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부 스위스은행에 탈세조사

이 뉴스를 공유하기















스위스 은행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비밀유지가 가능한 은행으로 손꼽힌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약 40억 달러의 비밀계좌가 있다고 알려졌으며, 한국의 김대중 전대통령, 노태우 전대통령 등도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스위스 은행은 국제적으로도 흔히 ‘검은돈의 은닉처’로 불린다. 이 같은 스위스 은행이 미국 의회의 청문회 대상이 됐다. 그동안 미국 FBI와 국세청 (IRS)의 집중적인 탈세조사를 받았고,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미시민권자의 예금계좌를 폐쇄하기로 해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갑부들의 비밀금고’로 알려진 스위스 은행의 굴욕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스위스 은행 ‘비밀금고’ 공개는 지난 2000년 유엔의 ‘반부패방지법’이 조인된 뒤 그 대상이 됐고 최근 스위스의 대표적 은행인 UBS가 미국정부의 강력한 규제조치에 백기를 듦으로써 이루어졌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최근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가 김정일의 개인 재산이 40억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주로 무기 판매나 달러화 위조로 비자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주로 미사일 판매와 마약 밀매·달러 위조·조총련 자금 등을 통해 연간 3억~5억 달러 정도의 비자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금은 북한 노동당 39호실에서 관리한다. 이 돈은 주로 홍콩와 마카오 등지에서 최고급 벤츠 승용차나 헤네시 코냑, 일제 가전제품 등을 사는데 쓰인다. 김정일은 이렇게 산 고급 물품을 북한 군부나 노동당 핵심 간부에게 선물해 권력 기반을 다지는데 사용해왔다.
선물을 사고 나면 연간 2억 달러 정도가 남는다. 이 돈은 지난 1985년부터 스위스 비밀 금고로 송금됐고 현재 40억 달러 정도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밀금고’ 공개하라













 ▲ 마크 브랜슨
최근 미 국세청(IRS)과 연방수사국(FBI)의 집중적인 탈세조사를 받은 스위스 대표 금융그룹 UBS가 미국 고객들의 스위스 은행 계좌를 전면 폐쇄한다고 지난달 17일 발표했다. 예금주 신분이 공개되지 않는 스위스 은행 계좌가 전 세계 ‘검은 돈의 온상’ 역할을 한다는 비판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미국뿐 아니라 세계 부유층들의 안전금고 역할을 했던 스위스 은행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UBS 글로벌 자산운용의 마크 브랜슨(Branson)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미 금융당국의 규제범위를 벗어나는 미 국민들의 스위스 은행 계좌를 모두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폐쇄되는 계좌에 예치된 금액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를 받는 별도 계좌로 옮기도록 고객들에게 권유한다는 것이다.
또한 블룸버그 통신은 “미 국세청이 UBS를 통해 개설한 스위스 은행 계좌정보를 제공받는 방안이 곧 합의될 것”이라고 보도해, 어떤 경우에도 고객정보를 지킨다는 스위스 은행의 마지막 성역이 깨질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연간 1000억불 탈세


이 날 미 상원 조사소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 국민 중 스위스 은행계좌를 열고 있는 부유층과 중산층은 약 2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또 미 국세청에 신고 되지 않은 이 계좌에 예치된 금액은 1조5000억 달러, 연간 탈세규모는 1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AP 통신은 “스위스 은행 계좌보유자 2만여 명 중 1000명 정도는 미 국세청에 예금액을 자진 신고했지만 1만9000여 명은 아직 신고하지 않았다”며 “그동안 미 국세청은 UBS와 스위스 금융당국에 이들의 신분을 공개하라고 압박을 가해왔다”고 보도했다.
스위스 은행을 대표하는 UBS는 지금까지 자국 금융관련법에 따라 고객신분을 공개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텨왔다. 예금주 신분 비밀을 지켜주는 것을 무기로 세계의 막대한 자금을 유치해 온 스위스 은행의 존립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 금융그룹 중 UBS가 글로벌 신용위기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아 매각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결국 미국 정부의 압력에 백기를 들고 만 셈이다.
이미 스위스는 지난 1994년 정부가 마련한 법안에서 은행이 2만5천스위 스프랑(약 1만5천달러) 이상의 현금거래를 한 고객의 명단을 공개해야 하며 돈세탁의 의혹이 있을 경우 당국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비록 이 법안은 1995년 초 은행들과 보수 정치인들의 반대로 보완을 위해 일단 반려된 상태다. 그러나 이미 지난 80년대 말부터 도입된 일련의 법률과 지침들은 은행이 고객의 신원을 면밀히 검토하도록 촉구하고 은행원들이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지 않고서도 경찰에 신고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약자의 재산 지키기


