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설득의 리더십’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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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미국에서는 건강보험 개혁법안이 미 의회 하원에서 가결됐고, 대서양 건너 프랑스에서 열린 지방의회 선거는 집권 여당의 완패로 막을 내렸다. 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해 끊임없는 설득과 뚝심을 발휘한 지도자와 지지부진한 개혁정치와 사생활 추문으로 선거 패배를 자초한 또 다른 지도자의 명암이 이날 극명히 엇갈렸다.
장장 9개월간 미 전역에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대공황 이래 최악의 국론 분열을 몰고왔다는 건보개혁법안이 대미를 맞이하게 됐다. 이번 의료보험 개혁안 통과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 리더십’은 단연 돋보였다.
100년만에 개혁이라는 숙제를 풀어낸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을 해부했다.
                                                                                                           <특별취재팀>



지난 1년여 간 건보 개혁에 모든 정치적 역량을 쏟아부은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은 자신의 재임을 포기한 결단이자 도박이었다.
같은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집권 초기 건보 개혁을 야심차게 추구했다가 실패했고, 결국은 집권 1기를 여소야대로 끌려 다니는 빌미가 됐던 건보 개혁을 오바마가 처음 추진하겠다고 천명했을 당시 여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무려 1억8000명에 달하는 저소득층 미가입자에게 의료 혜택을 확대하는 게 골자인 개혁안에 대해 이미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 중산층 이상은 보험료 상승을 우려해 반대했고, 건강보험업계 역시 저렴한 대체보험 신설을 우려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반대 광고전을 펼쳤다. 야당인 공화당은 오바마의 건보개혁법안이 죽음의 패널(death panel)을 만들어 노인들의 장기 치료를 무단 중단시킬 것이란 위협성 주장까지 펼치며 건보 반대 티 파티를 전국적으로 펼치며 기세를 올렸다.


9개월 간 미 전역 순방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9개월간 이에 굴하지 않고 미 전역을 순방하며 소규모 타운홀 미팅을 열어 미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대장정을 이어갔다. 대통령 유세전을 방불케 하는 강행군을 마다 않으며 세계 최고의 슈퍼 파워인 미국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개도국보다 많은 현실을 지적하며 건보 개혁의 역사적인 의미를 설파했다.
건보 개혁으로 자신이 재선하지 못하고 단임 대통령으로 물러나더라도 자신은 건보 개혁을 이루겠다며 정치적 배수진을 치고 여야 의원들을 설득했다.
오바마의 건보 개혁은 지난해 말 상하원에서 각각 여당의 법안이 가결되면서 이뤄지는 듯했으나, 상하원 합동법안 조율을 앞두고 지난 1월 실시된 매사추세츠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상원에서 슈퍼 60석(의사진행을 받지 않고 가결 가능한 정족수)이 깨지고, 특히 여당 표밭이 무너지면서 하원 가결을 앞두고 당내 중도파 의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오는 11월 치르게 될 하원의원 선거에 미칠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개혁안 하원 표결을 앞둔 지난 한 주 동안 64명의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독대를 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며 한 명 한 명 설득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의보개혁 법안 하원 처리 때 반대표를 던졌던 37명의 민주당 하원 의원과 낙태지원 제한을 전제로 찬성표를 던졌던 반 낙태파 의원 40명 등이 그 대상이었다.
또 당내 좌파로 고집이 세 ‘독불장군’으로 불리는 데니스 쿠치니치(오하이오) 의원은 그의 지역구로 가는 길에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동승시켜 기내에서 설득을 하는 등 분초를 쪼개가며 의원들을 설득하고 설득했다. 이런 설득이 효과를 발휘한 탓에 쿠치니치 의원이 찬성 입장을 공개 선언하면서 큰 힘을 실어줬고, 표결 전날까지 7명의 의원들이 찬성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오바마는 하원 표결 하루 전날인 20일에는 민주당 의원총회장을, 19일에는 버지니아주 조지메이슨대에서 타운홀 미팅을 갖는 등 의원과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지막 설득도 빼놓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17일에는 끊임없이 그를 비난해 온 <폭스뉴스>와의 불편한 인터뷰에도 기꺼이 나섰다.









 ▲ 역사적인 의료보험법안 통과를 위해 한 표가 아쉬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1일 밤 표결 직전까지 램 이매뉴얼 비서실장 방에서 참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주당 반대의원들을 설득하는 전화통화를 계속하고 있다.


