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삭감 둘러싼 국방부 장차관의 대충돌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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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본국 국방부에서는 가히 ‘하극상’이라 불릴만큼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내년도 국방예산삭감 문제를 둘러싸고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장수만 국방부 차관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장 차관이 이 장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청와대에 국방부 공식 입장과 다른 보고서를 제출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장관은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보냈고 이러면서 일은 더욱 커졌다. 사태가 확산되자 청와대와 총리실이 나서서 수습했지만 이번 사건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됐던 ‘경제만능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군 출신이 아닌 경제관료 출신인 장 차관은 경제논리를 앞세워 국방비 예산삭감을 주장했고 이 장관은 안보 논리가 경제 논리에 우선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그 동안 정치권에서 회자되던 ‘차관정치’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몇 명이 정부부처에서 장관보다 더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며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이번 예산안 삭감도 장 차관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핵심 차관들 사이에서 논의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방부 초유의 장성급 하극상 사건의 내막을 <선데이저널>이 쫓아가봤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육군 대장 출신인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장수만 국방부 차관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온 것은 이 장관이 국방비 예산삭감 움직임에 대해 청와대에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부터다. 이 장관은 25일 최근의 예산 삭감 움직임에 강한 톤의 반대 입장을 담은 서한을 청와대의 정정길 대통령실장, 윤진식 경제수석,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국방부는 당초 내년 증가율을 7.9%로 잡은 30조7817억원의 예산안을 청와대에 제출해 놓고 있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달 초 장수만 차관은 이 장관에게 보고를 하지 않은 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3.4~3.8% 증가로도 충분하다는 취지의 예산 삭감안을 보고했다.
국방부 한 관계자는 “장 차관이 윤 수석에게 삭감안을 보고한 뒤 이 장관에게는 정확하게 사후 보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이에 따라 이 장관은 다른 채널로 장 차관의 청와대 보고 내용을 확인했고 추후 장 차관이 이 장관에게 이 부분에 사과를 했다”고 전했다.
예산이 결정되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이 장관이 ‘예산 고수’를 위한 서한을 작성해 청와대와 재정부 장관 등에게 보냈다는 얘기다.
이 장관은 특히 서한에서 “차관이 단독으로 청와대와 국방예산을 협의한 행동은 자칫 일부 군인에게는 하극상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사용했다.


출신 다른 두 사람


두 사람이 마찰을 일으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장 차관이 군인 출신이 아닌 경제 관료 출신이란 점 때문이다. 이 장관은 소신이 뚜렷한 강성 스타일로 기율을 중시한다. 장 차관은 경제부처(재경부·재경원)에서 잔뼈가 굵은 네 번째 민간 출신 국방부 차관이다. 2007년 이명박 후보의 경선 캠프에 합류한 뒤 현 정부 출범 후 조달청장에 발탁됐었다.
지난 1월 국방부 차관으로 옮긴 장 차관은 지난달 25일 국방부 예산 관련 워크숍을 주관하면서도 “줄일 것이 있으면 줄여야 한다”고 자신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2020년까지의 국방개혁을 위해 621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노무현 정부 때의 ‘국방개혁 2020’ 예산을 지난 6월 599조원으로 줄이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장 차관은 청와대 보고에서 지난해에 비해 11.5% 증액 편성된 내년도 방위력 개선비도 5.5%로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 방위력 개선비는 주로 무기 등을 확보하는 예산이다.
장 차관의 이런 정책에는 어려워진 경제상황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 논리를 우선시하는 것이 근저에 깔려있다.
경제관료 출신 차관이 ‘경제 논리’ 운운하면서 예산삭감을 주도하자 안보 논리를 내세운 국방부 측의 불만은 거셌다.
국방부 측은 “예산 증가율이 3.8%로 낮아지면 장병들의 병영생활관 현대화와 군 의무체계 개선 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부서 내 분위기를 대변했다.
육군 대장 출신인 민주당 서종표 의원도 “60만 군의 심장인 국방부에서 군의 생명인 상명하복의 질서가 무너졌다”며 “국가안보를 경제논리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군대에서 불만을 가질만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동안 항공기 이착륙 안전 문제로 지난 정부까지 허가가 유보돼왔던 제2롯데월드 건축을 이명박 정부는 전격적으로 허가했다. 당시에도 안보논리보다 경제논리가 우선됐다. 대형건축물을 지을시 발생하는 경제효과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조치였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경제관료 출신인 차관이 예산을 편성하고 조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부서 내에서 자체 조율했어야 될 일을 갖고 청와대에 서한까지 보낸 장관의 대응방식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가 제출한 예산안의 평균 증가율이 4.9%인 상황에서 국방예산만 어떻게 7~8% 늘릴 수 있겠느냐”고 언급했다.




