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민의 숙원이었던 건강보험 개혁안이 지난 21일 미 하원을 통과했다. 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은 3200만명의 무보험 국민에게 추가로 보험혜택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은 전국민 건강보험 개혁안이 거론된 지 약 100년 만에 관련 법안을 갖게 됐다. 그 간 미국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면서도 사회보장에서는 유럽 등의 선진국들에 비하여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번 건보개혁안 시행을 발판으로 미국 사회가 조금 더 보편적 복지에 가깝게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건보개혁안 통과는 한인 교포들을 비롯한 소수 민족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선데이저널>은 건강보험 개혁안 통과가 갖는 의미와 앞으로 남은 과제 등에 대해서 와이드 특집으로 살펴봤다. <편집자주>
2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세기에 걸친 미국 진보 진영과 서민들의 숙원인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현한 영웅이 됐다. 하원은 지난해 12월 상원에서 통과된 건보개혁 법안을 원안대로 표결에 부쳐 찬성 219, 반대 212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미국에서 전 국민을 수혜대상으로 삼는 보편적 건강보험 제도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지 거의 100년 만에 보편적 건보 제도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는 획기적인 개혁이 이뤄지게 됐다.
공화당 반대표
이날 표결에서는 재적 431명(정원 435명.현재 4명 공석)의 하원의원 가운데 민주당 소속 의원 219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공화당은 소속의원 178명이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 소속 의원 가운데 34명은 당론과 달리 반대표를 행사했다. 작년 12월 상원을 통과한 건보개혁 법안이 이날 하원에서 통과됨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
한인사회 무엇이 달라지나
이번 건강보험 개혁안은 한인들의 실생활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영주권자의 경우 5년이 지난 2015년이 되어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 ‘이민자 5년 대기’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가 많은 한인사회 특성상 이번 법안을 체감하기 위해서는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불법체류자나 관광비자로 들어온 한인들에게도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법안은 불법체류자나 서류 미비자에 대해 미국민의 세금으로 의료비를 지급하는 내용은 빠져있다. 이번 법안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 2만 9326 달러까지 의료보험 혜택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는 빈곤수준을 133%까지 확대해 계산한 수치다. 상대적으로 3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에게는 메디케어 세금이 따로 붙게 된다. |
치적 명운을 걸고 추진해온 건보개혁은 입법화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 바이든 부통령과 40여명의 보좌관들과 함께 백악관의 루스벨트 룸에서 TV로 하원의 표결과정을 지켜봤으며, 찬성표가 가결정족수인 216표를 넘어서는 순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원의 법안 통과 직후 “미국민의 승리이며 상식의 승리”라면서 “이 법안이 건보시스템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하원의 표결이 이뤄지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지도부는 법안 가결정족수인 216명의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해 난항이 예상됐으나, 막판에 바트 스투팩(미시간)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내 낙태반대파 의원 7명의 표심을 찬성 쪽으로 돌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가까스로 가결정족수를 채웠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스투팩 의원 등과 막판 줄다리기 협상을 통해 낙태시술에 연방기금이 지원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대통령 행정명령을 공표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들 7명 의원의 찬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번 하원의 표결은 공화당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극한 당파적 대립 속에 가결돼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격렬한 정치적 공방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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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미국 하원에서 건강보험개혁 법안이 가결된 직후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맨 오른쪽)과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원내대표(앞줄 왼쪽) 등 민주당 지도부가 기자회견을 갖던 도중 활짝 웃고 있다. |
100년 만에 개혁
역사가들은 이번 의보개혁을 1935년 사회보장제 시행, 1965년 메디케어 도입 및 1950~1960년대 민권법 관련 입법과 같은 반열로 평가한다. 그러나 오바마는 ‘일요일 밤의 승리’를 즐길 겨를도 없이, 의보개혁안 통과를 위해 떠안은 정치적 리스크라는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미국 의료보험 개혁 100년 역사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12년 전 국민 의료보험을 공약했다가 낙선한 이후, 패배의 연속이었다.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면서 전국민 의료보험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미국 의학협회의 반대가 심하자 사회보장제도를 지키기 위해 이를 철회했다. 이후에도 해리 트루먼, 존 에프 케네디,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등 1940~90년대까지 주로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이 끊임없이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대부분 재선 실패, 암살, 중간선거 참패, 탄핵 등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난 100년간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고령자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저소득층 무상의료인 메디케이드 제도를 도입해 오늘날 미국 사회의료보장제의 근간을 마련한 게 유일한 성과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1960년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관련 개혁을 이룩한 린든 존슨 전 대통령과 오바마를 비교했다. 당시 존슨 대통령은 정치적 손실 가능성을 무릅쓰고 올바른 일을 추진해 성사시켰다. 그러나 존슨은 68년 재선 출마를 포기했고, 민주당은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 여파로 지미 카터가 4년 단임 대통령을 지낸 것을 제외하곤, 1992년 빌 클린턴 이전까지 20여년 간 계속 야당으로 지내야 했다.
