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샌포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불륜 및 부적절한 밀월여행에 미국 정가가 들썩이고 있다. 닷새 동안 행방불명돼 정계를 발칵 뒤집었던 샌포드 주지사는 불륜관계인 애인과 함께 아르헨티나에 밀월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오는 2012년 미 대선의 공화당 잠룡 중 한명으로 꼽히는 샌포드 주지사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애팔래치아 하이킹’을 갔다고 측근에게 말한 것은 거짓이었다고 시인하고, 혼외정사 사실을 고백했다. 하지만 샌포드의 ‘고해성사’만으로는 이번 사건이 쉽게 일단락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역 일간지들은 샌포드가 애인과 주고받은 ‘끈적한’ 내용의 이메일을 공개하면서 이번 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데이빗 김 취재부 기자>
마크 샌포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8년 동안 부인 몰래 또 다른 여성과 혼외정사를 가져왔다면서, 부인과 네 아들, 자신의 참모진과 지역주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자신의 부인이 혼외정사 사실을 몇 달 전에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샌포드 주시는 지난 19일부터 휴대전화를 끈 채 사무실이나 집, 가까운 측근들과 연락을 두절했고, 이로 인해 주 의회 지도자들은 주지사 권한을 잠정적으로 부지사에게 이양하는 방안까지 논의했다. 주지사 대변인인 조엘 소여는 논란이 확산되자 23일 성명을 통해 “주지사가 애팔래치아산맥의 트레일 코스를 하이킹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주 의회 회기가 끝난 뒤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운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언론들은 샌포드 주지사의 잠적이 7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자금 수령 문제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및 그의 정적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했었다. 샌포드 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공화당 주지사협의회 의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공화당 주지사협의회 의장직만 사퇴하고 주지사직에서는 물러날 의향이 없다고 밝힌 데 대해, 공화당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샌퍼드가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을 비난하며 탄핵에 앞장섰기 때문에 더욱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이메일 내용 ‘에로소설 저리가라’
이런 가운데 사우스캐롤라이나 최대 일간지 ‘더 스테이트(The State)’는 샌퍼드 주지사와 그의 연인인 아르헨티나 여성 마리아 간에 오간 이메일을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샌퍼드 주지사는 지난해 7월 4일자 이메일에서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애절함을 표현했고, 마리아는 “지난주 당신을 만난 뒤 당신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됐다. 이런 감정은 10대 이후 처음”이라고 답장했다. 이어 샌퍼드 주지사는 7월 10일 “당신은 정말 부드러운 키스를 할 줄 안다. 당신의 그을린 몸매와 굴곡진 엉덩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희미한 불빛 속에 비친 두 개의 매혹적인 부분(가슴)을 감싸고 있는 모습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 이메일에서 둘의 관계를 “절망적으로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며 불륜에 대해 고뇌한 흔적을 보였다. 신문이 지난해 말 익명의 취재원에게 입수한 이 이메일에는 샌퍼드 주지사가 농장에서 일하는 게 즐겁다는 언급에서부터 지난해 대선 당시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 측 부통령 후보 심사 일정 등도 담겨 있었다. 매클러치사가 현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샌퍼드 주지사의 연인은 마리아 벨렌 차푸르(Chapur·43)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10대의 두 아들이 있는 이혼녀다. 현재 다국적 농산품 회사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큰 눈이 매력적인 갈색 머리를 가진 미인으로 수준급의 테니스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매일 아침마다 조깅 등 운동을 한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마리아는 영어와 스페인어 외에도 중국어·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하는 재원으로 알려졌다. 마리아가 사는 14층짜리 아파트밖엔 영하의 기온에도 불구하고 현지와 미국의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고 미 CBS 방송은 보도했다. 지구 남반구는 지금 겨울이다. 인터넷에선 네티즌들이 작년 한때 미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도 거론됐던 샌퍼드 주지사의 애인 사진을 찾으려고 난리다. 마리아의 사진을 공개한 미 일간지 뉴욕포스트는 두 사람이 2001년 9·11테러 직후 처음 만났다고 보도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TV에서 근무하던 마리아는 이 테러를 취재하려고 뉴욕으로 왔다가 샌퍼드를 우연히 만났고, 당시 결혼이 위기에 처한 마리아에게 샌퍼드가 조언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남편 바람 눈치 챈 부인
