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특검 수사로 삼성 측은 그동안 자신들에게 제기되었던 의혹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면죄부 수사 논란이 일고 있는만큼 부실 수사는 반드시 삼성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이 제대로 해소됐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번 특검 수사를 지켜본 한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100일 남짓한 특검 수사 결과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 특별검사팀은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8명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공소장 작성 등 마무리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사법처리 대상자 전원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윤정석 특검보 역시 15일 브리핑에서 “사법처리 대상자가 잠정적으로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수사 결과 발표 때 언급하겠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배임 혐의를, 비자금 차명 계좌와 관련해서는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위 관계자의 말처럼 본국에서는 이번 삼성 특검팀의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의혹이 명확하게 풀리지 않는한 언젠가 다시 삼성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이번 특검 수사로 본인들에게 제기되었던 의혹들이 영원히 묻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과연 부실수사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번 특검 수사는 과연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
이번 특검 수사에 따라 사법 처리 대상은 각종 비리를 조직적으로 지시하고 관리한 전략기획실 핵심 임원들과 에버랜드, 삼성 SDS 사건 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고발된 전 현직 임원 등이 포함돼 있다. 전략기획실 김인주 사장, 최광해 부사장과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등은 차명계좌를 개설, 운용한 조세포탈 공모 혐의로 사법처리 하기로 했다. 특히 김 사장과 지난 96년 구조본 재무팀장으로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기획안을 만들어 이 부회장에게 제출한 유 사장에게는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 배임 공모 혐의를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과 관련해서는 당시 감사였던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 사법처리 대상에 포함됐다. 특검팀은 유석렬 사장과 현명관 전 회장의 사법 처리 수위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또한 고객돈을 빼돌려 비자금 10억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된 삼성화재 황태선 사장과 임직원 등 2명도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또한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로비 의혹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특검이 비자금 조성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삼성 계열사들에 대해 수사 의지를 밝혔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다. 한때 특검은 삼성생명이 보험금 미지급금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삼성이 정ㆍ관ㆍ법조계 인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뿌려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특검은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잇따른 명단 공개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관련 당사자들은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 기소될까
특검 수사 발표에서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부분은 역시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기소 여부다. 차명계좌 및 차명주식으로 관리돼 온 수조 원 가량의 자금이 삼성 계열사에서 빼돌린 돈이라는 게 밝혀지면, 이 회장은 횡령 혐의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특검팀 안팎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모아보면, 특검팀은 “차명으로 관리된 자금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산”이라는 삼성 측 해명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이 회장은 조세 포탈 등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기소돼 벌금을 물게될 가능성이 높다. 특검팀 수사로 드러난 이 회장의 조세포탈 규모는 최소 1천억원이 넘는다. 이 회장은 개인돈을 임직원 이름으로 삼성증권 차명계좌에 맡겨 삼성전자 주식 등을 사고팔았다고 해명했다. 특검팀은 이 중 상당 부분이 계열사 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일 것으로 보고 자금추적 등을 벌였지만, 개인 돈이라는 해명을 뒤집을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특검팀은 횡령 대신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발행주식의 3% 또는 시가총액 100억원 이상 보유한 삼성전자 등의 대주주이면서도 차명계좌로 주식을 분산시켜 주식 거래 때 내야 할 연간 20%의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연간 포탈액이 10억원이 넘으면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고, 2~5배 이하의 벌금이 함께 부과된다. 이 정도로 중대하면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에서도 발부되는 것이 통례였다. 이 회장은 구속 사유로 따지면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범죄의 중대성’에 해당될 수 있다. 이런 죄질에도 불구하고 특검팀이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한다면 특검팀은 형평성 논랑에 쉽싸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회장에게 쏟아진 다양한 의혹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처벌이다. 이재용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특검이 이 회장에게도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특검은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양심고백을 하면서 불거진 소용돌이에서 이건희 회장 가족이 빠져나가게 되는 셈이다.
특검은 삼성 변호사(?)
결국 이번에도 삼성은 가신(家臣)들이 주군(主君)을 대신해 처벌을 받는 선에서 면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그동안 삼성 이건희 회장일가의 가신그룹으로 알려진 이들이 책임선상에 있는 것. 반면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또한 삼성그룹에 제기된 의혹들은 이들을 희생양으로 완전한 면죄부를 얻게 된다. 향후 비슷한 논란이 언급될 때마다 삼성 측은 “이미 특검에서 결론 내린 것을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반박논리를 펼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도 향후 삼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김용철 변호사는 특검 수사가 미진하다고 보고 특검 기간이 만료된 뒤, 검찰이 수사를 이어받아서 진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방안이 실현될 가능성 역시 높지 않아 보인다. 특검 관계자는 14일 “특검법상 수사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종결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는 사건들을 검찰에 인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되면, 특검이 현재 취하고 있는 입장이 삼성 비리 의혹에 대한 최종 결론이 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