정치적 상징성
오바마의 의료개혁안은 전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는 상징성이 크다. 현재 5400만명 수준인 무보험자 중 3200만명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이중 4인 가족 기준 연소득 2만9327달러(3334만원) 미만 1600만명은 2014년부터 메디케이드에 가입된다. 건보개혁안은 수혜대상 확대를 위해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건보 가입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개인에게 연간 695달러(약 8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사업주의 근로자 보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50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주가 근로자들에게 건보혜택을 주지 않을 경우, 30명을 초과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건보비용을 1인당 2000달러씩 지급토록 했다. 이와 함께 가입자의 기존 질병을 이유로 하는 보험회사의 일방적인 보험 가입 거부나 높은 보험료 징수를 막는 한편 보험사의 급격한 보험료 인상을 제재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부모의 보험에 함께 가입할 수 있는 자녀의 연령을 26세로 연장해 청년층의 단독 보험 가입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 처방약품에 대한 건보혜택을 확대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중산층 애로 반영 못 해
그러나 이번 개혁안은 수혜 대상이 저소득층에 집중돼 보험료에 시달리는 중산층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 애초 공공의료보험인 ‘퍼블릭 옵션’으로 민간보험사와 경쟁을 벌여 보험료를 낮추겠다는 복안이 있었으나, 보수파의 거센 공격과 보험업계의 로비로 무산됐다. 이 때문에 중산층 이상은 세금 부담, 보험료 인상, 실업난, 재정적자 확대 등을 떠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50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주들에게 직원들의 의료보험 비용 부담을 안겼는데, 사업주 뿐 아니라 고용불안을 우려하는 노조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때문에 의보개혁안 통과는 민주당의 11월 중간선거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현재까진 지배적이다. 이미 대통령 지지율은 50%를 밑돌고, ‘티파티’라는 보수층 시민운동까지 나와 국론은 첨예하게 분열됐다. 현재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지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급격히 훼손될 뿐 아니라, 2012년 재선 가도에도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이번 개혁안의 성공이 가시화돼 민주당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판명된다면, 장기적으론 오히려 공화당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오바마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의회의 벽을 통과한 건강보험 개혁안은 거의 100년 만에 건강보험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역사적인 정책 전환으로 평가된다. 다음은 바뀌는 건강보험의 주요 내용이다.
◆ 건강보험 비용 및 포괄 범위 10년간 9400억달러의 비용이 든다. 현재 무보험자 가운데 3200만명이 건강보험 개혁으로 보험을 갖게 된다. 2014년부터 수혜범위가 대폭 확대된다. 최종적으로 전체 국민의 95%가 건강보험의 우산 속으로 들어온다. 현재는 83% 수준이다. 만약 건강보험을 갖지 않으면 2014년부터 벌금이 부과된다. 첫해엔 소득의 1% 또는 95달러를 벌금으로 낸다. 이후 계속 벌금이 올라 소득의 2% 혹은 695달러를 내야 한다. 다만 소득신고 분기점을 밑도는 저소득층과 자신의 소득의 8% 이하에 해당되는 보험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예외적용을 받는다.
◆ 건강보험시장 개혁 올해부터 시작해 보험업자는 일생 동안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의 상한을 부과하거나, 보험 가입 전 조건에 따라 아이들에게 보험 적용을 거부하는 것이 금지된다. 부모의 보험으로 함께 커버되는 자녀의 연령이 26세로 올라간다. 대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주요 소비자 보호조치는 2014년에 시행된다. 보험업자는 의료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보험을 거부하거나 보험료를 더 많이 부과해서는 안 된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부과해서도 안 된다.
◆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건강보험) 확대 메디케이드의 대상이 연방정부가 설정한 빈곤선의 133% 수준 소득자까지 확대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소득이 2만9327달러까지 해당된다. 2014년부터 아이가 없는 어른들도 처음으로 보험 혜택을 본다. 연방정부는 새로 보험 혜택 자격이 주어지는 개인들의 보험료를 오는 2016년까지 전액 부담한다.
◆ 고소득층 세금 부과 부자들을 위한 고가의 건강보험 상품에 대해서는 2018년부터 세금이 부과된다. 연간 보험료 기준으로 개인은 1만200달러, 가족은 2만7500달러 이상이다. 또 건보 재원 마련을 위해 연간 개인으로 20만달러 이상 혹은 가족으로 25만달러 이상 버는 고소득층에 대해 메디케어 지급급여세 이외에 투자소득에 대해서도 추가로 3.8%의 세금을 물린다.
◆ 처방약 보전 확대 고령자가 받는 메디케어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도넛 함정’이 점차적으로 축소된다. 당초 보험에서 정한 처방약 지출 범위를 넘어설 경우, 재앙적 수준으로 정한 선까지 도달할 때까지 그 차액을 보험자가 지불해왔다. 이 함정에 빠진 고령자는 올해 250달러를 리베이트로 돌려받는다. 또 2011년부터 여기에 속한 고령자는 브랜드 약에 대해서는 할인혜택을 받는다. 2020년 이 함정이 완전히 메워지더라도, 고령자들은 재앙적 수준으로 정한 선에 도달할 때까지 처방약 지출의 25%를 계속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 고용주 부담 고용주는 종업원들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정부가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불하는 경우 일종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종업원 한 명당 2000달러의 수수료가 붙는다. 그러나 50명 이하의 소기업은 예외적용을 받는다. 파트타임 근로자도 계산에 포함된다.
◆ 보험에 대한 세금 혜택과 정부 운영 보험 소득이 빈곤선의 133% 이상에서 400% 이하(4인 가족 기준 8만8200달러)인 경우 보험료에 대해 세금공제혜택을 받는다. 세금혜택을 받는 보험료 상한선은 소득의 3~9.5% 사이다. 논란이 됐던 연방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은 도입되지 않는다.
◆ 낙태시술에 대한 연방기금 지원 금지 낙태시술에 대해서는 납세자의 돈이 들어가지 않고, 시술을 받는 개인이 지불하도록 했다. 어떤 보험도 낙태시술을 포함하도록 요구되지 않고, 만약 이를 커버하는 보험이라도 보험자가 별도의 개인계정에서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다만 강간, 산모의 목숨이 위험한 경우 등에는 예외를 두도록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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