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 이명박 진실게임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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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년 첫 대면이후 20여차례 서울 왕래
■ 서울체류시 이명박씨와 호텔서 잦은회동
■ 이명박씨 도움으로 화려하게 한국에 등장
■ 정치계 마당발 한인 L씨도 톡톡히 한 몫

한국에서 수백억 거액 횡령 후 LA로 도피해 연방 마샬에 의해 체포, 구속 수감 중인 김경준 씨 사건의 실체가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한인사회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고 불똥이 엉뚱하게도 LA 시청 쪽으로 비화되면서 갖가지 풍문과 소문이 나돌고 있고 이와 관련해 일부 LA시 관계자들에 대한 금품 로비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어 사건이 어디로까지 비화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김경준 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와 관련된 예민한 사항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FBI가 이와 관련해 김경준 씨 이외 추가 관련자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건의 파장은 갈수록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사항은 김경준 씨가 아니라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와 현 서울시장인 이명박 씨다. 두 사람의 친분관계에 관한 갖가지 소문들이 하나 둘씩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과연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가’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대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 김경준 씨 사건으로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는 변호사 생명을, 이명박 시장은 정치적 생명을 걸고 양측이 치열한 법정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2004 Sundayjournalusa

일각에서는 두 사람을 두고 비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당사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다가 이른바 에리카-김경준 커넥션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이 한결같이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어 정확한 판단은 할 수 없지만 소문대로 보통사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6월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전 에리카 김 변호사는 본보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명박 씨와의 일부 정치인들과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존경하는 사이’라고만 말할 뿐 기타 정치인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기도 했다.

그 동안 에리카-이명박 두 사람에 관한 소문은 수 없이 많이 타운에 회자되었다. 물론 사실인지 아닌지는 당사자들만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간에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눈덩이처럼 커져 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거물 정치인인 현직 서울 시장과 주목 받고 있는 미모의 잘 나가는 여 변호사. 두 사람 모두 이번 위기에 대한 대처에 따라 운명이 판가름 지어질 수 있다. 이명박 시장의 경우는 특히 정치적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는 절대절명의 위기며 에리카 김 변호사 역시 ‘변호사 생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기로에 서 있기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한결같이 사건의 전말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www.sundayjournalusa.com)

절친한 관계에서 하루아침 원수지간으로
두사람 사이 감춰진 진실에 지대한 관심

94년 4월9일 첫 대면 후
수 십 차례 한국 왕래

본보가 입수한 에리카 김 변호사의 한국 출입국 기록에 의하면 94년부터 10년간 <옵셔널 벤쳐스> 사건 직후까지 무려 20여회 가까이 한국을 드나들었다.

거의 2~3개월에 한번 꼴로 한국 방문을 했으며 갈 때마다 이명박 씨를 만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사람간의 만남을 목격하거나 같은 자리에 동석했던 사람들이 LA에 즐비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실명 거론을 하지 말아줄 것을 전제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 변호사가 서울을 나갈 때마다 이명박 씨는 자신의 승용차를 공항까지 내보내는 친절을 베풀었으며 주로 <힐튼 호텔>과 <리치칼튼 호텔> 등지에서 때로는 단 둘이 때로는 여러 사람이 자주 만났으며 가라오케 룸으로 가서 같이 노래하고 놀기도 했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이 시장은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않고 각별히 에리카 김 씨를 배려해 주는 분위기였다”고 구체적인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에리카 김 변호사와 함께 서울을 방문했던 한 인사는 자신도 이명박 씨와 에리카 김 변호사와 함께 자리를 한 적이 있음을 언급하며, 두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시큰둥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에리카 김 변호사는 출판 기념회 이후 한국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한국의 방송 3사를 비롯해 언론들은 ‘에리카 김 변호사 띄우기’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렸으며 어디에 가나 에리카 김 변호사를 알아 볼 정도로 대단한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코넬 대학교와 UCLA 법대를 졸업하고 약관 27세에 변호사가 되어 돌아온 에리카 김 씨의 금의환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부심 반, 호기심 반이었다. 152센치 미터의 작은 키에 비해 화려한 미모와 학력과 이력은 사람들에게 화제거리의 소재로 충분했다.

