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받고 미국 살아도 “나는 영원한 한국인” (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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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독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LA코리아타운에서도 응원전이 펼쳐졌다. 라디오코리아가 주도한 ‘윌셔거리 응원전’에서 젊은세대가 주축이지만 많은 노인층도 손자뻘 청소년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오~필승, 코레아!”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 순간만은 비록 이역만리 이국 땅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한국인들이었다. 그 때가 아니더라도 코리아타운의 노인세대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의 손자, 손녀들 중에는 ‘자신들이 미국인’이라는 인식이 많다고 한다. 이에 반해 한인 노인들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을지라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가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약간의 혼란을 느낄 때가 있다. 본보 취재진이 만난 코리아타운의 한인노인들은 ‘자신이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Korean in America’인지 ‘한국계 미국인(재미한인,Korean American)’인지, 아니면 ‘미국인(American)’인지에 대한 3가지 유형에 확실하게 한가지만을 대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앞의 두가지 유형을 동시에 대답했다. 본보는 2006년을 마감하면서 LA코리아타운의 한인 노인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깊은 인식을 갖고 있는지 취재해 보았다.


<특별취재반>


















외국에서 LA국제공항에 입국하는 대부분 여행객들은 제3번 터미널(톰 블래들리 국제터미널)의 입국심사대를 통해 입국하게 된다. 입국할 때면 입국신고서에다  출생지와 국적과 현주소를 써야 한다. 한인들이 고국을 방문하고 올 때 과연 공항에서 어떤 기분을 갖게되는가.
선교여행차 외국여행을 자주하게되는 김정복(66, WMC기도학교) 목사는 “LA공항에 도착해 입국 서류를 쓰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면서 “나의 국적은 미국이고 현주소도 미국이지만 나의 출생지는 한국이며 나는 한국계 미국시민(Korean-American)”이라고 했다. 그는
“입국 수속을 할 때 한국에 가면 외국인 줄에 서야 하고, 미국에 오면 시민권자와 영주권자가 서는 줄에 선다”면서 “나의 정체성은 미국 시민으로서 한국인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지난 1972년에 조국에 대한 애국심 고취와 한인 2세들에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한국문화회관’을 창설한 이광덕(사진, 82) 목사는 “민족과 국적은 구분되어야 한다”면서 “국적은 여러번 바뀔 수 있으나 민족은 하나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권에 관계없이 미국에 살아 가는 한국인들은 ‘재미한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면서 “어디까지나 ‘한인’이라는 뿌리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LA한미교육원(원장 정태헌)은 뿌리교육과 성인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이다. 이곳에서 성인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성인권(72)씨는 “미국에 살면서 새삼스럽게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느끼게 된다”면서 “남들은 미국 주류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인계 미국인이 되라고 하지만 우선 언어 때문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주한인의 날’이 정체성
코리아타운에서 매년 1월13일은 ‘미주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로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를 관장하는 미주한인재단남가주의 민병수 회장(변호사, 사진)은 “이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목적 중에는 한인들의 정체성을 인식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정부는 1903년 1월 13일에 한국에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 최초로 집단이민자들이 호놀루루에 도착한 날을 기려 ‘미주한인의 날’로 제정했다. 이는 미국내 특정 소수민족 중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다.
돌아오는 2007년 1월 13일 ‘미주한인의 날’에는 캘리포니아 주의회와 LA시의회에서 각각 ‘미주 한인의 날’ 선포식이 거행된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 가꾸기’  ‘한국동요합창제’ ‘한국미술대회’ 등이 열린다. 이들 행사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한 주로 1.5세와 2세들을 위한 이벤트이다.  노인세대와 장년세대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는 기획되지 않았다. 그만큼 노인세대와 장년세대들은 정체성 문제에서 심각하지 않다는 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LA인근 “제2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가든 글로브에 거주하는 정신일(72)씨는 미국생활 30년이 넘지만 미시민권을 취득하지 않고 영주권자로 살고 있다. 그는 한국의 국경일에는 어김없이 집 앞에 태극기를 게양한다. 물론 미국 연방 기념일에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게양한다. 정 씨는 “태극기를 게양할 때마다 내자신이 한국인임을 상기한다”면서 “주위 미국인들에게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교육원에는 매일 약 1천명의 노인들이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8일 취재진이 만나 본 약 20명의 노인들에게 ‘한국인인가 아니면 재미한인인가 또는 미국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 중 찰스 임(68, 전직 교사)씨만이 “자신은 미국인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으로 답한 사람은 14명이고 ‘재미한인’이라고 답한 사람은 5명이었다. 이들 노인들 중에 시민권자는 8명이고 나머지 12명이 영주권자였다.













