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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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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란도쌤’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쌤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에 글을 올릴 때 쓰는 ‘선생’의 줄임말입니다. 란도쌤은 그러니까 ‘란도 선생’이지요. 화제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서울대 김난도 교수를 한국의 누리꾼들은 란도쌤이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지난해 12월 24일 출간돼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 팔렸습니다. 출판사상 일찍이 없던 초스피드 밀리언셀러지요. 란도쌤은 ‘머리를 내리치는 죽비 같은 이야기’로 버겁고 어두운 세상 살아가는 그 땅의 청춘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찬란한 언어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너무 혼자 아파하지 말고 불안하니까, 막막하니까, 흔들리니까, 외로우니까, 아프니까, 그러니까 청춘이다.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인터넷에는 <아프니까…>에 나오는 란도쌤의 명징(明澄)한 ‘명언 모음’이 가득 올라있습니다. 그는 ‘문화계의 안철수’로 떴습니다. 이 나이 되니까 교회나 친구모임에서 만나는 내 또래들은 입만 열면 ‘아픈 타령’입니다. 심장, 혈압, 콜레스테롤, 당뇨, 관절, 디스크, 암, 치매, 간장, 신장, 전립선…. 5분만 얘기하다 보면 좌중은 어느새 종합병원 대합실이 되고 말지요. 란도쌤의 말투를 따라 하자면 늙은 우리들도 외로우니까, 막막하니까, 불안하니까, 흔들리니까, 그래서 모두 아픈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프니까 노인입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한테 “병 걸렸어요?”
박근혜 의원이 유행시킨 “병 걸리셨어요?” 화법이 화제입니다. 말싸움으로 먹고사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요즘 싸우다 말문이 막히면 내뱉는 소리가 “당신 병 걸렸어?”라지요. 시아버지와 박근혜•안철수 얘기하며 정치논쟁을 벌이던 386 운동권 출신 며느리가 불효막심(?)하게도 “아버님, 병 걸리셨어요?”하고 하늘같은 시아버지를 치받더랍니다. 믿거나 말거나, 지난 추석 즈음 K타운의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박근혜 의원은 지난 5일 안철수 돌풍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하는 어떤 기자한테 “병 걸리셨어요?”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젊은이들이 남한테 시비 걸거나 핀잔줄 때 쓰는”너 어디 아프니?” “쥐약 먹었니?”하는 뉘앙스의 말을 대통령 후보다운 점잖고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게 “병 걸리셨어요?”라는 다소 생뚱맞은 말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거지요. 속 좁은 정치인의 오만한 발언이라는 비판여론이 일자 그는 이튿날 “표현이 적절치 못했다”고 언론에 사과했습니다. 과묵한 편인 박근혜는 좀체로 말실수를 안하는 정치인입니다. 설사 사소한 말실수가 있더라도 권위적이며 자존심이 강한 그녀가 직접 유감표시를 하는 일은 거의 없지요. 박근혜 답지 않은 재빠른 사과 해프닝을 보며 “안철수 바람이 세긴 세나보다. 박근혜가 저렇게 쫄다니…”하고 뜨악해하는 국민이 많았을 겁니다. 추석인 12일 박근혜 의원은 느닷없이 가수 은지원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자신의 트위터(@GH PARK)에 올렸습니다. 20~40대에서 안철수한테 크게 밀리는 박근혜가 젊은층과의 소통 뚫기에 나섰다는 얘기가 즉각 나왔습니다. 트위터에는 “박근혜, 드디어 비장의 카드 꺼내다” “박근혜, 급하긴 급하구나” “은지원 본인은 손해일 텐데…”하는 따위의 삐딱성(性) 글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은지원은 박정희 대통령 큰 누나의 손자로, 박의원은 5촌 당고모가 됩니다. KBS <1박2일>에 고정출연하는 은지원은 TV예능프로 등에서 당고모 얘기를 몇 번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당고모가 직접 나서 “은지원이 내 조카”라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요. 국민과의 폭넓은 ‘소통’을 화두로 본격 대선행보에 나서는 박근혜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작은 사건입니다.