겉으로는 화해 제스춰


이같은 국방부 장·차관의 대립이 언론을 통해 불거져 나오자 정부 차원에서 부랴부랴 사건을 수습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27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을 불러 “경제가 어렵지만 내년도 국방예산은 일반회계 증가율보다 높게 책정하려 하는데도 장관 서한으로 마치 안보를 소홀히 하는 것처럼 비쳐지게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였다”면서 “다시는 이같은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질책했다.
또한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두 사람은 지난 주말 만나 함께 골프를 치기도 했다. 군의 한 소식통은 31일 “이 장관과 장 차관이 30일 오전 수도권의 한 군 체력단련장(골프장)에서 골프 모임을 했다”면서 “이 모임은 이 장관이 주관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지난 27일 종료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기간에 ‘훈련 관찰관’을 맡았던 예비역 장성 7~8명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골프 모임을 주선했으며 장 차관도 참석하도록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 장관과 장 차관 등 10여명은 조를 편성해 18홀을 돌고서 오찬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겉으로는 두 사람이 화해의 제스춰를 취한 모양새다.
하지만 군 주변에서는 여전히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차관정치 논란


특히 이번 사건의 근저에는 MB 정부 출범 이후 논란이 되어 왔던 ‘차관정치’가 처음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게 이번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의 설명이다.
‘차관정치’란 정부 부처에 차관으로 포진한 핵심 실세들이 장관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정책을 주무르는 것을 빗대어 하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이 정권 최고 실세로 통하는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장수만 차관도 이 멤버 중에 한 사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예산 삭감 문제도 이 모임에서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그동안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지출과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인해 향후 정부의 재정 운용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이 적자를 메워야했던 것이 국방비 예산 삭감의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방부 예산이 전체 정부 예산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떄문에 국방비 예산을 조금만 삭감하면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를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군이 엄청난 국방비를 쓰고 있으나 비리나 비효율적인 부분이 적지 않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한 요인인 것이다. 실제로 금년도 국방예산은 28조5326억원으로 정부 재정의 1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엔 김영삼 정부 이후 종종 터져 나온 무기도입 또는 군수조달 관련 비리 사건 등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세종대왕함과 같은 이지스함이 한 척당 1조원, 공군 최신예 F-15 전투기가 한 대에 1000억원, 세계정상급 차기 전차 XK-2 ‘흑표’가 한 대에 80여억원씩이나 하니, 이렇게 엄청나게 비싼 무기를 몇 대만 덜 사도 사회복지나 교육 사업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의들이 차관들의 모임에서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장 차관이 청와대에 예산 삭감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듯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무기 도입 과정에서 리베이트만 줄여도 국방비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기도입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실제 무기도입 커미션은 대형사업이 계약액의 1% 미만, 중소 규모 사업이 1~5%가 관행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살리기’를 정권 캐치프레이즈로 내 건 현 정부에서는 이러한 경제논리가 안보논리보다 당연하게 우선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군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다가 이번 사건이 터졌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무조건 적으로 경제만능주의로 모든 정책을 처리하다보면 분명 다른 부처에서도 잇따른 사고가 터질 것이라는 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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