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권에 짓밟힌 탈북자 인권” 겉으론 개혁 속으론 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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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씨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씨 여권발급 거부
방미 초청장 받고도 신변안전 빌미로 1년넘게 지연

국정원 갖가지 범법행위·인권침해로 비난고조
北과의 교류협력 확대보다 탈북자 인권 우선과제

마지못해 받아들인
탈북자 들

낯선 나라를 떠돌던 탈북자 468명이 지난 주에 마침내 한국으로 왔다.
한국 정부와 언론들은 어느 나라를 거쳤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베트남에서 할 수 없이 데려왔다고 보도했다. 국내외적 비난이 두려워 마지못해 데려왔다는 투의 외신보도는 정부의 대북자세가 달라지기라도 한 듯 보도한 한국 언론과는 내용과 함축하는 바가 사뭇 다르다.

2004년 7월 28일자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 지에 실린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지의 마쿠안드 기자의 기사를 보자.

“—한국정부는 베트남으로 들어온 탈북자의 수가 너무 많아 무시할 수 없게 되자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 베트남에서 이들 북한 사람들은 45일에서 180일 동안 천막생활을 했다.—그러나 이들의 입국이 탈북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하다고 비난받아온 한국정부의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상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밀려들어온 탈북자의 수가 급격히 늘면서 서울의 당국자들에게 탈북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하자 한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백진현 교수는 ‘한국 정부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한국정부 관계자들은 탈북동포들의 입국에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다.—우리는 북한으로부터 더 이상의 탈출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임 국가안보보좌관은 말했다.

한국헌법에 따라 북한인들은 한국국민으로 간주되며 한국 법의 보호를 받고 권리를 보장받는다.”

이신범 전 국회의원 칼럼이 게재됩니다.
본보 특약

이신범씨는 54세로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용산 중, 고를 거쳐 1967년 서울법대에 입학했으나 3선개헌 반대 투쟁 등 반독재 학생운동으로 두차례 제적당하여 1988년 여름 21년 6개월 만에 졸업을 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이른바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3차례,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내란음모사건으로 거듭 4차례 투옥되어 5년 8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1983년 형집행정지로 미국에서 망명활동을 하다가 1988년 통일민주당 정책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김영삼정부 들어 환경부 산하의 환경관리공단 이사로 공직생활을 하다가 1996년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강서을구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내고 한나라당의 외교통상위원장, 인권위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가2004년 3월 22일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미국 워싱턴의 국제정책개발연구소 선임연구위원(1983-88), 워싱턴 소재 환경법연구소(1994), 어바인의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원(2001-2)을 역임했고 저서로 학생운동 경험을 기록한 논픽션 “광야의 끝에서”와 캘리포니아주에서의 법정투쟁기 “대통령 아들인데 그 정도 살면 어때”, 워싱턴에서 영문으로 출간된 “한국의 환경” 등이 있고 “한국시민운동의 과제와 전망” “한국의 급진사상과 학생운동”을 비롯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금년 4월 16일 그를 국정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하였는데 1999년 4월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인권위원회 총회에서 연설하며 국정원의 정치사찰의혹을 제기하고 한나라당의 당시 인권보고서를 당 출입기자와 세계각국의 대표들에게 배포했다는 5년 묵은 혐의를 들추어 낸 것이다. 그는 이 기소를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하고 고소취소를 요구하며 지난 5월이래 LA에 체류 중이다.

탈북자 김덕홍씨
여권 왜 안주나

과연 이들 탈북자들의 인권은 한국 헌법과 법이 정한대로 제대로 보장되고 있을까?
황장엽씨와 함께 1997년 탈북한 김덕홍씨가 7월 20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여권 발급 거부 위법 확인의 소”는 탈북자 인권의 현주소를 생각하게 한다.
정인봉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하여 제기된 소송의 청구원인난을 보자.

“1.원고는 피고(대한민국 외교통상부장관)에 대하여 2004. 6. 4. 여권 발급신청을 하였다. 2. 여권의 신청에서 발급에 이르기까지는 통상 10일 정도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여권을 발급하지 않고 있다. 3. 이러한 피고의 행위에 대하여 원고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여권을 조속히 발급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피고는 여권을 발급하지 아니하는 것은 물론이고 답변조차 하지 아니하고 있다. 4.원고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발급받아야 할 여권을 발급하지 아니하는 피고의 행위가 위법함의 확인을 구하기 위하여 이 사건 청구에 이르렀다.” 소장에는 또 김씨가 대통령, 국가정보원장 등에게 8차례나 청원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에 반정부인사라는 이유로 여권을 발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여권법 제8조 제1항 제 5호의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는 여권발급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이 그 근거로 악용되었다. 이를 구실로 필자의 경우처럼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정부에 비판적인 이른바 “반정부 불순분자”들에게 몇년이고 여권을 주지 않아 가족을 생이별시키거나 유학길도 막고 정치탄압과 보복의 수단으로 삼았다.

“신원특이자 명부”라고 이름붙인 요시찰인 명부도 이때 만든 것이고 이를 총지휘한 것이 오늘날 국가정보원의 전신으로, 고문과 사건조작으로 악명높았던 중앙정보부였다. 필자는 1996년의 국회국정감사 때 이 명부를 없애라고 외교부장관에게 따졌는데 민주화된 그 시절에도 공안기관은 그것을 없애지 못하겠다고 오래 버티었다. 1999년 9월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제1항 제5호의 규정에 의한 인정을 하려고 할 때에는 미리 법무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고 여권법 제8조 제2항을 고쳤는데 그렇게라도 권력 남용을 견제해보자는 뜻이었다.

