 반기를 들고 개혁을 주장하는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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