거센 안철수 바람… 선전하는 박근혜의 저력
한국은 한해 두차례 정기적으로 ‘정치 대목’을 맞습니다. 구정인 설대목과 한가위 추석 대목이지요. 흩어졌던 가족이 한데 모이는 설과 추석엔 국민의 관심이 큰 정치적 사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설 민심, 추석 민심이라는 게 형성됩니다. 올해 추석 민심을 갈무리해 볼 수 있는 키워드는 안철수와 박근혜, 그리고 물가폭등 등 서민 경제입니다. 안철수 현상, 혹은 안풍(安風)으로 불리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인기는 결코 거품이거나 허풍(虛風)이 아님이 이번 추석민심에서 확인됐습니다. 국민 중에는 안철수라는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왜 인기몰이를 하게 됐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 무지층(無知層)도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안철수’라고, 마치 고스톱 판에서 ‘못 먹어도 고’ 부르듯 외친 다지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3일 실시된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의 조사에서 내년 대통령 선거를 가상한 양자대결의 경우, 안철수는 41.2%로 1위 박근혜의 45.2%를 달랑 4%, 오차범위 내에서 따라 붙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양자대결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53.6% 대 30.7%,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52.8% 대 30.8%로, 박근혜의 대항마가 되기에는 역부족임이 드러났습니다. 이번 추석민심은 박근혜의 건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습니다. 최근 답보 내지는 하향곡선을 그리던 박근혜의 지지율이 다시 50%대에 근접하는 저력을 보인거지요.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수(55.7%)는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바란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도 여당 후보인 박근혜는 1위를 고수했습니다. 박근혜 지지층의 견고성을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여러 이유로 박근혜에 실망해 잠시 떠나있던 전통 보수 지지층이 안철수 돌풍에 화들짝 놀라 다시 그녀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겠습니다.
제2, 제3의 안철수도 가능하다
이번 추석민심은 안철수 대망론(大望論)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는 대선 출마 가능성을 아직까지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부친과 부인이 정계진출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헌데 추석민심을 읽어보면 그는 이미 박근혜의 유일한 대항마가 될 명세지재(命世之才)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보입니다. ‘박근혜 대세론’에 기죽어 있던 범야 정치권이 정치선언 6일 만에 지지율 40%를 뛰어넘은 이 정치 슈퍼스타를 청춘 콘서트나 하면서 전국을 주유(周遊)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안철수가 만약 야권 단일후보로 내년 대선에서 박근혜와 맞붙는다면 거의 50대50의 명승부가 될 겁니다. 그는 부산출신으로 PK지역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동남권 신공항 좌절, 부산저축은행 사건, 지역 경제 피폐 등의 악재가 겹쳐 PK지역에서 한나라 정권과 박근혜는 고전하고 있습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도 과반을 훨씬 넘고 있습니다. 안철수 지지율의 확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입니다. 박근혜는 지금 신발끈을 다시 매려합니다. 이념•정책이 애매모호한 갈 짓자 행보, 실수만 하지 말자는 부자 몸조심 행태, 친박 그룹의 완고한 편가르기식 구태 정치로는 ‘대세론’을 이어갈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권 내에서도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정책 콘텐츠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박의원 자신의 조신한 신비주의적 행보 역시 안철수가 쏟아내는 수사적 정책 비전들과 비교돼 빛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박근혜는 지역구인 달성군수 지원유세에 올인했다가 패배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를 두고 “조용필이 노래방에서 자기 노래 불러 50점 받은 꼴”이라는 비아냥이 일었지요. ‘선거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에도 깊은 상흔을 입었습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중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파는 36%, 지지 정당이 있지만 언제든 바꿀 수도 있다는 변동층은 31%나 됩니다. 10명 중 7명이 이른바 ‘오락가락 스윙 보터’인 셈입니다. 안철수 교수가 ‘6일의 정치 쇼’로 대선 선호도 1위의 박근혜 의원과 대접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치 상황 변화 때문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며 따르는 ‘멘토 1위’라는 ‘란도 쌤’이 나서, ‘머리를 내치는 죽비 같은 이야기’로 ‘아프니까 대한민국이다’를 외치면 쌤도 제2의 안철수가 될 수 있지 않을런지요? 내년 12월 대선까지, 어쩌면 몇 차례의 안철수 신드롬이 더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많은 여론 전문가와 정치 분석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2011년 9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