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트레이닝·질환·암살 복상사 說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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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트레이닝·질환·암살 복상사 說 까지

사후31년, 애인 베티 “진상”을 밝힐지 관심 쏠려…

‘쿵후영웅’ 브루스 리(이소룡) 왜 죽었나

1973년7월20일 밤11시30분 사망 확정.

32세라는 한창 나이에, 그것도 “머리가 아프다”고 참상에 누은지 4시간반만에 절명한 세계적 톱스타의 죽음은 과히 엽기적이라 할만 했다. 경악한 홍콩시민은 물론, 세계팬들사이에 해부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급사 수수께끼를 둘러싼 소문들이 난무했다.

과격하리만큼 심했던 트레이닝, 뇌동맥혹이나 간질등 질병원인설, 암살설등 억측이 떠돌다가 수일후 튀어나온게 복상사설. 대만출신여우 베티 틴페이(정패)라는 실명에다 한때는, 촬영도중의 정크선상에서 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실은 그녀의 침실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변원에 실려간게 진상이었다.


이소룡(李小龍)이 죽은지 한시간여가 지난 7월21일 오전0시40분. 언론에 대해 그의 급사를 발표한 사람은 골든 하베스트사의 레이먼드 추(추문회)사장으로, 李주연영화가 나오는 대로 폭발적 인기를 누려 쇼비즈니스의 정점으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추는 20일 오후5시반 李와 함께 <여왕폐하의 007>에서 본드역을 맡았던 조지 레이젠비와 함께 회식할 예정이었는데 李가 컨디션이 나쁘다 해서 6시반경 저녁을 마친 추가 李집으로 가자 미국인아내 린다가 깨어나지않는다고 했다고. 왕진온 주치의가 중태라고 해 오후 7시경, 李가 지난5월10일 혼도해 실려갔던 병원에 입원수속했으나 상태가 시원치않아 11시, 정부관할의 퀸 엘리자베드병원으로 옮겼다. 허나, 의사6명에 의한 구급치료의 보람 없이 11시30분 사망. 사인은 불명이며 해부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침이 되자 거의 모든 신문의 톱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고인의 친근자, 즉 추사장, 린다, 친형인 이충심등 3명의 진술에 미묘한 엇갈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식후 산책중의 이변” “저녁식사도 들지않고 누웠다가 그대로 혼수”등등. 그러다 신성일보가 특종보도를 했다. “독점 스쿠프. 이소룡이 혼수상태에 빠진 것은 丁이라는 이름의 예능인 방!”이라고. 기자가 구급차의 출동기록에서 잡아낸 것이었다. 베티가 사는 아파트의 관리인은 이런 증언을 했다. “ 낮근무의 관리인으로부터 오후3시경 李가 베티에게 왔는데 아직 간 것은 못봤다고 들었다. 李가 밤10시경 구급차에 실려간 것은 내눈으로 화인했다.”

부인 린다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지만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李의 죽음을 발표시 왜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었나”와 “ 죽기직전 李는 무얼 하고있었나”라는 두가지 점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수만시민운집속 장례식

고별식은 7월25일 구룡빈의관에서 거행됐다. 주변에는 수만시민이 몰려와 경비원이 300명 동원되는등 대혼잡. 남성 3명 여성2명이 인파에 밀려 혼절해 병원에 실려가고 정신착란을 일으킨 중년남성도 있었다. 베티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화환만 보냈는 데 27일 한 신문의 전화인터뷰에 응하여 자기방에서 李가 혼수에 빠진 사실을 부정하고나서 李와의 관계는 “순수한 친구사이”라고만 했다. 유체는 그후 미국 시애틀로 보내져 7월30일(미국시간) 레이크뷰묘지에 매장되었다. 애처 린다와 만난 추억많은 장소에 영민한 것이다.

1940년11월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얼마안되어 홍콩에 와 댄스와 싸움으로 시종한 소년기를 보냈다. 18세때 혼자 도미, 워싱턴주립대 철학과재학중 첫 도장을 개설하기도. 20세기 폭스사 배우로 활동하다 별 성과가 없자 홍콩으로 귀향해서 70년 하베스사와 2개의 주연영화 계약을 체결한게 승천의 계기였다. <드래곤 위기일발>(71년) <드래곤 분노의 철권>(72)이 공전의 히트. 72년 하베스트사와 공동으로 ‘콘코르드 픽쳐즈’를 설립코 그자신이 제작, 감독, 각본, 주연을 한 <드래곤에의 길>(72년)은 500만홍콩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사망유희>촬영중 미국 워너 브러더즈와의 합작 <불타라 드래곤>에 출연해 ‘헐리웃에서의 주연’꿈을 이루기도 했다.

주위의 여성들이 그런 李를 그냥 둘 리 만무했다. 그중에 갖 데뷔한 베티도 있었던 것. 둘의 관계는 업계서는 주지의 사실이었다. 팔짱 끼고 번화가를 걷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그러나 李는 그녀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은 적도 있다. 상심한 베티는 약물을 대량 삼켜 병원에 실려갔다. 그런 정에 이끌려 다시 친했다는 얘기다. 하긴 그가 교제한 여성연예인은 또 있었다. 그의 친구에 따르면 도미전에도 항상 많은 걸프렌드가 있었으며 홍콩에 돌아와 유명해지면서 교제범위는 더욱 더 넓어졌다고 한다.

