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폭동기금재단관리… “이것이 문제였다”

이 뉴스를 공유하기
















 ▲ 4.29 폭동 당시의 어지러운 거리들. 불타버린 가게들
과 진압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
을 말해주고 있다. 

한인들의 구호기금이 줄줄이 새고있다. 4.29 폭동으로 한국 정부등 세계각지에서 답지한 약 1100만 달러에 달하는 구호 성금이 LA 총영사관과 일부 언론사들의 알력으로 단일화 되어잘 관리 되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7만 달러도 채 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호 당시의 4.29 폭동 범교포대책위원회가 성금 관리 위원회를 거쳐 어느새 한미 구호재단으로 4.29정신은 쏙 빠진 채 이름마저 바뀌어서 운영되고 있다.

가뜩이나 2세들이나 신규 이민자들은 4.29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번 4월 29일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 이민사회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기금 4.29폭동기금 단일화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LA총영사관에서는 뒷짐지고 ‘복지부동’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강신호 <취재부기자> [email protected]



본보(지령 501호 4월 24일자)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한미 구호기금재단(이사장 전주찬)의 20만 달러는 현재 미래은행 주식으로 투자되어 남아 있다가 그나마도 현재 은행 주 6,009주를 매각한 77,000달러 등 총 12만 8,000달러의 기금이 ABC 금융회사에 매각되어 현재 원금회수에 관련해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사장 전주찬 씨는 ‘공금 전용 문제’와 관련되어 이미 비난을 어느 정도 예상 하고 있는 듯 수순을 밟고 있다. 이미 확인 된 사실과 함께 왜 구호기금이 미래은행 주식으로 투자되었는지, 지난해 윌셔 래디슨 호텔에서 8월 17일 왜 갑자기 긴급 이사회를 갖고 ABC금융회사에 투자를 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인 상태이다.

과연 비영리 단체인 한미구호 기금재단의 기금이 1년에 100%의 고수익을 보장해준다는 말만 믿고 그렇게 선뜻 내줄 수 있는 성격의 기금인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런 와중에 한인 동포 장학 재단(이사장 이청광)이 26일 한미교육원에서 ‘제 11회 장학금 수여식’을 열었다. 폭동피해 자녀 20여명에게 1,000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우여곡절 끝에 11회를 맞게 되었다. 그 동안 자금 관리운영에 대해 잡음이 많았지만 그나마 기금이 고갈되지 않은 채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인 관련 일부 기금관리 재단들의 문제점은 재단측이 비영리 재단임에도 불구 이사회소식이나 활동내역이 전혀 기록으로 남아있질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예산에 대한 보고서도 작성하지 않는 한심한 무관심의 작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뒤로 열리는 긴급이사회에서는 과연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본보가 입수한 회의록의 서명과 관련되어 서명의 출처도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한인 은행들의 태도도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단체의 기금을 언론에서나 동포들이 요구할 시 그에 대한 자료를 공개할 의무가 있는 데도 이를 거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기금의 성격을 떠나 참으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는 지적이다. 이렇듯 ‘4.29 폭동 기념 13주년 행사를 보고있는 당시 피해자들의 마음을 아는 지 만무하다.

“한미구호기금 재단도 거액의 금융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적잖은 파문을 불러올 조짐이다. 경우에 따라서 ‘공금 전용문제’같은 법적인 문제는 물론 당시 폭동 피해자들의 무색하게 하는 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분위기다.


4.29 폭동의 개요


올해로 13주년을 맞는 ‘4.29 폭동’은 동포들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있다. 이 폭동으로 코리아타운을 비롯해 사우스 LA의 한인상가는 완전히 파괴됐다. 플로렌스와 놀만디의 백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충돌이 발단으로 시작됐다.

성난 폭도들은 코리아 타운의 남쪽에서부터 몰려와 베벌리블러버드에 이르기까지 초토화가 되었다. 이 와중에 18세의 한인청년 이재성군이 희생됐으며, 46명의 한인들이 부상을 당하고 재산피해만도 약 4억 달러에 달했다. LA는 물론 세계 언론들은 이사실을 2차 대전 이후 미국 내에서 소수민족이 당한 최대 수난으로 전했으며 아직도 한인들에게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한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뼈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될 한인 이민사의 가장 중대한 사건이 그날의 교훈도 외면한 채 ‘수수방관’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LA 한인회등 각 단체는 형식적인 4.29 행사는 마련하고 있지만 행사의 근본취지마저도 무색케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4월 29일행사의 취지가 많이 퇴색 됐다”면서 “2세들에게 4.29의 의미를 전달해줄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안타 까와 했다. 이에 비해 모일간지에서 주최한 연예인들의 콘서트에는 수 만 명에 달하는 2세들과 교민들이 참석해 씁쓸하다고 전했다.

















 
▲ 폭동이 일어났던 지역에서 불길이 솟아 오르
고 있다. 

놀고 먹는 연예인들의
잔치에는 수 만명 몰려


1992년 4월29일 폭동 당시 LA 한인회등 한인 단체들은 한인회장 선거 후유증등으로 더 혼란스러울 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어 났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한인사회는 당황했으며 이민 100년 사의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당시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인 하기환씨가 LA총영사관의 주선 등으로 4.29 폭동 범교포 대책위원회(현 한미구호기금재단)를 맡게 되면서  본부를 총영사관에 설치하는 등 고육책을 썼다.

당시 한국정부와 적십자 등 각계 단체에서부터 성금이 도착했으며 여러 언론사들로 성금 모금에 나섰다. 이때 한인 사회가 형성된 후 최고인 무려 1,100만 달러에 달하는 성금이 모금 되었다.