한편, 샌포드의 스캔들에 대처하는 부인의 자세도 언론의 관심거리다. 샌포드 주지사의 부인 제니 샌퍼드(46)는 지난 24일 남편의 기자회견 직후 “남편을 사랑하며, 결혼 생활을 정상화하려고 노력하겠다”는 ‘모범적인’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집 앞으로 기자들이 몰려들자 어린 네 아들에게 “보트 여행을 떠나자”고 말한 뒤 피신시켰다. 이틀 뒤 그는 AP통신과 인터뷰를 통해 남편에게 “이성을 되찾고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요구했다. 그는 “외도를 용서할 수는 있지만 묵인할 수는 없다”며 “남편의 정치 경력보다는 어린 네 아들이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제니 샌퍼드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신뢰와 애정은 두텁다고 한다. 이 지역 공화당 간부인 신디 모스텔러(Mosteller)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꿋꿋한 모습을 보여준 제니는 그의 자녀는 물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전체의 영웅”이라며 “만약 지금 당장 주지사 선거를 한다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모든 여성들이 제니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街) 금융인 출신의 제니는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최측근 정치 참모로서 뒷바라지를 해왔다. 선거 때면 아이를 돌보고, 세탁기를 돌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다른 참모들과 전략을 상의했다. 샌퍼드 주지사의 전 대변인인 윌 포크스(Folks)는 “제니가 없었다면 샌퍼드는 주지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도덕성에 치명타
공화당은 이번 사건으로 당 노선에 심각한 치명상을 입게 됐다. 앞서 공화당 차기 대선주자군에 포함돼 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 때 탄핵을 주도하며 윤리적 강경론자로 불렸던 네바다주의 존 엔자인 상원의원도 혼외정사 문제로 지난달 17일 당 정치위원회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지난 2007년 12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자신의 선거참모로 일했던 기혼여성과 혼외관계를 맺어왔다. 최근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공화당이 ‘엔자인 파문’에 이어 또 다시 ‘샌포드 파문’을 겪게 되면서 당의 재건 노력에 차질이 불가피해 졌다. 공화당을 뒤흔든 잇단 성추문은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 순위로 둬 왔던 공화당의 정책 노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회의를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스캔들’보다 ‘위선’이 문제
정치인의 성(性) 스캔들은 정치 생명에 마침표를 찍는 치명적 죄악일까. 성 스캔들이 그 자체로 정치인에게 극약인 것은 아니다. 아내의 개인 비서와 관계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Roosevelt·1882~1945), 여배우 등과 염문을 뿌린 존 F 케네디(Kennedy· 1917~1963) 전 대통령은 건재했다. 또 언론이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면서, 이들 스캔들을 보는 미국인들의 인식도 과거보다 관대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6일 “스캔들에 ‘위선(hypocrisy)’과 ‘직권 남용(abuse-of-office)’ 요소가 추가될 때에 정치인이 파멸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루디 줄리아니(Giuliani) 전 뉴욕시장은 1995년과 2000년의 수차례 스캔들에서 관용 차량을 밀회(密會)에 이용했기 때문에 더욱 공격을 받았다. 시장의 직위를 남용한 것이다. 작년 8월 뉴욕타임스(NYT)가 폭로한 엘리엇 스피처(Spitzer) 당시 뉴욕 주지사의 스캔들에는 ‘위선’의 낙인이 찍혔다. 월가의 금융 부정을 파헤치던 검사 출신의 주지사가 워싱턴 DC의 고급 콜걸 조직을 통해 성매매를 한 것은 동정을 살 수 없었다. 작년 민주당 대선 경선을 중도 포기했던 존 에드워즈(Edwards) 전 상원의원도 이후 혼외정사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 생명이 끝났다. 암 투병하는 아내를 끔찍이 아낀다는 이미지가 결국 ‘위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샌퍼드는 이런 면에서 ‘위선’과 ‘직권 남용’ 양쪽에 모두 해당된다고 WSJ는 진단했다. 그는 가족의 가치를 강조한 보수파였고,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을 일으킨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해선 “도덕적 정통성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클린턴 탄핵에 찬성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날’ 주말에 아들 넷을 버려두고 멀리 아르헨티나의 정부(情婦)를 만나러 갔다. 작년에는 주 정부 비용으로 간 공무 목적 출장 중에도 이 여성을 만났다. 지금 다시 공화당 재건에 앞장선 뉴트 깅리치(Gingrich) 전 하원의장은 예외다. 두 번 이혼 경력에 스스로 클린턴 탄핵 시 자신도 불륜을 저질렀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그런 그가 살아남은 비결은 일반인들이 그를 어차피 ‘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치의 신봉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WSJ는 진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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