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신의 섭리아닌 인간끼리의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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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화제> 이슬람세계의 결혼관과 내력 및 풍속

이슬람세계의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만나 결혼하고 어떤 생활을 하고있을까….

일반적으로는 일부다처, 하렘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슬람여성이라면 검은 베일에 얼굴과 몸전체까지 뒤덮은 경우가 많다. 실은 이슬람세계라 해도 아라비아를 비롯 이란, 터키가 있고 아프리카에다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에도 있어 나라마다 각기 다르다. 같은 나라안에서도 남과 여의 관계는 커플수만큼이나 발리에이션이 다르다고 지적하는 연구가도 있다. 이슬람세계의 결혼생활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일부다처제… 마호메드의 선례를 따른 셈
검은 베일…순결 아니라 기혼부인의 심볼


우선 이슬람에서는 결혼은 종교상의 비적(秘蹟)이 아니다. 즉, 남과 여를 맺어주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끼리의 계약인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나 가톨릭과 크게 다른 점이다.

가톨릭에서는 하나님이 맺어준 커플은 원칙적으로 이혼할 수없으니 설령 법률상 이혼해도 성당에서의 결혼기록은 지워주지 않으므로 재혼은 불륜으로 간주된다. 무슬림에서는 이혼도 재혼도 가능하다. 모든 것은 결혼계약의 내용여하이며, 계약속에서 남편의 일부다처를 금할수도 있다. 정확하게는 남편이 제2부인을 가질 때, 최초의 부인이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항목을 두는 것으로 가능하게끔 돼있다.

계약에 싸인한 날이 결혼일이며 가정적인 파티는 있지만, 이른바 피로연은 훨씬 후에 열리게 되어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이슬람원리주의적인 나라에서는 남자는 아내나 가족이외의 여자얼굴은 볼수없으니 피로연이라 해도 남 여 따로 열지만 수일씩 계속될 때도 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의 파티쪽이 기분 나고 떠들썩한 건 사실인데, 남자들 자리가 쓸쓸해 보이는건 이슬람교가 알코올을 금하고 있는것과도 무관치않을 듯 하다.

“선보기”도 갖가지 형태로

은행이나 레스토랑까지 남녀가 구분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서로를 알게될까. 사우디에서는 한참전의 일이지만, 친척들이 파티등을 열어 선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 탓에 ‘사촌혼’도 드물지 않았다. 오늘의 수도 리야드에서는 남녀가 만나는 최대의 장소가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라고 한다. 여성은 검은 베일을 온통 뒤집어 썼기에 나이조차 어림잡아서도 알수없지만 여자쪽은 베일너머로 남자가 보인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을 때 휴대전화번호를 슬쩍 건네는 케이스도 있는 모양이다. 물론 양친끼리 결정하는 혼약도 있으나 딸이 남자사진이나, 베일너머로 실물을 볼수도 있으니 최종적으로 딸이 남자를 마음에 두지않으면 부친이 결혼을 강제할 수 없다. 결혼계약은 기본적으로 본인끼리의 자유의사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쪽은 결혼이 확정되지않은 한 여자사진을 볼수없으니(형제등의 입을 통해 상상할수는 있다) 불공평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여자의 모습이 이렇게까지 감춰져 결혼외의 자유연애가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자의 가치가 높으니까 남자로서는 별로 골라잡지 않는게 실정이기도 하다. 첫째로, 결혼한 후라도 아내얼굴을 다른 남자에게 보이는 장면이란 생각될 수 없으므로 체면때문이랄 것도 없고, 다른 여성과 아내를 나란히 해서 비교한다는 일도 없다.

외견보다는 둘이 쌓는 결혼생활의 계약내용에 관심이 가게돼있는 것이다. 하긴 사우디같은 나라는 오일달러덕분에 부자가 많아 외국에도 쉽게 나가며, 또 외국에서는 베일을 벗고 서양사람처럼 생활하는 여성도 있는등 많이 달라졌다. 한 예로 파리의 샹제리제에는 아립인들의 카페가 있어 딸이 앉은 앞을 남자가 걷게하는 선보이기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한다. 또 유학이나 비즈니스관계로 외국에서 사는 사우디인남자가 그나라에서 장래 아내감을 찾게된 케이스도 많아 리야드나 제다에는 국제결혼한 커플도 적지 않다. 한번 반해서 결혼하면 아내가 불륜을 저지를 가능성은 우선 없으니(다른 남자와 동석할 기회는 적고 얼굴을 보일 챤스는 제로에 가까우며 간통죄는 투석사형이니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아내는 자기의 독점물이 되어줘 즐거워하는 남자가 꽤나 많아보인다.

