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씨를 파리로 유인한 인물로 지목받은 최지희 씨 “나는 아니고 다른 여배우다” 주장
– 1979년 10월 7일 밤 김형욱 실종 현장에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아니고 다른 여배우다. 이름을 잘못 안 것이다. 지금 나를 찾아온 것도 김형욱 씨와 ○○○이라는 여배우가 함께 있었다는 말을 듣고 나에게 우회적으로 확인하러 온 것 아닌가?
– 목격자?두 갈래에서 나타났다 극비인데. 이것은 김형욱 정보부장이 나에게 권총까지 들이댔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그 시절 내가 아는 여배우 중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가 있어서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도와줬다. ‘대통령 각하를 만나게 해줄 테니 가서 어려운 사연을 말하라’고 한 뒤 김형욱 정보부장에게 ‘그 친구 각하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부장이 승낙하고 박 대통령 만날 날짜까지 잡았다. 약속된 날 김 부장 지프차가 나타나더니 ‘각하께 바쁜 일이 생겼으니 각하 대신 내가 어떠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르니 부장님이 가서 밥 사주고 달래주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사실이 소문이 났다며 김형욱 부장과 박종규 경호실장이 나를 불러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다. 나는 못 먹는 위스키 한잔 마시고 ‘연애는 당신들이 해놓고 뭐 하나 해준 것도 없는 최지희를 이렇게 죽이려 드느냐’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 김형욱 씨 실종 직전에 뉴욕에서 당신이 김 씨에게 보낸 편지를 봤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니다. 그 친구가 편지를 보냈다. 왜 그걸 내가 아느냐 하면, 그 친구가 나에게 김형욱 씨 문제로 고민하는 편지도 보내곤 했다. 그로 인해 그 배우와 남편 관계가 복잡해진 거니까. 그래서 아마 내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때 그 친구가 나에게 보낸 편지도 어딘가 있을 것이다.
– 그런 사이였다면 김형욱 씨 성격을 잘 알겠다. 잘 안다. 그때 내 머리에다 총 들이대고 죽인다고 했으니까. 사실 이런 얘기 기자에게 하는 것 처음이다. 내가 아니라는 걸 밝히려고 꺼내는 것이지, 그 전에는 얘기도 못했다,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지. 정치인들이 ‘최지희 의리 있다’는 그 소리 한마디 듣고 세무사찰 받은 다음 내가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이다.
– 이후락 정보부장과 김형욱 정보부장이 모두 당신을 도왔다는 말이 있던데… 그때 얘기를 터뜨리면 큰 일 날 일이 많다. 내가 내막을 잘 아니까, 여배우들과 정치인의 연애 얘기는 다 알지만 내 입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우리 연예인들이 정치인과 굉장히 가까웠다. 어떤 때는 형제 같이 지냈다. 김형욱 씨도 잘 알고 박종규 씨도 잘 알았다. 내가 일본에 나갔다가 다시 한국에 와서 식당 일만 하면 최지희가 것 같아 살아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한남체인을 인수한 것이다.
– 김형욱 씨 사건을 잘 아는 사람들이 왜 최지희 씨를 거론하는 것인가 사실 내가 했으면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했다. 이름을 잘못 안 것이다. 그 친구는 김형욱과 오랫동안 거래를 했다.
– 김형욱 씨와의 거래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듣기로는 김형욱 씨가 미국에 망명한 뒤에 100만 달러를 미국 은행에 그 배우와 공동으로 예치했다고 해서 한동안 그 친구를 정보부가 조사하고 난리가 났다. 한번 캐 보시라. 비밀은 캐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니고 다른 배우이니까 잘 취재해서 써야 한다. <www.sisapress.com> |
지난 1977년 6월 22일 김형욱 씨는 이른 바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 중이던 미국 의회 프레이져 소위원회의 증언대에 섬으로써, ‘박정희 前 대통령’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한때 박정희 前 대통령의 오른팔을 자처하던 그가 ‘反 박정희 의회 증언’의 선전포고를 날림으로써 선제공격을 날린 격이었다.
이 같은 김형욱 씨의 ‘反 박정희’ 움직임은 이어 한국 정가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회고록’ 집필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같은 회고록을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경재 前 의원이 집필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김 前 의원은 ‘김형욱 실종사건’이 거론될 경우 어김 없이 ‘증언자’로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약 27 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제1부 5.16 비사’와 ‘제2부 박정희 왕조의 비화’라는 제목으로 지난 1979년 9월말 탈고된 도서 목록을 보면 “제1부에 정군 파동, 혁명 예행연습, 위기 일발, D-day H-hour, 비상 게엄령의 발동, 이한림의 체포, 혁명은 너 혼자 했나, 김종필의 4대 의혹 사건, 중앙정보부원과 공화당 사전 조직, 김재춘의 반격, 양동 작전, 불행한 군인의 연기” 등이 실렸다.
“제2부에는 사상 최대의 3대 부정 사건, 정인숙 여인의 살해 사건, 박정희와 김대중의 쟁패, 실미도 사건, 오치성 파동과 위수령 발동, 김일성-이후락 비밀 회담과 남북 공동 성명, 윤필용 사건과 이후락, 김대중 납치 사건과 이후락의 거세, 문세광 사건과 박종규의 실각, 인민혁명당 사건, 주한 미군의 철수 바란 박정희, 미 하원 프레이져 소위원회 증언” 등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을 여과 없이 담았던 것이다.
이에 이 같은 내용을 담고있다는 것에 격분한 박정희 前 대통령은 지난 1978년 11월 경 친히 중정 해외담당 차장이었던 윤일균 씨를 뉴욕으로 급파해 이 같은 ‘김형욱 회고록의 원고를 회수하라’고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윤일균 씨 또한 이와 관련 지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뉴저지의 김형욱 씨 집을 찾아가서, 3일간 담판한 끝에 50만 달러를 주고 그가 쓰고 있던 「김형욱 회고록」 원고를 받아왔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어 윤 씨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형욱 씨가 약속을 깨고 지난 1979년 4월 원본을 일본 창 출판사에서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회고록 발간 저지 공작은 그것으로 끝이 났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던 것이다.
김형욱 회고록 집필한 김경재 前 의원과의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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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욱 씨가 1979년 10월 한국 유명 가수를 만나러 파리에 갔다가 실종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가수가 아니고 배우 최지희 씨 아닌가?
최지희 씨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 여자에 대해서는 김형욱 씨와 부인 신영순 여사, 그리고 나와 내 아내 네 사람 외에는 모르는 사실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