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파문의 불똥이 이 청와대, 법원, 검찰, 재경부 등 정부 기관까지 튀고 있다. 김 전 변호사는 삼성그룹의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인 로비행각을 연일 폭로하고 있어 이로 인해 한국사회사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상황이다. 지난 2004년 이른바 ‘X-파일’ 사건에 이어 삼성이 본국 내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집단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셈이다. 검찰 특수부 출신이기도 한 김 변호사는 ‘변절자’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 삼성의 비자금 내역과 각계각층을 상대로 벌인 로비행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향후 현직 검찰 인사들의 면면도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은 <한겨레>, <시사IN> 및 일부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언론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그 동안 삼성의 언론로비가 얼마나 가공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는지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삼성그룹의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는 무엇 때문에 나라 전체를 뒤흔들 만한 메가톤급 폭로를 했는지 그 내용은 무엇인지 <선데이저널>이 집중 취재했다. 박현철 <취재부 기자>
삼성 구조본, 검사 수십 명 별도 관리
<선데이저널>은 지난 호(616호)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 차명계좌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김 전 변호사의 폭탄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부기관, 언론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로비를 가하는 삼성그룹의 로비실태를 하나 둘 씩 폭로하고 있다. 그는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서 검사와 국세청, 재경부의 고위관료 수 십 여명을 관리했다고 밝히며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조직 중 작은 편에 속했으며 이해관계가 맞물린 재경부나 국세청은 규모가 훨씬 더 컸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5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에서 불법 로비는 모든 임원의 기본 책무인데 나는 법조계를 담당했다”며 “구조본에서 검사 수 십 여명을 관리했으며 나머지 분야는 60여개 계열사가 나눠 맡았다”고 밝혔다. 그는 “보통 수 천 만원에서 수 십 억원까지 (로비)지시를 받았는데 현직 최고위급 검사 가운데도 삼성 돈을 받은 사람이 많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그러나 로비를 받았다는 검사 명단에 대해선 “삼성이 저지른 부정과 비리의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 규명이 지지부진하고 삼성이나 검찰 등 국가기관이 제 본분을 다 하지 않을 경우 공개하겠다”라며 공개를 미뤘다. 명단공개를 미룬 배경은 자신이 검찰출신이라는 사실과 동료 검사들의 목에 자신의 손으로 칼을 들이댄다는 사실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김 변호사는 로비 자금의 출처가 각 계열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이었으며 만성 적자인 회사도 수 십 억원의 비자금을 만든 뒤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로 관리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명 비자금을 가진 임원 명단도 일부 갖고 있는데 이는 금융실명제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명백한 범죄”라며 “하지만 삼성 안에서는 차명계좌를 가진 것 자체가 승진의 징표이자 일종의 훈장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또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사건과 관련해 “모든 증인과 진술을 조작해 돈과 힘으로 법원을 모욕했는데 법무팀장인 나도 중심에 서서 그 일에 관여한 공범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재산을 불법 형성했다”고 주장한 뒤 “이를 뒷받침하는 삼성의 내부 문건을 확보하고 있지만 기자회견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려 분실이 우려된다”며 공개를 미루고 있으며 지난 2003년 <선데이저널>에서 보도한 이재용 전무의 해외비자금과 관련한 중요한 정보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또한 “청와대, 검찰, 국정원, 언론 모두 삼성을 위해 움직인다”면서 “(이들의 활동이) 실시간으로 (그룹으로) 정보보고 됐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에 적대적인 시민단체 마저 회의가 끝난 직후 회의록이 전해질 정도”라며 “삼성을 등지면 쓸쓸한 최후를 맞을 거라는 얘기가 많았다”고 말하며 가계 인사들을 상대로 한 뇌물상납 로비사실을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은 모두 이건희 회장을 위해 살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사회 오염시켜서는 안 돼 그렇다면 김용철 변호사는 무엇 때문에 이같은 메가톤급 발언으로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것일까? 