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경제 분야에서 ‘체제 변화국의 환율정책과 그 효과가 남북한에게 시사하는 정치경제적 의미’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정진길 교수(하워드 대학)는 “남북통일을 대비하는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북한에게 지원하는 자금을 미국 달러로 지불하지 말고 한국의 ‘원’화로 지급해 동일환율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이 같은 환율제도의 동일성을 위해 남북간의 ‘빅 딜’이 요구된다고 부연 설명해 주목을 받았다.
이날 첫 발표자로 나선 강명구 교수(클레어몬트 매키나 대학 조교수)는 ‘한국정치의 문제점과 전망’이란 주제로 포문을 열었다. 그는 “최근 한국정치는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하의 정치현실에서 권력분점화의 구조적 제한과 정당정치의 낙후성으로 헌법구조의 개조와 새로운 정치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특히 강 교수는 “지난 20년간 한국에서는 250여 개의 정당이 난립했으며, 초선의원 출현이 평균 55%로 미국과 일본에 비해 월등히 높아 입법적 기능의 한계성을 보여주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한국정치는 1980년대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의미가 있지만 산업화 이후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한국정치는 의사결정이 대통령의 독점적 행사로 이뤄진 행정부 독주지만 의원내각제가 가미된 형태로 당정협의회가 그 대표적인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또 또한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 역할이면서 정부 수반이기도 했는데 공천권도 행사하는 등 그 힘이 막강하다”며 “하지만 이 같은 권력분점의 구조적 제한으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며 이런 환경에서 정치발전을 위해 헌법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당 난립과 정치 후진성
이날 워크숍에서는 한국 정치의 당면 과제는 정당정치의 활성화 정부와 입법 상호 견제 시스템의 필요성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해방 이후 대선과 총선을 통해 한국에는 무려 250개의 정당이 난립과 부침을 겪어왔으며 이는 정당정치가 안정적이지 못한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얘기다.
과거 한국정치사의 특징은 현역의원들의 재선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현역 의원의 95%가 재선에 성공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도 이와 유사하다. 1890년대 일본의 초선의원 원내 진출은 평균 32%였고, 2차 대전 이후는 23%였다. 오랜 집권당인 자민당에서는 10% 정도만이 초선의원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한국은 17대 국회까지 평균 55%가 초선의원이었다. 민주화 이후 17대 국회는 66%가 초선이었을 정도다. 이는 정치권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임위원회 운영 과정에서 초선의원이 많으면 전문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외교통상위나 기획재정위 등은 인기 있는 상임위원회라 매번 상임위원회 배정은 민감한 사안으로 등장한다, 현재 상임위는 2년에 한 번씩 위원을 교체한다. 사무처 소속 전문위원도 순환식으로 바꾼다. 하지만 제대로 전문위원직을 수행하려면 이런 순환제는 한계가 있다.
한국정치사에서 역사적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특히 초선의원의 등장이 많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초선의원의 원내 진출은 80%나 됐다. 제5공화국 시절이나 DJ 정권, 노무현 정권 등장 때도 초선의원j의 초강세가 이어졌다.
또한 한국은 그 동안 정당 공천에서 재공천율이 67%이고 재선거 당선율은 49%로 비교적 낮았다. 이런 현실에서 국회가 행정부 견제에 한계가 두드러졌다는 얘기다.
상당수 국민들은 한국 경제는 발전했는데 왜 정치는 낙후됐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한국은 사회,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한 예로 80년대 이후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최고다.
한국이 유교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자살율이 항가리, 필란드, 일본 보다 높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줄어드는 반면 자살율은 상항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에서 사망자 통계의 5%는 자살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는 선진국, 정치는 후진국
한국은 1997~1998년 IMF 사태 전에는 일본식 모델을 따랐다. 즉, 수출주도형, 관료주도형, 은행주도형의 경제구조였다. 하지만 IMF 사태 이후 영국, 미국식으로 경제구조가 전환됐다. 고용구조의 문제점도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OECD 국가들보다 2배 이상 높다.