여권발급거부는
국정원의 범죄행위


그런데 김씨의 여권을 왜 주지 않는지 설명하는 데에는 국가정보원이 나섰다. 한 일간지의 기사를 보자.

“김씨는 지난해 7월 미국 허드슨연구소 마이클 호르위츠 수석연구원 명의의 방미 초청장을 받고 종로구청에 여권 발급 신청을 한 뒤 고영구 국정원장 등에게 협조 요청 서한을 보냈으나, 금년 3월 구청측으로부터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권 발급이 부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김씨의 한 측근이 19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6월 초 종로구청에 다시 여권을 신청했으나 같은 이유로 발급받지 못했으며 6월25일 허드슨연구소의 초청장을 받아 고영구 국정원장 등에게 여권 발급을 위한 협조 요청서를 보냈으나 7월 초까지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김씨가 미국에 갈 경우 신변 안전이 완전하게 보장되지 않는 데다 김씨의 경우 ‘특별보호’ 대상이라 검토할 사항이 많아서 여권발급이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법에도 없는 이런 일을 개혁과 인권을 노래삼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국정원이 벌이고 있다. 당하는 사람은 오죽 속이 터질까, 더구나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사람을 국내에 묶어 두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탈북자들에 대한 처우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게 되어 있다. 그 법 제8조에 따르면 탈북자가 보호를 요청하면 보통은 통일부장관이 보호여부를 결정하는데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자의 경우에는 국가정보원장이 결정한다.” 김덕홍씨의 운명에 대해 국정원이 나서는 근거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에서는 신변안전이 문제라느니, 김씨가 특별보호 대상이라서 1년도 넘게 검토할 사항이 많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법과 시행령 어디에도 탈북자라고 해서 해외여행을 금지시킬 근거는 없다. 김씨에 대한 국정원의 행위는 “누구나 자기의 나라를 떠날 권리가 있고 자기의 나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 세계인권선언 제13조 제2항에 위반되는 범죄적인 처사이다.

국정원 폐지공약은
어디로 갔나

미국에서 망명조직을 만들고 햇볕정책을 비판할까봐서 김덕홍씨에게 여권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정원이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그런 일탈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그런 정보기관은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런 국정원은 왜 개혁의 대상이 아닐까?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국정원 폐지와 해외정보처 신설 공약은 말장난이었나? 여야 후보는 모두 국정원 폐지 혹은 기능축소 등 대수술을 공약했는데 노 후보는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으로 계속 이름이 바뀌었지만 계속 말썽”이라면서 “대통령이 되면 국내 사찰 업무를 중지시키고 해외 정보만을 수집·분석해 국익을 위해 일하는 ‘해외 정보처’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당선자 시절 국정원을 존속시키되 국내 정치 기능 등을 대폭 축소, 전환키로 하는 정도로 입장을 조정했다. 이름은 놓아두고 내용을 바꾸겠다는 것이었지만 김덕홍씨에 대한 인권유린 처럼 국정원 구성원들의 구태에 찌든 사고방식과 행태는 변하지 않고 있다.

마침 미국에서도 정보기관의 개혁논의가 결론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집권세력도 국정원을 제대로 된 안보기관으로 바꾸는 실질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거론은 금기?

7월 21일 미국 하원은 “2004북한 인권법”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그러자 한국 여당과 친여 언론에서 미국의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인권을 지렛대로 하여 북한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악법이고 평화와 화해를 지향하는 대북정책을 손상한다는 것이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즈7월 28일자는 이런 한국의 반응을 비판하는 한국총영사관 앞의 시위를 크게 보도했다. 탈북자 인권운동가 신동철 목사는 이 기사에서 일부 한국 의원들을 “비정하다(heartless)”고 비판했다.

지난날 미국과 소련이 긴장완화를 위한 접촉을 할 때에도 미국은 사하로프 박사 등 반체제인사들의 인권을 끊임없이 거론했다. 그 때 일부에서는 소련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고 미국의 인권거론을 비난하기도 했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은 확대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면 무엇때문에 교류를 하자는 것인가? 햇볕정책은 본래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갑자기 무너지면 부담이 되니 교류와 협력으로 북한의 개혁 개방과 연착륙을 유도하자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북한은 햇볕정책을 북한붕괴음모라고 비난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오갈데 없는 탈북자들에게 미국망명의 길을 열어주려는 법에 반대하는 한국의 일부 의원들은 그들이 타국을 떠돌며 노예처럼 살도록 내버려 두자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목사의 말처럼 비정한 사람들이다. 이미 실패한 북한 체제를 남한의 도움으로 유지시켜보자는 것도 이들의 비정한 망상임에 또한 틀림이 없다.

북한은 탈북자 문제로 장관급회담은 거부했지만 쌀 40만톤은 받고 있다. 그 중 10만톤은 한국이 베트남에서 사서 보내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몸값으로 남한이 치른 대가와 다름없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이 탈북자들을 납치했다고 하고 한국은 베트남쌀을 사서 북한에 주며 미국의회를 비난하고 있으니 참 희한한 광경이다. 미국과 20년을 싸우고도 미국과 우호 통상관계를 확대하고 있는 베트남과, 한미 동맹을 흔드는 반미가 유행인 한국의 모습과도 중첩되는 묘한 광경이다.

그러나 인권은 모든 가치에 앞선다. 노무현 정권은 어떤 이유로든 탈북자들의 인권을 제약해서는 안된다. 김덕홍씨의 여권은 즉각 발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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