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의 비밀을 밝힌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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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과 12월을 의미하는 화투는 한일 양국간에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오동은 11월의 화투이고 비는 12월의 화투인데 반해, 일본은 그 반대이다. 즉 일본에서는 비가 11월의 화투이고 오동은 12월의 화투이다.
일본에서 오동이 12월의 화투가 된 것은, 오동을 뜻하는 기리가 에도시대의 카드였던 카르타에서 맨 끝인 12를 의미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점들을 사전적으로 이해하고 화투 오동과 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고스톱을 즐기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동이다. 속칭 똥광으로 불리는 오동의 광은 광으로도 쓸만하고 피 역시 오동만이 유일하게 3장이다. 물론 일왕을 상징하는 9월의 화투 중에서 10점짜리가 쌍 피가 되겠다고 하면, 9월의 화투도 피가 3장이 될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더러움, 지저분함, 고약한 냄새의 이미지를 주는 오동이, 왜 고스톱꾼들에게는 제일로 각광받는 화투패가 되었을까? 그 비밀은 오동의 화투 문양에 있다.
오동의 20점짜리 광에는 닭 모가지 모양의 이상야릇한(?) 조류와 고구마 싹 같은 것이 등장한다. 한국인들은 그 대상이 무엇이고, 또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나타내 주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11월의 화투문양 중에서 검정 색깔의 문양은 고구마 싹이 아니라 오동잎이다. 일본 화투를 보면, 오동잎이 매우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오동잎은 일왕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막부의 쇼군을 상징하는 문양이며, 지금도 일본 정부나 국공립학교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 화폐 500엔짜리 주화에도 오동잎이 도안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다.
그리고 닭 모가지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조류 또한 평범한 새가 아니다. 그것은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의 품격과 지위를 상징하는 봉황새의 머리이다. 이쯤 되면 일본인들이 왜 그렇게 오동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감이 잡힐 것이다. 한국인들은 오동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단지 점수를 나는데 유리한 화투 오동의 광과 3장의 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9월의 화투문양인 국화와 11월의 화투문양인 오동 중에서 누가 더 끗발이 세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화투 오동이 더 세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화만 가지고 있게 되면 광 박을 뒤집어쓰지만, 오동의 광을 갖고 있으면 광 박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의 화투문양을 보면 20점짜리 비광에는 양산을 쓴 선비, 청색의 구불구불한 시냇가, 개구리가 등장한다. 또 10점짜리 화투에는 색동옷을 걸친 제비가 나오고, 쌍 피로 각광을 받는 비피를 보면 정체불명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고스톱에 사족을 못 쓰는 노름꾼들에게 광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화투 패가 엉망일 때, 제일 먼저 집어내 버려야할 대상으로 지목되는 ?비?광을 보노라면, 광 팔자가 따라지 팔자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렇지만 고스톱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필자의 경우, 5개의 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광이 다름 아닌 비광이다. 그 이유는 비광의 그림이 에도시대에 성행했던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화투 비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비밀과 교훈 절기상으로 12월은 추운 겨울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광을 살펴보면 웬 낯선 선비 한 분이 양산을 받쳐 들고 ?떠나가는 김삿갓처럼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수양버들(실제로는 녹색인데, 검은색으로 처리되어 있다.)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고, 그 옆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며 일어서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 양산과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개구리가 혹한의 계절인 12월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하다.
그러나 비광 속에 나오는 그림은 과거 일본 교과서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유명한 오노의 전설을 묘사한 것이다. 즉 비광 속의 갓 쓴 선비는 오노노도후라는 일본의 귀족으로서 약 10세기경에 활약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다.
한국 화투에서는 일본 화투에 나오는 그 선비의 갓 모양만 일부 변형시켰을 뿐, 나머지는 일본 화투와 동일하다. 또 개구리를 뜻하는 카에루와 양산을 의미하는 카사의 두운이 일치하는 것도 일본인들의 풍류의식에 따른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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