사우디여성은 대체로 미녀가 많고 스타일도 좋아 모습이 잘못보이는 예는 드물다. 리야드에는 미국이나 유럽인이 프린세스 스크 라고 부르는 여성드레스중고시장에 가면 한번밖에 안입은듯한 이브닝드레스등이 야외에 저멀리까지 행거에 걸려있음을 목격할수 있다. 사우디여성이 한번 입은 후 하녀에게 줘버린 드레스를 인도상인이 모아서 파는 셈으로 놀라울 만큼 싸다. 그중에는 유리구슬이나 자수 리본 레이스등을 마구 쓴 화려한 것도 많은데 그 웨스트 사이즈가 어느 것이나 가는데는 모두 놀란다.

단, 나이든 아랍여성은 꽤나 확률상으로도 풍성한 체형이 된다. 아랍사회에서는 전체적으로 ‘마음씨 좋음’이 최대의 덕목이라 남편이 어떻게 아내에게 물건을 사주나, 충분히 먹게하느냐 하는 것이 사회적인 가치로 이어진다. 기혼녀가 말라있는건 남편에게 대문제인 것이다. 풍성한 여인이 아름답다는 기준이 되어버리는 까닭이다.

베일과 여성의 인권

검은 색투성이의 유령같은 사우디아라비아여성이나 탈리반정권 시절 유명했던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요란한 불카 탓으로 여성이 얼굴이나 몸을 감추는 것을 마치 이슬람교의 특징인양 오해하기 쉬운데 실은, 이슬람교이전부터 지중해연안이나 팔레스타인부근에 있던 풍습이었다한다. 기독교에서도 오랜 기간 여성은 교회내서 머리를 덮는 것이 의무적이었다.

성바우로는 코린트인에의 편지.제1(11장)속에서 머리에 무엇을 덮은 남자는 머리를 욕되게 하는것이요, 같은 일을 하는 여자가 머리를 덮지않으면 머리를 욕되게 하는것이라고 했다.

머리를 덮지않은 여자는 머리카락을 민것과 같다고도 한다. 나아가 남자는 신의 모습이고 영광이니까 머리에 무엇을 쓰지말아야 하는데 여자는 남자를 위해 만들어졌으니 머리에 권위의 증표를 써야한다고 했다. 머리에 무얼 다는 것은 요컨대 종족의 심벌로 기능하는 모양이다. 지금의 유럽 교회에서 미사때 머리를 덮고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스페인등에서는 지금도 검은 레이스의 만티라가 건재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머리를 완정히 감춘다고 하면 수녀의 베일을 생각케해 아주 순결의 상징같은 인상을 주지만, 그 베일도 고대 팔레스타인근방서의 기혼부인의 베일에 기원이 있다한다.

거꾸로 말하면 베일을 쓰고있으면 결혼시장에 들어가지 않는다(=팔것이 아니라)는 것이니 독신의 맹세를 한 수녀에게 적용됐을지도 모를 일. 그러한 습관이 지중해세계를 넘어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됐으니 무언가 베일은 수녀의 심벌처럼 돼버린 셈이다.

베일은 이슬람세계에서 여러 가지 발리에이션이 있다. 사우드아라비나 이란의 검은 불카는 커다란 천으로 머리서부터 쓰면 어깨에서 등까지 감춰진다. 이란에서는 여자아이 7세생일에 모친이 주는것으로 그걸 쓰게되면 원칙적으로 남자아이와 놀아서는 안된다. 사우디에서도 역시 7세때 남녀로 나뉘는데 베일은 첫월경때까지 쓰지않아도 된다. 다만 일단 쓰게되면 몸을 몽땅 감추는 검은 아바야도 동시에 써야한다.

몸이 커졌다던가, 여자답게 되었다 하면 초조전이라도 아바야만 착용하는 소녀도 있다. 실제로 성인여성의 얼굴이나 몸을 밖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사회이므로 사춘기전의 소녀라도 좀 몸집이 크면 남자들의 시선을 모으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코란에는 얼굴을 감추라고 쓰여있지 않다고 반발하는 여성도 많지만, 예컨대 이슬람의 세밀화(細密畵)에서 마호메트와 그 아내들을 그린 것등은 아내들의 얼굴이 집안에 있을때의 것에도 검열한 것 처럼 새하얗게 발려있으니 여자얼굴을 보이지않는다는게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모양이다. 물론 민족이나 부족이 다르면 조금씩 다른 발리에이션도 있어 원래 모계제가족형태였던 투아레그유복민등에서는 남자쪽이 흰 천으로 얼굴을 몽땅 감추고 눈만 내놓고 있다. 이는 처가쪽남자에의 거리감이 기원이라고도 하는데 종교적근거가 없음은 물론이다.