법정에서의 사인규명

사망원인은 매장후도 발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7월31일 홍콩정청은 ‘이소룡사인연구보고’를 벙정에서 심리한다고 발표했다. 기일은 9월3일서부터 24일까지사이 7회로 일정이 잡혔다. 9월3일 첫날 개정하자 주임판사가 검시결과를 발표. 직접적 사인은 ‘뇌충혈’ 및 ‘뇌수종’인데 무엇이 ‘뇌수종’을 일으켰는지는 불명. 그러나 위장에서 대마잔류물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약물중독’ “앨러지’ ‘기타 질환’의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증인은 총 10여명. 친형 이충심, 추, 베티, 베티집에서 첫 진찰한 의사, 구급차에 탔던 고급구호원, 엘리자베드병원 급증실 의사및 동병원 긴급구치단위 의사, 경찰법의관, 경찰수사관, 군장경관등이다. 이리하여 이소룡의 마지막날 행동과 상황이 자세히 밝혀졌다.

오후1시 시장에 가는 린다에게 李는 “추와 약속이 있어 저녁은 아마도 집에서 먹지않아”라고 말했다. 오후2시 전후 추가 찾아와 둘은 4시경 베티집에 도착, 추와 둘이서 <사망유희>각본에 관해 의논후 동작품에 출연하는 베티까지 참석, 논의를 계속했다. 그리고 나면 조지 렌이젠비와 식사(5시반 예정)하며 그의 배역을 타합할 참이었다. 그러나 7시경 李가 두통을 호소해 베티는 그에게 진통제(Equacesic)를 먹이고 침실서 쉬도록 한다. 8시, 추가 혼자 레스토랑에 가고 베티는 그 45분후인 9시15분에 깊이 잠들어 깨지않는 李의 상태를 추사장에게 전화로 보고하였다. 9시45분 베티집에 돌아온 추는 李를 깨우려하나 도무지 반응이 없다. 10시경 베티의 주치의 주박회에게 왕진을 부탁, 의사는 10시10분경 도착, 진찰했으나 심박, 호흡은 이미 정지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즉각 엘리자베드병원으로 옮길 것을 제안, 10시37분에 베티댁에 온 구급차로 11시경 병원으로 운반되지만 구급조치의 보람 없이 11시30분 마이클의사에 의해 사망증명서가 작성되었다.

법정에서는 베티와 李의 사적관계에 관한 질의는 없었다. 거기서 구호원의, 혼수한 李의 복장에 관한 증언이 주목을 모았다. 그는 셔츠와 양식팬티를 몸에 걸치고 굽높은 구두를 신었는데 복장에 흐트러진 곳이 없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뇌종은 급사하기 30초전에서 혹은 반나절사이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李의 상황으로 볼 때 그 종양은 급속히 형성돼있다고 보충설명하였다. 그러나 뇌종양이 반드시 죽음으로 이른다고는 말할수 없다는 견해도 나타냈다.

한편 홍콩정청은 영국에서 법의학과 독약연구의 권위자인 런던대 디야 교수를 초청, 검토를 해왔었다. 교수 견해로는 “ 상인은 급성뇌종양에 의한 것으로, 그 원인은 진통제(Equacesic)속의 성분에 의해 일어난 앨러지에 기인한다”라는 것.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결론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24일 최종재결의 날이 왔다. 주심법관은 전술한 세 의사의 견해를 근거로 “ 李는 뇌수종에 의해 사망했다고 믿는다.”고 하고 무엇이 뇌수종을 일으켰는가에 관하여서는 사인을 재결하는데 핵심부분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5분간 휴정을 거쳐 3명의 배심원이 내린 재결은 “이상사(異常死)”였다.

모순속출과 깊어진 의문

이렇게 해서 <이소룡사인연구보고>는 폐정했다. 결론으로는 사인을 밝히기위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문을 깊게한 꼴이 되었다.
첫째로 주의사에게 왕진을 청한 사람은 누구인가. 베티는 추가 전화했다고 증언하고 추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주의사는 베티에게서 전화를 받고 왕진갔다고 증언하였다.

둘째, 李가 복용한 약의 포장은딱지가 발견되지않았다. 베티는 李에게 약을 먹였다고 증언. 그러나 사고직후 베티방을 조사한 경찰수사관은 빈 은딱지는 보이지않았다고 증언했다.

셋째로, 사고현장에 정체불명의 남자가 존재했다. 李가 침실에서 쉬고있을 때 베티는 혼자 리빙에 있었다고 증언. 추가 그녀 방에 돌아와 조금 있다 주의사도 현장에 도착했다. 이 시점에서 현장에는 추, 의사, 베티, 李의 4명밖에 없어야 했다. 그런데 구급차의 고급구호원은 또한사람의 남자가 있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네 번째로, 혼수한 李가 누워있던 장소다. 추와 베티는 李가 베티의 침상에 옆으로 누워있었다고 했다. 헌데 고급구호원은 현장도착시 마루에 깐 매트같은 것에 누워있었다고 증언한 것. 그리고 또한가지 법정에선 없던 또하나의 증언이 있다.

