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은 거듭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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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의 기금관리의 의혹(2005년 7월 25일자 보도)이 본보에 보도되자 코리아타운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이 보도는 한국에까지 전해져 국내의 흥사단 관계자들에게도 놀라움을 주고 있다. 흥사단은 다른 단체와는 아주 다르다.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민족운동의 지적 인재 양성과 개혁운동이 필요함을 절감해 1913년 5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단체이다.

 역사적으로 미주 땅에서 태어난 특별한 단체이다. 이 같은 흥사단은 해방 이후 그 본부를 국내로 이전하여 민족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왔으며,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흥사단은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정신으로 민족사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봉사할 지도적 일꾼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활동 목표를 정하고 있다.

제임스 최<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코리아타운의 한 애국단체장인 L 씨는 “흥사단은 민족의 지도자 도산의 정신을 받드는 단체로 알고 있는데 기금관리의 의혹이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면서 “도산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지난 25일에는 대전흥사단의 단원이라고 밝힌 한 단우는 “인터넷을 통해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미주에서 처음 태어난 흥사단인데 역사와 전통을 지니지 못하고 부실한 단체로 전락해 단우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다”고 밝혔다.

흥사단 단우이지만 현재는 단체활동에 참여치 않고 있는 S씨는 “미주흥사단이 그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흥사단의 임원들 자신들이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단우는 “말로만 도산의 후예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일부 지도급 인사들이 흥사단의 위상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LA 흥사단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새로 선출된 이병도 LA지부 회장은 지금 흥사단을 부흥시키기 위해 개혁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특히 젊은 세대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 흥사단 로스앤젤레스 지부의 월례회 모습. 원안은
이병도 LA지부회장

ⓒ2005 Sundayjournalusa

흥사단은 그 성격상 타운단체들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단체이다. 일반동포들 중 많은 사람들은 ‘흥사단’이라는 이름 자체에 경외심을 지니고 있다. 흥사단의 단우는 인격적인 면에서나 행동규범에서도 타인의 모범이 되는 인물로 보고 있다. 그만큼 흥사단의 단우가 되기는 매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지난동안 코리아타운에서 흥사단의 이미지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어 왔다.

현재 흥사단미주위원부의 대표인 백영중 위원장에 대해서도 단우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비판 중에는 “재력과 인격을 겸비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흥사단에서 그 평가가 가시화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 “왜 그분이 장기간 위원장으로 재임해야 하는지 의문이다”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 대해 비현실적인 공약으로 신뢰도를 잃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국민회관 복원과정에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흥사단은 과거 카타리나 단소에 도산의 유품을 포함해 많은 사료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단소를 매각하면서 역사적인 사료들을 방치해 분실과 손상을 가져와 뜻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한 관계자는 흥사단 단소가 이사갈 때 모습에 대해서 “여기저기 서류들이 팽겨쳐저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흥사단에는 과거 보존했던 귀중한 사료들에 대한 보존도 제대로 관리됮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의식의 부재이다.

코리아타운 남쪽에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 로즈데일 묘지에는 초기 이민 선구자들이 많이 잠들고 있다. 그 중 한 분이 최진하 선생의 묘역이다. 그는 1890년 3월3일 평양 출생으로 1916년 유학생으로 도미해 흥사단(단우번호 73)에 입단했으며 나중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활약한 독립유공자이다. 1967년에 사망해 로즈데일 묘지에 안장됐으며 현재 미국에는 유족이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1995년 그에게 독립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쓸쓸히 묻혀있는 그를 한국의 국립묘지로 봉환키로 한국정부가 지난해 결정됐으나 이를 위임받은 미주흥사단이 태만해 아직도 이 유공자는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애초 계획으로는 지난해 4월 26일에 봉환되어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었다. 국가보훈처 당국은 해외 독립유공자의 조국 봉환은 국가적 행사인데 이를 소홀히 다룬 미주흥사단의 처사에 유감을 표시했다. 유해봉환을 담당하는 보훈처 기념사업과의 노영구 과장은 당시 “봉환1년 전부터 LA의 흥사단에게 공문과 팩스를 통해 준비를 요청했다”면서 “그 때 마다 준비가 잘 되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으나 봉환을 한 달을 앞두고 갑자기 연기 요청을 받아 난감했다”고 밝혔다. 흥사단이 과연 무었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흥사단은 2002년부터 복원작업이 시작된 국민회관 문제에서도 확고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미주 도산 기념사업회와 마찰을 빚어 동포사회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한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흥사단 지도부는 국민회관 복원과 관련해 흥사단의 일방적 개입을 주장해 분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수년간 동포사회에 비친 흥사단의 활동은 도산의 탄생일과 순국일 그리고 흥사단 창립일을 마지못해 기억하는 단체로 알려져 왔다. 이 같은 흥사단의 무기력 때문에 많은 흥사단 단우들의 참여가 미비했었다. 이런 와중에 터져 나온 기금문제 의혹사건에 대해 한인사회는 흥사단이 창단이념으로 되돌아가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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