터키나 인도계의 이슬람사회도 여성의 지위가 전통적으로 낮지않다. 시회의 빈부차가 크지않아 돋보이지않으나 권력가집안에 태어난 딸은 고등교육을 받아 사회의 톱으로 나선 일도 있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터키, 인도네시아등에서 여성총리가 나온 것이 그 케이스다. 마호메트는 “여성이 정권을 잡은 나라는 잘 되지않는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예언자의 말에 의해 각지의 민족성이 간단하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이슬람의 샤리아법을 보면 부모로부터의 재산상속은 여성은 남성의 절반, 재판시의 증언도 여성의 것은 남성의 반정도밖에 가치가 없는등 얼핏 불공평해 보이는데, 이슬람에서는 모든 여성은 결혼해서 남편의 완전비호아래 들어간다는게 전제가 돼있다. 그 때문에 남성은 상속한 재산을 모두 가족을 위해 써야되지만, 여성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만 쓸수있어 오히려 여성에게 유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거의가 대가족이기에 가정내서 모친의 실권이 강해질수도 있다. 이슬람교도의 의무의 하나인 매년 한번의 라마단(낮동안 먹고 마시지못하는 단식월)기간등엔 일몰후 일가단란의 식사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한달간 계속되므로 공복을 참으며 매일저녁의 연회를 준비하는 여성의 힘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정내 폭력’은 이슬람세계서도 심각한 문제다. 이혼신청을 하려해도 ‘가정내 폭력’에는 증거나 증인이 한정돼있어 여성이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기는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실은 이슬람세계에 ‘부부애의 멋진 심벌’이 세계유산으로 남겨져있다. 인도의 다지마할궁전이 그것. 1632년경부터 20년이상 걸려 축조된 백아의 묘(廟)는 이슬람교 무가르제국의 샤. 쟈한왕이 8명의 자녀를 낳아준 애처를 위해 만든 것이다.
4개의 첨탑에 둘러싸인 섬세우미한 모스크식 묘가 수면에 비치는 잔잔하고 따뜻한 모습은 무슬림남자가 무슬림여자에게 바친 깊은 사랑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마호메드의 여성관, 결혼생활

이슬람교조 마호메드는 젊고 마남인데다 멋장이어서 25세때 4o에 가까운 유복한 과부 하디쟈와 살게된다. 그는 메카의 다신교(多神敎)를 비판해 사회개혁을 부르짖고 신에 계시된 코란의 가르침을 설파하다 메카를 쫓겨나 북쪽의 메디나촌에 살며 새종교의 교조답게 많은 아내를 두기시작했다. 코란에는 < 좋을대로 2명, 3명, 혹은 4명의 아내를 가져도 된다. 그러나 공평하게 다룰수없다면 한명만으로 하라>(4장3절)고 돼있는데 “공평하게 다루”는데 중점이 있어 5명이상이 금지된 셈은 아니다.

마호메드의 9명의 아내중 7명은 미망인과의 재혼으로 그중에는 의붓아들의 아내에 반해 이혼시킨 케이스도 있었다. 마지막 한명은 6세때 반해 결혼하고 9세부터 관계를 가진 아이샤였다. 그녀는 마호메드가 죽은때 18세였고 평소 자신의 특별한 위치를 활용, 마호메드에 대드는등 멋대로 굴었다한다. 마호메드의 “여자는 남자에게 최대의 시련이다” “ 지옥은 여자들로 가득하다”는 탄성이 나온 까닭인 듯 하다.

다른 2명의 애인은 유태인의 라이하나와 코프토(이집트의 기독교도)노예의 마리아. 마호메드는 예수(이슬람교에서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예언자의 하나로 본다.)를 좋아해 성모 마리아도 ‘유순과 정절의 귀감’이라며 좋아했다. 그때무인지 마리아를 특히 총애해 다른 아내들이 무슬림인 자기들을 제쳐놓고 기독교도와 지낸다고 난리를 피우기도.

아버지로서의 마호메드는 인간미가 넘친 사람이었다. 첫부인 하디쟈와 사이에 난 자매중 둘째의 파티마가 허약하고 볼품없는 딸이여서 그는 자기 사촌동생이 되는 가난한 알리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알리가 코란에 허용된 둘째 아내를 두려하자, 마호메드는 “ 알리가 또한번 결혼하고 싶다면 그전에 이혼하는게 좋다. 딸을 상처내는건 나를 상케하는 거고 딸을 괴롭히면 니를 괴롭히는것”이라고 했다.

남편으로서의 마호메드는 질투가 많았다. 한번은 사아드 라는 남자가 “ 만약 다른 남자가 내아내와 함께 있는걸 발견하면 나는 검으로 그를 찔렀을 것이다”고 말하자 마호메드는 “ 모두들 사아드의 강한 질투에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질투가 강하고 알라신은 나보다 더 질투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임종때 아직 18세이던 아이샤를 포함해 남긴 아내들 모두에게 재혼을 금했다. 이처럼 마호메드는 남자와 여자에 관한 한 아무리 보아도 코란원리주의자가 아니라 매우 인간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코란에 의하면 <내가 보낸 자(=마호메드)는 너회들의 하나의 좋은 모범이다>(33장21절)이니 마호메드이후 능력있는 남자들이 4명보다 많은 아내를 갖는 것도 자연스런 추세였다고 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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