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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양대 항공사인 대한항공(KAL)과 아시아나(Asiana)항공이 미국 항공시장에서 담합으로 인한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지난 2007년 8월과 올해 4월 각각 3억 달러와 5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이와 관련 최근 한국인 승객 2명이 ‘그동안 부당하게 산정된 항공료를 돌려달라’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본지 9월13일자 보도) 과거 이들 항공사의 부당행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국내·외에서 불거지고 있다. 상당수 대중들은 이번 소송을 마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담합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미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담합행위는 사실이지만 부당행위를 주도한 ‘주동자’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즉 정작 비난받아야할 대상은 쏙 빠진 채 국내 항공사들이 억울한 뭇매를 맞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미 법무부에 적발된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니 뿐 아니라 독일의 루프트한자, 프랑스의 에어프랑스, 영국 브리티쉬 항공 등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또 개발도상국 내 항공사를 포함하면 수십 개의 업체들이 리스트에 올랐다. 그렇다면 왜 유독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등 본국 항공사들만 ‘부정담합’의 주체로 뭇매를 맞은 걸까. 항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의 세계적 명성이 독이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대한항공은 세계 10대 항공사이며, 항공화물 운수 실적으로 따지면 세계 1위 수준이다. 또 태평양 노선에서 한국-미국 간 여행객 운항 실적도 세계 최고다. 대한항공은 2004년 화물운송 1위에 등극하며 총 2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유독 대한항공이 다른 항공사에 비해 많은 벌금을 선고받은 것도 매출규모에 따른 것이다. 자연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선데이저널> 취재결과 당초 문제의 담합을 주도한 것은 루프트한자 항공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작 루프트한자는 다른 항공사들을 배신하고 미국 당국에 이 같은 사실을 자수하며 ‘면죄부’를 얻은 것이다. 이 바람에 대한항공을 비롯한 수십 개의 항공사들이 ‘벌금 폭탄’에 민사소송까지 당하는 불운을 겪게 됐다. <성진 취재부기자> |
LA국제공항에는 KAL 점보기를 비롯해 세계 각국 항공사 소속 민항기가 수시로 드나든다. 미국 내 항공사 이외에 외국 항공사 29개가 밀집해 있는 LA국제공항은 지난 7월 한 달 동안에만 약 560만 명이 넘는 여행객이 오갔으며 항공기 운항건수는 4만5000회나 됐다. 하지만 최근 항공사들의 사정은 좋지 않다. 유가 급등으로 본전도 못 벌어들이는 노선이 늘고 있어 항공사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고심 중이다. 특히 수십 개의 항공사가 밀집한 미국 내 공항에는 항공사끼리 피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항공기업들은 자연히 주재국의 항공 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대책 마련에 부심할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가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석유파동으로 항공료가 급등하며 루프트한자는 타 항공사들과 ‘은밀한 협약’을 제안한 것. 당시 LA 루프트한자 항공 관계자는 커피타임을 이유로 대한항공을 포함한 외국 항공사 관계자들과 만났다. 이 관계자는 “생존경쟁에서 우리 모두가 살아남는 방법”이라며 “기름값이 오를 때마다 항공료를 비슷한 수준으로 올리자”고 제의했다. 이는 명백한 부당 담합행위다. 이 같은 제의는 다른 항공사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루프트한자에서 주도한 모임은 자연히 LA국제공항 내 항공사들의 조직적인 담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루프트한자 독일 본사가 이 같은 이상기류를 눈치 채며 밀월기간은 끝나고 말았다. 루프트한자 본사는 자사 지점이 주도한 행위가 미국 정부가 상시 단속하는 반독점법 위반 사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본사는 당장 LA지사에 ‘미국 당국에 담합사실을 알리고 자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셔먼 반독재법’ 외국 기업 숨통 죄기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마다 동종업종의 기업이 짜고 가격을 담합 할 경우 거액의 벌금을 물리는 규제법이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셔먼 반독점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은 1890년 7월 2일, 벤자민 해리슨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당시 해리슨 대통령은 반독재법 실시에 다소 불만을 표했지만 상원 표결에서 51:1,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돼 거부권을 행사할 여지가 없었다. 