원래 스위스 은행의 비밀보장은 오늘날처럼 권력층이나 부유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870 년 독·불 전쟁 당시 일반 서민들이 전화에 휩쓸려 재산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박해받는 약자의 재산을 중립국 스위스가 지켜주겠다’는 취지로 스위스 은행이 이들에 게 비밀계좌를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를 스위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1934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유태인들이 부동산을 처분, 안전한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기 시작하자 유태인을 돕고 실속을 차리자는 생각에서 스위스 정부가 은행법을 전면 개정했고 ‘스위스 비밀계좌’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후 세계 각 국에 혁명이 일어나고 독재자가 쫓겨날 때마다 스위스 은행이 거론됐다. 자이레(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부투 가 70억 달러, 파나마 노리에가가 3억 달러,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4억 달러어치의 금괴를 스위스 은행에 예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의 페레스 전대통령 700만 달러, 보리스 옐친의 측근이 250억 달러를 비롯해 콜 전 독일총리 시절의 기민당(CDU) 정치자금 1920만 마르크도 예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또한 아바차 전 나이지리아 대통령 6억6000만 달러,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17개 계좌에 보관 중이던 거금(약 800만~2000만 달러)과,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 100개 계좌 속 약 1억 스위스 프랑 등은 모두 각국 정부 요청에 의해 동결 조치된 바 있다.
정치인들 외에 범죄자들의 돈도 스위스로 숨어들었다. 1995년 스위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에는 러시아 마피아 자금이 특히 많이 몰리고 있다.
스위스 은행의 장점은 크게 영세 중립국이라는 지위와 정치적 안정, 스위스 프랑의 강세, 오랜 금융 산업의 노하우, 예금이자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철저한 비밀 보장과 자금의 출처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 독재자와 범죄자의 돈이 스위스로 몰리는 이유다.
실제 1982년 스위스 은행원 체포사건은 스위스 은행의 고객 지키기가 얼마나 철저한지 보여준다. 당시 로마에서 해외예금 유치활동 중이던 스위스 은행원 2명을 체포한 이탈리아 검찰은 비밀계좌 예금주의 신원을 공개하면 면죄부를 주기로 이들과 교섭했다.
이에 2명 중 한 명은 고객의 신원을 발설하고 방면됐지만 나머지 한 명은 끝내 비밀을 지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방면된 직원은 고객의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스위스 은행법에 의해 기소돼, 5만 스위스 프랑의 벌금형을 받았고다. 반면 이탈리아에서 복역 후 귀국한 직원은 영웅대접과 함께 은행으로부터 감옥생활에 대한 위자료 명목으로 거액의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금고’ 열리


범죄와 관련된 돈을 찾기 위해 해당국 정부가 스위스에 사법공조 요청을 신청하면, 스위스 연방경찰청이 스위스 연방법 등에 규정된 형식요건을 갖췄는지 검토한 뒤 해당 주정부로 이첩한다. 형식 요건 심사가 까다롭지 않아 사법공조 요청 대부분이 해당 주정부로 이첩된다.
하지만 주정부가 은행계좌 동결·압수·반환 등의 결정을 내린다 해도 예금주 등이 5∼10일 내에 서면으로 불복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처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관련 은행이나 기업도 항소가 가능하다.
반면 외국 고위 공직자의 범법행위와 관련된 사법공조 요청을 연방경찰청이 직접 맡게 되면 기간이 크게 단축된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는 형사 사법공조에 관한 유럽협약(ECMA) 제2조 등을 근거로 정치적 범죄 및 이와 관련된 행위는 사법공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 비자금일 경우에 뇌물로 판단하느냐, 또는 스위스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정치자금으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스위스은행 어떤 곳인가]













