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김정은, 차세대 지도자로 부각된 후 북·중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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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인민지원군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지원함) 출국 작전 60주년 기념 좌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1주일 전 새로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참석했다.

좌담회에는 60년 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군 ‘모범 용사’들이 초청되었고,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와 미래의 최고 지도자 후보 중의 한 사람인 루하오 중앙서기처 제1서기(43)도 참석했다. 연설은 2012년 말부터 중국 당·정·군의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시진핑이 맡고, 후진타오는 중국군 노병(老兵)들과 악수·격려만 했다.

<박희민 취재부 기자>










北 전력난 심화..”하루종일 단전 일쑤”

북한 당국이 전력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에도 전력난이 갈수록 심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연변(延邊)에서 대북 무역을 하는 무역상들에 따르면 최근 농촌지역은 물론 라선과 청진 등 북한 북부의 대도시에도 최근 전기가 거의 공급되지 않고 있다.

최근 라선을 다녀온 한 무역상은 “많이 공급돼야 하루 2시간 정도이고 아예 안 들어오는 날도 허다하다”며 “주민들은 전기가 들어오면 오히려 신기하게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 무역상은 “당국은 추수기인 가을철로 접어들면서 탈곡기 등이 많이 가동돼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주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대부분이 촛불에 의존하고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손전등 등을 장만해놓고 있으며 건전지 등을 아끼기 위해 해가 지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무역상은 “강수량이 많아 수력발전이 원활했던 여름에는 그나마 전기 공급이 좋았던 편”이라며 “지난달부터 급격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TV가 있는 집도 별로 없지만 있어도 시청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며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전력 부족으로 공장 가동이나 탄광 채굴 등 기간산업까지 차질을 빚자 지난해 7월 김영일 당시 내각 총리 주재로 열린 내각회의에서 전력난 해소 방안을 집중 논의했으며 한 달 뒤인 같은 해 8월부터 최대 외화벌이 수단인 무연탄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5천500caℓ/㎏ 이상의 고품질 무연탄을 전량 수출해온 탓에 저질의 무연탄만 화력발전소에 공급되는데다 이마저도 제때 공급되지 않아 전력 생산이 차질을 빚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무연탄 수출 중단 덕에 한때 전력 사정이 좋아졌으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로 외화벌이가 어려워지자 북한 당국은 올 들어 슬그머니 무연탄 수출을 재개했으며 이로 인해 또다시 전력난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곤궁해지면서 동(銅)으로 만든 전선을 훔쳐 중국에 내다 파는 밀수출까지 성행, 전선 대부분이 전도율이 떨어지는 철선으로 교체된 것도 전력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북한 당국은 잦은 정전과 전압 변동으로 컴퓨터 등 전자기기 고장이 빈발하자 지난 7월 ‘정전시간 사전 통보제’를 철저히 시행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런 전력난에도 북한은 지난달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네온사인 등으로 평양과 원산, 함흥시내 야경을 단장했다.

당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불장식이 새롭게 완성된 것은 나날이 흥하고 강해지는 선군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쾌한 화폭”이라고 선전했다.


“…평화를 애호하는 것이 중화민족의 우수한 전통입니다. 60년 전에 발생한 그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중국 인민들에게 강요한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의 불길이 조선반도를 넘어 중조(中朝) 국경 지대에까지 이르러, 국가의 안전이 위급한 고비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당과 정부의 요청에 따라 당 중앙과 마오쩌둥(毛澤東) 동지가 항미원조와 보가위국(保家衛國)의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영웅적인 인민지원군 장·사병들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반대하는 정의의 기치를 내걸고 조선인민군과 함께, 무기와 장비의 수준이 비교도 안 되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인민지원군 장·사병들은 2년 9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피로 목욕하는 분전을 펼쳤으며….”


중국 관영 매체들, ‘적극 지원’ 암시하기도

이날 오후부터 다음 날 오전에 걸쳐 중국 관영 중앙TV와 신문들은 일제히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국전쟁 ‘참전 용사’ 좌담회 소식을 중국 전역에 톱뉴스로 내보냈다.

좌담회는 중국공산당 선전부와 외교부, 민정부, 인민해방군 총정치부와 공동 주최한 것이며, 초대된 ‘참전 용사’들과 각계 인사 대표들은 3백여 명이었다.

같은 날 오후 북한의 평양체육관에서는 평양 시민 3만명이 참석한 ‘중국군 참전 60주년 기념’ 군중대회가 열렸다. 대회에는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위원장, 최영림 총리, 리영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어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영춘과 장성택도 참석했다. 연설은 김영춘이 맡았다.

“중국 인민지원군은 조선의 인민군 장병들과 함께 참호 속에서 생사를 같이하며 싸웠고… 비록 세월은 흘렀지만 조선 인민들과 군대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선혈로 조선의 산과 들을 적신 사실을 잊을 수 없습니다. … 앞으로도 조선과 중국의 우의는 후대로 이어질 것이며, 조·중 우의는 부단히 강화되고 발전해나갈 것입니다. …”

이날 군중대회에는 중국을 대표해서 궈보슝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참석했다. 궈보슝은 김정일 바로 곁에 서서 앞으로 중국과 북한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긴밀히 협력해나갈 것임을 다짐하는 연설로 김영춘의 연설에 화답했다.