그런 호기심에 걸맞게 주변에는 한국의 거물급 정재계 인사들이 연일 줄을 이었고 에리카 김 변호사의 인기만큼이나 신분상승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에리카 김 변호사의 자전적 에세이 집인 ‘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기념회 초청장에는 <이명박, 서영훈, 안병욱> 씨를 비롯해 5명의 초청인이 명기되었다.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때부터 에리카 김 변호사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그 주변에는 갖가지 구설수와 소문이 끊임없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당시 에리카의 한국의 후원자는 이명박 의원, 전 중소기업협회 회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박상희, 전 대한 주택건설협회 회장 허진석, 그리고 구천서 의원을 비롯해 거물 정치인들이었고 그들이 직접 나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했으니 출판기념회 장소인 남산 힐튼 호텔 주변에는 거물 유명 인사들 때문에 경찰이 비상이 걸릴 정도였다니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허진석 동성종합건설 회사 회장은 그 뒤 O.C 카운티 아파트 건설 프로젝트 사업에 에리카 김 변호사를 법률 고문으로 참여시켜 한동안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한인사회의 신데렐라 등장
의사인 남편과 이혼

출판 기념회 이후 LA로 돌아온 에리카 김 변호사는 얼마 후 신경과 의사인 남편 A모 씨와 이혼을 했다. 그리고 종횡무진 변호사업과 왕성한 사회활동을 시작함으로써 한인사회에 ‘신데렐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여기에는 한인 L모 씨의 역할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 한국과 미국에 꽤나 마당발로 통하는 L 씨와의 스토리는 개인의 신상 문제라서 언급하지 않겠지만, 90년대 중반 많은 구설수를 만들어 내었고 가쉽 거리에 대상이기도 했다.

에리카 김 변호사의 한국 출판기념회 때도 상당한 역할을 했으며 이명박 씨를 소개 시켜준 사람도 L 씨였으나, 출판기념회 직후 두 사람은 결별했고 지금까지 왕래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 씨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며 한사코 기자의 질문에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그러나 L 씨는 ‘에리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라는 함축성 있는 묘한 대답으로 착잡한 심정을 드러내 보였다.

이번 동생 김경준 씨 사건이 터지자 LA의 모든 언론사 기자들은 한결같이 포커스를 L 씨에게 맞췄다. 이명박-에리카 두 사람의 열쇠 고리를 L 씨가 쥐고 있다는 생각이었으나 L 씨는 ‘출판기념회 이후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진실과 양심’을 번갈아 언급한다.

에리카 김 변호사는 한인사회에서 대단한 명망과 함께 출세가도를 달렸다. 한인사회의 언론들은 방송-신문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주었고 에리카 김 변호사 사무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명석하고 뛰어난 언론 플레이에 재치 있는 미모의 독신 여 변호사를 찾는 고객들이 줄을 섰으며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수임해 관심에 초점이 되기도 했으나 너무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비밀을 요하고 있는 사건 관계자들을 언론에 유출시키는 등 적지않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에리카 김 변호사가 맡은 대표적인 사건은 O.C의 친딸 성 폭행의 조경묵 씨 사건과 괌 KAL기 추락 사건 등이었다. 한때 KAL 사건으로 에리카 김 변호사가 ‘3,000만 달러를 벌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으나, 이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소문이라는 후문이다.

한편 에리카 김 변호사는 LA 한인상공회의소와 미 주류사회의 각 단체등에 관계하면서 LA의 거물급 주류 인사들과의 친분과 교류를 쌓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다. 특히 LA 시 인간관계 커미셔너로 임명되어 화제가 되었고, 여성 최초로 LA 한인 상공회의소 회장이 되는 등 유감 없는 실력을 발휘 한인사회의 관심에 대상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주목 받는 차세대 1.5세대의 맹열 <파워 우먼>으로 불리기도 했다.

화려하게 한인사회에 신데렐라로 등장했다가 추락 위기를 맞은 이제 40살의 에리카 김 변호사가 어떻게 위기 탈출을 시도할 것인지 모든 사람들은 궁금해 하고 있고, 이명박-에리카 두 사람의 ‘진실게임’ 공방전의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최대의 위기 맞은 에리카 김 변호사
정치적 음모 주장에 갖가지 해석 분분

에리카 김 변호사는 현재 동생 김경준 씨와 함께 3건의 민사소송에 걸려있다. (에리카 김 변호사는 2건) 사건의 파장만큼이나 치열한 대 접전이 예상되고 있고, 한국 정계의 거물인 이명박 서울시장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옵셔널 벤쳐스 코리아의 피해자들과 이명박 서울시장은 에리카 김 변호사를 공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미국 내 유령회사의 주소들이 모두 에리카 김 변호사 사무실로 되어있고 이 회사의 대리인도 에리카 김 변호사로 되어있는 만큼 공동 책임을 물어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김경준 씨 변호사인 마크 벡 씨는 이번 사건이 한국의 정치적 음모 사건임을 법정에서 계속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음모 사건은 과연 무엇인가’. 또한 왜 고소한지 1년 6개월이 지난 올해 1월 미국에 범죄인 신병인도를 청구 했는지가 주요 열쇠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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