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된 참정권,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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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한국 국회에서 재외국민참정권 관련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재외동포사회는 기대와 실망이 엇갈리고 있다.  37년 만에 참정권 회복이란 과제가 실현됐으나 해외동포사회의 현실성을 무시한 법개정으로 선거참여 방법이 지나치게 제한됐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편투표와 인터넷투표 등이 채택되지 않아 ‘반쪽짜리 법’이라는 지적도 많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이번 개정안을 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의 당리당략을 목적으로 조건을 주고받았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공직선거법·국민투표법·주민투표법 등 3가지이다. 이 중 논란의 대상은 투표방법을 제한한 조항들과 투표대상자를 제한한 조항 2개다. 진정한 참정권을 위해서는 다시금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재외동포의 권리가 확고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규제 조항이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데이빗 김 객원기자>



이번 개정안을 반기면서도 지역 동포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현지 사정을 무시한 채 통과된 5가지 조항의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고는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법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2008년 시한 막바지를 넘기면서 어렵게 통과됐다.
상대적으로 보수진영의 색채가 강한 해외동포들의 표심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판단으로 야당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240만표의 위력은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외국민 투표가 인정되면 민주당의 집권이 어렵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했다.
하지만 시한이 다가오고 재외한인들의 참정권 운동이 줄을 잇자 민주당은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나라당 역시 정략적인 판단이 먼저였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재외국민들의 성향이 대부분 한나라당과 일치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우편투표나 인터넷 투표 채택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명분은 부정선거 가능성, 관리 어려움 등을 내세웠지만 속셈은 달랐다. 인터넷, 우편투표를 허용할 경우 유학생이나 지상사 직원 등 여당에 비판적인 젊은 지식인층이 대거 투표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아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당리당략에 따른 접근 때문에 재외국민 투표법이 역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반쪽 자리 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투표하러 3시간씩 운전해 나가라고?


개정법에 따르면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장소는 고작 현지 공관에 설치된 투표소뿐이다. 추가투표소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LA나 뉴욕 등 대도시는 재외국민 유권자가 수십만명에 이르지만 투표소는 공관에 설치된 단 한 곳뿐이다.
미국에 설치된 우리 외교공관 불과 10개. 이들이 미 전역 50개주를 모두 관할하고 있는 셈이다. LA총영사관은 남가주를 포함해 네바다주, 아리조나주, 뉴멕시코주를 관장하고 있다. 따라서 뉴멕시코주에 있는 동포 유권자가 투표를 하기 위해서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와 투표를 해야한다. 항공기 여행에 드는 비용은 왕복 200~300달러씩 들고 적어도 하루는 숙박을 해야 한다. 투표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뉴욕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뉴욕 총영사관은 뉴욕주와 뉴저지, 코네티컷, 펜실베니아, 델라 웨어 등을 모두 관장하고 있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에게는 사실상 투표를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됐던 우편투표 역시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외교부 조사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 16개국 중 미국·영국 등 9개국이 우편투표만 실시하고 있고 영국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들을 개발해 놓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선거조사를 위해 미국을 답사하면서 우편투표를 실시해야 실질적인 권리행사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정치개혁위원회는 이 조항을 삭제했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생업이나 학업을 포기해야지만 투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간적인 부담과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커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도 대체투표소를 늘리는 것도 어렵다. 관할범위에 비해 각 총영사관의 인력이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비용이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면 등을 감안하면 그 대안은 우편투표나 인터넷 투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의장의 독선