“현재 세계는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고 있으며, 평화와 발전은 각국 인민들의 공통적인 바람입니다. 국제적인 풍운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우리가 평화를 애호하려는 신념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평화를 지키려는 신념은 결코 동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과 조선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세계의 평화와 인류 사회의 진보를 위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내려갈 것입니다.”

이 군중대회가 열리기 전 궈보슝을 비롯한 중국군 대표단 일행은 김영남의 안내로 북한이 만든 영화 <형제의 정>을 관람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평양발로 전하기도 했다. 필자는 때마침 한국과 중국의 반관반민(半官半民) 성격의 한·중 미래포럼 참석을 위해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었다.

중국의 신문과 방송들은 중국군의 한국전 참전 60주년이 되는 10월25일 하루 종일 베이징과 평양에서 열린 군중대회를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보도하고, 또 반복해서 방송하면서 시진핑과 김정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의 그런 보도 태도를 보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북한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3대째 권력 세습을 지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자세임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포럼에 참석한 중국측 한반도 전문가에게 필자는 “지난 10월10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당 기념 행사는 김정일의 권력이 김정은으로 넘겨질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 중국공산당은 서열 9위의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을 보내 김정일의 바로 옆에 서 있게 했다. 그 사실은 중국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을 적극 지원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 한반도 전문가의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교체를 담보하는 사람이 장성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교체기에 북한의 안정이 깨지지 않도록 적극 보호해주는 역할은 중국이 하게 될 것이다. 조선노동당 창당 기념 행사에 저우융캉 상무위원을 파견하고, 항미원조 60주년 기념 행사에 궈보슝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파견한 것은 중국의 그런 메시지를 내외에 분명히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답했다.


김정남 ‘보호’하면서 김정은 ‘인정’하는 이유

중국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베이징 교외의 빌라와 남쪽 도시 마카오를 오가며 지내는 것을 잘 보호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평양에서 김정은이 김정일의 공식 후계자로 등장하는 과정을 적극 보호하고 담보해주는 역할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은근히 보호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놓고 공개적으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에 대한 보호자 역할을 떠맡고 나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정은이든 김정남이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만 확보할 수 있으면 된다는 자세이다. 평양에 있는 김정은이라는 ‘새’이든, 자신의 품 안으로 날아온 김정남이라는 ‘새’이든 상관없으며, 양손에 한 마리씩의 새를 쥐고 즐거워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경지는 바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량서우주아(兩手爪; 두 손을 모두 꼭 쥔다)’란 말에 해당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군의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 행사를 통해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시진핑과 김정은이 앞으로 열어갈 시대의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새로운 밀월’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의 긴밀한 관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이 가까운 장래에 사망할 경우에도 평양의 정국이 혼란에 빠질 것을 막아줄 세력은 바로 중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의 대답은 “중국이 무엇보다도 희망하는 것은 한반도 정세의 안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北, `영웅 띄우기’로 충성심 고취

북한이 전사자나 김일성ㆍ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를 구하고 사망한 사람들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 주민들이 이들을 따라 배우도록 하는 `영웅 띄위기’에 주력하고 있다.

영웅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모교출신 `영웅’의 이름을 따 학교명을 아예 개명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북한은 지난달 15일 평양축전중학교를 `김주혁 중학교’로 개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16일 “평양축전중학교가 공화국 영웅 김주혁의 이름으로 명명되고 그의 반신상이 학교에 세워졌다”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입대한 김주혁은 군사정치훈련에서 모범을 보였으며 지난해 11월 우리측 영해에 기어든 적함들과의 전투에서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용감하게 싸웠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이 언급한 `지난해 11월 전투’는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서해교전에 이어 남북이 세 번째로 교전한 대청해전을 일컫는 것으로, 북한 매체가 대청해전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영웅’ 이름을 딴 학교개명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북한은 지난 1990년 11월 위험에 처한 병사들을 구하다가 21세에 사망한 인민군 소대장 출신 김광철을 `90년대 첫 영웅’으로 내세워 그의 모교인 평안북도 구장군 용문고등중학교를 `김광철 고등중학교’로 명명했다.

이후 2009년 4월에는 함경남도 요덕군 완산중학교를 `한계렬중학교’, 2007년 12월에는 평양 원신중학교를 `유경화중학교’, 2005년 9월에는 평양미산소학교를 `유향림소학교’로 각각 개명했다.

한계렬은 6.25전쟁 당시 전사자이며, 유경화와 유향림은 각각 18살과 9살 당시에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구하고 사망한 것으로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이렇게 영웅들의 이름을 딴 학교가 현재 정확히 몇 곳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2년 9월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10여 년 새 영웅들의 이름으로 개명된 학교는 50여 개라고 밝혔다.

북한은 특히 10명 이상의 `영웅’을 배출한 학교의 경우 `영웅 00중학교’와 같이 `영웅학교’로 부르고 있으며 10여 곳이 넘는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달 31일 “비범한 기질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다 영웅이 될 수 있다”면서 “인민대중의 위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대의 영웅으로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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