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박근혜, 신데렐라 나경원의 계모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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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조선왕조 후기의 영군(英君)인 정조대왕 이산은 재위 중 모두 150명의 이조판서를 갈아치웠습니다. 평균 재임기간이 달랑 2개월이지요. 임금에게 쓴소리 하는 대사헌은 모두 614명을 교체(실제인원 130명)해 재임기간이 평균 보름에 불과했습니다.
오전에 임명한 대사헌이 오후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변고(變故)도 스물일곱 차례나 있었습니다. 권력이 특정 정파에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탕평 인사의 한 방책이었다고는 하지만, 영특한 천재 군주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탐묵스런 인사방식이었습니다. 정조 임금은 한사람을 여러 고위관직에 몇차례씩 돌려쓰는 ‘회전문 인사’도 즐겼습니다.
8월 30일 한국에서는 또 한차례 개각이 단행됐습니다. 4개 부처의 장관이 교체됐지요. 역시 그 얼굴에 그 얼굴입니다. 장관 인사 때마다 열 받는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 또 한 번 올라가게 생겼습니다.
정조 임금 정도는 아니어도, MB 역시 일 년에 두차례 이상 몇개 부처의 장관을 바꿉니다. 어떤 장관은 왜 바꾸는 지도 모르게 바뀌고, 이런 저런 인책 사유가 있어 물러 난 장관도 어느 날 슬그머니 다시 불러 다른 부처의 장관 자리에 앉힙니다.
이런 인사를 하다 보니까 개각을 할 때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일정비율로 떨어집니다. 몇달 동안 어렵게 끌어올려 놓은 지지율을,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나쁜 개각’ 한번으로 단숨에 날려 버리는 꼴이지요. 이런 인사 실패를 집권 4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문화부장관 하마평에 배우 안성기와 탤런트 송승환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통일부 장관에 MB의 영원한 집사라는 류우익 전 주중대사가 거명되면서 아차 싶었습니다. 천만 다행히도 안성기와 송승환은 “아직 장관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입각을 사양했지요.
류우익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한테 한반도 대운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입니다. 정치력이나 정무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그를 MB는 초대 대통령 실장에 앉혔습니다. 몇달 후 광우병 촛불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이번엔 주중 대사 자리를 줬습니다. 주미 대사직과 함께 2대 특임대사직인 주중대사에 대학 지리 선생님을 지낸 비외교관 출신 대사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지요. 대중국외교가 사위스럽게 꼬이면서 그는 올해초 임기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귀국했습니다. 5월에 있을 개각에 타이밍을 맞췄다는 소문이 나돌았지요.
통일부장관, 국토부장관 입각설과 함께 국정원장, 대통령 실장 복귀설 등 그의 입각은 기정사실화한 듯 보였습니다. 헌데 야당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민주당은 대통령 측근의 회전문 인사를 격렬히 반대하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모든 화력을 그에게 쏟아 낙마시키겠다고 앙앙불락했습니다. 여당 안에서도 동조 분위기가 심상찮게 일자, 대통령은 류우익 카드를 막판에 접었지요.
이명박 정부에서 류우익은 일종의 실패 아이콘입니다. 대운하도, 대통령 실장도, 주중 대사도 모두 패착이었습니다. 틀어진 남북관계에 새 패러다임을 짜야할 통일부 장관에 그가 과연 적임일지 의문입니다.‘우익’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북쪽의 ‘좌익’들이 과연 MB의 장자방 류우익이 기다리는 대화 테이블에 선뜻 나설지도 의문입니다. 야당이 싫어하고 여당 내에서도 안티가 많고, 다수 국민한테는 ‘비호감’인 그를 이명박 대통령은 야지랑스럽게 챙깁니다.
“장관 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거절한 송승환의 ‘착한 선택’이 차라리 돋보입니다.


