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오는 16일 70세 생일을 맞는다. 김정일은 원래 1941년생이지만 1980년 아버지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이후 김일성 출생연도인 1912년과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 생일을 1942년생으로 바꿨다. 한 정보 당국자는 “북한 보도기관들이 1981년에 이어 1982년에도 김정일이 40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소개하는 우스꽝스런 일이 벌어졌었다”면서 “부자(父子)간의 나이 차를 30년으로 정함으로써 권력세습의 구도를 10년 단위로 쉽게 짜 아들이 ‘차세대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조작”이라고 전했다.
북한은 김일성 출생 100년, 김정일 출생 70년을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선전하고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13일 ‘김정일 70세의 의미’에 대해 “건강이 나쁜 김정일에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게 더욱 분명해졌다”면서 “김정일이 내일 당장 사망하거나 정상적으로 집무하기 어려운 중병에 빠진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
‘북 퍼주기’배후에 미인계 김정일은 2007년 5월쯤 심장 관련 수술을 받았고 2008년 8월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당뇨가 심각해 신장 투석 중이라는 첩보도 있다.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종교인들을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홍보하고 자신들의 추종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평양에 초청하고, 이들을 상대로 미인계를 이용해 친북활동을 강요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북한 당국의 음흉한 수법을 알고 있는 양식 있는 목사들은 “인도주의 운운하며 북한에 무조건 퍼주기 돈을 보내는 목사들과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인계에 약점이 잡혀 있는 인물들”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미인계 공작은 수년 전 서울에서 발생한 ‘원정화 사건’으로 이미 공론화된 바 있다. 특히 한국이나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평양에 갔다가 미인계에 빠진 목사들의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전해지고 있다. 2003년 동료 목사의 권유로 북한을 방문했던 60대의 A목사(뉴욕)는 “평양 고려호텔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새벽 1시 경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깬 A목사는 방문 앞에 반라의 미녀가 서있는 것을 보고 기절초풍 했다는 얘기다. A목사가 방문을 열자 여인은 허락도 없이 방안으로 들어왔고 A목사는 여인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A목사가 “나가달라”고 요구하자 여인은 “목사 선생님. 저는 이대로 나가면 죽습니다. 제발 같이 하룻밤을 자게 해주세요”라며 애걸복걸 했다고 한다. 여인의 애원에 A목사는 여인을 방안에 머물게 했고 두 사람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원정화 사건’으로 공론화
A목사는 “새벽 6시쯤 그 여인을 호텔 방에서 내 보내며 ‘상부에는 나랑 잤다’고 하라고 말했다”면서 “이후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을 방문한 목사들 중에 나만 이 같은 일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고 폭로했다. A목사는 뉴욕으로 돌아 온 후 몇 차례 친북조직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이에 A 목사가 “바쁘다”며 응하지 않자 친북한 조직 관계자는 “북조선을 도와 달라”며 금전 지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또 친북 조직 관계자가 교회로 찾아오겠다고 은근히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금전요구에 시달리던 A목사가 난감한 요청에서 빠져 나오게 된 계기는 자신이 교회 담임목사에서 은퇴한 뒤였다. A목사는 “내가 은퇴한 후 교회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으며 금전적 수입도 없다고 강조하자 그때부터 연락이 없었다”면서 “난 지금도 목사들이 북한을 방문한다 고 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말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목사에 따르면 실제로 북한 미인계에 빠져 친북 활동에 나서는 목사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래서 북한의 미인계로 패가망신을 한 목사들도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LA의 B목사다. 한 때 LA에서 잘 나가는 교회의 담임이었던 B목사는 북한을 방문했다가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고 그가 재직했던 교회는 문을 닫았다. B목사가 북한을 방문하고 LA로 돌아온지 약 한달 후 뉴욕에 있는 북한 대표부 직원들로부터 유엔에 북한 대표부를 한번 방문해 달라는 전화가 있었다고 한다. 또 얼마 후 용천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때 중국에 있는 북한 세력들로부터 구호금을 보내 달라는 전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B목사가 요구를 거절하자 어느 날 교회 앞으로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다. 마침 B목사는 외출 중이어서 북한에서 보내온 우편물을 교회직원이 무심코 뜯어보고는 기겁하고 말았다. 우편물에 담겨져 있는 수십 장의 사진에는 B목사가 북한에서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촬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 직원은 그 우편물을 비밀리에 장로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여성 공작원 동원
이 사건으로 교회는 발칵 뒤집어졌으며 당사자인 B목사는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교회 성도들 역시 ‘창피하다’며 하나 둘 교회를 떠나 그 교회는 마침내 문을 닫고 말았다. B목사는 한 때 한국에서 노동활동을 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방북 중 미인계에 넘어가 북한 당국의 협박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사건이 불거지게 된 것이었다. B 목사가 협박에 응하지 않자 북한당국은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린 것이다. 북한 고위급 탈북자인 김영호(가명)씨는 “북한에서 미인계를 벌이는 여성들은 대부분 많은 훈련을 거친 공작원들”이라면서 “이들은 객실에 선정적 옷차림이나 안마사를 가장해 뛰어든 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들은 노동당 중앙위 5과에서 선발되는 기쁨조 중 공작보조원”이라면서 “이들에게 걸리면 대부분 친북조직 구성원이나 북한을 돕는 공작원으로 활동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