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에 좀처럼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대출 사태로 이번 불황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 은행권은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미국 경제불황 여파로 한인경제권이 최악의 침체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한인은행권이 그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맞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본토은행의 M&A 소문으로 주가가 급등한 East West Bank 등 중국계 은행 등과 비교해보면 한인은행의 어려움은 유난히 두드러져 보인다. 양호 전나라은행장은 2006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 가능성을 경고해왔으며 이것이 alt-a 모기지까지 확산될 것이라는 예측을 해왔다. 양 전 행장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양 전 행장이 꼽는 현재 한인은행들의 위기 원인은 무엇일까. 양 전 행장은 한인은행의 과포화 상태를 첫 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한인사회 규모에 비해 은행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남가주에 조그만 한인 커뮤니티에만 은행이 15개입니다. 나눠먹을 파이는 제한적인데 은행마다 똑같은 상품을 가지고 영업을 하는 것이죠. 경쟁력과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이 늘어나는 것은 한 마디로 제 살 깎기에 불과합니다. 중국계 은행들을 보세요. 우리보다 파이가 훨씬 크지만 대표적인 은행은 단 3개뿐이죠. 중국은행들은 메이저 3개 은행이 M&A를 통해서 시장을 통합한 상태입니다. 자구적인 노력과 본국의 지원이 결합한 결과입니다.” 양 전 행장의 말대로 최근 중국계 은행의 성장은 눈부시다. 오히려 한인들이 중국계 은행으로 예금을 이동하는 실정이다. 한인은행들이 우량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상의 금리가 7% 이하로 내려오기 힘든 상황에서 중국계 은행들은 이미 6.5% 대의 대출금리를 적용해 한인 우량고객들을 빼가고 있다. 자산규모 120억 달러의 East West Bank의 경우. 이미 한인고객전담부서를 설립하고 우수한 고급인력들을 한인은행들로부터 고액의 연봉을 주고 영입했다. 다른 중국계은행들도 한인 담당금융부서 신설을 준비 하고 있다. 양 전 행장은 한인사회의 사업 기반이 다양하지 않은 것도 은행권 부실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사회에 비해 우리는 교민수도 적고 경제를 순환시킬 수 있는 소스 자체가 적은 상태입니다. 현재 한인은행을 지탱하는 소스는 크게 3가지인데 하나는 한인들이 장사하는 자바 마켓(Jobber market), 또 하나는 본국으로부터의 다양한 비즈니스 와 자금흐름 및 은행송금을 통한 수수료, 마지막은 한인교포사회의 각종 부동산관련 및 자영업 등이지요. 이 3개의 소스가 한인은행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한인사회가 양적으로 성장할 때는 붐을 타고 함께 성장을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사업기반은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은행이 너무 많아져 발목을 잡게 된 것입니다.” 양 전 행장의 말대로라면 <선데이저널>이 몇 차례에 걸쳐 보도했던 ‘예금도둑’도 설명이 된다. 그 동안 일반적으로 근무하던 은행에서 물러나는 행장들은 다른 은행으로 옮겨갈 적마다 자신을 따르는 고위간부를 비롯해 중간급 실무자들까지 막대한 조건을 내세워 데리고 갔다. 보통 간부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자신의 경영 수족을 만드는 것과 VIP 예금주들을 몰고 가기 위함이다. 이를 은행권에서는‘예금도둑’이라 부른다. 한인은행권에서는 은행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모두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다. 결국 한인은행의 큰손 예금주들이 은행장들의 이동에 따라 움직이고 결과적으로 그 몫은 고스란히 이사들이나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 전 행장은 “한 예로 한미은행이 대출이자를 4.2%로 올리면 다른 은행은 따라서 적어도 4.3%까지 올립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고객은 좋지만 은행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나빠지지요. 과다출혈경쟁으로 고객 빼앗기를 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은행이 고객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재무구조가 건전하지 않다면 이는 고객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금의 한인은행은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양 전 행장은 최근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줄이는 은행의 행태를 예로 들었다. “최근 한미은행이 프라이빗 뱅킹서비스를 없앴죠. 최근처럼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은 오히려 고객에게 재무 컨설팅을 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축소합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은행이 너무 많아서 인력풀이 적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양 전 행장은 “급성장에 비해 인력풀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부 인사들의 월급만 높이는 기현상이 발생한다”며 “최근과 같이 심사담당 임직원들의 자질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작년 8월부터 위기가 계속돼왔음에도 신속한 대처가 부족했던 것은 이런 이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고 일함에도 창조적인 마인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전략부재 양 전 행장의 지적은 자연스럽게 은행의 전략부재로 이어졌다. 양의 탈을 쓴 늑대
