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회가 북한에 생존한 국군포로를 위시해 모든 납북자들의 송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해 주목이 되고 있다. 또 이 결의안은 북한의 납치행위를 테러행위(acts of terrorism) 및 인권유린(gross violations of human rights)으로 규정하고 이에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 이후 지난 50년 동안 북한이 자행한 납치행위를 조명하고 국군포로 등 생존자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한 결의안이 미 의회에 상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군포로 및 모든 납북자 송환을 위한 북한결의안은 지난달 26일 헨리 하이드 연방하원 국제관계 위원장에 의해 상정됐다. 그리고 이 결의안은 하원과 상원 동시에 상정됐는데 이번 결의안에 대해 워싱턴 소식통은 이번 결의안이 북핵 문제와 함께 북한정권의 인권문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현재 미국 정계의 대북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하이드 위원장이 미 의회 상하 북한의 행위는 다음의 이유에 비추어, 한국과 일본 국민에 대한 북한의 납치 및 지속적 억류를 테러행위(acts of terrorism) 및 총체적 인권유린(gross violations of human rights)으로 판정한다. 북한정권은 한국전쟁 이후 루미코 마수모토, 메구미 요코타, 김동식 목사 등 수천 명의 한국국민과 백 여 명의 일본국민을 납북했으며, 그들에 대한 강제 구류와 빈번한 살상은 그들의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은 일본정부의 강한 압력이 있자 2002년 9월 17일 북한요원이 1970년대와 80년대 13명의 일본국민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이즈미 총리에게 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납치를 지속하고 있고 2004년 8월 8일에는 북한요원이 중국 접경지역에서 탈북민 출신으로 한국여권을 소지한 진경숙 씨를 납치했다. 이러한 납치정책은 북한의 첩보활동과 테러활동의 한 부분이며 납북자들은 스파이로 활약하거나 북한요원에게 언어와 말투, 문화 등에 대한 교육을 하고 또는 타다아키 하라의 경우처럼 신분증을 위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돼 왔으며, 납북자 야에코 타구치를 1987년 대한항공 858편에 폭탄을 장치해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리스트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도록 했고, 많은 북한의 납치 피해자들은 1958년과 1969년의 한국 민항기 납치사건처럼 테러공격 도중에 납치됐으며 탑승객 장진영과 스튜어디스 송경희 등 12명을 수 십년이 지금까지 구류하고 있다. 북한 요원들은 수 차례에 거쳐 한국선박을 나포하고 1987년에는 장종석, 김순근 외 동진27호 선원 10명을 납치했고 한국정부에 추정에 의하면 수 백 명의 선원들과 어부들을 지금까지 구류하고 있고, 선박 및 어부들에 대한 납치는 1971년과 72년 210명의 인구 중 14명의 아들과 남편, 아버지들을 잃게 한 거제도의 한 마을의 경우처럼 한국의 어민사회를 유린했다. 미 국무부가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일본의 적군파와 공모하며 일본의 유학생 케이코 마리모토를 납치했고, 한국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어부, 항공기 승객, 교사, 학생, 목사 등을 포함 486명의 한국 납북자들을 현재까지 구류하고 있으며, 북한요원들이 13세의 타케시 테라코시를 두 명의 삼촌과 함께 어선으로부터 납치했고 이민교와 최승민 등 두 명의 17세 친구들을 한국의 바닷가에서 납치하는 등 아이들을 납치함으로써 부모들에게 수 십 년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줬으며, 13세의 메구미 요코타를 하교길에 납치했고 그녀는 1993년 자살하기 전 북한에서 결혼을 하고 딸을 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그 딸은 일본의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 안승훈 목사와 김동식 목사 등 중국에서 용감하게 탈북민 구출활동을 벌이던 한국의 목사들을 납치했으며, 한국의 서울중앙지법은 2005년 4월 21일 김 목사의 납치를 도운 조선족 류영화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고 중국의 법원은 안 목사의 납치를 기획한 북한인에게 형을 선고하여 2년간 수감 후 1997년 7월 북한으로 추방했고, 1987년 납북된 이후 두 차례 탈출을 시도하다 지금은 악명 높은 북한의 강제 노동소에 수감된 것으로 보이는 납북어부 임국재 씨 등 여러 납치자들은 생명을 걸고 탈북을 시도하고 있다. |
북한정권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납치에 대해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있고 8명의 납북 일본인들의 미심쩍은 죽음에 대한 거짓 정보를 제공했고,1978년 8월 12일 일본의 바닷가에서 납치된 루미코 마수모토와 슈이치 이치카와에 대한 믿을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이치카와는 수영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익사했다고 하고, 건강하던 마수모토가 27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유럽에서 각각 납치돼 북한에서 결혼한 토루 이시오카와 케이코 아리모토가 1988년 그들의 딸과 함께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은 두 달 뒤 일본의 가족에게 편지를 전달함으로써 그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고,화장된 카오루 마추키와 메구미 요코다의 유골을 반환했다고 하지만 거짓 유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6명의 다른 일본인 납북자들의 시체가 홍수에 떠내려가 때 이른 그들의 사인을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북한이 연루됐다는 절대적인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야타카 쿠메와 미노루 타나카, 미요시 소가의 납북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북한의 납치지역이 동북아시아에만 국한돼 있지 않으며 납북자중에는 MIT졸업생으로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던 이채환, 노르웨이를 여행하던 교사 고상문 등이 포함돼 있어 국제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50년이 넘도록 한국의 전쟁포로를 구류함으로써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휴전협정조약 3조를 위반하고 있고 2005년 2월 국회 청문회 증언에 따르면 한국 국방부는 지금까지 생존중인 포로들의 수를 542명으로 추정하고 있고,한국으로 탈출에 성공한 전쟁 포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군 포로들은 수 십년 동안 북한의 광산 등에서 강제노동을 하며 정권에 의해 혹사당하고 있으며, 51년간의 억류 후 중국으로 탈출한 한국군 포로출신의 72세의 한만택 씨는 중국 공안에 의해 잡혀 금년 초 북한으로 송환됐고 처형을 포함한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유엔의 지휘 하에 있던 한국군 전쟁 포로들은 미국과 연합군의 군인들과 함께 싸웠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모든 연합국들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