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14일)을 앞둔 지난 12일 반가운 손님이 코리아타운을 찾았다. 미국 외교관으로서 최초의 여성 주한미대사에 임명된 캐트린 스티븐스(55) 대사는 LA코리아타운을 방문해 동포들에게 한국 부임 인사를 함과 동시에 한인 언론사들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1882년 한국과 미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주한미대사가 부임하기 전 한인사회를 방문한 것은 스티븐스 대사가 처음이다. 33년 전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충남 예산에서 활동해 ‘심은경’이란 한국명도 갖고 있는 스티븐스 대사는 한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종 우리말로 인사해 친근함을 나타냈다. 자신이 가르쳤던 예산 중학교의 학생들을 항상 추억에 담고 살았다는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하늘을 ‘천고마비’로 기억했고, 코스모스가 나란히 피어 있던 시골길을 사랑했다고 밝혔다. 스티븐스 대사는 오는 22일 그가 사랑하는 한국의 가을하늘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 주한미대사관에 금의환양한다. <제임스 최 취재부 기자>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트린 스티븐스입니다.” 스티븐스 대사는 연단에 나서 유창한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계속해서 그는 “오늘 이렇게 따뜻한 환영을 해주셔 대단히 감사합니다”고 말을 이어 나갔다. “원래 한국말로 하려고 했는데 아직 능력이 부족해 영어로 할까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돌아 올 때는 꼭 한국말로 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날 오후 한국교육원 강당에서 약 20분간 인사말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추억과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화 열정 그리고 한미관계의 끈끈함을 역설해 시선을 모았다. 이날의 라디오코리아 방송이 생중계 했다. 흰색 스웨터 차림에 전통적인 미국 중년 여성 스타일로 마이크 앞에선 스티븐스 대사는 “주한미대사의 직분은 나의 인생과 경력에서 매우 고무적인 자리”라며 “33년 전인 1975년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충남 예산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 때 본 한국의 가을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고 운을 뗐다. 스티븐스 대사는 막 한국의 기차에 내렸을 때 봤던 한국의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논에서 황금빛으로 잊어가는 벼. 감나무와 코스모스 등을 떠올리는 듯 “처음 봤던 한국의 가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감회에 젖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9월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시작되는 특별한 때”라면서 이번에도 9월에 다시 한국에 대사로 부임하게 된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대사는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외교관의 길을 가려고 작정했다. 당시 주한미대사관에서 치르는 시험이 있었는데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충남 예산에서 서울까지 가야했다. 그러나 당시 학교는 토요일도 수업이 있었다. 학교 교사들의 모든 행동은 교감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대사는 학교 교감에게 “시험이 있어 금요일 오후 일찍 퇴교해 토요일 시험을 치루고 돌아오겠다”면서 허가를 요청했다. 속으로 약간의 걱정도 있었다. 당시 교감은 “보내줄 테니 대신 시험에 꼭 합격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줘 너무나 든든했다고 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외교관이 돼 다시 한국을 방문해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격동의 시절을 함께 했다. 특히 경제적 성장과 함께 1987년 민주화 열기가 대통령 직선제 투표로 연결되는 과정을 직접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 옛날 부정선거에 얼룩진 과거와 달리, 시민들의 성숙한 모습에서 한국 민주화의 앞날을 보았다고 했다. 그다음 88서울올림픽의 감격적인 행사로 한국이 세계로 향하는 모습은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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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 미국대사(왼쪽)가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선서식에서 아들 제임스(가운데)가 지켜보는 가운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향해 대사로서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선서하고 있다. <사진 제공=미 국무부> |
연내 무비자 실현
스티븐스 대사는 한미간 현안 가운데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무비자 제도’를 부시 임기 내에 실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 행정부 임기 내에 한국의 비자면제가 실현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의 주미대사관 줄서기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울의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리는 한국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부임하자마자 대사관의 비자발급 시스템을 전면 검토해 불편을 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현안인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문제, 한미 FTA 비준 문제 등을 언급한 스티븐스 대사는 “대사 지명 이후 지난 수개월 동안 조속한 의회 비준을 위해 연방의원, 행정부 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미 양국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FTA 비준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된 한국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을 목격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민주화 과정에는 어느 나라든 기복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오는 22일 서울 부임에 앞서 먼저 LA 코리아타운을 찾은 것에 대해 스티븐스 대사는 “4월 인준청문회 당시 캘리포니아 출신 연방상원 동아시아 소위원회 바바라 박서 위원장과 한 약속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박서 의원이 “캘리포니아의 한인사회가 역동적이라면 부임하기 전에 방문해 한인사회를 보기를 원한다”고 추천했다는 것. 