김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삼성이 건강하게 새로 태어나길 바라며 재벌이 사법체계와 국가, 사회를 더 이상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변호사는 “삼성이 잘돼야 한다”며 “삼성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라 살림을 좌우하는 경제규모의 삼성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순기능을 하는 중요한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다만 “‘대한민국=노무현’이 아니듯 ‘삼성=이건희’여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삼성을 이 씨 일가와 동일시하는 문제 때문에 갖가지 불법이 저질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굉장히 단단하고 치밀해 보이지만, 그들이 벌인 게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서 일단 균열이 생기면 봇물 터지듯 효과를 낼 것”이라며 “‘삼성권력’의 궤멸까지는 못 가더라도,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밖에 노조 문제 등 삼성 관련 여러 문제들이 공론화된다면 내가 치를 죗값도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 5월부터 최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보호를 받기 전까지 경기 양평에 마련된 컨테이너박스에서 숨어 지냈다고 밝혔다. 삼성의 감시가 그만큼 집요하고 두려웠다 것. 그는 “‘남은 인생을 쓸쓸히 살다가 뒷골목에서 황폐한 최후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일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통해 삼성측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협박과 회유를 받았음을 내비쳤다. 김 변호사는 “그동안 준비를 착착 진행했느냐고 묻는데, 그렇지는 않았고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다 뒤집는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문제의 공론화를 작정했을 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까지 가리라곤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 메이저 언론사, 시민단체 등에 얘기해봤지만 모두의 답변이 ‘불가’였고 절망감이 들었다”며 “독립운동하던 분들 심정이 이랬을까 싶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동안 내가 누구랑 친하게 지냈는지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며 “삼성에서 모든 인맥을 동원해 나의 폭로를 막으려 했다”고 말하며 삼성의 역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벽이 높을수록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진정 우리 사회가 이 정도라면 ‘내 인생을 걸고 해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하는 각오가 다져졌다”고 전했다. 아무도 삼성을 건드리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를 깨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 그는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이번 양심선언을 했다며 마지막으로 “저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들에게 한없이 죄송하다”고 불편한 심경을 고백했다.
김용철 변호사 기자회견 전문
삼성이 아닌 이 회장을 위해 살아야 했다.
-저는 죄인으로서 속죄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이 글이 유서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고 부끄럼없이 고백하겠다. 저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들에겐 한없이 죄송하다. 저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아들이다. 선천적 심장병으로 달리기를 해본 적 없고, 심전도 검사 한 적없어 군복무 3년 마쳤다. 친가, 외가 쪽 사람들과 의절하고 지냈다. 인천, 부산, 특수부 거치면서 검사로 인정받았다. 다시 태어나도 검사하겠다고 생각했다.
-노태우 비자금 당시 청와대가 수사 중지를 얘기했다. 검찰을 떠났다. 변호사 업계를 잘 알고 있었다. 수임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삼성으로 갔다. 월급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들 등록금 때문에 삼성에 들어간 것은 인생의 실수였다. 삼성은 범죄를 지시했다. 돈으로 사람 매수하는 로비는 모든 인력의 책무다. 구조본 안에서 검찰 인맥 수십 명을 관리한다. 설, 추석, 휴가 정기적으로 뇌물 돌린다. 공범이란 죄의식 때문에 괴로웠다. 현직 최고위급 검찰 중에서도 뇌물 정기적으로 받은 이들 있다.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이다. 재경부, 국세청은 규모가 훨씬 크다. 돈의 출처는 각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이다.
-만성 적자를 안고 있는 기업에서도 조성했다. 차명으로 운영됐다. 삼성 임원들이 재산이 많은 것은 대부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재무, 구조본 등 핵심인사들은 상당수 차명계좌 갖고 있다. 차명 비자금 계좌 가진 임원 명단도 일부 갖고 있다. 이건 범죄다. 하지만 삼성 내에선 차명계좌가 훈장이다. 비자금 계좌가 만들어지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에버랜드 편법 증여 사건 모든 증거 조작했다. 돈과 힘으로 신성한 법조 오염시켰다. 제가 중심이 돼서 조작했다. 공범으로 처벌받아야 할 순간이 됐다. 삼성은 삼성이 아닌 이 회장 위해 살아야 했다. 삼성 위해 검찰, 국정원, 청와대, 언론이 움직인다. 실시간 정보보고 했다. 시민단체 마저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이 삼성에 전해졌다. 삼성에 등지면 쓸쓸한 최후를 맞을 거란 얘기가 많았다. 삼성 기사가 나올 때마다 나를 감시했다. 삼성 측 인사가 나와 나를 법무법인에서 내쫓았다. 아내와 인생말년을 손잡고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깨뜨렸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낭떠러지 앞에선 심정이었다. 저를 받아준 사제단에 감사한다. 많은 고민을 했다. 괴로웠다. 조직 동료 배신한 사람이라고 비판해도 괜찮다. 하지만 재벌이 더 이상 우리 사회를 오염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저의 죄를 고개숙여 사죄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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