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최만석의 6년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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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시절 경부고속전철 로비사건으로 지명수배를 받아왔던 LA 동포 최만석(64)씨가 지난 16일 LA인근 요바린다에서 체포된 사건은 코리아타운의 ‘올드타이머’ 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그는 한때 LA한인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타운에서도 잘 알려진 올드타이머였기 때문이다. 본보도 최씨가 한국에서 검찰 수사의 기미를 느끼고 잠적한 상황을 지난  
자에서 보도한바 있다. 미사법당국과 한국정부 소식통에 의하면 최씨는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한국으로 송환되어 그동안 미궁에 빠져있던 고속전철 로비사건의 전모가 파헤쳐 질 것으로 보고있다. 최씨가 한국으로 송환되면 ‘누가 최씨의 밀항을 도와주었는지’ ‘최씨의 정치인 로비 대상자들이 누구인지’ 등등이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왜 지금에사 한국정부가 최씨의 체포와 송환을 미사법당국에 요청했는지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 씨는 고속철사업에서 김영삼 정부 시절 정,관계 로비를 벌여 프랑스 알스톰사가 선정되도록 해 지난 95년 1,100만 달러의 커미션을 받아 뇌물을 뿌린 후 잠적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최씨는 1,100만 달러 커미션 중 최소한 400-500만 달러는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는 함께 로비 활동을 벌인 호기춘씨에게 400만 달러를 주고 그 다음 YS 실세인 최형우씨, 황명수씨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뿌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임스 최 취재부기자


















언론보도들에 따르면 최씨가 그동안 버젓이 요바린다에서 가까운 친지들도 만나고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최씨는 코리아타운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되기전까지의 상황은 그가 2001년 서울에서 한국 검찰의 수사 기미를 눈치채고 잠적했으며, 당시 한국을 빠져나가 캐나다쪽으로 도피한 것으로 한국 수사당국은 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달 16일 요바린다에서 최씨가 미국 마샬들에게 체포됐다는 것을 한국 검찰이 발표를 하면서 다시 ‘경부고속전철로비사건’이 국민들에게 떠올리게 됐다. 한국검찰이 최씨의 도피를 두고 사건을 기소유예로 할 당시, 최씨의 소재는 미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3년 전 최씨를 LA지역에서 보았다는 사람들의 전언도 나온 적이 있으나 계속 최씨의 행적은 미스테리였다.
하지만 최씨의 체포 이후 흘러나온 정황들에 따르면, 최씨는 그동안 요바린다에서 가까운 한인 친지들을 만났으며 “나의 행동은 국가를 위한 것”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는 나름대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가족과도 함께 나들이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최씨의 행적을 그동안 한국 검찰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씨의 행동을 보면 도망자의 생활이 아니라, 불필요한 사람들과는 접촉하지 않은 채 코리아타운과도 관련을 맺지 않고 일상생활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가 만난 한인 친지들도 그가 믿을만한 사람들만 만났으며, 이들 한인들도 구태여 최씨에 대해 소문을 내고 다니지 않았기에 코리아타운에서 최씨에 대한 소문이 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최만석씨가 체포되자 주변 이웃들은 그가 한국 검찰에 지명 수배된 인물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라디오코리아 방송이 최근 보도에서 밝혔다. 이 방송은 최씨가 거주했던 요바린다의 집에는 부인과 아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했다. 기자가 찾아가자 부인으로 보이는 50대 후반의 여성은 문을 굳게 닫은 채 취재에 응하기를 거부해 통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만석씨와 가족들이 살고 있었던 현재 요바린다의 주택에 5년 전에 이사해 온것으로 알려졌는데 집이 위치해 있는 곳은 고가 주택들이 주로 들어서 있는 지역이었다. 요바린다의 로즈버드 길에 위치해 있는 1/2 에이커의 최씨의 대형 저택은 5개의 베드룸을 가졌으며 현재 시가로 150만 달러 정도로 전해졌다.
최씨 주택 주변 인물들은 최씨가 대형 로비 사건에 연루돼 있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다. 주변 이웃들은 평소 최씨 가정이 너무나 친절하고 끔식 한국 음식도 나눠 주는 등 좋은 이웃이었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최씨가 한국에서 은퇴 후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최씨는 미국으로 밀항 후에 부동산 업에 종사하며 상당한 재력도 축적한 것으로 주변 인물 들을 알고 있었는데 최씨와 부인 모두 벤츠 등 고급 차를 타고 다녀 상당한 재력을 보유 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부인은 대형 가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주변 이웃들에 진술에 따르면 주일에 한번 정도는 한국인 친구들이 찾아와 같이 저녁을 먹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고 밝혔다.







‘최만석 로비사건’ 어떻게 터졌는가?


