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북한을 탈출한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통일부는 ‘탈북자’라는 용어를 ‘새터민’으로 부르고 있다. 새터민은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통일부는 ‘탈북자’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아 여론조사를 통해 새 용어를 골랐다고 한다. 일부 탈북자들도 ‘탈북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한 사회가 탈북자들에 대해 갖는 이런저런 편견과 차별 때문에 생기는 거부감이지 단어 자체에 대해서 잘못이란 뜻은 아니라고들 한다. 문제는 탈북자들이 한국내에서 받는 정신적 물질적 대접이지, ‘탈북자’라는 용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하여간 ‘새터민’이란 단어를 언론에서도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새터민’이라고 하면 개그맨이 조크하다가 내뱉은 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탈북자’를 왜 굳이 ‘새터민’이란 국적 불명의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난 1월에 만들어 낸 ‘새터민’이란 용어는 이제 정부 관계자들도 잘 사용치 않는다.
최근 ‘탈북자 미대사관 망명사건’이 사실과 다르다는 보도가 나와 새삼 언론의 탈북자 보도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2일 현재까지 알려진 사항은 한국정부 관계부처에서 최근 멕시코에서 탈북자 한 명이 미국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신청을 했다는 LA발 한인언론의 보도는 확인된 사항이 아니라는 발표이다. 애초 ‘탈북자 망명사건’의 보도는 한 탈북자 지원단체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 일간지가 보도하기 시작해 경쟁지가 이를 뒤따랐다. 하지만 이 경쟁지는 뒤늦게 자신들의 보도를 뒤집었다.
언론이 일단 보도한 사항에 대해 잘못을 발견했을 경우, 이를 신속히 정정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 사항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언론이 보도된 기사에 대해 무엇이 잘못됐다는 정정기사를 게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 침묵하는 언론 보다는 한결 양심이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당한 신분 보장을 받지 못하고 쫓기는 신세를 지닌 탈북자들에 대한 보도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에 대한 잘못된 보도는 이들의 생명과도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이들의 신변이 완전히 보장 받을 때 까지는 언론도 가능한 보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특종이나 독점욕에 사로잡혀 기획된 탈북과정에서 잘못된 결과를 우리는 보아왔다.
여기에 일부 탈북자 지원단체들이 자신들의 사업을 과시하기 위해 탈북자들의 동태를 언론에 흘리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언론도 이 같은 지원단체들의 언론플레이를 그대로 받으려 하지 말고 자체 확인을 거쳤더라도 보도시점을 고려하는 자세를 지닐 필요가 있다. 행여 경쟁지를 의식해 속단으로 보도하다 탈북자들의 신변에 위험을 초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중국에서 외국으로 탈출하려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 단속이 이뤄질 전망도 나오고 있다. 탈북자들에 대한 보도는 아무리 신중해도 모자람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