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범 칼럼 – 과거청산형 개혁 실패한 나라들 교훈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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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범 전 국회의원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지난 유엔연설 기소는 미개국가나 하는 짓

재판 불참 예상깨고 법정에 모습 드러내자 검사 당황
말도 되지않는 국정원 명예훼손 주장은 명백한 탄압

잘못된 과거청산 빌미로 권력강화하면 총체적 난국 초래
급진적 개혁실패 남미의 아르헨티나 타산지석 삼아야

지난 1970년대에 사법살인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 헌법을 고치자고 말만 해도 사형, 무기나 장기형을 선고하는 대통령긴급조치를 만들어 마구잡이로 형을 주고 죄도 없는 몇 사람에 대해 실제로 1975년 4월에 박정희 정권이 사형을 집행하자 사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현실을 일컬은 말이다.


사법의 이름으로 목숨을 빼앗지는 않더라도 괴롭히는 것은 사법폭력이라고 할 일인데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지면 거의 예외 없이 사법절차를 남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노무현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사법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권력의 횡포, 사법폭력은 21세기의 한국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대학 1학년이던 1967년에 수사기관에 붙잡혀 다니기 시작하였으니 사법의 이름으로 탄압을 받은 지 37년째인 셈인데, 노 정권의 사법폭력까지 경험할 줄을 어찌 상상인들 했었겠는가!

외국에 머물다 자신의 나라로 돌아오면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인 사건의 재판에 나가기 위해 3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심정은 어떨 것인가! 굴욕감과 울분이 뒤범벅이 된 가운데 투지를 다지며 2004년 8월 20일 오전 11시에 나는 서울 지방법원 522호 법정에 나갔다. 24년 만의 법정 출입이었다. 1980년 6월 전두환 소장의 쿠데타 군에 체포되어 군사재판을 받은 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DJ정권 시절에도 6건의 고소를 당해 법정에 끌려갈 뻔했는데 모두가 정권 쪽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였다. 마침내 2001년 2월에 검찰은 나를 출국금지하고 5월에 정권의 실세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명예훼손으로 기소했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2002년 5월 고소취소로 공소 기각되어 법정에 나간 일은 없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들어 2004년 4월 16일에 검찰은 나를 국가정보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기소한 것이다. 1999년 4월에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연설하며 당시 한나라당이 발간한 인권보고서를 한나라당 출입 기자들과 세계각국 대표들에게 배포했다는 혐의였다. 5년 전의 일로 기소했으니 자기들 딴에는 아마 요즘 한창인 “과거청산”의 일환일지 모른다.

검사가 신문에 나섰다. “1998년 12월 30일 국회본관 146호실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안기부가 국회 529호실을 사용하며 사찰한다고 발언한 일이 있는가?” 안기부는 당시 이 사건을 이유로 10여명의 야당 의원들을 “특수절도”로, 나를 명예훼손으로 걸고, 그리고 당직자 몇은 “국회 기물손괴죄”로 체포되기도 했으나 2002년 1월 16일 서울남부지검이 무혐의로 끝낸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남부지검에서 무혐의로 끝낸 사건인데 검사는 왜 묻는가?”
“성명불상 주간한국 기자에게 여권 사람으로부터 왜 529호실을 문제 삼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다시 검사의 신문.
“검사, 그것이 무슨 죄가 되어서 묻는 거요?” 내가 노기를 섞어 반문했다. “나는 성명불상 기자에게 그런 말 하지 않았으니 성명불상 기자를 데려다 물어보시오”
재판장이 개입했다. “죄가 되고 안 되고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니—”

불상자”에게 시켰다(?)

“성명불상”에 대한 신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9년 4월 21일 성명불상 당직자를 시켜 당 대변인실에서 당 인권보고서를 성명불상 기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나?” 그런데 그 해 4월 17일부터 24일까지 나는 제네바를 방문했다.
“그런 일 없다. 나는 스위스에 있었고 더욱이 국제전화는 금산 지구국을 통함으로 도청 녹음이 된다고 믿어 야당 사람들은 국제전화로 그런 지시를 하지 않는다”

“같은 달 22일 제55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인권에 관한 국가제도: 한국의 사례‘라는 발언을 하면서 회의에 참석한 성명불상의 세계 인권위원들에게 영문으로 번역된 당 인권보고서를 배포한 일이 있나?” 또 성명불상이다.