무엇보다 박서 의원은 한미 관계 발전에 있어 LA 한인들이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게 대사의 설명이다. 스티븐스 대사는 동포들에 대해서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진정으로 한국에 대한 깊은 존경과 이해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동포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한편 이날 스티븐스 대사가 방문한 LA 한국교육원에는 스티븐스 대사의 한국이름인 ‘심은경’이란 이름을 지어준 한인 박희근씨가 참석해 스티븐스 대사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유창한 한국어 매료
강연회를 갖기에 앞서 스티븐스 대사는 한미교육원 2층 회의실에서 한인언론들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도 “안녕하십니까. 아직까지 한국말을 잘 못하니 영어로 할까 합니다”라며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회견에서 한국말로 질문이 나와도 이를 모두 이해하여 답변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는 “부임하면 먼저 비자업무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데 주력할 것”이라며 “특히 조지 부시 행정부 기간 안에 한국과 미국과의 비자면제 프로그램이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캘리포니아주의 한인 커뮤니티가 한미동맹에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들었다. 대사로 부임한 후에도 한인 커뮤니티의 의견을 수렴하는 만큼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LA한인타운을 방문한 소감에 대해 “애리조나에서 성장했기에 낯설지 않다. 오늘 한인타운이 성장한 모습을 보니 반갑다”고 말했다. 최근 큰 이슈로 떠오른 일본의 독도 영토 주장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지난 번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영유권 미지정 지역’으로 바꾼 것을 원상회복시켰다는 것으로 설명하겠다”고 우회적으로 답했다. 그는 또 여성 주한미국 대사로 부임하는 각오에 대한 질문에는, “중요한 건 한미동맹을 21세기에 걸맞게 한 단계 도약시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많은 의견을 듣겠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낯설지 않아 기쁘다. 30년 전 한국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아직도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방문했던 충청남도와 부산도 가보고 싶고 하이킹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신임 주한미대사 캐트린 스티븐스
FTA, 한반도 비핵화, 무비자 프로그램 해결에 최선
스티븐스 대사는 2005년 여름부터 지난 7월까지 3년간 미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를 거쳐 동아태 차관보 선임 고문으로 일했다. 그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보좌하며 6자 회담 틀 안에서 가동되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특별팀을 지휘했다. 지한파인 스티븐스 대사의 부임은 부시 행정부가 북핵 협상을 임기 안에 원만히 마무리 짓고 원활한 한-미 관계 복원을 염두에 둔 신호로 보인다. 애리조나에서 성장한 스티븐스 대사는 1975~1977년 충남 부여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뒤 국무부에 들어가 1984∼89년 주한미대사관 정무과 근무를 거쳐 부산 미국문화원장을 지냈다. 광저우 영사관과 베이징 대사관에도 근무한 적이 있어 중국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스 대사는 지난 8일 국무부에서 열린 대사 취임 선서식에서 20대 초반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왔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부임을 앞둔 각오와 계획을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 사용하며 밝혔다. 스티븐스 신임 대사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비자면제프로그램 추진 등 한.미 양국의 현안 해결과 관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부임을 앞두고 한국어를 다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이 자리까지 오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인사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거명해 감사를 표시한 뒤 자신의 성장과정과 함께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참석자들에게 소개했다. 당시 한국인들의 삶은 매우 힘들었다고 회상한 그는 겨울에 교실을 가득 메운 13살짜리 시골소년 70명이 함께 칠판에 글을 쓸 때는 손가락이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장갑을 끼어야 했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의 이날 선서식에는 한국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제임스 등 가족들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이태식 주미대사, 존 워너 상원,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짐 릴리 전 주한미대사 등이 참석했다. 스티븐스 신임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는 지난 1일 미국 상원 본회의에서 인준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돼 오는 9월 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후임으로 서울에 부임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 경시를 이유로 스티븐슨의 인준을 반대했던 공화당 중진 샘 브라운벡 상원의원은 31일 전격적으로 반대 철회성명을 발표해, 인준안이 통과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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