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없이 사라진 1차 성금 445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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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폭동 특집 기획연재
(1) 잊혀진 4.29폭동’의 진실
(2) 4.29 폭동성금의 진실(중)
(3) 한인정체성 확립과 4.29
(4) 4.29와 흑인민권운동
(5) 4.29와 미주한인사회

4.29폭동으로 인한 동포사회 피해를 재건하고 복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성금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92년 5월 초순 LA총영사관의 주도로 구성된 ‘폭동긴급대책위원회’ 산하에 마련된 성금관리위원회(한미구호재단의 전신, 초대 위원장 하기환)와 4.29폭동피해자협의회(Association of Korean American Victims of LA Riot·회장 이정·이하 피해자협의회) 그리고 4.29피해식품상인협회(회장 서정준) 등이 거액의 성금을 두고 분쟁에 휘말리면서 미주한인이민사에 씻을 수 없는 추태로 기록됐다.
특히 폭동 발생 2개월 후 본국에서 전달된 1차 성금 445여만 달러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져, 총영사관이 농성대에 의해 점거되고, 관련자들이 멱살잡이를 하는 등 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또 다른 폭동이 여기에 있다”면서 치를 떨기도 했다.
1차 성금은 1992년 당시 7월 21일 4.29폭동피해자협의회에 전달됐다. 이후 수개월 동안 약 1000만 달러의 성금이 이런저런 명분으로 소진돼 폭동 1주년인 1993년 불과 125여만 달러만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마도 2009년 8월 현재로 한미구호재단(성금관리위원회 후신)이 법적으로 폐쇄되면서 한 푼도 남지 않은 채 역사 속에 사라져 갔다.
국민적 성원으로 모인 엄청난 규모의 귀중한 성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공식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장본인들은 말이 없다. 당시 박종상 총영사, 김항경 총영사 등 공관장, 성금관련 한미구호재단의 하기환, 최상봉, 곽철, 이민휘, 전주찬 역대 이사장들과 임원들, 그리고 피해자협의회 이정 회장, 피해식품상인협회 서정준 회장을 포함한 임원들은 관련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여기엔 성금을 모은 언론사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선데이저널>은 지난 호에 이어 폭동성금의 진실과 의혹을 추적 보도한다.  
                                                                                                       <성진 취재부기자>



4.29폭동의 충격이 생생히 남아 있던 1992년 6월 25일 타운에는 ‘서울에서 폭동 성금이 도착했다’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정 피해자협의회 회장 등이 당시 박종상 총영사를 7월 6일 면담하면서 성금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들은 것.
이 자리에서 박 총영사는 “본국 성금과 미주 성금 총액 약 700만 달러를 융자보증방식으로 활용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피해자협의회는 즉각 반발하면서 성금사용에 대한 공청회를 7월 11일 동양선교교회에서 개최했다. 협의회는 다음 날 총영사관에 공청회 결과를 통보하는 서신에서 “총인원 1000여명이 참석한 공청회에서 토의 끝에 성금을 전체 피해자에게 공평하게 분배할 것을 절대다수의 찬성으로(반대 13명) 표결 통과됐다”면서 “빠른 시일 내에 성금이 배분될 수 있게 협조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총영사관이 입장표명을 통해 “피해자 700여명을 선정해 3년 거치상환으로 융자를 검토하고, 또 성금을 코리아타운 재건, 흑인촌에 체육관 건립지원, 청소년 선도기금, 무주택한인들을 위한 아파트 건립할 것” 등의 계획을 발표하자 피해자협의회가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7월 21일에 총영사관에서 성금분과위원회가 열리자 피해자협의회 측 200여명이 영사관 건물에 진입해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 당시 회의장에서 박 총영사가 ‘성금을 융자보증방식으로 일차 700명을 선정할 것’이라는 설명에 흥분한 피해자들은 회의장으로 난입해 점검하고 밤샘 농성에 들어갔다.
이 같은 사태는 즉각 한국에도 알려져 정부 각료들이 이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며 토의에 들어갔다. 다음 날 22일 오전에 본국 정부에서 훈령이 전달되면서 변승국 부총영사가 하기환 위원장을 공관으로 불러 이날 문제의 본국 성금 (수표·액면 445만578 달러12센트)를 이정 피해자협의회 회장에게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양현승 목사가 양측을 오가며 중재에 나섰다. LA총영사관에서 전달한 수표는 ‘Korean American Relief Fund’ 이름으로 발행했으며 변승국 부총영사와 하기환 위원장이 공동으로 이서했다. 
수표를 받은 이정 피해자협회 회장은 성금수표를 당시 총영사관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가주한국외환은행 지점(당시 지점장 유장철)에 입금시켰다. 그러나 다음날 23일 아침 “수표가 지불정지 됐다”라는 소문이 퍼졌다.
깜작 놀란 이정 회장은 가주외환은행 지점에 가서 100 달러를 인출하려고 협의회 수표를 들이 밀었다. 창구 직원이 “어제 입금한 성금수표가 지불정지 됐다”고 했다. 다시 10 달러를 입금하려해도 창구 직원은 받지 않았다.
지불정지 요청은 하기환 위원장의 요청으로 23일 상오 은행에 접수된 것으로 밝혀졌다. 하 위원장은 지불정지 요청을 접수 시킨 후 행방을 감추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가주외환은행의 유장철 지점장과 간부들도 자리를 비웠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불정지 요청이 들어와 은행은 법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외환은행측은 7월 24일자로 피해자협의회로 보낸 서신에서 피해자협의회 계좌 (번호 001-842714)는 하기환 위원장의 요청으로 금융재정규정 952조에 근거해 계좌 기금 지불이 동결됐다고 밝히면서 하 위원장의 지불정지 요청서 사본을 제시했다.
하 위원장이 7월 23일자로 작성한 요청서는 모두 8개 항으로 되어 있는데 주요 골자는 ‘성금 수표를 이서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극도의 강압적인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서명을 하도록 당했다’라는 것과 ‘이 성금수표를 이서한 이후 본인은 피해자협의회측이 이 기금을 정당하게 사용치 않을 것이란 일부의 주장이 제기되었고 충분한 증거가 있다’라고 했다.