비전있는 정체성
미주한인사회는 지난 2003년 ‘미주한인 이민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미주동포선언문을 제정했다. 이 선언문은21세기를 맞는 재미한인(코리언 아메리칸)의 시대적 과제와 비젼을 요약한 것이다. 세가지로 요약된 이 과제와 비젼은 첫째 한인들의 미국사회(주류사회) 참여확대, 둘째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 셋째 모국통일의 지원이다. 그리고 선언문은 지난 100년간 한인들의 미국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미국역사의 주인으로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감당해야할 과제와 비젼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선언문은 미주한인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사명을 제시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한인사회의 정체성을 발현시키고 있다. 선언문이 제시하고 있는 세가지 과제와 비젼은 이민역사를 바탕으로 한인들의 미래에 대한 정신적 설계도와 같은 것이다. 미주 동포 선언문은 그 전문에서 “미주 한인사회는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써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비젼을 제시하며 미국사회의 각 분야에서 한인들의 참여의 폭을 넓혀가는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를 선언한다” 고 밝히고 있어 미주 한인사회의 미래에 대한 방향설정에 역점을 두고있다.
이같은 동포선언문은 주로 1세대, 즉 오늘의 노인세대들이 주도해 제정했다. 누구보다도 ‘한인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선언 정신은 가급적 미주류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재미한인’보다는 ‘미국인’으로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는 측도 있다.
미국생활 20년이 되는 김청심(67)씨는 손자(10)를 돌 보면서 가끔 혼란스런 생각을 품을 때가 있다고 했다. 김씨는 “손자와 대화중에 ‘우리나라에는 충무공과 같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손자는 내가 말한 ‘우리나라’ 를 미국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손자는 ‘우리나라’가 바로 미국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는 세대차이가 아니라 정체성을 인식하는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글이 정체성 표본
미국 생활에서 한인 정체성을 상기 시키는 몇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우리말을 사용하고 우리습관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우리가 먹는 한식,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 한국문화행사 등이다.
LA코리아타운에서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도 일생을 한국에서 처럼 살아갈 수가 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돌보는 한인산후조리원이 있으며, 한국식 장례를 치루어 주는 장의사도 여러 곳이다. 한국음식 먹거리는 서울과 비슷할 정도이다. 한글간판이 즐비하고, 한국어 업소록이 여러 곳에서 출판되고 있으며, 은행, 학교, 여행사 등등 한인상가에서 영어 한마디 쓰지 않아도 된다. 영어를 안하고도 무덤까지 갈 수 있다. 이런 것들이 환경적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상기시켜 준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교육가인 허병열씨는 특히 ‘한글’에 대한 감사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어느 곳에나 독특한 언어생활이 있고 그 것을 기술하는 글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생각이 옳지 않았다”면서 “수없이 많은 언어에 따르는 글자의 수효가 턱없이 적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한글이 있어 행복하다”면서 “한글은 위대한 창작품이고 한국문화의 꽃이다”고 예찬했다.
지난달 21일에 코리아타운의 가든 스윗 호텔에서는 미주극동문제연구소(소장 한원구)가 USC한국학연구소의 함재봉 박사를 초청해 ‘한국의 현대사회와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함재봉 박사는 단군신화에서부터 오늘의 한국사회까지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과연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질문했다. 그는 이조말기 이후의 한국이 ‘친중주의’ ‘친일주의’ ‘친소주의’ ‘친미주의’ ‘단일민족주의’ 로 점철되어 왔다며 ‘진정한 한국인의 상’을 정의하는데 확실하게 규정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새로운 한국인’ 또는 ‘조선인’에 대한 정의에 대한 논쟁이 대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대부분이 노인층 참석자였는데 한국전참전16개국 민속촌 개발위원장인 김명관(78)목사는 “우리세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역사만을 배워 자랐다”면서 “오늘 강연에서 새삼스럽게 ‘한국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인식했다”고 말했다.













탈민족주의 필요
 코리아타운의 많은 노인들은 미국에서 한인들이 한국인으로서도 살아야 하고,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로서 미국의 법과 질서를 지키며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WMC기도학교의 김정복 목사는 “세계 속의 한국인은 세계 각국에서 그 나라의 법과 질서를 지키며 그 나라의 국익을 위하여 한국인으로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독특한 붉은 옷을 입고, 얼굴에 분장을 하고 한인들끼리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만 이기라고 응원하는 모습을 볼 때, 과연 이렇게 해야만 옳은 일인가 의문이 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끼리만의 승리, 우리 끼리만의 민족주의, 민족 고립주의가 과연 한인사회와 대한민국에 유익하겠는가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다양한 민족이 함께사는 미합중국 안에서 유독 “대~한민국”만 이기라고 외치면서 거리응원을 할 때 과연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민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미국 정부 당국은 어떻게 생각할까?”가 우려됐다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 그는 “우리만의 “대한민국”이 미주한인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까? 월드컵을 응원하는 방법이 이런 방법 밖에는 없을까? 우리만의 민족주의가 과연 한국의 세계화와 세계 진출에 어떤 도움이 될까? 많은 우려가 된다”면서 “모든 일에는 지혜와 절제가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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