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뜨는 마당에“태극기를 바로 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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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의 ‘태극기’ 열풍이 이곳 미국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국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 제작 강제규 필름)’가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거론되는 등 이 부문 수상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산타 모니카 소재 램리 모니카 극장에서 열린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의 시사회에서 2차례에 걸쳐 상영된 ‘태극기 휘날리며’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크나 큰 호평을 받는 등 ‘미국시장 직접 진출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사회에서 큰 호평을 받자 미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기 위해 이곳 LA를 방문한 강제규 감독 등 관계자들은 “스크린 100개 개봉을 목표로 한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순수 제작비만 147억 8,000만원을 투입한 ‘태극기 휘날리며’는 흥행작 ‘쉬리’를 만들어낸 강제규 감독의 야심찬 작품인데다 장동건, 원빈 등 톱스타의 출연 등으로 영화 제작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아왔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지난 1월 말 이미 영화 ‘실미도’가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가지고 있던 역대 최다관객기록(820만명)을 깨뜨린 데 이어 곧바로 이 기록을 경신하며 ‘실미도’와 함께 ‘1,000만 관객시대’를 열며 한국 영화계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 제작 강제규필름)가 이미 내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등 ‘태극기 휘날리며’의 아카데미 진출 가능성 또한 이곳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 그리고 해외 유력 배급사 측에서 거론하는 얘기라 점차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이 같이 전 세계적으로 ‘태극기의 위용’을 알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승승장구 하는 반면 막상 주인공(?)인 ‘태극기’는 이라크에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 부대기에 사용된 태극문양이 잘못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라크에 파병해 ‘평화의 사절’ 얼굴 역할을 담당하며 국위를 선양할 ‘부대기의 태극문양’이 잘못 제작됨에 따라 일부 단체들의 ‘재제작 요구’가 이어지고 있으나 이를 제작한 육군 측은 “빠듯한 시간 탓에 완벽히 준비할 수 없었다”고 토로하는 등 발뺌하고 있어 한차례 논란이 예상된다.

박상균<취재부기자> [email protected]

이라크 파병 “자이툰 부대”
부대기‘태극문양 오기 논란’


본국의 CBS(기독교 방송)가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 ‘노컷뉴스(www.nocutnews.co.kr)’는 이라크에 파병할 ‘이라크 평화 재건사단(자이툰 부대)’의 부대기의 ‘태극문양이 잘못 그려졌다”며 고발성 기사를 실었다. 이는 최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영화계를 강타하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태극기’에 대한 관심도와 맞물려 많은 네티즌들 및 기사를 접한 국민들, 그리고 일부단체들은 “국가적 망신이다”라며 ‘재제작’을 요구하고 나서 향후 관련부서의 대처를 놓고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다음은 ‘노컷뉴스(www.nocutnews.co.kr)’에 실린 ‘자이툰 부대기 태극문양 논란’관련 기사 전문이다.

[이라크 파병부대의 부대기가 태극 문양을 잘못 표시한데 이어 부대 명칭에 대한 논란도 그치지 않아 고증작업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자이툰 부대의 얼굴인 부대기가 잘못 그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일 육군이 공개한 부대기 도안에 따르면 기 중앙에 놓인 태극문양이 국기 제작원칙과 상반된 것.

좌측의 청색꼬리가 우측 적색꼬리보다 높이 올라가야 하지만 자이툰 부대기는 정반대다.

태극기 선양회 신보철 이사는 “태극기는 국가의 얼굴인데 잘못 제작된 상태로 외국에 파병할 수는 없다”며 다시 그려 파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대의 이름과 장병들이 착용할 위장복의 효용성도 논란거리다. 아랍어로 올리브를 뜻하는 자이툰이라는 부대 명칭이 과거 아랍지역과 충돌해온 로마의 월계관을 연상시킴은 물론 기독교와도 관련돼 현지인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투복도 사막지형에 맞는 황색계통의 위장색을 입혔지만 탄띠 등의 장구류는 기존 장비를 사용해 효과를 반감시켰다. 육군은 이에 대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등 고증을 거쳤지만 빠듯한 일정 탓에 완벽한 준비는 어려웠다”고 밝혔다.]

태극기의 유래 및
‘국기제작법’이 수립되기까지…

원래 국기문제를 놓고 이 문제가 처음 거론된 때는 1880년 고종 17년 때 일이었다.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김홍집(金弘集)이 가져온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에서 조선이 중국용기(中國龍旗)를 군기와 국기로 사용하도록 권고한 내용에 따라 조선정부는 청(淸)나라에 자문을 구하게 되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고 있지 않다. 이후 1982년 4월 6일 조·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될 당시 조선의 전권부관인 김홍집과 청사(淸使) 마건충(馬建忠) 사이에서 국기문제가 재론되었다.

마건충은 중국 용기의 사용을 반대하고 흰색 바탕 중앙에 반홍 반흑(半紅半黑)의 태극도(太極圖)와 그 둘레에 팔도(八道)를 뜻하는 검은색 팔괘(八卦) 및 빨간색 주연(周緣)이 있는 도식을 제안함에 따라 그 해 8월 9일 특명 전권대사 겸 수신사인 박영효(朴泳孝)가 일본에 가던 중 영국인 선장과 상의하여 태극기 대·중·소 3본(本)을 만들었으며, 태극도가 마건충이 제안한 ‘반홍 반흑’에서 ‘반홍 반청’으로, 팔괘가 사괘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박영효는 8월 22일 태극기 소본(小本)과 국기제정 사실을 군국기무처에 보고하였으며, 1883년 1월 27일 통리교섭 통상사무 아문의 장계(狀啓)에 따라 팔도사도(八道四都)에 행회(行會)함으로써 태극기를 정식 국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사괘와 태극양의(太極兩儀)의 위치에 통일성이 없었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이 때까지 조금씩 다른 도안으로 사용되어 온 태극기 문양을 통일시키기 위해 당시 문교부에 사학자, 미술가, 언론인, 사계 권위자 42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국기 시정위원회(大韓民國國旗是正委員會)’를 설치하고, 전문적인 검토와 함께 국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1949년 10월15일에「국기제작법」을 제정, 문교부 고시 제 2호로 공포하였다.

이후 지난 1984년 2월 21일 국기의 제작,게양방법 등 기본적인 사항을 정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 제11361호로 제정·공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고(最古)로 추정되는 태극기의 사진이 최근 발견되어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지난 1882년 7월 미국 해군성 항해국(Navy Department Bureau of Navigation)이 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이라는 제목의 책에 태극무늬와 4괘(卦) 등 현재 태극기 형태를 갖춘 태극기 사진이 실려있는 것으로 지난 1월 26일 밝혀져 화제를 모른 것이다.

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면, 이 태극기는 지난 1882년 10월 2일 처음으로 공개된 ‘박영효의 태극기’보다 2-3개월 앞서는 최초의 태극기, 최고(最古)의 태극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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