성금으로 받은 수표가 지불정지?!








당시 한인스와밋피해자협회나 한인식품상협회 등도 피해자협의회가 일방적으로 성금을 사용할 것이란 점을 우려했다. 당시 4.29폭동피해식품상인협회는 피해자협의회가 성금수표를 받기 위해 총영사관을 점거 농성하면서 “무력에 의한 강탈행위”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식품상협회는 “성금관리위원 13인 위원의 동의를 얻지 않은 하기환 위원장의 성금수표 이서는 무효”라면서 하 위원장이 은행측에 지불정지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지로 하 위원장은 은행에 보낸 지불정지 요청서에 이 같은 사실도 명기했다.
당시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심항구)는 22일 오전 긴급 임원회의를 갖고 성금 700만 달러를 배분함에 있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유로운 절차를 무시하고 이를 폭력 및 물리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 일부 교포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를 통해 교회협의회는 ‘4.29폭동피해자는 LA에서는 미주교포 전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성금 700만 달러 중에는 기독교교회의 헌금 및 기독교인들의 개별적인 헌금이 다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피해자를 위해 헌금하는 동안 흑인사회에서 술을 판매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귀중한 헌금을 할 수 없다는 여론도 상당히 있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번 헌금은 직접 피해를 본 교포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이와 같은 엄청난 사건의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고 밝혔다.
총영사관측은 하 위원장이 23일 아침 은행에 지불정지요청을 했으며 은행에서 일단 계좌를 동결시키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박종상 총영사는 23일 “성금 문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유감”이라며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합치되면 인출정지를 해제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피해자협의회측은 은행의 지불정지 조치에 즉각 버튼 맥크로후 변호사를 선임해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원 측이 수표지불 해지를 명령해 피해자협의회측은 성금수표를 외환은행에서 웰스 파고 은행으로 이전시켰다. 이어 협의회는 피해자 1세대 당 2,500 달러씩 분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자 피해자 2명이 성금배분에 문제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성금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후 피해자협의회측은 8월 13일부터 9월 8일까지 1차 및 2차 성금 분배를 실시했다.  
그러나 피해자협의회측의 성금분배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등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반의 비난도 높았다. 중앙일보는 “피해자협 성금분배 안개 속”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용도 불분명한 96만8천 달러 동결, 사용내역 감사도 어물쩍’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도 “피해자협의회, 남은 성금 120만 달러 행방 의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수표 500매 공중 떠, 이정 회장 소재불명”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피해자협의회도 문제”


