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임춘훈(언론인) |
|
|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과장·왜곡한 MBC PD수첩 <광우병 편>은 한 여류작가의 필(feel)이 부른 사단(事端)입니다.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라서‘필’이 꽂혀 글을 쓰고 방송을 했다”고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담당 PD와 함께 시청 앞 촛불시위에 참가했을 때 PD가 물었다지요. “김 여사, 현장에 나와 보니 소감이 어때요?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눈에 보여요? 이제 만족합니까?”그녀가 대답하더랍니다. “아니, 만족 못해요! 더 하고 싶어요!” 방송계 글쟁이 사회에서 반미좌파의 아이콘이 된 작가 김은희와 PD 조능희, 두 콤비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대법원은 2일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왜곡해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은희, 조능희 등 MBC 제작진에게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광우병 보도의 주요 내용은 허위지만, 정부기관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정운천 당시 농림식품장관 등이 낸 명예훼손 소송을 기각한거지요. 좌파 시민단체와 언론은 “언론자유를 바로 세운 판결”이라며 조능희 등을 “언론 탄압에 맞서 싸운 이 시대의 영웅”으로 치켜세웠습니다 .“한국인의 유전자 특성상 인간 광우병 발병확률이 94%나 된다”는 식의 악의적 오보 세 가지를 인정한 법원의 판결은 깡그리 무시됐습니다. 그 대신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한 것만을 부각시키며 자신들이 광우병 소송에서 이겼다고 주장했지요. 광우병 파동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 장장 100일 동안, 대한민국을‘미친 미국소 공포’에 몰아넣으며 수천억~수조원에 이르는 경제 손실을 입힌 망국의 변고입니다. 이 사건을 유발한 모멘텀이 바로 MBC의 PD수첩이었지요.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허위 프로그램을 제작한 주역이 바로 조능희 PD와 김은희 작가 두사람입니다. 조능희는 엊그제 재판정을 나서며 사뭇 분기탱천하더군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 같은 방송을 또 하겠다.” 작가도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에 다시 필이 꽂히면 “언제라도 또 쓰겠다”고 ‘광우병 속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지요. 그 놈의 ‘필’이 뭔지, 백귀야행(百鬼夜行)에 ‘필’이 사람 잡는 골 때리는 세상입니다.
안철수가 몰고 온 새정치 바람
한국이 때 아닌 안철수 돌풍으로 난리를 치르고 있습니다. 부부싸움 할 때도 “여보세요. 그렇게 말하시면 안되죠” 같은 존칭어법으로 싸우고, 직장의 말단직원한테도 꼭 존댓말을 쓴다는 사람, 직원이나 남들 앞에서 화를 내거나 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착하고 여린 사람’…. 네이버의 위키백과엔 안철수가 이런 궁도령 스타일의 호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과거 역대정권에서 국회의원, 장관, 청와대 수석 등의 제의를 받았지만 “정치를 잘 할 자신이 없고, 권력을 즐기지도 못해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는 코멘트도 곁들여 있습니다. 그런 안철수가 무슨 필이 꽂혔는지 갑자기 ‘정치 선언’을 하고 나섰습니다. 10.26 보선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했다가, 닷새 만에 후보 자리를 좌파 재야인사인 박원순 변호사한테 양보한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5000만 국민이 안철수 롤러코스터에 한바탕 뺑뺑이 돌려진 기분이었지요.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인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는데 필이 꽂혀 정치판에 뛰어들게 됐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이 또 서울시를 망치도록 좌시할 수 없다”라거나 “무상급식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에 분노한다”와 같은 안철수의 어법은 남에게 욕도 못하고 화도 못내는 착한 궁도령의 어법이 이미 아니었습니다. 도전적이고 분노에 차 있고 결기가 추상같습니다. 안철수 태풍은 한국의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 실망감, 그리고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불러온 현상이라는 필연적,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정치가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되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보수와 진보의 진흙탕 싸움이던 한국정치가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새로운 움직임이 정치의 제3의 축으로 합류하는 현상”이라고 중앙대 장훈 교수는 풀이합니다.
