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을 뒤흔든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태가 본국 대표 기업인 삼성의 심장도 옭죄고 있다. 이번 사고 책임자로 지목된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이하 BP)이 모든 피해보상 약속과 함께 200억 달러(약 23조 5000억원)에 달하는 복구 기금 마련에 나선 것에 비해 지난 2007년 국내 최악의 원유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의 ‘밴댕이 속’ 보상책이 비교대상으로 떠오른 탓이다. 더구나 삼성 측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려는 국내 언론사 등에 전방위 로비를 펼치며 언로 틀어막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빈축을 사고 있다. 삼성은 태안 사태 당시 피해 주민들에게 1000억원 규모의 보상 계획이 있다고 발표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또 이후 법정공방 등을 통해 피해보상 한도액을 56억원으로 대폭 한정하는 등 발 빼기에 급급했다. 멕시코만 사태로 들여다본 ‘치사한 글로벌 기업’ 삼성의 추악한 면면을 <선데이저널>이 집중 취재했다. <리챠드 윤 취재부 기자>
BP “모든 피해보상 책임지겠다”
토니 헤이워드 BP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7일 “멕시코만 원유유출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야한다”며 원유유출 사고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헤이워드는 CEO는 이날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에 출석해 “딥워터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석유시추시설 폭발과 화재는 일어나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며 “그렇지 못한데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BP는 원유유출을 막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모든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할 것”이라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BP측은 청문회 전날인 지난 16일 200억 달러 규모의 피해보상 기금을 위한 자본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BP는 이와 함께 올해 말까지 주주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백악관에서 BP 경영진과 면담을 마친 후 BP가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200억달러의 보상기금을 내놓기로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BP는 200억 달러의 피해보상 기금과 별도로 6개월간 심해저 석유시추 프로젝트의 동결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시추 기술자들을 위해 1억 달러의 보상기금을 내놓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억 달러는 보상액의 상한선이 아니며 이 기금조성으로 인해 개인 및 주정부가 법적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BP의 칼 헨릭 스반베르 회장은 토니 헤이워드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과 함께 백악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원유유출 사태와 관련해 BP 임직원들을 대표해 미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금융계 소식통에 따르면 BP는 보상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7개 은행에 각각 10억 달러의 대출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바클레이즈 HSBC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 등의 은행들이 각각 10억 달러를 BP에 대출해주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몇몇 소식통들이 전했다. 미국 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이날 “BP가 은밀히 은행에 접근하고 있다”며 “이는 클럽딜 형태”라고 말했다. 클럽딜은 다수의 대출기관이 통일된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신디케이트론의 일종으로, 참가 은행 간 지위 차이가 없도록 구성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BP가 주요 대출기관에 1년 만기의 대기성 쌍무대출을 조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는 각각의 은행이 한 회사에 대출해 주는 형태로 ,신디케이트론처럼 통일된 조건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BP 측은 은행 대출과 관련해 사실 확인을 하지는 않고 있다. BP 측은 또 이번 원유 유출 사고와 관련, 보상금을 청구한 주민들에게 총 1억400만 달러(약 1200억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지난 19일 CNN 보도에 따르면 BP는 최근까지 피해 주민들로부터 총 6만4000건의 보상금 청구를 접수 받았으며 지난 7주 동안 총 3만1000장의 수표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BP는 보상금 청구에서 수표 지급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4일이며 절차가 복잡한 경우에는 보상금 지급까지 7일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 삼성 56억원으로 입 닦아
대규모 재난사태에서 BP의 이례적인 피해보상 규모가 알려지자 국내 여론은 자연히 지난 2007년 태안 원유유출 사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사고 발생 2년 6개월여가 지났지만 태안 사태 관련 보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21일 국회 국토해양위 회의에서 변웅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미국은 최근 멕시코만 원유유출 문제가 터졌을 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2조가 넘는 피해보장기금 조성에 합의했다”면서 “태안 기름 유출 관련해 삼성은 89일 만에 피해민과 지역발전기금으로 10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80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 한 푼도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변 의원은 “주무장관으로서 대통령에게 피해지역 방문을 권유했거나 피해보상금 요구를 한적이 있나”면서 “삼성에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하라고 대통령께 몇 번이나 권유했는가”라고 꼬집었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삼성이 그 동안 성의를 표시로 1000억 원 지원을 약속 했다가 (주민들의) 거부했기 때문에 보상 문제가 어정쩡한 상태다. (삼성에) 촉구해서 원만한 해결을 이끌어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법도 만들고 위원회도 만들고 성의 있게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만 보상구조체제가 펀드체제에 들어가 있어 지연이 되고 있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결국 삼성은 1000억원 규모의 배상 약속은커녕 최소한의 피해보상에도 손을 뗀 상태라는 얘기다. 