피땀 흘려 이룩한 업소가 잿더미로 변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고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업주들이 의외로 많았다. 여러 곳에서 거두고 있는 성금을 단일화 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났지만 모 언론사와 LA총영사관의 반대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언론사측은 ‘우리가 모금한 것은 우리가 책임지고 나눠 주겠다’면서 유의영 박사를 자체 성금관리위원장으로 선정해 피해자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폭동 피해자들은 하기환씨측에도 가고 모 언론사측에도 가는 등 혼선이 일어 났다. 오늘날 하기환씨와 모언론사 회장간의 갈등도 이 당시 서로간의 알력도 기인되고 있다. 폭동 당시의 성금 단일화 분쟁은 한인사회가 단합하는데도 큰 장애를 가져 왔다.


한인사회 기금배분
둘러싸고 분열


특히 엄청나게 모인 성금을 두고 ‘당장 피해자들에게 배분하자’는 측과 ‘기금을 보관해 장기적 계획을 세우자’는 논란 등과 함께 폭동성금관리를 두고 기나긴 시간 동안 추태를 보인 것은 두고두고 LA한인사회의 치부로 남겨지고 있다. 당시의 추문과 의혹의 난장판은 고국에서도 비난 받을 만큼 ‘부정부패의 극치’였다고 전했다.

이렇게 우여곡절끝에 남은 폭동성금은 피해자들에게 배분되고 또 이런 저런 명목으로 없어지고 해서 약110만 달러 정도가 남았다. 후일을 대비한 ‘폭동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장기적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해 낸 것이 기념관을 위한 건물 구입이었다.

폭동 후 2년 가까이 성금분쟁을 벌인 후 간신히 94년에 6가와 카탈리나 거리에 있는 건물을 구입했다. 하지만 구체적 계획이나 활동 없이 세월만 흘러 99년 그 건물을 매각하게 되었는데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투자분 90만 달러가 30만 달러로 줄어들어 60만 달러나 손해를 보고 만 것이다.

이때 남은 돈을 은행에 입금시킨 것이다. 무려 1,000만 달러에 달하는 폭동성금이 이제는 약20만 달러 정도가 남은 것이다. 그러나 이 기금마저 ABC금융회사한테 뜯겨 재단의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LA한인 동포들은 이 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만큼 관심도 없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일까. 이 기금은 현재 미래은행의 주식으로 투자되어 7만 달러 정도가 남아있는 것이다.











고자세 임경자씨, 변호사 통해 각 언론사에 위협성 편지


ABC투자 사기사건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임경자씨의 변호인 측이 본보에 니아 캐너와의 관계를 부인하며 위협성 서한을 보내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로랜드 하이츠에 사무실을 두고있는 제임스 리 변호사는 항의 서한에서 “임씨측이 ABC금융회사측과 관련해 어떠한 커미션이나 리베이트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면서 “임씨도  니아 캐너 등 ABC사 핵심 관계자들에게 속은 피해자”라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리 변호사는 “임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소송을 비롯해 모든 방법을 강구해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임씨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임씨측은 니아 캐너 측에 속은 경위와 특히 미래은행의 주식을 팔아 모집한 한미구호기금 투자금의 한인은행 개인구좌 입금등의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비영리단체의 의무와
제2의 4.29 폭동?


한미구호기금재단(이사장 전주찬)이름으로 남겨져 있다고 하는 이 기금은 분명히 공금임에도 불구하고 결과 보고가 없다.

현재 얼마나 (이자 포함해서) 기금이 존재하는지 발표된 것이 없다. 하기환씨가 처음 회장으로 있었던 한미구호기금재단은 현재 무슨 활동을 하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을 것인데 지난해 ‘4.29폭동’ 12주년이 됐어도 변변한 보고서조차 없었다. 4.29 폭동을 당하면서 한인사회는 주위의 다른 인종과도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금 주위에는 흑인이 아닌 히스패닉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히스패닉들의 분노는 곧 한인타운의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사실 LA에서는 4.29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와 비슷한 성격의 폭동이 있었다. 1965년 8월 11일에 일어난 Watts Riot(왓츠 폭동)으로 LA는 항상 인종간의 갈등으로 인한 충돌의 폭약고를 안고 있다.

어느 정도는 예견된 폭동이라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시 백인들과 유태인들에 항의 하는 흑인들로 인해 34명의 인명이 희생되었으며 800명이 부상을 입고 3,000여명이 체포되었던 사건이다.  수백 채의 건물이 파손되었으며 폭동은 16일까지 6일 동안 지속 되었다. 성난 폭도들은 총기상을 털어 무장을 하고 프리웨이를 막고 경찰과 대치 하기도 했다.  인종학자들 사이에서도 만약 폭동이 재발한다면 코리아타운은 히스패닉들에 의해 폐허가 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할 정도 이다.

폭동 후 1년이 지난 93년 5월 LA 타임스가 법원 문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폭동에 가담한 자들은 50%가 흑인, 43%가 히스패닉 이었지만 지금의 인구학적 상황은 매우 달라져 있다. 2000년도 인구조사에 따르면 LA 시 전체 인구 3,694,000명 중 46.5%인 1,719,000여명이 히스패닉계로 백인에 불과 0.4% 차 밖에 나지 않는다. 히스패닉계는 흑인보다 4.1배, 아시아계보다 4.6배나 많다. 히스패닉계의 급속한 인구증가율로 볼 때 향후 5년 안에 LA시 전체의 인구의 50% 이상 을 이들이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부 업주들은 히스패닉계 종업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체류신분을 문제 삼아 노동력을 착취 하는등 인종갈등의 요소를 다분히 안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 이번 4.29폭동 13주년을 맞아 이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요구 되는 바이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