“미국은행들 보세요. 은행장 선임시 이사회(혹은 주주)와 신임행장 사이에 양해각서를 체결합니다. 은행장이 먼저 ‘자기 임기 내에 얼마만큼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겠다’는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 이걸 수용할지를 결정합니다. 이 안을 수용하면 행장에게 전권을 주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문화풍토입니다. 어찌됐든 그 목표를 이루면 재신임을 하게 되죠. 하지만 한국계 은행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날 한인은행 은행장은 실권이 없습니다. 이사회에서는 은행 앞날을 보고 행장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사회 말을 더 잘 들어주느냐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행장선임을 둘러싼 이사회 내부의 파벌싸움까지 벌어지는 것 입니다. 어느 은행에서 실적이 나빠 해고된 인사가 다른 은행에 스카우트 되는 것도 정상적인 모양새는 아니죠. 모두 이사회의 기능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 한인은행 CEO가 이사회 기분을 맞출 수 있는 평화형•아부형 CEO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결국 간부급 임원들까지도 실세 이사들의 주구로 전락했다. 양 전 행장은 이사회 입맛에 맞는 CEO를 뽑는데다 경영에도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말했다. 이사회가 원래 권한을 넘어 은행 경영 자체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인은행의 이사회는 은행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데서 더 나아가, 간섭과 지도를 이사의 역할로 잘못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행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영진의 자세가 창의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적극 추진할 수 있는 CEO의 출현을 저지하고 있는 것이죠.” 해결책은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위기탈출의 해법은 뭘까. 양 전 행장은 이사회의 살신성인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창조적인 마인드를 갖춘 행장을 선출해 인수합병과 증자 등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려면 기존의 운영진이 ‘살신성인’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M&A 프렌들리
그는 이른바 이사회의 ‘명함문화’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명함문화’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내세울 수 있는 직업 혹은 직책을 중시하는 것이다. 양 전 행장은 “은행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알아야 다른 투자자들이 은행에 투자할 것이고 이런 분위기에서 M&A가 가능하다”며 “한국사회 특유의 명함문화가 기득권을 버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한 한국적 정서와 자존심 때문에 은행 경영개선을 위한 M&A가 성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합병은 곧 중복부서와 인원 감소를 통해 경비절감을 이룰 수 있고, 다양한 규모의 고객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합병을 통한 이사수의 조정•감소를 싫어하는 이사들은 본인들의 자존심을 내세워 한인은행간 인수•합병 또는 본국대형은행들과의 제휴 논의에 차가운 반응이죠. 합병은 고질적인 인력부족문제를 해소하고 더 좋은 양질의 인력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M&A를 통해 현재 한인은행의 개수를 3개 정도로 줄여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 한인은행이 두, 세 개로 합쳐져 경쟁력을 창출해 지출을 낮추고, 좋은 인력을 골라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은행직원들의 도덕적 해이현상도 문제입니다. 다니고 있는 직장에 충성해야 다른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大)각성이 은행과 은행직원들에게 필요한 때입니다.” 이를 위해 보수적인 은행문화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양 전 행장의 생각이다. 능력 있는 인재는 행장보다 많은 보수 성과급을 주고서라도 데려와야만 창조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양 전 행장이 인터뷰 초기에 지적했던 도덕적 헤이를 바로잡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인력이 부족한 탓에 잘못을 해도 지금까지는 어느 직장이든 갈 수 있다는 생각 굳어졌던 게 사실이다. “많은 한인은행 간부들 사이에서 돈과 보수에 충성하는 풍조가 만연한 것이 사실입니다. 언제든 보수만 더 좋으면 타 은행으로 옮기는 풍토는 직장에 대한 충성도를 낮추고 여러 가지 내부기밀을 쉽게 생각하는 등 기형적인 한인은행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인적자원이 부족한 한인은행들의 환경에서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직원들에게까지 취업 기회가 열려있다는 점에서 내부적 위험요소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은행원은 입이 무거워야 그는 은행이 경제가 어려울 때야말로 고객을 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private banking 과 Investment advisory 기능을 강화해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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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은행들의 경영위기 탈출을 위한 제언 …. 양 호 전 나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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