외항 선원의 선상투표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화물선의 선원들이 투표하기 위해서는 항로를 바꿔 가까운 항구에 정박해야 한다. 선원들이 다수 거주하는 부산 영도구를 지역구로 하는 김형오 국회의장은 자신의 지역구를 위해 총대를 메고 팩시밀리를 이용한 선상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김형오 의장이 자기 선거구만 의식해 재외동포참정권을 소홀히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불과 몇십만 명의 선원들을 위해 300여만의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무시한 것이다.
국회의원 지역구투표에 영주권자도 배제됐다. 주민등록이 있는 단기 체류자만 부재자투표 형식으로 참정권을 부여하고 영주권자를 배제한 것이다. 재외국민을 주민등록 보유 여부에 따라 차별하지 말라고 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 문제는 또 다른 헙법 소원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국민투표 참여도 길이 막혔다. 개정법에서는 한국에 거소 신고한 1만의 재외국민만 참여하고 240만 재외국민 유권자는 배제됐다. 만일 이번 18대국회에서 대통령 중임제 헌법개정 등을 하게 될 경우 먼저 국회에서 개정하고 국민투표로 확정하게 된다면 재외국민들은 참여를 배제시켰기에 구경꾼의 자리에 서있게 된다. 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여야가 주고받은 것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선거의 공정성 안정성을 우선해야한다며 이 같은 제한 조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대로 투표를 한다면 참여율이 대폭 낮아져 재외국민선거가 유명무실해 질 것이 자명하다. 법은 있으나 실효성은 없다는 얘기다.
투표는 할 수 있다고 법으로 정하였으나 실제 그 법을 따라서 투표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다. 선관위 조사에서는 240만 유권자중 50% 이상이 참여하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라면 10%대 이하로 투표율이 곤두박질 칠 것이 자명하다. 일본은 지난 선거에서 3%만이 참여했다.
정개특위는 왜 이렇게 법을 만들었을까. 문제는 240만이나 되는 해외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디로 쏠릴 것인지 정치권이 불안해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대선정국이나 총선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은 정개특위 막판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서로 타협하게 하는 힘이 됐다.
민주당이 지역구 투표를 포기하는 대신 한나라당은 추가투표소 설치를 포기하는 식으로 주고받기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짙다. 신성한 국민주권 행사를 자신들의 당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말이다.
파행의 결과에 대해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론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선원투표를 비판하며 “음식을 접시에 담아 두루미에게 먹으라고 내준 격”이라고 비유했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영주권자에게 지역구투표를 배제한 데 대해 당 지도부에 격렬히 항의하기도 했다.




해외동포 표심이 무서워


이번 재외국민 투표권 부여와 관련, 국내외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야의 유·불리와 득실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일단은 보수정치세력에 유리한 지형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과 재외국민의 거주 지역과 세대별로 차이가 날 것이란 분석이 공존했다. 다만 박빙의 선거에서는 재외국민이 승패의 ‘캐스팅 보트’를 쥘 가능성이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정치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김윤재 변호사는 “각 정당이 재외동포를 위해 어떤 정책들을 내놓는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한인 1세대들의 경우 1990년대 전반에는 한·미 안보 공조라는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90년대 중반부터는 사회보장개혁법과 이민자보호법에 제동을 거는 공화당에서 많이 이탈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현대리서치 박원열 이사는 “재외동포의 정치성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여야의 유·불리를 진단하기는 성급하다”고 말했다. 리서치앤리서치 노규형 대표 역시 “재외국민의 거주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 판단이 어렵다”고 밝혔다.
여의도리서치 안충섭 대표는 “재외동포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에 유리한 판세가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주권자들의 경우 해외에 장기체류를 한 데다 한국전쟁 등을 겪은 노년층이 많은 만큼 아무래도 보수적 성향이 짙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안 대표는 특히 “재외동포들이 처음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측면에서 투표율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박빙의 선거에서는 재외동포 투표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컨설팅업체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도 “2007년 대선을 빼고는 과거 대선에서 모두 박빙의 승부가 벌어졌다. 영향을 분명히 미칠 것”이라고 재외동포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하지만 여야의 득실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미국 동포들의 경우 한·미동맹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면서도 “젊은 유학생들도 많아 어느 쪽이 유리, 불리하다 단정하기 힘들다”고 판단을 유보했다.
한편, 앞으로 동포사회에서도 헌법소원 등 법개정운동이 이어질 것이 보인다다. 그러면 이번에 통과된 법들은 그대로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동포참정권 운동에 앞장서온 김제완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은 “2012년 첫 번째 선거까지 3년이 남았는데 재개정 운동을 벌이기엔 충분한 시간이다”면서 “이 과정에서 소모적인 논란과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소요될 것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여야가 이번 임시국회 중 정치개혁특위를 다시 구성해서 선상투표를 논의하기로 했다”면서 “이때 선상 투표외에 다른 네 가지 문제들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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