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사진설명 ⓒ2005 Sundayjournalusa |
|
경기도 안성 딸부잣집에서 태어난 강선영은 열두 살이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교사의 권유로 춤에 입문했다. 스승은 한국 근대춤의 시조로 불리는 한성준(1874~1942)이었다. 절세의 고수이자 명무였던 한성준으로부터 배운 춤들은 “스스로 성품을 다스리지 않으려면 춤추지 말라”는 가르침과 함께 대물림됐다. 강선영은 “스승이 사라지면 2대만 지나도 춤이 변질되는데 태평무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한성준이 무속장단에 춤을 붙여 만든 태평무는 빠른 장단에 발의 움직임이 두드러진 ‘발춤’이다. “몸 전체가 노는 게 아니라 정신과 발이 만나 노는 춤”이라는 설명이다. 1940년 한성준무용단의 부민관 공연으로 데뷔, 평생 동안 100여개국에서 1000회 넘게 무대에 올랐다. 무용협회 이사장, 한국예총 회장, 14대 국회의원 등을 지내기도 한 강선영은 제자들을 칭찬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그가 침묵을 지키면 잘 췄다는 의미. “태평무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춰야 아름답다”는 그는 “하지만 땅을 밟아야 춤을 출 수 있듯이, 무용 밖 세상에도 관대해야 좋은 춤꾼”이라고 했다. 강선영은 1960년 한국 무용인으로서는 최초로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하였고 1963년 서라벌 예술대학 무용과 강사로 후배 양성에 전념하였다. 1965년 5월 제12회 영화제에 무용극 “초혼”을 출품, 문화영화 작품상, 1973년 국민훈장목련장, 1976년 10월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연예부문(무용)을 각각 수상했다. 1987년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에 선임되었고 1991년에는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예술경영과를 수료하였다. 1992-1996년 제14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태평성대의 왕과 왕비의 춤만으로 표현한 것중 왕비의 춤만 재현한 것이 태평무이며 강선영은 1988년 12월 1일 중요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