스위스은행은 비밀계좌에 예치된 자금의 주인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보장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위스 연방은행법과 민법, 채권채무관계법이 일반적으로 ‘개인 영역의 모든 관련사항’을 보호하고 있으며, 연방최고법원은 개인영역에 금융사항과 개인재산 등이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위스연방은행법은 지난 1934년 은행비밀에 대한 침해를 범죄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국제마피아의 검은돈은 물론 이란의 팔레비, 파나마의 노리에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필리핀의 마르코스 등 각국 독재자들의 부정축재 자금이 돈세탁·은닉을 목적으로 스위스 은행에 들어왔음이 드러났다.
이런 검은돈을 기꺼이 맡아주는 스위스 은행들은 주로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 새마을금고나 신용금고 수준의 소규모 은행들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몰려든 유대인들이 재산을 안전하게 맡겨놓는 곳으로 이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금주의 신분을 철저히 감춰줘 ‘검은 돈의 은신처’라고 불리는 스위스 은행은 특정 은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고객 비밀을 지킬 것을 규정한 스위스 은행법에 따르는 스위스 국내 모든 은행을 통상적으로 ‘스위스 은행’이라 한다. 외국 은행의 스위스 지점 역시 이에 해당된다.
스위스 3대 은행인 ‘스위스 유니온 뱅크(SUB)’ ‘스위스 은행(SBC)’ ‘크레딧 스위스(CS)’는 일반 은행업무도 담당하고 있지만 대규모 은행인 만큼 비밀예금의 액수도 크다. 스위스 유니온 뱅크와 스위스 은행은 1998년 합병, 프라이빗 뱅킹(개인 고객관리 업무) 부문 세계 1위로 올라설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스위스 은행들 중 거액의 개인비밀예금을 주로 취급하는 은행 120여 개는 취리히 역 주변 반 호프가 뒤편과 제네바 레만 호수 주변에 모여 있다. 고객이 돈을 갖고 오면 번호 하나만으로 계좌를 개설해주고 철저히 비밀을 보장한다.「BANK」라는 간판조차 없는 곳도 많으며 행원 수 100명가량에 소규모로 건물도 작아 전체 사옥이 2~3층에 불과한 곳도 즐비하다.
1999년 기준으로 스위스 은행은 400여개에 달하며 이들 은행에 모두 2조 달러가 넘는 거금이 들어있다. 그러나 스위스 은행의 예금 비밀보장에 관한 신화도 국내외 금융개혁 요구와 국제적 비난여론 속에서 차츰 무너져 내리고 있다.


‘비밀계좌’ 어떻게


통상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는 최소 10만 스위스 프랑 이상의 고액 예금주들을 위한 번호계좌를 말한다. 예금주의 이름 없이 숫자와 문자가 조합된 계좌번호(예를 들어 571 260 SQ8)만으로 이루어진 계좌다. 입·출금, 거래명세서 작성 등 모든 거래에 이 계좌번호를 이름 대신 사용해 은행원이 전표를 분실했을 경우에도 예금주가 드러나는 일이 없다.
은행직원들도 이 계좌번호만으로는 예금주의 신원을 알 수 없고, 극소수의 은행 간부만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실수로 번호를 잘못 기재하고 송금하면 남의 계좌로 들어가 영영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비밀계좌는 당좌 계정으로 유동성 예금이기 때문에 이자가 붙지 않는다. 1980년 이전까지 는 예금자가 보관료를 무는 형태로 운영되기도 했다.
‘비밀계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스위스로 갈 필요는 없다. 충분한 재력을 인정받으면 스위스 은행 직원이 직접 예금자가 사는 곳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외국인은 여권으로 대체 가능하다. 개인뿐 아니라 법인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은행은 고객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비밀계좌 개설을 거부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강제해약도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비밀은 철저히 보장한다. 최근에는 계좌개설 절차가 까다로워져 번호계좌를 열려면 반드시 본인이 신원증명을 하고 왜 번호계좌를 만드는지 합법적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인출은 예탁 유가증권이 담보로 설정되어 있지 않는 한 언제든지 가능하다. 다만 인출하기 6주 전에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계좌번호를 알아내 돈을 인출하려 해도 예탁자 본인 또는 변호사 등의 법적 대리인이 아니면 돈을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예금주가 갑자기 사망할 경우에는 자녀 등 상속권 자가 비밀번호를 모르더라도 ‘스위스 OO은행에 예금이 있다’는 부모의 편지 등 증명 가능 문건만 있으면 인출이 가능하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크게 비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