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결국 ‘떡값검사’ 명단을 일부 공개했다. 아직까지는 김 변호사의 ‘주장’ 수준이지만 명단에는 현 검찰총장 내정자인 임채정 후보도 포함되어 있어 상당한 파문이 일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에 대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은 난감한 입장에 처해있다. 검찰은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서 ‘설마’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향후 김 변호사가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구체적인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사를 시작한다 해도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있겠느냐’는 것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이어서 수사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파문은 비단 경제계와 법조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민주노동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등 3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3자 회동을 갖고 삼성비자금에 대한 특검 도입을 합의하는 등 이번 사안을 대선에서 쟁점화 시키려 노력 중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범여권이 삼성비자금 파문을 계기로 대선정국을 `부패 대 반부패’ 구도로 몰고 가려는 것을 경계하면서 범여권 약점 파고들기로 맞서 정치권의 대립각도 첨예화될 조짐이다. <특별취재팀>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 12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통해 공개한 이른바 ‘떡값검사’ 명단은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이귀남 대검 중앙수사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등 전·현직 검찰인사 3명이다. 사제단은 제진훈 제일모직 대표이사, 이우희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인사팀장 등이 이들의 관리담당자였다고 전했다. 사제단의 전종훈 신부는 “김 변호사가 삼성 관리대상 명단을 보게 된 것은 2001년 재무팀에 있을 때로 관리대상 명단은 직책, 성명과 그룹 내 담당자를 기재하는 빈칸이 있었다”며 “(돈을) 전달한 후에는 빈칸 안에 담당자 이름이 기재되며 빈칸이 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사제단은 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재산형성 과정을 담은 문건을 2005년 삼성 구조조정본부가 작성했다”며 4페이지 분량의 문건 1건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이재용 전무의 유가증권 취득일자별 현황이 담겨 있다.
삼성 “허위 주장에 불과”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사제단을 통한 김 변호사의 주장은 삼성 법무팀 변호사가 2003년 10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수사와 관련해 만든 변론자료를 마치 이 전무의 불법 재산 증식과 구조본의 사전기획 의혹으로 탈바꿈시킨, 전형적인 허위주장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이 문건은 “검찰의 수사기록에도 유사한 내용이 첨부돼 있을 정도로 이미 다 알려져 있는 변론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내부문건’이라는 용어를 써 마치 은밀한 목적을 위해 작성된 문건인 양 포장한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또 “문건 작성 시기가 2003년 10월 이후인데도 2000년이라고 허위로 주장하는 것은 이 전무의 재산 증식을 삼성이 일찍부터 기획했다고 음해하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 문건이 불법 재산축적을 보여주는 내부문건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번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면 이 전무의 재산형성 과정이 비자금과 불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자금의 흐름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 측은 계속되는 김 변호사와의 대결구도에 내부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무실장인 이종왕 법률고문이 자진 사퇴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은 김 변호사측이 3차에 걸친 폭로에도 불구하고 폭로 내용을 뒷받침할만한 ‘물증’이 없지 않느냐며 ‘결백’을 자신하고 있으나 사안의 성격상 사건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 신뢰성 타격 이번에 공개된 명단을 보면 총장 후보인 임 후보자 이외에도 모두 검찰의 요직을 맡고 있거나 거친 인물들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검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큰 사안인 셈이다. 명단에 오른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명단이 공개된 만큼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려내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명확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서울중앙지검은 이번 사건을 특수2부(오광수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김홍일 3차장검사는 “명단 일부가 나왔지만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사건을 배당해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특수2부장을 주임검사로 하고 부부장검사 등 검사 4명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스스로가 본 기관의 총장 후보자를 비롯한 중수 부장을 수사하는 것 자체가 모양새가 어색한데다 이들이 현직에 남아있게 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지휘력을 행사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어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겠냐는 것이 외부의 시각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특검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대검의 지휘계통에 속해있고, 더욱이 대검 중수부장이 의혹 대상인 만큼 특검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특검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번 명단을 폭로한 사제단 측은 혐의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지난 1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삼성 뇌물 검사들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갖고 있다”며 “문건 형태로 된 것도 있고, 앞뒤 정황증거도 있어 혐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자료들을 공개할 수도 있지만, 공개 여부는 검찰 수사 진행을 지켜보며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선 앞두고 정치쟁점화 이번 삼성 떡값 검사 파문은 비단 법조계뿐 아니라 정치권에도 ‘쓰나미’를 몰고 오면서 30여일 남은 대선에서도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는 이번 파문을 정치쟁점화 시켜 ‘부패 vs 반부패’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범여권의 이러한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에 화살의 방향을 돌리려 노력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 권영길 후보는 13일 국회본청 귀빈식당에서 3자 회동을 갖고 이번 사안과 관련해 특검을 도입하기로 합의했고 이를 정기국회 회기 마감일인 오는 23일까지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특검 도입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대선자금 및 당선축하금을 포함한 비자금 전체에 대한 특검이 이뤄져야 한다”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여권 측의 특검 도입에 대해 한나라당이 노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며 반대할 경우 자칫하면 부패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데에 그 고민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한동안 가라앉았던 ‘차떼기당’ 이미지가 다시 부각되면서 대선판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가뜩이나 여권 측에서 BBK사건을 통해 국민들에게 이명박 후보를 ‘부패 정치인’으로 몰아가려는 상황에서 이번 삼성 파문은 악재일 수 밖에 없다. 과연 대선 30여일을 앞두고 터져나온 이번 파문이 대선 구도에 그리고 삼성 그룹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임채진 검찰총장 후보자는 13일 자신이 `떡값 검사’ 명단에 포함됐다는 논란과 관련, “김용철 변호사나 삼성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임 후보자는 이날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 출석,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느냐’는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의 질의에 대해 “김 변호사와 일면식도 없고 사적 자리에서 만난 기억도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구체적 근거가 없는 주장에 어떻게 해명해야 할 지 참으로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어제 그 소식을 접하고 참으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면서 “그렇지만 제 이름이 거론됐다는 그 자체가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하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임 후보자는 `자진사퇴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근거없는 주장에 사퇴한다면 검찰 조직이나 전체 국가 발전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지휘감독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이와 함께 `김 변호사의 주장이 마녀사냥식 폭로라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것이냐’는 대통합민주신당 김종률 의원의 질문에 “여러 가지 고려해 보겠다”고 말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