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자연 속의 한 동물에 불과하다. 자연 속의 동식물의 생은 그들에게 주어진 생을 대다수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세포조직상 자연 동식물과 같이 생을 산다면 360년은 살아야 한다. 그러나 겨우 5분의 1에 기치고 만다. 왜일까? 요약해 말해서 인위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그럼 인위와 무위는 어떤 것일까? 인위(人爲)란 우리가 ‘애써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무위(無爲)란 ‘자연현상처럼 저절로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학창시절 우리는 선생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숙제를 부여받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후감이다. 선생님의 명령이 떨어지고, 이제 한정된 시간 안에 책을 읽고 과제를 완성해야 한다. 어찌 어찌해서 정해진 날짜까지 과제를 완결하여 선생님께 제출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왜냐면, 바로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어느 날 홀연히 책방에 간다. 거기서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시간이 나면 틈틈이 책을 읽는다. 쫓기는 마음은 없고 감동이 전해진다. 그 감동을 그냥 가슴에 품고 싶지 않아 글로 적어본다. 그리고 인터넷상에 감상문을 올려본다. 이 과정의 전체가 즐겁다. 왜냐면 바로 자연스럽게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위와 무위의 차이이다.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인위이고 그런 노력이 없이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그것’ 이 바로 무위이다. 인위는 스트레스이지만 무위는 삶의 즐거움이다. 삶에 있어 인위적일 때가 있다. 인위도 필요하다. 하지만 인위보다 무위의 생활이 많을 때 행복과 건강이 따라 온다. 마음은 인위적이기 쉽다. 살다보면 우리는 쓸모 없는 욕심에 사로잡히고 단기간에 그 뭔가를 이루려고 한다. 그러나 되지도 않는 것을 단기간에 목표로 삼을 때 인생은 즉시 고통의 바다가 된다. 아무도 그렇게 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거늘 사노라면 어느새 우리는 자연의 흐름과 반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무위로 살아가면 즐겁고 편하지만 어찌하여 우리는 인위적인 삶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가진 마음의 속성 중에 급하게 이루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땅에 내린 씨앗은 열매를 맺기까지 참으로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지만 이에 비해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급하다.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건강하겠다는 마음도 내가 아름다운 연인과 사랑하겠다는 마음도 모두가 급하기만 하다. 여기에서 인위적인 것이 나온다. 믿고 기다릴 줄 모르고, 급하게 이루려고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매우 인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근면 성실은 인위적인 것의 상징이다. 인위적인 생활에 있어 근면과 성실은 매우 아름다운 자세로 칭송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정해진 시간 안에 목표를 달성’ 하려면 근면과 성실밖에 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바로 강박관념을 형성한다. 직장 상사로부터 정해진 시간 안에 가시적인 영업결과를 하달 받은 직원은 쉬지 않고 근면, 성실해야한다. 그것은 매우 강한 스트레스를 창출시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능한 사원들은 근면 성실하게 보일 뿐 그들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들은 그저 흐름을 타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가 가려운 곳인지 그 마음을 잘 읽어낸다. 그들은 결코 강박적으로 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 일을 하며 뼈빠지게 일한 사원들보다도 더 좋은 성과를 일궈내는 것이다. 노력해야 하고 열심히 기획해야 하고 바삐 움직여야 성과가 온다는 것은 인위적인 생활에서 강조되는 점이다. 그러나 흐름을 타지 않으면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효율을 높이려면 그 어떤 흐름을 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지 않고 흐름을 타는 것이 바로 무위이다. 무위야말로 일에 있어서 가장 큰 효율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그 마음을 자연의 흐름으로 건강에 있어서도 무위적인 것이 가장 좋다. 운동의 예를 들어보자.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자들에게 있어서 운동이란 건강을 위해 해야만 하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삶의 축복이다. 그들은 결코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는 것 그 자체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움직일 수 있다는 그 자체에 즐거움과 희열을 느낀다. 시키지 않아도 삶을 즐겁게 영위하는 것이 바로 운동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매우 성실하고 근면하게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움직이는 것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마음이 바라는 바, 인위적으로 운동을 한다면 그 운동은 고통 그 자체가 된다. 그것은 살기 위해서 억지로 밥을 먹는 것과 같다. 밥을 먹는 것은 즐거움이다. 저절로 배가 고파지고 저절로 먹고 저절로 소화를 시키도록 내버려두면 된다. 이것이 무위이다. 흐름을 타면, 저절로 운동이 하고 싶어지고 그런 운동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바쁜 마음을 잠시 접는 것으로도, 단기적으로 성과물을 얻으려는 마음을 버리는 것으로도 무위의 흐름에 탈 수 있다. 무위는 내가 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그곳에 참 즐거움이 있다. 스스로를 살펴봐서 모든 일을 스스로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한다면 이미 자연의 흐름을 따르고 있지 못하는 있다고 봐야 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따를 때 가장 건강하다. 모든 것이 자연의 흐름대로 진행된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 강물이 흐르는 것. 그 근면 성실함은 무한한 무위적인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이미 이 우주에는 거대한 에너지가 있어 스스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에너지는 이미 우리 몸에도 흘러서 심장을 움직여 주고 생물을 성장시킨다. 모든 생명체가 스스로 태초부터 있는 에너지에 의존해서 생명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을 잘 탈수록 일은 편안하며 몸은 건강해진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헤엄을 친다면, 10m도 전진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마음은 이런 부질없는 도전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아무도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서 헤엄쳐서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렇게 흐름에 거슬러 도전을 해 보지만 결국 누구라도 그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야 만다. 그래서 이제 그들도 자연의 흐름을 따라 무위의 생활을 시작한다. 불필요한 욕심과 생각을 비우면 자연의 힘이 내 몸에 흐르기 시작한다. 홀로 안간힘을 쓰기 보다. 자연의 힘을 응용해서 살아가는 법이 바로 무위적인 생활이다. 우리가 무위적으로 살아갈 때 늘 건강은 좋은 친구로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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