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범 칼럼-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 집중제」발언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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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난 공산당 조직원리 공식 석상서 언급 저의 해석분분
이헌재 부총리 “정치암흑기 성장 386세대 경제엔 무지”

적극적인 지도력 구축의 의지표현으로 보기엔 넌센스
“하필이면 레닌의 붕괴된 극좌 정당의 원리를…” 비난

민주집중제로 열린당 운영한다니

대통령이 책잡힐 말을 많이 한다고 말들이 많다. 물론 미국대통령도 간혹 말 실수를 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노 대통령의 경우는 심한 편이다.

게다가 집권당이 중구난방이라고들 걱정이다. 얼마 전에는 정체성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열린우리당의 최고위 인사인 당의장이 극좌 그것도 공산당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집권당의 핵심이 설마 공산주의 신봉자일 수는 없으니 이런 용어가 마구 튀어나오는 것은 강심장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과학 용어에 무지해서일까?

이신범 전 국회의원 칼럼이 게재됩니다.
본보 특약

▲ 지난 467호부터 전 국회의원 이신범 씨의 칼럼이 전재됩니다.
ⓒ2004 Sundayjournalusa

이신범씨는 54세로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용산 중, 고를 거쳐 1967년 서울법대에 입학했으나 3선개헌 반대 투쟁 등 반독재 학생운동으로 두차례 제적당하여 1988년 여름 21년 6개월 만에 졸업을 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이른바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3차례,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내란음모사건으로 거듭 4차례 투옥되어 5년 8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1983년 형집행정지로 미국에서 망명활동을 하다가 1988년 통일민주당 정책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김영삼정부 들어 환경부 산하의 환경관리공단 이사로 공직생활을 하다가 1996년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강서을구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내고 한나라당의 외교통상위원장, 인권위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가2004년 3월 22일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미국 워싱턴의 국제정책개발연구소 선임연구위원(1983-88), 워싱턴 소재 환경법연구소(1994), 어바인의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원(2001-2)을 역임했고 저서로 학생운동 경험을 기록한 논픽션 “광야의 끝에서”와 캘리포니아주에서의 법정투쟁기 “대통령 아들인데 그 정도 살면 어때”, 워싱턴에서 영문으로 출간된 “한국의 환경” 등이 있고 “한국시민운동의 과제와 전망” “한국의 급진사상과 학생운동”을 비롯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금년 4월 16일 그를 국정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하였는데 1999년 4월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인권위원회 총회에서 연설하며 국정원의 정치사찰의혹을 제기하고 한나라당의 당시 인권보고서를 당 출입기자와 세계각국의 대표들에게 배포했다는 5년 묵은 혐의를 들추어 낸 것이다. 그는 이 기소를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하고 고소취소를 요구하며 지난 5월이래 LA에 체류 중이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7월 23일 향후 당 운영계획과 관련, “당을 `민주집중제’로 운영해 `108 번뇌’라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이날 광주 방문에 앞서 배포한 연설문에서 “성숙해진 개혁세력으로 우리당의 정체성과 대응방안을 압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의장은 이어 “의원들이나 당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이나 주장은 얼마든지 보장하고, 백가쟁명과 백화제방을 오히려 장려한다”면서 “그러나 일단 당론이 결정되고, 의견이 모아지면 책임감과 속도감 있게 이를 집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향후 적극적인 지도력을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고 언론은 해석했다. 그는 최근 집권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해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를 둘러싼 당과 청와대의 갈등 등을 예로 들며 “당과 청와대, 정부 간에 패스미스가 속출하고, 제대로 발 한번 맞춰보지 못한 152명의 선수 (소속의원)들이 우왕좌왕거리고, 또 몇몇 선수들은 무리하게 개인기 돌파만 하다가 공이나 뺏기고, 득점 찬스에선 골포스트나 때리니까 실망한 관중들이 경기장을 떠나는 것 같은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이어 “당.정.청은 협력시스템을 완비했고, 우리당은 개혁 입법활동을 본격화했다”며 “책임있는 집권여당으로서 민주적이면서 집중적이고 안정적인 당 운영을 실현해나가면 관중은 늘고, 인기도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필 레닌의 당조직원리를

그런데 하필 왜 민주집중제로 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인가. 메리암 웹스터 사전은 민주집중제 (democratic centralism)는 “공산당 조직의 원리로서 당원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하되 보다 높은 당조직의 결정을 따른다는 것”이라고 하고 있고 2004년 서울의 YBM/시사가 발행한 영한사전은 “공산국가의 민주적 중앙집권주의(제도)”라고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민주집중제란 소련공산당의 예를 본받아 당과 국가기관, 각종 사회조직과 활동의 기본 원칙이다. 레닌 이래 사회주의 국가와 공산당 조직·운영의 기본 원리로 기능하고 있는 민주집중제는 일반적으로는 스탈린시대인 1934년에 소련공산당 규약에 명기된 원칙들을 내용으로 하고 1980년의 조선노동당 규약 제11조와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제5조에도 이 원칙이 명문화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당원대중의 직접적인 참여 아래 당조직을 구성·운영하고, 당원대중의 의사에 기초해 문제를 토의·결정하며, 당원들의 창발성을 동원해 모든 것을 풀어나가는 것 등을 말한다. 중앙집권제는 ▲당원은 당조직에(조직우위의 원칙) ▲소수는 다수에(다수지배의 원칙) ▲하급 당조직은 상급 당조직에(상급 당 우위의 원칙) ▲전당은 수령과 당중앙에(중앙지배의 원칙) 절대 복종하는 엄격한 혁명규율 등을 뜻한다.