‘최만석 고속전철 로비 비리사건’은 김영삼 정권시절 의혹으로 남겨진 사건인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터져 나왔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삐져 나온 것이다. 시사월간지 신동아가 당시 사건을 재미있게 보도했다. 
1995년 당시 한국에서는 중국계 폭력조직인 ‘삼합회’가 한국으로 마약을 밀수출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경찰대학 5기 졸업생인 이상식 경정은 외무고시에 합격한 실력파 경찰이다. 경찰은 고시 합격자에게는 바로 경정계급을 부여한다. 1994년부터 이경정은 홍콩 주재 총영사관에 치안관(영사)으로 나가 있었다. 때문에 이경정은 삼합회를 추적하는 홍콩경찰의 형사수사국과 마약 유통을 단속하는 마약수사국 관계자들을 자주 만났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1995년 11월, 이경정은 알고 지내던 홍콩경찰청 마약수사국 자금조사과 요원으로부터 “한국과 관련된 아주 이상한 첩보가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일단의 금융 거래 자료를 건네 받았다. 홍콩 금융기관은 관계 법령에 따라 200만달러 이상이 입·출금된 계좌가 있으면 그 계좌에 관한 정보를 홍콩경찰에 통보한다. 동시에 예금주에게 ‘당신의 거래 명세를 사정기관에 알려줬다’고 통보해야 한다.












이경정이 받은 자료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홍콩지점에 개설된 한국인 ‘만석최’씨(이번에 LA인근에서 체포된 최만석)의 계좌와, 홍콩의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에 개설된 ‘기춘호’씨의 계좌 자료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만석최 계좌에는 1994년 11월24일과 1995년 5월12일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100만달러가 프랑스 파리에서 입금된 사실이 찍혀 있었다. 만석최 계좌에서는 1994년 12월9일과 1995년 6월에 모두 386만달러가 빠져나가,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의 기춘호 계좌로 들어가 있었다(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기 직전 자금 이동이 있었던 것이다).
홍콩경찰은 이 돈이 마약거래 자금일 것으로 추정하고 내사했으나 예금주가 홍콩에 살지 않는 한국인이라 이경정에게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달라”며 자료를 넘겨준 것이다. 그 즉시 이경정은 두 사람의 여권번호와 은행 거래 명세 등을 적은 세 쪽짜리 첩보 보고서를 만들어 경찰청으로 보냈다. 이때 이경정은 ‘만석최’는 성을 뒤로 보낸 영어식 표기니 한국 이름은 ‘최만석’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기춘호도 ‘호기춘’이 돼야 하는데, ‘기춘호’란 어감이 너무 자연스러워 첩보 보고서에 그대로 ‘기춘호’로 적는 실수를 범했다.
이것이 바로 경부고속전철 로비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이 첩보를 토대로 경찰 외사3과와 서울지검 외사부가 차례로 내사에 나서 어느 정도 자료를 축적했다. 두 기관에서 추적한 내사 자료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8년 3월 대검 중수부로 넘어갔다. 서울지검 외사부가 내사할 때부터 검찰은, 최만석씨가 고속철도 차량 공급업체인 프랑스의 알스톰사를 위해 일했으며 김영삼 정부의 실세그룹인 상도동계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있었다.
중수부가 내사에 들어가자 최만석씨는 이를 눈치채고 재빨리 영주권이 있는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런 가운데 알선수재죄로 기소할 수 있는 시효 만료일이 다가오자 대검은 신병이 확보된 호씨만 먼저 기소했다. ‘나 홀로’ 법정에 선 호씨는 “모든 로비는 최씨가 알아서 했다. 나는 최씨를 알스톰에 소개만 했다”고 주장했다(호씨는 알스톰사 한국지사장인 프랑스인과 재혼했다).
호씨는 2000년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2001년 2월에는 서울고법 형사3부에서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43억80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 2년도 함께 선고받아 확실히 풀려나게 되었다. 호씨 사건이 일단락되는 사이 중수부는 최만석씨 계좌에서 나온 돈을 좇다가, 최씨의 돈이 황명수 당시 새천년민주당 고문의 계좌로 흘러간 사실을 포착했다. 그 돈의 송금처를 따라가자 1995∼96년 민자당 후신인 신한국당의 사무총장을 지낸 강삼재 의원이 관리하는 계좌가 나왔다.
그런데 강의원의 계좌로는 엄청난 뭉칫돈이 들어왔다가 잘게 쪼개져 신한국당 지구당위원장들에게 보내진 사실이 포착됐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5년 6월의 지방선거 직전 강의원 계좌에서는 257억원이 유입됐다가 신한국당 후보들에게 흘러갔고, 1996년 4·11총선 직전에는 940억원이 흘러들었다가 총선에 출마한 신한국당 후보 174명과 국민회의 후보 3명, 자민련 후보 2명 그리고 무소속 후보 1명에게 흘러갔다. 중수부는 누가 이렇게 많은 돈을 주었는지 따라갔는데 어이없게도 국가안전기획부의 계좌가 발견되었다.
안기부의 책임자는 부장이다. 그러나 안기부에서 돈을 만지는 이는 ‘재무관’ 타이틀을 갖고 있는 운영차장(지금의 기조실장)이다. 안기부에서 신한국당 강삼재 의원 계좌로 1197억원을 보낼 때의 안기부 운영차장은 김기섭씨였다. 대검 중수부는 김기섭-강삼재 커넥션과 안기부가 관리하는 계좌를 찾아낸 것이다. 이 사건은 다시 안기부 비자금 사건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게됐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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