이에 대해 피해자협의회측은 “언론이 허위보도를 했다”면서 한국일보 등에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그 해 9월 1일자로 피해자협의회는 1차 성금 445여만 달러 분배에 대한 재무보고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1,455명에 2,500 달러씩 총 363만5천 달러가 지불됐고, 미국정부 상대 소송 공탁예치금으로 76만 6천 달러, 변호사에게 35,000 달러 등이고, 그 이외 컴퓨터 작업, 복사기 임대 구입, 수혜자 촬영기 임대, 현장 조사비용, 경비원 인건비, 사무 행정비 등등이었다.
보고서는 총 수입 비용이 $4,452,112.79, 총지출 $4,451,969.89로 잔액이 142 달러라고 밝혔다.  이후에도 나머지 성금을 두고 계속 혼란이 가중되고, 총영사가 멱살이 잡히는 소동까지 야기됐다.
(다음주 추가 보도 예정) 한편 본지는 최근 타운 일각에서 제기된 “125만 달러 폭동기금 의혹설”에 대해 한미구호재단의 최종단계의 4대 이사장을 지낸 이민휘 미주동포후원재단 명예이사장과 마지막 한미구호재단을 맡았던 전주찬 5대 이사장을 만났다.
이 명예이사장은 “폭동성금과 관련해 재단의 어느 임원이나 누구도 성금을 착복한 일도 없으며, 횡령이나 유용도 없었다”면서 “모두가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건물 구입과 매각에 손실을 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당시 우리도 유대인 사회의 공익재단처럼 성금을 사용했어야 했었다”면서 “후세를 위한 재단이 꼭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하려고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은 것을 어떡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당시 건물 매입이나 매각 절차 등 모든 사항이 당시 이사회의 의결을 거처 집행되었고, 언론에서도 이를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그러나 동포사회가 바라는 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점에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미구호재단 전주찬 5대 이사장은 “현재 MBC아메리카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을 1993년 당시 서정준 피해상인협회장 등을 포함한 이사들이 주축이 되어 매입했으나 건물 관리비가 엄청나 다시 매각해야만 했다”라며 “우리들은 건물을 유지하려고 모든 수단을 강구했으나 노후된 건물이라 계속 손실이 발생해 매각하지 않으면 그나마 일부 기금도 건지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문제의 건물을 한미동포재단 이사장을 지낸 박형만 회장에게 팔고 난 후 손익계산서에서 약 20여만 달러가 남았다”면서 “이 모든 사항도 당시 언론에 공개했다”고 밝혔다. 전 이사장은 “사실상 잔여 투자분(미래은행, 임경자)이 손실되고 지난해 8월 미래은행 파산과 함께 재단도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한편 4.29폭동 피해자 복구사업에 관여했던 오봉균 목사는 “4.29폭동의 밝혀지지 않은 진상들이 너무나 많다”면서 “한미구호재단에 관련된 사항도 전문가들에 의해 조사와 회계처리를 집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타운 일각에서 구체적 사항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폭로하는 경향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면서 “만약 잘못된 사실이 있다면 사직당국에 고발하면 될 것이다”면서 “내 개인적으로는 법정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웠으면 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다음 호에 계속)







허공 속에 사라진 성금 용처놓고 혼란

“모처럼 모은 거금으로 큰 효과를 내게 하자” 
“골고루 나눠 주어 푼돈 되게 하지 말자”

4.29폭동 당시 폭동피해자들을 위해 세법 관련 등 여러 분야에 도움을 주었던 남가주한미공인회계사협회 4.29재해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하워드 이)는 당시 LA지역에서 거둔 동포성금을 300만 달러로 추정하고, 본국에서 송금되어 올 예상 성금 금액을 약1천만 달러로 추산해, 전체 폭동성금을 1천3백만 달러로 예상했다. 
회계사협회는 4.29폭동에서 한인 상인들이 입은 손실이 약 3억5천만 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했으며 이 중 약 50%는 보험으로 보상될 것으로 추정해 나머지 1억7천만 달러의 복구자금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폭동성금 예상액이 1천3백만 달러에 불과하여 1억7천만 달러의 무보험자 재해복구용으로는 금액이 너무 적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폭동성금을 골고루 직접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는 무보험 피해 상인들에게 그들의 손실의 고작 7.6%에 불과한 적은 금액을 지급하는 결과가 된다고 보아 이 같은 적은 금액으로 피해 상인들이 다시 재기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설사 골고루 나눠 준다는 것은 그 분배의 기준설정이 극히 어렵고 각양각색의 상인들마다 피해 실태를 확인한다는 것은 당시로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들 회계사협회측은 폭동성금을 사용하는 방안으로 ‘융자보증제도’라는 안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한미변호사회도 이 같은 방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이 방안은 당시 4.29폭동피해자협의회(회장 이정)측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18년이 지난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소탐대실”(적은 것을 탐내다가 큰 일을 망치다)이었다며 후회를 하고 있다.
‘융자보증제도’를 통해 한인피해자들의 재건사업과 복구를 꾀하자는 제안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무보험 피해상인들의 사업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약 1억7천만 달러가 필요한데 폭동성금은 약 1천3백만 달러 밖에 안되어 이 성금을 사용함에 있어 상승효과(또는 지렛대 효과(leverage)를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적은 보증기금으로 그의 몇 십 배의 융자금을 풀게 할 수 있는 융자보증제도라는 것이다. 만약 이 방안이 실현됐다면 오늘날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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