나아가 민주집중제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 하에서만 실현될 수 있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민주집중제는 하부의 창발성과 상부의 지도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이상적인 제도로서 민주적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흑백투표 같이 민주주의는 형식일 뿐이고 수령의 교시 같은 중앙집권제가 강조됨으로써 현실로는 권력의 절대적 집중을 초래하고 있다.

집권당은 입조심해야

▲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2004 Sundayjournalusa

열린당 의장은 아마 “민주적인” 토론 후에는 당론을 “집중적으로” 정해 여기에 따르도록 하겠다는 정도의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집중제 채택 시끌” 제하의 기사(서울경제)는 오늘날 한국 여당의 소아병적 지적 수준과 좌파인기영합적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운동권에서 풍미했던 조직 원칙인 ‘민주집중제’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공식 운영전략으로 도입된다. 이는 당내 386의원들의 정치적 입김이 그만큼 강화되고 있다는 반증이지만 원래 사회주의 정당의 정치이론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정체성 논란을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신 의장은 민주집중제에 대해 ‘의원, 당원들의 다양한 의견이나 주장은 얼마든지 —장려한다’면서도 ‘일단 당론이 결정되고 의견이 모아지면 책임감과 속도감 있게 이를 집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집중제란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를 줄인 말로 원래 공산주의에 의해 조직된 정당이나 사회주의 국가가 조직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던 레닌은 ‘소수는 다수에 복종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민주집중제를 활용했지만 결국 당 독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중국공산당도 민주집중제를 기본원칙으로 삼아 당을 운영하고 있다.

당내 한 관계자는 ‘당을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요즘같은 미묘한 시점에 하필이면 출처도 불분명하고 좌파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직원리를 내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외국의 의구심을 부채질

한국의 386세대와 1970년대 반독재 학생운동 출신 일부가 쓰는 용어 중에는 남미에서 한때 풍미한 종속이론이나 유럽의 좌파이론의 영향으로 보이는 것들이 적지 않다. 민주집중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필자는 1980년대에 그 말을 유행처럼 즐겨 쓰는 일부에게 그것이 레닌의 용어이니 삼가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말을 썼던 대부분이 무슨 말인지 의미와 출처도 제대로 모르고 쓴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일본의 386세대 논객들이 한국 386들의 이런 용어에 주목하고 한국정치의 중심에 포진한 이른바 386출신들의 세계를 보는 눈을 분석하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1980년대는 군사독재 하에서 의회민주주의의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대였다. 그 어려운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유연성이 부족하고 국제관계를 이상에 치우쳐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만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7월 14일 여성경영자총협회 강연에서 “우리의 주력세대인 386세대가 정치적 암흑기에 저항 운동을 하느라 경제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듯이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아 살기가 힘든데 경직된 생각을 마구 쏟아내 꼬이게 만드는 것이다.

부총리는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문제로 온 나라가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했고,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도가 시행되면 당장 멀쩡한 사람들도 공직을 떠나야 된다”고도 했다.

건설 원가에 얼마를 붙여 파는 것까지 사실상 정부가 정하고 계획경제하듯 통제하겠다고 하면 기업이 흥이나 투자할리 없고, 당론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여당의 실력자가 나서 한 사람이 공직에 나가면 온 가족의 신상은 물론이고 재산 형성과정까지 공개하는 입법을 추진한다고 떠들면 공직에 누가 선뜻 나가려 할까?

성직자 같이 사는 사람이나 공직에 나서야 한다는 대중선동은 시원하기는 하나 아마 그 방침을 발표한 사람도 공직을 그만 두어야 될지 모를 만큼 비현실적인 방안이다. 그 결과로 빚어지는 투자기피증과 공직기피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경제각료들은 외국투자가들에게 열심히 노무현 정부가 시장경제를 신봉한다고 설법하는데 집권당은 레닌의 용어까지 동원하여, 아니 십중팔구는 그것이 이미 무너진 극좌정당의 조직원리를 압축하는 말인 줄도 모르고, 당운영을 설명하는 것은 외국의 의구심을 부채질하고 각료들의 뒤에서 총쏘는 형국이다. 외국과의 경쟁에서 지는 일만 골라서 하는 셈인데 그러니 경제 쪽에서 화가 날만도 하다.

지구는 한국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겠다고 나섰는데 대응이 영 시원치 않다. 흔하던 촛불시위도 아직은 없다. 미국에 대해서는 걸핏하면 촛불을 들던 그 많은 단체들도 이번에는 초를 살 돈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속수무책인가.
필리핀의 아로요 정부가 이라크의 인질을 구출한다고 그나마 수십명에 불과한 군인을 철수하기로 하자 마닐라의 한 유력지는 “전쟁을 같이 하다가 동맹을 버렸으니 이제 어려움이 닥칠 때 어느 나라가 우리를 도와줄까” 걱정하는 글을 실었다.

몇달 전 서울에서 만난 한 서방외교관은 한국에는 지구가 한국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고 농을 했다. 먼 나라와 동맹하여 이웃의 큰 나라를 견제하는 원교근공은 작은 나라가 자존을 지키는 지혜이다. 동맹을 소홀히 하면 이웃의 큰나라가 깔보고 덤빌 줄을 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미국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다가 미국에 와서는 다른 말을 하고 간 열린우리당의 지도자들은 중국의 오만한 패권주의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부와 집권당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말을 골라서 하고, 조심하고, 멀리 깊이 생각하고 말할 줄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중국공산당과 북한에서나 아직도 외치고 있는 철지난 민주집중제 따위의 조직원리를 공식석상에서 입에 올리는 것은 국내외의 실소를 자아낼 뿐임을 알아야 한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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