폭스뉴스와도 인터뷰

오바마의 정치적 데뷔무대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장 연설이었던 것처럼 오바마는 연설에 능하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말을 잘 하기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지만, 오바마는 여기에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과 토론하는 것도 즐긴다는 강점이 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대통령과의 토론이 완전한 평등 관계로 진행되기가 쉽지 않은데, 오바마는 가능하면 ‘계급장 떼고’ 토론하는 방식을 즐긴다. 이 때문에 별반 정치적 소득이 없어 보이는 반대 진영과의 토론에도 기꺼이 나선다. 지난 2월25일에는 민주·공화당 상·하 양원 지도부들을 백악관에 모아놓고 대통령이 토론회 사회를 보면서 토론을 주도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고, 공화당 대회에 나서 공화당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외에도 지난해 상원 표결을 앞두고 텔레비전 인터뷰에 집중출연하거나, 지난 여름의 타운홀 미팅, 보험회사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동에도 나서는 등 전방위로 뛰어다녔다. 때로는 무모하거나 쓸데없는 시간낭비처럼 보였던 오바마의 동분서주 설득이 시간이 흐르면서 차곡차곡 쌓여 21일 결실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의사당에서 하원의 의료개혁법안 표결이 진행되는 21일, 의사당 밖에서 의료개혁을 지지하는 이들이 응원시위를 벌이고 있다.


11월 선거 관심

이제 오바마 대통령의 시험 무대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다. 중간선거는 ‘의료보험 선거’가 될 전망이다.
<로이터> 통신은 21일 의보 개혁안이 이번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민주·공화 두 당이 천문학적인 돈를 들여 텔레비전 광고대전을 벌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화당의 공세는 분명하다. 미국 보수단체인 ‘성장을 위한 클럽’(Club for Growth)은 의료보험 개혁안 통과를 앞두고 법안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공화당 현역 의원 37명과 의원 후보 160명은 21일 이 반대운동에 동참한다는 서명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민주당이 의료보험 개혁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방법을 바꾸지 않는다면, 중간선거에서 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화당은 1994년 의료보험 개혁입법을 시도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중간선거에서 패퇴시킨 경험이 있다. 중간선거 패배로 결국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의료보험 개혁을 포기했다.
민주당은 거의 전국민에게 혜택이 주어지고 재정적자도 줄일 수 있으므로 공화당의 선전전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고 있다. 민주당은 △의료보험을 든 중소기업주들에 대한 세금감면 △커뮤니티의료센터에 대한 지원 확대 △26살 이하 젊은이들의 부모 의료보험 편입 등 올해 안에 시행될 예정인 사항들을 부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민주당 의원인 브래드 우드하우스는 “우리가 정치적 승자가 될 것”이라며 “공화당이 선전하는 것들이 현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일단 여론은 민주당에게 다소 불리한 것으로 나온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 40%가 의료보험 개혁을 찬성하는 반면, 49%는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2일 인터넷판에서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법안 통과로 정치적 또는 실생활에서 혜택을 입게 될 ‘승자’와 타격을 입게 될 ‘패자’를 선정, 소개했다.
뉴스위크 정치 칼럼니스트 하워드 파인먼은 건보개혁 법안 통과의 가장 큰 승리자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 오바마는 건보 개혁 문제에 정치적 명운을 건 승부수를 던졌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고 파인먼은 평가했다.
파인먼은 오바마와 더불어 정치적 승리를 거둔 인사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꼽았다.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이 펠로시에게 반기를 들었지만 하원에서의 정치 게임을 무난히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펠로시 다음으로는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이 주요 승자 중 하나로 꼽혔다. 이매뉴얼은 오바마로부터 건보 개혁 추진의 임무를 부여받았고 그간 임무 수행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나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적으로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고 파인먼은 말했다.
건보개혁 법안 통과로 저소득ㆍ노년층 1천500만명 가량이, 중산층 가구 중 보험 가입 능력이 없는 1천500만명 가량이 각각 보조금 등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법안 통과를 적극 지원해온 제약회사들은 미 연방정부의 건보개혁안 추진으로 수익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으로 파인먼은 예상했다.
파인먼은 반면 건보개혁안 통과의 패배자 중 하나로 보험업계를 꼽았다. 미국 연방정부의 통제권 밖에서 성장해 온 보험업계는 법안 통과로 주도권 싸움에서 패배했다. 정부의 규제를 받아야 하고 보험사간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가구당 소득이 20만달러 또는 25만달러 이상의 부유층들은 이번 법안 통과로 보험료 부담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파인먼은 공화당의 경우 오는 11월 중간 선거에서 의석 수가 다소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만 건보개혁 법안 통과에 따른 정치적 혜택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공화당도 역시 패자에 속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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