박근혜 ·안철수 빅매치될까
안철수-박원순 연대를 놓고 ‘기성 정치인 뺨치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상반된 혹평도 물론 있습니다. 당초 서울 시장에 나서겠다고 한 말은 거짓이고 국민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박원순을 띄우기 위해 안 교수가 바람잡이 노릇을 했다는 주장입니다. “안철수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같다. 황당하다”<한나라당 최경환 의원>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한 사람이어서 내년 대선 때까지 정치권에 있을지도 의문이다. 중도 하차할 가능성이 크다”<구상찬 의원>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안철수는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와는 달리 의외로 “나서기 좋아하고, 주장하기 좋아하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태생적으로 정치적 인물이지요. 위키백과에 나와 있는 그의 감투(현재, 과거)는 모두 36개인데 자잘한 것 다 합치면 훨씬 더 많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의 이념성향은 중도우파에 가까웠습니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한 데는 이념적 동질성도 고려됐지요. 헌데 정치 선언 이후 그의 언행은 ‘좌향 좌’로 급선회했습니다. 거기다 급진좌파 색깔이 짙은 박원순 변호사와 손을 잡았습니다. 안철수의 이 같은 돌발변신은 그의 원대한 대권야망과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를 포기하고 일단 대학 강단으로 돌아갔지만, 그것으로 정치의 뜻을 완전히 접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범야권을 아우르는 진보좌파 후보로 나서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와 진검승부를 펼치려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CBS의 6일 대선후보 선호도조사에서 그는 이미 박근혜한테 43.2대40.6으로 이겼습니다. 대체로 40% 정도인 무당파 층이 안철수한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쪽은 한나라당 박근혜 진영입니다. 박근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고전하고 있는 오세훈을 매몰차게 걷어찼습니다. 계산대로 대권 라이벌인 오세훈을 내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버거운 안철수를 링 안에 불러들인 꼴이 됐습니다. 늑대 내쫓고 호랑이 불러들인 셈이지요. 박근혜는 사사건건 한나라당 당권파와 충돌하면서 트러블 메이커의 이미지를 심었습니다. 이념적 정체성이 모호한 정치노선으로 전통 보수 지지층의 상당수를 잃었습니다. 정권을 다 잡은 듯 오만해진 친박계 의원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따가웠습니다. 대권가도를 1년이나 독주하고 있는 박근혜에 대한 식상함과 대세론에 얹힌 피로감이 안철수라는 참신한 대안을 만나 휘청거리기 시작한거지요. 안철수가 내년 대선 고지까지 올라서려면 혹독한 검증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는 한번도 검증을 받은 적이 없어 박근혜나 손학규, 문재인과는 입장이 전혀 다릅니다. 정치권이 눈에 불을 밝히고 달려들 것이고, 경찰보다도 막강하다는 인터넷 수사대들이 뜰 겁니다. 사생활, 재산문제, 회사경영 등을 둘러싼 의외의 약점이 많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습니다. 안철수 돌풍엔 허풍(虛風)도 많이 들어있다는 얘기도 그럴듯하게 떠다닙니다. 이런 검증을 통과한다 해도 그가 대권을 잡으려면 민주당까지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야권단일 후보가 돼야한다는 전제가 따릅니다. 한나라당-민주당-안철수의 3자 구도에서는 보수와 중도보수 표를 함께 끌어들일 수 있는 박근혜가 유리하지요. 득표력이 담보된 마땅한 후보가 없는 민주당이 안철수에게 흡수되는 역학변화가 일어난다면 박빙의 승부가 될 겁니다. 지난 분당 보궐선거에서 51대49로 승부가 갈렸다면 이번 대선에선 50.5대49.5로, 여당과 야권단일후보의 승패가 갈릴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참 묘합니다. 일찍이 대세를 굳힌 후보는 대개 본선에서 죽을 쑵니다. 이회창 후보가 두 번이나 ‘대세론의 저주’에서 무너졌습니다. 선거 막바지에 터져 나온 안풍, 세풍, 병풍 같은 악재 탓도 있지만, 대세론에 취한 선거 캠프의 오만·자만이 불러들인 패착(敗着)이 더 컸습니다. 박근혜는 안철수라는 이름의 또 다른 안풍(安風)이 불어 닥쳐 자신의 대권가도에 먹구름을 불러올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겁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군에서 압도적 1위로 박원순을 이기고 있는 나경원 의원을 감정적으로 비토할 동력도 잃게 됐습니다. 서울시장 후보가 누가 되든 박근혜는 이악스레 지지유세에 나서야 할 겁니다. ‘안철수의 박원순’이 서울시청에 입성하는 것을 막아야 ‘안풍’의 기세를 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선거는 찌질하지만 재미는 있습니다. <2011년 9월 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