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본고장 잉글랜드에서 ‘붉은 악마(Red Devils)’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뜻하고 범위를 유럽으로 넓히면 벨기에 국가대표팀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 응원단을 의미한다. |
붉은 악마의 역사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말 전국 각지의 축구팬들은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국가 대표팀을 응원할 서포터 클럽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게 된다. 이들은 97년 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이 시작되자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고 같은 해 8월부터 공식적으로 ‘붉은 악마’라는 이름을 내걸고 응원에 나섰다.
90년대 들어 민주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수십 년 동안 한국인들을 괴롭혀 왔던 레드 컴플렉스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한국 대표팀은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흰색과 푸른색 유니폼을 착용했고, 붉은 악마가 축구장에 자리잡은 이후에 열린 98년 프랑스 대회부터 붉은색 상의를 입기 시작했다. 비록 소규모였지만 프랑스 원정에 나선 붉은 악마는 리용의 제를랑, 마르세이유의 벨로드롬,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붉은 악마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같은 해 말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2년 후 시드니 올림픽까지 붉은 묽결은 그칠 줄 몰랐다. 안방에서 열린 2002 한일 FIFA 월드컵은 붉은 악마를 위한 무대였다. 대회 개막 전까지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이 부산에서 폴란드를 2-0으로 제압하자 전국이 축구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도심 광장에서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수백만 인파가 자발적인 응원을 펼친 가운데, 붉은 악마는 경기장에서 카드 섹션을 이용한 조직적인 응원을 선보였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 북한이 36년 전 잉글랜드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일궈낸 기적을 상기시킨 붉은 악마의 부적 “AGAIN 1966”. 덕분에 사기가 꺾인 아주리 군단을 연장전 끝에 2-1로 물리친 대한민국 대표팀은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키며 당당히 준결승에 진출했다. 독일에 1-0으로 아쉽게 패하는 바람에 “꿈은 이루어진다”는 한국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홈 어드밴티지를 극대화한 붉은 악마의 아이디어는 또 다른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결승 진출이 좌절된 후 터키와의 3위 결정전은 사실 승패에 큰 의미가 없는 경기였다. 대구 월드컵 경기장을 수놓은 “CU@K리그(K리그에서 만나요)”라는 카드 섹션에는 월드컵이 가져온 축구 열기가 폐막 이후에도 국내 리그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붉은 악마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