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현지 업주 ‘뒷거래’…성매매 업주가 말하는 해외행 참혹한 실상은 무엇인가. 최근 한국인들의 해외 원정 성매매가 국제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성을 사기 위한 한국 남성들의 해외 원정 성매매는 말할 것도 없다. 외국 현지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되는 한국 여성들의 사례도 심심찮게 알려지고 있다. -편집자 |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 생활이었다” 지난 2004년 ‘9·23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1년 반이 지났다. 역대 시행된 성매매 관련법 가운데 가장 강력한 법이란 평가만큼이나 도심 곳곳에 만연했던 대규모 성매매 업소들이 초토화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성매매에 대해 ‘범죄’라는 시민 의식이 높아진 점은 주목할 만한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드러내놓고 영업을 하는 성매매 업소는 줄어들고 있지만 소위 ‘풍선효과’로 표현되는 음지의 성매매는 단속의 사각지대에서 성업 중이다. ‘선불금’ 뒷거래
그렇다면 구체적인 실태는 어떨까. 기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해외 원정 성매매 실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 아직까지 성매매 업종에 있는 사람들인 탓에 괜한 구설수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던 중 기자는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따른 성매매 종사자들의 시위 현장에서 알게 된 성매매 업주 김아무개(48·남)와 연락이 닿았다. 파멸로 이끈 고통의 여행 김아무개에 따르면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전부터 이미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해외행을 택했다. 성매매 영업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한몫 했지만 국내 사정에 비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유혹도 해외행에 불을 붙였다. 일부 성매매 업주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데리고 발빠르게 일본행을 택한 사례는 성매매 업계에선 잘 알려진 얘기다.
브로커를 통해 해외로 나가는 데는 1천만~3천만원 정도의 수수료가 필요한데, 돈이 없는 성매매 여성들의 경우는 주로 자신이 일할 외국 현지 업소에서 ‘선불금’ 형식으로 부담한다. 브로커와 현지 업주들 간에 성매매 여성을 사고파는 사실상 현대판 인신매매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성매매 여성들의 해외행에는 브로커와 현지 업주 간의 뒷거래가 빈번하다는 게 김아무개의 설명이다. 김아무개는 “미국이나 일본, 호주만 해도 한국 성매매 여성들이 어림잡아 2만 명은 넘을 것”이라면서 “외국 현지에서 성업하고 있는 마사지 업소나 출장 성매매 업소는 거의가 한국인 업주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외국 현지 업소로 나간 성매매 여성들의 참혹한 실상이다. 미국과 일본의 성매매 업소에서 1년 가까이 성매매를 하다가 최근 국내로 되돌아온 A는 현지 생활에 대해 “짐승만도 못한 생활이었다”고 김아무개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변태 성매매도 강요 A의 현지 생활상에 관한 김아무개의 전언에 따르면 A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전에 서울의 한 대형 유흥가 룸살롱에서 일했다. 가정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져 전문대학을 1년 남짓 다니다 휴학하고 유흥가로 돈벌이에 나섰던 것이다. 3년 가까이 룸살롱 업소를 전전하던 A는 계속되는 술자리로 몸에 무리가 왔고, 이 과정에서 급전을 당겨쓰면서 1천만원이 넘는 빚을 졌다. 난처한 상황에 몰려 있던 A는 결국 성매매 업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6개월 남짓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던 그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전 서울 강남 유흥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해외 불법 송출 브로커 최아무개를 알게 됐다.
최아무개의 제안은 솔깃했다. 미국에 가서 한인 업주가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면 성매매 여부와 관계없이 한달 평균 5백만~6백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거기에 성매매까지 한다면 한달 평균 2천만~3천만원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밀입국에 필요한 2천만원의 초기 비용은 미국 현지 한인 업주가 ‘선불금’ 형식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A는 그렇게 미국행을 택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하자 실상은 180도 달랐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은 어찌 보면 사실이었지만 그만큼 성매매를 해야 하는 강도는 컸다. 하루에 적게는 5~6명, 많게는 20명 가까이 상대해야 하는 혹독한 일상이 두달 넘게 반복됐다. 결국 석달 동안 두 번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혹독한 일상을 견디고, 밀입국 비용과 한국에서의 빚을 당겨 받은 선불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A의 몸은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빚을 갚은 뒤부터는 업주와 50:50의 수익 구조가 가능했지만 망가진 몸 상태로는 영업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국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빚이 생기고 말았다. 다급해진 A는 미국 내 한인 업주의 소개로 또다시 일본행을 결심하게 됐다. 2개월만 일하면 최소 5천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제안에서다. 그러나 이도 현지 실상은 달랐다.
유학생도 성매매 결국 A는 두달여의 우여곡절 끝에 일본 경찰에 A가 속해 있던 업소가 적발되면서 피해를 인정받아 추방 형식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김아무개는 “A가 미국과 일본에서의 성매매 생활은 성매매 여성 대부분이 성병에 시달리면서도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 같은 생활이었다고 절규했다”면서 “순간의 선택이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을 파멸로 이끈 고통의 여행이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