지난해 3월 법원은 태안주민들의 손해에 대해 삼성중공업이 배상할 금액을 56억여원으로 사실상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 스스로 삼성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지난해 3월 24일 서울중앙지법 제1 파산부(고영한 수석부장판사)는 삼성중공업의 신청을 받아들여 선박책임제한절차 개시결정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구상법 등에 따르면 선박임차인은 원칙적으로 선박의 운항에 직접 관련해 발생한 물적 손해에 관해 법에서 정하는 일정한 금액의 한도로 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다”며 “태안 원유유출사고로 인해 사고 장소 인근의 다수의 어민, 숙박업자 등이 영업손실 등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손해배상액이 책임제한액의 한도를 초과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중공업은 법에 규정된 책임제한액 230만 7776 SDR을 원화로 환산한 금액에 사고일 이후 법정이자를 합한 56억 3400만여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당시 법원관계자는 “유조선측은 책임제한액이 더 큰데, 얼마 전 서산지원에서 1300억원에 이르는 유조선측의 책임제한신청을 받아들였다”며 “피해주민 등 제한채권자들이 변제받지 못한 채권액에 대해서는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손해 책임제한 절차,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 또는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기사 막으려 언론사 광고공세
삼성중공업은 사고발생 1년 만인 2008년 12월 ‘해상사고를 일으킨 선박 소유자는 위험을 충분히 알면서도 무리한 운항을 하다 일어난 사고이거나 고의로 인한 사고가 아닌 경우 책임액이 제한된다’는 상법을 근거로 서울중앙지법에 책임제한절차 개시 신청을 냈다. 법원이 삼성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거대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막강한 법무권력으로 무장한 공룡기업과 피해어민의 법정싸움은 이미 결과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역시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피해어민들은 이의를 제기하며 항고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피해 주민 7500여명이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며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는 사고 피해액을 5663억∼6013억 원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삼성은 전체 피해규모의 1/100도 못 미치는 보상금으로 입을 씻은 셈이다. 한편 최근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와 관련해 BP와 삼성의 피해보상 태도를 꼬집은 국내 언론 보도에 대해 삼성이 과민반응으로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 모 일간지가 최근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태의 사고 당사자인 영국 석유 회사 BP가 미국민들에게 사과하고 피해보상기금으로 200억 달러의 보상기금을 내놓기로 한 사실과 지난 태안 기름 유출 사태 당시 삼성중공업 등의 반응을 비교하는 특집 기사를 준비했으나 삼성이 전방위 로비와 압력을 넣어 해당 보도를 무마했다는 것이다. 해당 언론사는 특히 삼성중공업이 당시 사태 때 최소한의 피해 보상만 한 채 정부와 폭탄 돌리기를 했던 사실들을 부각시켜 삼성그룹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을 하려 했으나 이를 삼성그룹에서 알아채 기업 고위 임원들이 직접 언론사 사옥을 찾아가 기사 삭제를 정중히 요청했다는 소문이 본국 언론계에 파다하게 돌고 있다. 본국 다수의 기자들에 따르면 삼성은 해당 언론사 외에도 언론계 전체에 안테나를 세운 채 조금이라도 보도 움직임이 보이면 광고 공세로 치부 감추기에 혈안이 됐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는 치사한 작태임에 틀림없다.
미국인들에게 단단히 밉보인 토니 헤이워드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인 이사’를 구원투수로 내세웠다. 영국 더타임스 등은 BP의 칼 헨릭 스반베리 회장이 ‘미국민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미국인 관리담당이사 로버트 더들리(55)에게 멕시코만 사태 총책임을 맡기기로 했다고 19일 보도했다. 최근 미 의회 청문회에 나와 의원들의 추궁을 이리저리 피해 지탄받았던 헤이워드 CEO는 사태 수습에서 배제될 것으로 알려졌다. BP의 구원투수로 나선 더들리는 미국 미시시피주 태생으로 일리노이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BP에 합병된 아모코(옛 스탠더드오일)에 1979년 들어가 남중국해 유전 등에서 일했다. 특히 90년대 러시아 지사를 맡아 사업수완을 발휘, 에너지업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아모코가 BP에 합병된 뒤 2003~2008년 BP와 러시아-우크라이나 합작기업인 TNK-BP 사장을 지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더들리는 앙골라, 알제리, 이집트, 러시아에서 험한 일을 도맡아해온 인물”이라면서 “이제 미국인들은 더 이상 ‘영국식 억양’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더들리가 TNK-BP 시절 투명하지 못한 업무 스타일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이라, 환경재앙 같은 큰일을 깨끗이 처리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BP는 19일 “지금까지 들어온 보상금 요구가 6만4000건에 이르며 그중 총 1억400만 달러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BP가 영국 은행 7곳에 10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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