대선처럼 판 커진 서울시장 보선


10.26 보궐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위선적인 ‘강남좌파’ 곽노현 교육감의 몰락으로 판이 커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열기가 대통령 선거 못지않게 뜨거워졌습니다. 대통령은 ‘그 때 그 사람’들을 돌려막기 식으로 이리저리 바꿔가며 쓰고 있는데, 서울시장을 하겠다는 전국구급 명망가들은 장관자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10.26 보궐선거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곽노현 스캔들 이전만해도 서울시장 보선은 해보나 마나 한 싸움이었습니다. 무상급식 승리의 여세를 몰아 질주하는 야당의 일방적 승리가 점쳐졌습니다. 헌데 무상급식 교육감 자리를 ‘유상’으로 꿰찬 좌파 교육감 곽노현의 매표 비리가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전됐지요.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면서, 여야 모두 중도 부동층을 흡수할 경쟁력 있는 블루칩 후보를 찾아 나서게 된 겁니다.
먼저 뜨거워진 쪽은 여당인 한나라당입니다. 여론조사 지지율 선두인 나경원 의원을 비롯해 원희룡·정두언 의원의 출마설, 정몽준·홍준표 전·현직 대표의 차출설이 나돕니다. 당 밖에서는 김황식 총리, 정운찬 전 총리, 맹형규 행안부장관,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 박세일 전의원, 안철수 교수 등의 영입설도 나돌고 있습니다. 서울시장 필승 후보 찾기의 키워드는 결국 ‘나경원 vs 외부영입 인사’ 구도입니다.
8월 30일 보도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은 여권후보 중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야를 합친 순위에서도 그는 민주당 한명숙 전총리와 1~2위를 주고받으며 ‘나경원 대세론’을 확산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야당인 민주당은 천정배 의원이 일찌감치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국회의원직과 모든 당직까지 버리고 서울시장에 올인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좌파색깔이 짙은 그는 중도 유권자의 표를 이끌어내지 못해 야권으로서는 ‘필패 카드’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의 경쟁력과 돌출행동을 우려하는 손학규 대표 등 주류와의 마찰로 민주당은 지금 집안싸움이 한창입니다.
원내 후보로 천정배보다는 추미애, 박영선 등 여성의원의 지지율이 더 높고 당 외에서는 한명숙 전총리가 부동의 1위로 한나라당의 나경원 의원과 양자 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밖의 외부 인사로는 재야의 박원순 변호사, 안철수·조국 교수 등의 영입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경쟁력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은데 10월에 있을 그의 두건의 재판결과가 변수입니다.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일도 만만찮고, 받아내더라도 그때 가서 후보자리를 거머쥐기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손학규 대표는 원내보다는 외부 명망가 영입에 방점을 두고 있어 의외의 경쟁력 있는 거물급 인사가 야권 통합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얼음공주 박근혜는 ‘침묵 모드’


요즘 한나라당 친이계에서는 ‘박근혜 생모론, 계모론’이 흘러나오고 있다지요. 이번 10.26 보궐선거에서 박근혜가 지원에 나서면 한나라당의 생모이고 그렇지 않으면 계모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지난번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박근혜는 얼음공주의 이미지 그대로 매몰차게 오세훈을 버렸습니다. 그의 복지구상은 사실 곽노현의 보편적 복지 보다는 오세훈의 점진적·선별적 복지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퓰리즘의 유혹과, 잠재적 대선 경쟁자인 오세훈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무상급식 쪽을 지지하는 듯 한 행보를 보였다는 거지요.
박근혜는 같은 여성의원인 나경원한테 결코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나경원은 친이계이고, 범 이명박계의 소장파 다수가 이미 박근혜 진영에 무장해제 된 상태인데도 그녀는 흔들림 없이 소신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경원은 오세훈이 고립무원 상태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한나라당 최고의원회의에서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을 도와야한다. 그를 계백 장군을 만들 거냐?”
사실상 박근혜 진영을 향해 던진 항의성 발언이었지요. 결국 오세훈은 계백 장군처럼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에 나경원이 아닌 외부인사가 영입되면 박근혜는 지원유세에 나설겁니다. 서울시장을 야당에게 빼앗기면 내년 총선은 물론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도 결코 유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고전이 예상되는 수도권의 현역의원들은 ‘선거의 여왕’ 박근혜가 이번 서울시장 보선 지원에 나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보여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나경원이 후보가 됐을 경우입니다. 나경원은 현재 자천타천으로 거명되고 있는 외부의 어떤 거물급 인사보다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의 개인적 인기와 전통 보수표,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박근혜 지원표가 더해지면 야권 단일후보로 누가 나와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게 한나라당 친이계의 계산입니다.
친박계는 박근혜 지원유세의 전제조건으로 공정한 공천, 청와대나 특정세력의 불개입, 박근혜와 대척점에 있거나 그의 대선 가도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사의 배제 등을 꼽고 있습니다. 오세훈 식 무상급식 반대에도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지요. 나경원 불가론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조건들입니다.
화려한 학력에, 스펙에, 거기다 ‘한 인물’까지 하는 10.26 보선정국의 신데렐라 나경원한테, 박근혜는 과연 몹쓸 계모가 되려는지 지켜볼 일입니다. 나경원에게 박근혜의 문턱은 너무 높고 버거워 보입니다.
                                                                                                                        <2011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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