이는 국가발전 전략의 구조적 부담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54%나 된다. 이는 전체 고용자의 반수 이상이 정상적인 고용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복지 문제에 있어 합의도출이 미흡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 리더십의 과제라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사회, 경제적 양극화의 갈등을 치유할 능력을 정치권이 배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북한을 50여 차례 방문한 북한 주체사상 연구의 대가인 박한식 교수(조지아대학 석좌교수)는 ‘북한정치의 현항과 전망’이란 주제로 “북한에 대한 연구는 현상학적 접근법으로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현재 북한은 김정일의 세습자인 김정은을 ‘북한의 등소평’으로 만드는 우상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아직도 ‘김일성의 나라’라며 김일성의 유훈정치가 살아있는 나라”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북한은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듯 ‘조만간 붕괴’나 ‘군사 쿠테타’ 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고 강조하면서 “김정일이 곧 죽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장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박 교수는 남한이 북한을 응징 대상으로 지속할 경우, 자칫 북한에 대한 투자를 중국에게 빼앗기고, 미국에게도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권력세습 우상작업
그는 “북한문제에 대해 알건 모르는 건 각자의 견해가 나름대로 있다”면서 “어떤 경우도 충돌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어도 너그럽게 들어 주기를 바라고, 합의가 되면 격려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북한을 현상학적으로 보아왔다며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 내 과제”라는 입장도 밝혔다. 북한이란 나라 자체 이야기도 어마어마한데 북한 정치까지 논하면 더욱 복잡해진다.
박 교수는 또 “북한의 비핵화는 나도 찬성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라며 “북한이 한 순간에 붕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박 교수를 ‘친북인사’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다.
박 교수는 “일부에서 나를 친북인사로 보고 있지만 나는 다 친하고 싶다”며 “지금 북한에 엄청난 변화가 오고 있다. 김정일이 언제 죽을지 몰라도 분명히 죽는다. 그가 하루 이틀 만에 죽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머리도 깨끗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정치는 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상황이 급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27세로 어리다. 그를 북한이 ‘대장’으로 칭호하지만 전쟁터 한 번 가보지 않은 젊은이”라며 “지난해 내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때 벌써 ‘김정은 대장’이란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김정은의 세습 보도와 관련해 언론들이 스위스에서 공부할 당시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도했지만 자신은 이미 지난해 김정은의 현재 모습 사진을 입수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현재까지 ‘세습’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며 “과거 김정일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세습’이라 하지 않았고 권력이 3대로 이어 가는데도 그들은 ‘세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현재 고민은 27세의 젊은이를 ‘탁월한’ 지도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을 ‘북한의 등소평’으로 만들기 위해 ‘3대 혁명’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 식으로 일종의 캠페인이다. 군사체계를 잡고, 문화적으로 민족주의로 무장하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지난 1996년 당시엔 식량문제로 정권이 쉬쉬해 체면에 손상을 입기도 했다.
북한, 생각보다 안정적
이날 박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의 경제부강이 자신들의 덕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노무현 정권 시절 북한 측 대표를 통해 “대포동 미사일 등으로 무장한 덕분에 미국이 한반도를 침범하지 않아 남한이 외자도입 등을 할 수 있어 부강해졌다”고 주장해 당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크게 당황한 바 있다.
최근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 상황이 위급한 것을 외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 경제 낙후가 북한의 내부적 과오가 아닌 남측의 도움이 당연한 필연적 상황인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김정일이 권력을 잡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은 김일성의 나라다. 인민들은 김일성의 교시를 맞추어 생활한다. 노동신문, 평양타임스에 주체연도가 나와 있다. 주체는 김일성의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삼고 있다. 김정일이 김일성 3년 상을 지내고 ‘탈 김일성’을 선언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다.
북한에서 김정은을 공격하는 것은 김정일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또한 김일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김정은의 권력은 할아버지(김일성)로부터 나온다. 최근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김일성의 부인)을 영웅시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의 아들이다.
북한이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일반 국민들의 사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바로 전쟁 발발이다. 북한이 남북 관계를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강경책이 북한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 체제가 붕괴할 것이란 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생각보다 안정적이라는 게 이 날 박 교수의 분석이다. 태생적으로 ‘쿠데타’가 불가능한 정치적 구조로 선군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은 경제대국을 목표로 김정은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식량확보가 급선무다. 현재 에너지 확보도 중국에 80%를 의지할 정도다. 이는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후방지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안보 역시 중요한 문제이기에 대미관계 개선이 북한외교의 넘버 원 정책으로 꼽힌다. 미국은 국익차원에서 항상 서울말을 따르지 않는다. NGO도 북한에 들어가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외교에 역점을 두고 북한을 세계화로 볼 때 응징의 대상만은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박 교수는 “남한이 북한에 대해 계속 강경책을 고수 할 경우 북한투자를 중국에게 뺏기고 미국외교에도 당해 결국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