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호형호제’해온 신 전 차관에게 10억원이 넘는 금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이 중에는 현금, 상품권도 있고 SLS그룹 국내외 법인카드를 신 전 차관이 사용한 것도 포함되며 SUV차량 렌터카 비용을 대납해준 것과 여행경비도 들어 있다고 이 회장은 주장하고 있다.
이 회장은 구체적으로 “신 전 차관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언론사에 다닐 때 매달 300만~500만원 또는 500만~1천만원씩 줬고, 이명박 대통령 후보 대선 캠프와 당선자 비서실에 있을 때 최고 1억원부터 수천만원과 법인카드를, 문화부 차관으로 있을 때 1천만~2천만원을 다달이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신 전 차관은 “명절 같은 때 소액의 금품을 받은 적은 있으나 장기간, 수시로 거액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수수 사실을 시인한 일부 금품도 “대가성은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전 차관이 금품을 받은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다음 단계 검찰의 과제는 사법처리의 기준이 될 ‘대가성’ 입증이다. 이 회장은 대가를 바라고 돈을 준 것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검찰은 장기간 금품을 제공했다는 행태나 SLS그룹의 상태 등에 비춰 청탁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신 전 차관이 기자로 재직할 때 이 회장의 홍보기사를 써준 부분이 문제 될 수 있다. 이 회장은 기사를 잘 써준 데 대해 답례로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신 전 차관이 정치부장 등을 지냈던 한국일보에는 2004년 1월과 2월 이 회장이 운영하던 철도부품 납품업체인 D사 관련 기사가 실제로 실렸다. 이 주장이 맞다면 형법상 배임수재에 해당될 수 있지만 이미 공소시효 5년이 지난 만큼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 회장이 신 전 차관의 요구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경선 캠프 역할을 한 안국포럼에 쓰라며 1억원을 건넸다는 부분도 들여다봐야 한다. 안국포럼 운영비 명목으로 이 돈을 받았다면 대가성과 무관하게 정치자금법 위반이 된다.
하지만 이 회장은 안국포럼 운영비로 돈을 건넨 시점을 “2006년 10월 이전”이라고 못 박았다. 역시 정치자금법 공소시효인 5년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2008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문화부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돈을 받았다는 주장은 검찰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다른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청탁을 받고 뇌물을 받으면 알선수뢰죄가 성립한다.
비극적 결말로 끝난 실세 차관
1983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신 전 차관은 1997년 2월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받았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도 이 때 맺었다. 이 대통령은 98~99년 조지워싱턴대에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인사와 교류했는데, 신 전 차관을 비롯해 이때 만난 사람들 상당수를 요직에 중용해 왔다.
신 전 차관은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 난 지 2년 6개월 만인 99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한국일보에서는 신 전 차관의 불성실한 태도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원인이라는 말도 적지 않다. 특히 현지에 있으면서 지인들과 자주 골프를 치며 술자리에 어울렸던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신 전 차관은 2004년 2월 한국일보를 그만뒀다. 정치부장에서 정치담당 부국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당시 한국일보에 있던 한 기자는 <선데이저널>과의 통화에서 “승진 인사이긴 했지만, 사실상 정치부장 자리에서 밀려난 ‘경질성’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라며 “내부에서는 신 전 차관이 갑자기 사표를 내고 조선일보로 가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인사 불만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신 전 차관은 같은해 4월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탐사보도팀을 맡았다. 이즈음 신 전 차관은 한국일보에서 법조를 맡았던 후배 기자들을 여럿 조선일보로 불러들이기도 했는데, 기자들의 ‘탈출 러시’에 한국일보는 조선일보 쪽에 자사 기자에 대한 스카우트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신 전 차관은 탐사보도팀장을 맡은 지 8개월여 만인 2005년 1월, 주간조선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조선일보는 2006년 11월, 신 전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 공보특보로 가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신 전 차관을 출판국 부국장으로 발령, 일선 제작 현장에서 물러나게 했다. 당시 조선일보에서는 신 전 차관의 씀씀이에 대해 의아해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막말이 부메랑되다
신 전 차관은 이명박 캠프에서 정무기획을 맡았고, 이명박 후보를 매일 아침 만나 1일 보고를 하면서 언론보도를 비롯한 정세를 종합하여 브리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선 후보를 제일 먼저 만나 일일보고를 했던 만큼 정권 출범 후에도 실세 중 실세로 이름을 날렸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등 이명박 정권 실세로 꼽혔고, 박영준 지경부 차관, 장수만 국방부 차관 등과 함께 실세 차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미 <선데이저널>은 천안함 사건 당시 실세 차관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적 있었다.
그는 이후에도 문화부 장관 후보자에 임명되며 승승장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제1차관을 거쳐 장관으로 내부 승진한 것은 이 대통령의 신임이 어느 정도인가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그러나 신재민 전 차관은 인사 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특히 신 전 차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다섯 가지가 넘는 의혹이 불거지며 비리 선물세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당시 신 전 차관은 △부동산 투기 △양도세 탈루 △주소지 위장전입 5건 △배우자의 위장 취업 △차량 스폰서 △증여세 탈루 △과다한 특수활동비 사용 등의 의혹을 받았다.
BBK 의혹 무마 가능성도
검찰이 신 전 차관에 대한 사법 처리를 하려는 배경에는 사건이 BBK 의혹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잘 알려진 대로 신 전 차관은 2007년 대선 전 LA로 건너간 바 있다.
실제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달 2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국철 회장이) ‘신재민 전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전후에 서너 차례 미국을 방문했다’, ‘그때 (신 전 차관이) 해외법인카드를 (미국에서) 사용했고 그 사용내역을 전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증빙자료가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또한 “만약 신 전 차관이 선거 전후에 무슨 일 때문에 미국을 왔다 갔다 했는가라는 것이 밝혀진다고 하면 상당히 큰 파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박 의원은 덧붙였다.
신 전 차관이 미국을 방문해 언제, 누구를 만났는지 구체적인 행적은 불분명하다. 다만 당시 BBK 쪽의 핵심 인물이 에리카 김 변호사였다는 점에서 신 전 차관과 에리카 김이 만났을 개연성은 있다. 신 전 차관이 미국을 다녀온 이유가 밝혀지면 상당한 파장이 있을 것이라고 이 회장이 말했다는 게 박지원 의원의 얘기다.
신 전 차관이 미국 방문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 돈을 요구한 점도 캠프 차원의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 갔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2007년 대선 당시 정치권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는 당시 여당이던 대통합민주당 쪽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인사들도 에리카 김 변호사를 접촉해 물밑거래를 했다는 말이 파다했다.
카드 전표가 공개되면 신 전 차관이 미국에서 머물렀던 시기와 장소가 명확하게 확인된다. 이 회장의 주장대로 대선을 전후해 로스앤젤레스를 여러 차례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 방문 목적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신 전 차관을 소환조사하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이국철 회장의 폭로가 BBK 의혹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셈이다. |