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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7월 28일 자로 캘리포니아주에 해외법인으로 등록된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USA는 해외공연담당자인 최정민 씨가 에이전트로 현재 한세민 대표가 이끌고 있다.
ⓒ2011 Sundayjournal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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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에스엠 USA가 지난 한국 금융감독국에 보고한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총자본금 32억 1,966만원으로 출발했던 이 법인체가 거듭되는 적자행진으로 자본이 상당폭 잠식됐다는 점이다.
최근 사업연도 재무현황 총자산을 보면 17억 415만 2천원으로 당기손실액만 5억 7,338만 1천원에 달한다. 지난해 LA 다운타운 스테이플 센터를 가득 메웠던 SM타운 공연이 매진행진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다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아무튼 현재 에스엠의 계열사는 에스엠 USA를 비롯해 10개 사를 넘어섰으며, 어느덧 코스닥 중견기업이 아닌 대기업으로의 변신이 기대될 정도다.
최근 ‘에스엠(041510)’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이 회장의 지분평가액은 어느덧 1500억원을 넘어선 상태다. 미화로 환산할 경우 이 회장의 재산은 주식만 해도 1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는 밀리어네어를 넘어서 ‘빌리어네어(10억 달러이상 갑부)’를 꿈꿀만 하다.
지난 2일(한국시간) 에스엠의 주가는 사상 최초로 장중 한때 4만원을 돌파하며 신고가인 4만 1,250원을 갱신하기도 했다.
이날의 상승세는 도쿄돔에서 열릴 예정인 ‘도쿄 SM타운 라이브 콘서트’ 티켓 15만장이 이미 매진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기대감을 키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국계 증권사인 골드만삭스가 티켓 매출액만 260억원으로 콘서트 자체 매출 총이익이 50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자 상승세는 급물살을 탔던 것이다.
이렇듯 에스엠의 주가는 올해 초만 해도 1만 7,000원대에 머물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미 200%가 넘는 상승폭을 기록 중에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700억원대를 밑돌던 이수만 회장의 주식보유 평가액 또한 2배가 넘어서 1,500억원대를 돌파했다.
한편 이수만 회장의 지난해 에스엠 지분매각을 놓고 색다른 해석도 있다. 사실 지금 뒤돌아봤을 때 지난해 매도했던 지분 50만주를 그대로 보유했을 경우 보다 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왜냐하면 이 회장의 당시 매도 평균가격은 1만 5,671원으로 현 시세는 2만원 이상 껑충 뛴 3만 8,000원대의 주가를 형성하고 있어 굳이 따지자면 약 1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이 더 올라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회장의 선택은 지난해 50만주의 주식을 매각해 모르긴 해도 합법적 루트를 통해 미주지역으로 송금한 뒤 스튜디오 시티 저택매입과 테메큘라 포도밭 매입을 추진한 것으로 관측될 뿐이다. 한마디로 인생에 있어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과연 한국 연예계 최고 갑부로서 이른바 ‘문화 대통령’으로까지 칭송받는 에스엠의 수장 이수만 회장이 미주지역에서 어떤 결과물을 얻어낼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이수만 회장은 누구? 가수·DJ·연예기획자, 갖은 구설수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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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만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이른바 ‘연예계 비리파문’의 몸통으로 지목되며 파문의 중 심에 섰는데, 당시 LA로 도피했다가 인터폴 수배자 명단(사진 왼쪽)에 등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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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생 용띠인 이수만 씨는 현재 SM엔터테인먼트 그룹의 최대주주로 회장이자 책임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경복고 출신으로 1971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기계학과에 입학해 학사학위를 수료했다.
‘장미’라는 곡으로 유명해진 듀엣 ‘4월과 5월’로 데뷔했으며, ‘한송이 꿈’, ‘파도’, ‘행복’ 등의 히트곡이 있다. 1974년에는 TBC ‘비바 팝스’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처음 토크쇼와 라이브 무대를 결합한 생방송을 진행하는 등 특유의 입담을 과시한 바 있다.
이후 지난 81년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원 노쓰리지(CSUN)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시민권자인 현재의 부인을 만났으며 1985년 귀국해 월미도에서 ‘헤밍웨이’라는 명물 카페를 만들어 사업에 성공한 뒤 연예계 음반사업에 본격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자신의 이름 영문 이니셜을 딴 ‘SM기획’을 지난 89년 2월 설립하면서 연예 기획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마침내 95년 2월 SM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후 2000년 4월 27일 엔터테인먼트 주식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게 되는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련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지난 99년 8월 SM 유상증자 과정에서 회사자금 11억여원을 빼내 주금납입 대금으로 입금한 뒤 납입증서를 받고 그 돈을 다시 인출한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2002년 연예계 비리수사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며 한국 검찰의 압박이 조여오자 이 회장은 LA로 도피해 몸을 숨겨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던 중 같은 해 8월 LA인근 밴나이스의 우들리 레이크 골프코스에서 ‘배짱골프’ 라운딩을 즐기다 로컬 언론에 발각돼 큰 망신살을 뻗치기도 했다.
특히 인터폴 지명수배자 명단에 등재되는 수모를 겪던 중 지난 2003년 5월 스스로 귀국해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가 극적으로 하루 만에 풀려나 적잖은 마음고생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연예인 불공정 계약논란과 관련 이른바 ‘노예계약’이라는 미명아래 지속적 비판대상에 오르내리는 인물로 유명하다.
특히 한류열풍의 선두주자였던 동방신기의 구성원 가운데 3명인 시아준수, 믹키유천, 영웅재중과의 소송분쟁은 연예계 최대 핫이슈로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 분쟁으로 손꼽히고 있는 상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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