“그런 일 없다. 참석자들의 신변경호 문제도 있어 회의장 안을 아무나 돌아다닐 수 없다. 연설은 유엔 규정 상 문서성명과 구두성명이 있는데 문서성명은 미리 회람이 되나 구두성명은 그렇지 않다. 나는 연설순서를 대기하느라 배포할 수도 없었고 함께 간 미국 비정부기구 관계자 3인과 다른 의원들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다. ‘성명불상’ 위원들에게 배포했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회의의 주제는 당시에 아시아, 대양주의 현안이던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문제였는데 한국에서 여전히 검찰, 안기부, 경찰 등의 인권침해 사례가 있어 독립적인 국가인권위원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그 뒤 한국은 인권위를 설치하지 않았는가?”

검찰은 유엔 회의장의 구조나 유엔 규정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기소했다.

“국회 529호실은 비밀 사무실이고 안기부가 정치권에 대한 사찰과 정보수집 활동을 해왔다는 것은 허위사실로 국정원 명예훼손이다.” 검사는 공소장대로 신문을 계속했다. “안기부요원 안철현이 국회의장, 정보위원장도 모르게 사용했고 그가 작성한 사찰문건 59종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96명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 중 44명이 여야 정치인이다. 이것이 동향파악이 아니고 무엇인가?”

검사의 신문은 과거 역사에서 사람을 잡아다가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게 하여 데지 않으면 죄가 없다든가 하는 식의 마녀사냥 식 수사나 이른바 규문주의라고 불린 권력 만능시대를 연상케 했다. 추측으로 사람을 잡아다가 죄가 없다고 네가 증명해보라고 하는 윽박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유엔에서의 연설을 트집 삼아 성명도 모르는 사람을 시켰다고 기소하는 웃음거리가 어느 미개국가에 또 있을까?

관계없는 과거청산형 개혁은 실패

5년 전의 일을 들추어 재판을 건 것은 뭐라고 해도 보복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것을 정권의 핵심 기관들이 과거청산으로 생각한다면 한심한 일이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잘못된 과거는 청산해야 하지만 권력을 강화하거나 정치적 반대를 억누르고자 과거청산을 내세우고 이를 개혁으로 착각하면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나라를 총체적 난국, 혼란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런 과거청산형 개혁은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과격한 과거청산을 포함해 급진적인 개혁에 중점을 두었던 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서 정치불안이 깊어져 개혁에 실패한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반면에 스페인과 남아프리카처럼 미래지향적인 제도적 개혁과 통합을 성취한 나라는 정치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켰다. 폴란드의 바웬사는 민주화의 영웅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이 심해져 국민의 지지를 잃어 연임에 실패하고 공산당 간부 출신 크바니에프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정을 안정시켰다.

김영삼 대통령이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 시키는 데 성공하고 국민적 지지를 모은 것은 그것이 과거를 청산하는 보복이 아니라 앞으로 군의 정치개입을 제도적 조직적으로 예방하는 미래지향적 개혁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제시되고 추진되었기 때문이었다.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어난 중국의 추모열기도 덩이 문화혁명의 혼란과 좌절을 딛고 미래 지향적인 개혁을 제시하고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오쩌둥의 인민전쟁전략과 세계대전 불가피론을 수정하고 중국은 미국과의 군비경쟁으로 무너진 소련을 교훈 삼아 작은 국제분쟁이라도 개입해서는 안되며 주변정세를 안정시키며 경제발전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그는 중국군 100만을 줄이고 군 현대화도 무리하지 않게 2003년 10월의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의 발사같이 최소한의 결정적인 부문에 중점을 두게 했다.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러한 지침은 타오광양후이(韜光養晦)로 알려진 것이다.

과거청산은 보다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사심을 버리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며 갈등을 최소화하며 추진해야 한다. 한풀이나 미운 쪽을 박해하는 수단으로 삼으면 그것은 실패로 끝나기 쉽다. 자칫하면 국가발전의 동력을 손상할 위험도 있다.

24년 만에 법정에 다시 서서, 37년 동안 계속되는 권력의 남용과 박해를 생각하며 우리는 언제나 미래 지향적인 정부를 갖게 될까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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