7월20저녁, 추사장등과는 별도로 李와 저녁식사 약속을 한 사람이 있었다. <불타라 그래곤>의 촬영자로 李와 친했던 롯 젠(육정)이다. 당일 그는 레스토랑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李가 나타나지 않자, 자기집에 전화한즉 오전중에 李에게서 전화가 와 약속시간을 바꾸고 싶은 것 같았다고 전했다. 롯은 다음에 李집에 전화하자, 받은 사람이 “문제가 생겼다. 전화로는 말할수 없다.”더라고. 그때가 바로 오후 7시쯤이었다. 그는 부상했나 싶어 李집에 갔다. 어른은 없고 아들 브랜든(이국호)만이 놀고있었다. “ 파파는 어디갔니?”묻자 브랜든은 한마디 “Movie!”라고 외쳤다. 그리고 李의 제자 한명이 말했다. “죽었대요.”

이소룡의 아들은 이때 8세. 후에 아버지처럼 스클린데뷔를 이루나 영화 <크로우/ 비상전설>의 촬영현장서 실탄에 명중돼 사망. 93년3월31일 아버지보다 젊은 28세란 부자비극이었다.

끊임없는 사인추구 열풍

브루스 리에게는 여하튼 “적(敵)”이 많았다. 그래서 제일 가능성이 높아보이게 암살설. 李는 소년시절에 암흑사회의 간부를 두들겨 팬 적이 있고 또 시합을 도전해서는 전통 각문파를 모조리 욕보여왔다. 미국시대에 원한을 품은 무술자에게 몇번이나 습격당하고 홍콩에 돌아와서도 무슬관계자와의 관계는 험악했다. 과격트레이닝설은 무술관계자사이에 널리 퍼져있다. 도를 넘은 훈련, 혹은 트레이닝방법이 틀려 내장에 부담이 가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마지막 수년간은 “성공”이라는 중압아래서 과격한 트레이닝을 자신에게 과하여 정신적인 압박까지 그의 몸을 망가트린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약물중독설은 해부결과 몸에서 대마잔류물이 나왔다. 73년5월10일 <불타라 드래곤>의 중국어녹음 작업중 혼도때 애처 린다는 남편의 대마복용사실을 처음 알았다.

73년7월25일자 홍콩 문앙보는 李가 마약을 항상 휴대하였다는 측근관계자의 말을 보도했다. 또 사망당일 병원스탭은 李의 몸에 가루가 묻어있는걸 발견, 흥분제 같은 것을 복용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확증은 없다고 한 인물의 코멘트를 다른 신문이 보도했다고 전하기도.

그가 죽은후 유명한 정신의학전문가가 생전의 일정기간 상태를 분석한 결과 李는 1년가까이 정신분열증에 걸렸던가, 혹은 그런 징후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불타라 드래곤>의 중국어작업중 혼도한 그는 린다의 간청으로 LA의 유명한 병원에서 철저한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쓰러진 원인은 너무 많이 일하고 극도의 피로에 인한 것으로 대마와는 관계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뇌속의 증상이 이땐 이미 악화돼 2~3개월을 못 넘길것이라고 했다는것. 의사가 그가 받는 충격을 감안, 선의의 거짓말였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가 가장 겁낸 것은 다시 쓰러지는 것과 연광의 모든 것을 잃는 일, 그리고 세상이 그에게 품은 “영원한 히로”라는 이미지가 망가지는 일이였을 것이다.

당시의 그는 인품이 확 바뀌었다. 성격이 난폭해져 스탭을 때리거나 딜렉터의 로이 와이를 단도로 위협하는 경찰사태를 일으키기도. <사망유희>촬영이 일시 중단된 것도 차츰 성급해지는 그와 누구도 함께 일하려고 하지않은 탓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홍콩에서 지난해 7월18~27일사이 공인팬클럽인 이소룡회가 ‘이소룡서거30주년기념회’를 개최했다. 그 개막식전에서 매스컴을 앞에 두고 이렇게 선언한 여성이 있었다. “ 30년동안 지켜온 비밀을 자서전을 통해 내년에는 발표할 예정입니다.” 베티다. 이소룡사후 그녀원안의 영화<실록/ 브루스 리의 죽음>(75년)에서 본인역을 맡아 李의 사인추구아닌, 멜로드라마로 만들었다 하여 일반의 빈축을 사고 불문에 귀의했던 베티이다. 과연 그녀는 올해에 어떤 비밀을 고백할 것인가… 과부 린다는 법적수속에 착수했다는 정보도 있다 한다.

한편, 중국에 귀속된 후의 홍콩의 구룡반도 일대에 “스타의 거리”가 오는 4~5월 조성되어 홍콩스타 70여명의 이름이 오르고, 스타들의 핸드프린트, 포스터등이 앞으로 20년간 전시 관리되리라는 계획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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