제안자는 오하이오 출신 상원의원 존 셔먼으로 법규의 명칭은 그의 이름을 따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이 됐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미국에서 반독점법이 마련된 이유는 당시 독과점으로 인한 서민경제의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가격을 낮춰 경쟁사를 무너뜨린 후 독점체제를 구축해 폭리를 취하는 악덕 기업이 급증하며 이들을 제제한 법적 장치 마련이 불가피했던 것. 상당수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해당 법규 마련에 저항했지만 셔먼 상원의원은 “정치체제로서 군주를 원하지 않듯 경제체제로서 독점을 원하지 않는다”며 반론을 잠재웠다. 셔먼 반독점법의 골자는 크게 세 가지다. 거래나 상업을 제한하는 모든 계약은 무효로 규정(1조) 하고 독점화 시도를 금지(2조)했으며 독점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4조)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이 법은 내용이 모호한데다 기업의 로비와 편법으로 사문화하던 셔먼법이 작동한 것은 독과점을 죄악시하던 디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집권 이후 한때 미국 석유공급의 90%를 차지하던 스탠더드 오일이 5년여 소송 끝에 1911년 해체 판결을 받았다. 아메리칸 토바코사에 대해서도 분할 판결이 떨어졌다. 미국은 1913년 클레이턴법과 연방거래위원회법을 제정, 독점 규제를 더욱 가다듬었다. 전 세계 100여개 국가 독점방지법의 기본 모델이자 ‘공정경쟁을 위한 마그나 카르타’로 불리는 셔먼법은 정작 본고장에서 다른 각도의 불공정 시비를 낳고 있다. 1998년 이후 셔먼법 위반 혐의로 미국내에서 기소된 기업의 절반이 외국계 회사였다. 앞으로 한미 FTA로 우리 기업이 미국 반독점법에 걸려들 가능성도 더 커졌다.
“자수하면 선처” 배신 불렀다
미 법무부는 반독점법을 내세워 이 같은 사실을 ‘자진납세’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선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자수하면 광명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불공정행위를 밝힌다 해도 모두 선처를 받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다른 기업보다 선수를 처야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First come, first serve’로 불리는 이 법은 2005년 5월 하이닉스가 미국에서 가격 담합을 벌인 혐의로 1억8500만 달러, 2005년 11월 삼성전자가 같은 혐의로 3억 달러, 2007년 8월 대한항공이 항공화물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3억 달러의 벌금을 문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특히 미국의 독점금지법은 ‘양벌규정’으로 담합을 한 기업에는 고액의 벌금을 물리고 이를 수행한 직원에게는 징역형을 선고한다. 이 같은 불공정 금지법은 유럽연합(EU)에서는 ‘경쟁법(Competition Act)’으로 불리며, 한국에서도 ‘공정거래법(Fair Trade Act)’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들 규제는 담합행위를 살인이나 테러에 준하는 범죄로 본다. 그래서 이를 척결하기 ‘미끼’를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담합을 했더라도 가장 먼저 사실을 자수한 기업에는 면책 기회를 주는 식이다. 미 당국은 담합을 한 기업에겐 해당 기업이 담합 기간 동안 자국에서 올린 총매출액의 15~80%를 벌금으로 부과한다. 통상적으로 순익은 매출액의 10%를 넘기 어려우므로 매출액의 15~80%를 벌금으로 물리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적자를 넘어 폐업 직전의 위기상황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미국에서 담합행위를 벌인 기업이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국의 ‘앞잡이’가 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알린 기업은 100% 벌금을 면제받음과 동시에 형사 처벌도 피할 수 있다. 이보다 한발 늦어 두 번째로 자수하는 기업은 벌금의 50%를 깎아주고 세 번째로 자수하는 기업은 벌금의 10%를 감면해준다. 이들 역시 정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난 2007년 담합행위 적발과 관련해 두 번째로 사실을 밝힌 항공사는 브리티쉬 항공사였다. 