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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엔드> 포스터 및 주요 장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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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역할 역시 이전의 한국영화들과 크게 달라진 걸 볼 수 있다. 보라의 남편 민기(최민식)의 캐릭터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IMF 금융위기 사태 이후 실직하고 헌책방을 전전하며 아내의 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렇다고 살림을 하며 가정 내부를 책임지는 데는 더더욱 익숙하지 않은 무력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역전된 관계에서 ‘바람’의 기운은 남편이 아닌 아내를 향해 불어오며 그 바람을 지켜보는 남편은 이 뒤바뀐 관계를 용납하기 어려워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의 감정은 카메라 시선을 따라 두 사람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가도, 결국은 버려진 남편에게로 시선이 간다. 이렇게 흔들리던 시선은 보라가 아이의 젖병에 수면제를 타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나가는 순간 방향을 확실히 한다. 그녀의 비정한 모성 앞에 ‘벌 받아 마땅한 불륜녀’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이로써 기존 멜로드라마에서 아이를 볼모로 윤리적 거래를 해왔던 관습이 다시 영화를 지배하게 된다.
‘남편=가해자, 아내=피해자’ 공식 깬 <바람난 가족>
그리고 2003년, 불륜 영화는 다시 한 번 자리를 옮긴다. 이제 영화는 ‘남편=가해자, 아내=피해자’라는, 불행한 결혼과 이혼의 도식을 떠나 개인 주체의 은밀한 욕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매력적인 아내(문소리)를 두고도 또 다른 여성을 탐닉하는 변호사 남편(황정민), 병을 앓고 있는 남편 대신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시어머니(윤여정), 10대의 고교생(봉태규)과 바람난 아내. 온 가족이 바람을 피운다는 파격적인 설정의 영화 <바람난 가족>은 그동안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내세우며 전통적 가족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영화는 대중매체인 만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때, 한국 영화 속 불륜 역시 사회상을 반영하며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그렇다면 2005년 9월 현재,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허준호 감독의 <외출>에서의 불륜은 또 어떤 진일보한 면을 준비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외출>은 ‘불륜’이라는 소재를 표현했으되, 불륜이라는 일탈 행위를 통해 표현해 왔던 사회적 문제와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읽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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