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최근 보건복지부의 한 간부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이름을 못 밝힐 것도 없는 것 같네요. 그는 보건정책팀장을 맡고 있는 전병률 서기관입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공무원인 전 팀장은 지난 11일 사망한 고 김형곤씨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합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히 김형곤씨의 사망 원인과 사망 직전 열흘 동안의 행적이 화제가 됐습니다. 기자가 몰랐던 두 가지 사실이 있어 그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첫째는 그의 사망 원인과 관련된 것입니다. 김씨의 사망은 심근경색, 즉 심장마비라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뇌출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1)뇌출혈보다 심근경색의 빈도가 훨씬 많고 2)뇌출혈일 경우 그렇게 빨리 사망하지 않기 때문에(최소한 몇 시간은 생명이 붙어 있기 때문에) 의사들조차 심근경색으로 거의 단정지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김씨의 사망원인을 심근경색 때문으로 섣부르게 보도했고, 저는 15일자 조선일보 헬스 면에 무려 4개면에 걸쳐 심장 돌연사 특집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 팀장은 의견이 달랐습니다. 누구보다도 김형곤씨를 잘 아는 그는 “형곤이는 심장마비가 아니다. 누구보다 철저하게 건강을 관리했으며 콜레스테롤, 혈압, 당 등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5일자 기사에서도 썼듯이 심근경색은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고혈압, 콜레스테롤, 흡연 이 세가지가 가장 중요한 위험 인자이며 그 밖에 비만, 운동부족, 당뇨 등도 심근경색의 원인이 됩니다. 문제는 김씨는 이 중 비만을 제외한 어떤 위험인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돌연사도 따지고 보면 흡연,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비만 등 ‘죽을 이유’가 있기 때문에 혈압과 콜레스테롤 등을 잘 관리하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기사를 쓴 당사자로서의 당혹감이 “아차~”하는 탄성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사실 기자도 김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김씨에게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의 병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려 애를 썼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황은 심근경색으로 거의 굳어갔습니다. 기자는 “아마도 김씨는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 심근경색 위험요인이 있었을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공포의 삼결살’이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한 때 120kg에 육박했습니다. 비만은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 등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뇌출혈의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한 모든 기자들이 ‘심근경색 주의보’ 기사를 쓰게 된 것은 이 같은 정황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사망했을까요. 전 팀장은 뇌출혈 때문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뇌동맥류 출혈입니다. 뇌동맥류는 뇌 혈관의 일부가 마치 포도송이처럼 부풀어 오르는 병입니다. 주로 한 혈관이 두서너 혈관으로 갈라지는 부위에서 동맥류가 많이 생기는데, 의사들은 이것을 ‘머리 속의 시한폭탄’이라고 부릅니다. 뇌동맥류가 터진다고 그렇게 빨리 죽을 수 있느냐는 의문은 아직도 남지만 전문의들에게 자문한 결과 엄청나게 큰 뇌동맥류가 터질 경우 그렇게 단번에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뇌동맥류 출혈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물론 뇌동맥류가 있다는 것만 알면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면 됩니다. 문제는 뇌동맥류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현재로선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MRA를 찍으면 뇌동맥류를 발견할 수 있지만 MRA는 매우 비싼 진단법이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찍지 않습니다. 의사들도 예방목적의 MRA 촬영을 권고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뇌동맥류는 또 가끔씩 두통 등의 증상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증상이 없으며, 고혈압 등 위험요인과도 무관하게 생기므로 증상이나 위험인자를 통해 뇌동맥류 발생 예측을 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심근경색은 어느 정도 자기 관리를 통해 예방 가능하지만 뇌동맥류 출혈은 그야말로 날벼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김형곤씨의 사망 원인이 뇌동맥류 출혈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사망원인은 추후에 밝혀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동맥류 출혈처럼 글을 쓰는 이유는 김형곤씨를 가장 잘아는 의사 친구가 심장마비가 아니라 뇌동맥류 출혈로 보고 있고, 그 말에 상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입장에선 지금껏 각 언론들이 조성한 ‘멀쩡한 사람’의 심장마비 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조금 줄여주자는 의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뇌동맥류 공포를 조장한 책임을 또 져야 할 것 같군요. 뇌동맥류에 대한 경각심도 줄 필요가 있고 두번째는 김형곤씨의 사망 전 일주일 정도의 행적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전 팀장의 개인 신상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전 팀장은 김형곤씨와 장충중학교 동기동창으로 함께 개그맨 선발대회 준비까지 했던 단짝입니다. 연세의대 1학년 겨울방학 때에 전 팀장과 김형곤씨는 당시 TBC 개그맨 선발대회에 ‘듀엣’으로 출전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두 사람의 실력이 너무 좋았다는 것이죠. 전 팀장은 “나가면 수상할 것 같고, 수상하면 의사가 못 될 것 같아 대회 사흘 전에 못 나가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형곤이 혼자 나갔다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결국 김씨는 그 다음해 ‘솔로’로 나가서 입상했고 그 때부터 개그맨의 길을 걷게 됐죠. 김형곤씨는 “그 때 나랑 같이 개그맨 했으면 너도 나처럼 벤츠 타고 다닐 수 있는데”라며 입버릇 처럼 전 팀장을 놀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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