그리고 뒤를 이어 대한항공이 담합사실을 알리고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자수한 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대한항공은 3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물론 배신자가 돼 벌금형과 형사처벌을 면한 루프트한자의 심기도 편하지만은 않다.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자국 승객으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한 것을 계기로 각국 항공사에 대한 고객들의 집단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의 담합행위로 인한 민사소송은 보통 집단소송의 형태로 제기된다. 이는 일부 피해자(여행객)가 다수 피해자를 대표해 제기하는 것으로 가격담합 이전 정상가격과 담합된 가격간 차액의 약 2~3배를 배상금으로 물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배상금은 2000년~2006년 7월 말 까지 두 항공사가 부당하게 취득한 금액과 벌금을 합해 산출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2006년 한 해 동안 미주 노선을 이용한 두 항공사의 승객은 270만 명이 넘는다”며 “전체 손해배상액은 수 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소송을 제기한 로펌의 모 변호사는 “한국과 미국의 소비자가 함께 소송을 제기해 항공업계 민사소송 사상 가장 큰 배상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천문학적 배상금 지불 가능성
지난 1일 한인 권모씨 등이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원고 측은 해당 기간동안 모두 6번 한국-LA 미주노선을 이용했다. 이들이 부당하게 지불했다고 주장하는 항공료는 수천달러 상당이다. 한국인 탑승자가 미 연방법무부에서 가격 담합 처벌을 받은 자국 기업을 상대로 제소한 것은 처음이다. 또 원고 측 변호인단으로 나선 ‘하겐 버몬 엔 사피로’ 변호사 사무실은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지난 2007년에도 시애틀 지역 내 연방법원에 대한항공을 상대로 승객들의 집단소송을 담당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해당 변호사 사무실은 인터넷을 통해 계속 집단소송 고객을 모집하고 있다. 사무실 관계자는 “2000년 1월 1일~2006년 7월16일 사이 대한항공을 탑승한 승객들의 보상 신청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엄청난 벌금폭탄을 맞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동포 고객으로부터 제기된 집단 소송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 국적인 두 항공사는 이미 법무부에 거액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한 데 이어 집단소송에 따른 손해배상금액까지 책임질 처지다. 이들 항공사는 지난 2000년 1월~2006년 7월말까지 약 6년 7개월간 유류가격이 인상되면 유류 할증료를 올리는 식으로 요금을 담합한 사실이 드러났다. 두 항공사는 화물 및 여객운임을 담합한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화물 요금의 경우 2000년 1월~2006년 2월까지 가격담합 혐의가 적용됐다. 대한항공은 2007년 8월 1일 미국 법무부와 3억 달러의 벌금징수에 합의했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4월 9일 5000만 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미 법무부는 대한항공 관련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케이스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여행객인 소비자들이 승소할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손해는 천문학적 금액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부당담합 혐의로 적발된 항공사들은 루프트한자 외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브리티시 항공, 에어 프랑스, SAS, UA, 아메리칸 항공, 에어 캐나다, 폴라 에어카고, 캐세이퍼시픽, 일본 항공 등이다. 미국정부의 ‘반독점법’운용에 대해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국내에서 영업하는 수많은 항공사를 대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한 소명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영업 중인 항공사들은 자사 직원들이 담합에 가담하지 않았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유럽도 공정거래기관이 미국법무부처럼 외국 항공사를 상대로 여객 및 항공화물 가격 담합을 조사 중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도 조사대상으로 포함됐다. 국제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들은 글로벌 기업의 성격이 강해 한 국가에서 항공사들의 담합사실이 밝혀지면 다른 국가에서도 연쇄적으로 관련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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