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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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 계좌 의혹이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조 내정자는 지난 3월 31일 기동부대 지휘관과 전·의경 1,000여명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이 계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10만원짜리 수표가 든 거액의 차명계좌가…”라고 말했다.

또한 조 내정자는 “차명계좌가 발견되니까 특검 이야기가 나왔는데…, 특검을 하려고 하니까 권양숙 여사가 민주당에게 이야기를 해 특검을 못하게 한 거 아닙니까. 그거 해봐야 다 드러나게 되니까”라고 밝혔다.

조 내정자의 발언은 그 동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그가 경찰 총수로 내정되면서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이 조 내정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만큼 차명계좌 존재 여부는 어떤 식으로든 실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특히 한나라당에서는 이번 기회에 특검을 도입해 진실을 밝혀내자고 주장하고 있어 차명계좌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선데이저널>이 지난 해 보도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의 골프장 인수 시도 관련 기사가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특히 노 씨가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골프장을 구입하려 한 것이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만큼 현재 불거지고 있는 차명계좌 의혹이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조 후보자는 서울경찰청장이던 지난 3월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사망했습니까.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이 계좌가 발견되지 않았나. 10만원짜리 수표가,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는데…”라고 말했다.

파문이 일자 조 후보자는 “주간지인지 인터넷 언론 기사인지 보고 한 말”이라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더 이상 발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결국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차명계좌 발언’의 진위는 일단 사법당국의 수사절차를 통해 가려지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예상할 수 있는 수사 절차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차명계좌 특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이 조 후보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한 사건에 대한 수사다.

일단 ‘차명계좌 특검’은 조 후보자 청문회를 거치면서 ‘동력’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임동규 의원만이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하고 국민 의혹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특검이든 국회 국정조사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지만 특검 추진은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차명계좌 발언’에 대한 근거를 어느 정도 제시해야 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 후보자가 “송구스럽다. 더 이상 발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대답으로 일관한 마당에 한나라당으로서도 특검 추진을 밀어붙일 명분이 약하고, 민주당도 이를 두고 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사위가 고소·고발한 명예훼손사건 수사를 통해 검찰이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이 고소를 취하하지 않는 이상 검찰 수사는 어떤 형태든 진행될 수밖에 없다.

조 후보자도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청문회에서 그는 여러 차례 노 전 대통령과 유족에 사과한다는 말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의 묘소에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할 뜻이 있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물론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조 후보자로서는 검찰에서 ‘차명계좌 발언’의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통상의 명예훼손 사건에 준해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고, 국회 청문회에서 했던 답변 정도로는 조 후보자가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 대목에서 “특검이든 검찰 수사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조 후보자의 청문회 답변이 눈길을 끈다. 조 후보자 나름대로 ‘탈출구’를 갖고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앞으로 검찰 수사를 중심으로 ‘차명계좌 논란’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든 그 이면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기 때문에 결과를 어느 한쪽으로 예단하기 힘들다는 전망도 나온다.


차명계좌 존재 여부


















그렇다면 실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차명계좌가 있었던 것일까.

일단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 선을 분명히 그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팀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상황을 알 턱도 없고 차명계좌 얘기는 터무니없다”며 “경찰청장 후보자가 주간지나 ‘찌라시(증권가 정보지)’ 수준을 근거로 댔다면, 우리가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당시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검찰이 추적한 차명계좌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지만 모두 노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작년 5월 23일)하기 훨씬 전에 드러난 것들이어서,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는 조 후보자 말과는 거리가 있다.

검찰은 2008년 말부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홍콩에 만든 현지법인 APC를 통해 운용한 차명계좌 500여개를 추적했다. 그 결과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에게 500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호의적인 거래”라고 했지만, 돈의 실소유주는 노 전 대통령이고,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 씨가 받아서 썼다는 것이 검찰이 가진 의심이었다.

검찰은 또 정상문 청와대 전 총무비서관이 만든 차명계좌도 찾아냈다. 그의 지인 명의 계좌에서 박 전 회장이 권양숙 여사에게 건넸다는 3억원을 찾아냈고, 추가로 그가 대통령 특수활동비에서 횡령한 12억 5,000만원을 더 찾아냈다.

전 정권의 차명계좌와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은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기 1년쯤 전인 2008년 초 정 전 비서관이 신성해운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관여한 혐의를 수사하면서, ‘모 대부업체가 수백억원을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로 입금했다’는 첩보를 내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이 내사했을 때 뚜렷한 단서가 드러나지 않아 종결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장 매입 저울질

검찰 주변에서는 차명 계좌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본지가 지난 해 5월 보도했던 <노건호 LA 골프장 매입 저울질 내막>가 주목받고 있다. 다음은 당시 본지가 보도했던 내용 중 일부다.

<노건호 씨와 가깝게 지낸 지인 등에 따르면 건호 씨는 지난해 말부터 이번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10여 차례가 넘게 LA에 다녀갔다고 말한다. 스탠포드 대학에 다녔던 노 씨는 학교에 적만 두었을 뿐 수강은 별로 하지 않았다. 특히 LA에 올 때면 몇 몇 지인들과 LA인근 유명 프라이빗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겼으며 지난해 말부터 이곳을 찾는 횟수가 급격히 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노 씨는 측근들을 통해 LA 지역 유명 골프장 매입을 저울질 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2천만 달러 정도는 언제든지 조달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 측근은 전한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볼 때 노건호씨는 미국에 많은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박연차 회장과의 드러난 돈 거래 이외도 상당액수의 계좌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 씨가 지인들에게 골프장을 인수하려고 돌아다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던 만큼 그의 이러한 행동은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이러한 의혹들은 조 내정자에 대한 명예훼손 수사에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 수사의 본류는 조 내정자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다. 노무현 재단측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을 때만 적용할 수 있는 사자의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조 내정자를 고소ㆍ고발했기 때문에 이번 수사의 시작과 끝은 차명계좌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당시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을 수사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실제 차명계좌를 발견했는지를 확인하는데 집중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지난 1년간 묻혔던 차명계좌의 존재 유무가 자연스럽게 밝혀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검찰은 일단 고소ㆍ고발사건의 수사 절차대로 노무현 재단측이 낸 소장 내용을 살펴보고 법리 검토를 한 뒤에 이르면 다음 주 중 재단 관계자를 불러 고소ㆍ고발의 배경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어 검찰은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수사팀의 수사기록 등 관련 자료를 넘겨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수사기록만으로 확인이 어려울 경우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노 전 대통령이나 가족 등의 차명계좌 발견 여부를 직접 따져보는 것도 하나의 옵션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내정자를 피고소ㆍ고발인 신분으로 소환할지는 그가 경찰조직의 최고위 인사라는 점과 수사상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일단 사건의 본류에서 벗어나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보유 여부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는 없을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의외의 ‘팩트’가 발견되면서 이번 수사가 정치판을 요동치게 할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에 출석하고 나서 23일 만에 서거했는데 그때까지는 본인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가 중단없이 계속된데다, 수사내용도 극히 일부만 공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당시 수사기록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검찰이 검토했던 내용 중에는 노건호 씨의 골프장 관련 내용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관측은 이번 수사에서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를 비롯해 기존에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경우, 이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될 개연성이 크고, 우리 사회가 다시 한 번 대립과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추론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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